9.5Km 2025-03-27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160번길 89
약사암은 증심사의 부속 암자로 새인봉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도윤(道允)이 847년(문성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당시에는 인왕사(人王寺)라고 했다가, 고려 예종(1105~1122) 때 국사 혜조(慧照)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약사암으로 바꾸었다. 조선시대인 1856년(철종 7) 3월에 성암(性庵)이 약사전을 중수하였고, 1905년 9월에 선주(善周)가 관청의 도움과 시주로 중건했다. 이후 1970년대부터 주지 석담(石潭)이 법당과 요사채 등을 중건·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약사암에 보존되어 있는 유물로 석조여래좌상(보물)과 3층석탑이 있다. 이 두 가지의 유물이 9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추정되어 이 절의 역사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현재 약사암에는 대웅전, 운림당, 운림서원, 강원, 일주문 등이 있으나, 모두 1970년 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의 건물이다. 대웅전에는 독성탱화·칠성탱화·산신탱화·신중탱화 등의 불화가 있는데 독성탱화는 1912년에 그린 것이며 칠성탱화와 산신탱화도 이와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신중탱화는 근래의 것이다.
9.5Km 2024-06-03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학포로 1786-45
죽수서원은 조광조와 학포 양팽손을 배향하고 있다. 선조 3년(1570)에 능성현령 조시중의 협조로 지금의 자리에 서원을 짓고, 죽수라는 사액을 받았다. 조광조는 중종 14년(1519)에 일어난 기묘사화로 능성현에 유배되었다. 이때 조광조와 사가 독서를 함께 했던 양팽손도 관직을 삭탈당하고 고향인 능성현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은 자연히 만나 서로 의리를 다지게 되었다. 그러나 조광조가 유배된 지 한 달여 만에 사약을 받고 죽자, 양팽손은 몰래 시신을 거두어 화순 쌍봉사 골짜기에 장사를 지내고 마을에 초가집을 지어 제자들과 함께 제향하였다. 그러다가 선조 1년(1568)에 조광조는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이듬해 문정(文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와 함께 조정에서 조광조를 향사할 서원을 건립하기로 하고 지은 것이다. 그 후 1630년 도내 유림과 조정의 김장생 등이 뜻을 모아 양팽손도 추배 하였다. 그러다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려 겨우 단을 마련하여 제향 하여 왔다. 1971년 제주양씨 후손들이 도곡면 월곡리에 죽수서원을 복원하였고 1983년 다시 한양조씨 조국조를 중심으로 한 후손들이 본래의 위치인 모산리에 복원을 추진, 월곡리의 건물을 이전 신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9.8Km 2025-04-03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관동길 7
061-372-1178
능주면 관영리에 자리한 능주장은 오랜 역사에 비하여 옛 모습을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함은 있으나 현지에서 생산되는 각종 특산물 때문에 인근 광주시민이 자주 찾는 곳이다. 현재 능주면, 한천면, 춘양면, 도곡면과 도암면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9.8Km 2025-03-19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상사1길 48
임대정원림은 조선 후기 철종 때에 병조참판을 지낸 사애 민주현이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건립한 임대정과 임대정을 둘러싼 원림을 말한다. 임대정이란 이름은 봉정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사평천과 합쳐지는 곳에 정자가 위치하였다 하여 [물가에서 산을 대한다]는 중국 송나라 주돈이의 시구를 딴 것이다. 임대정원림은 1500년대 말에 남언기가 조성한 고반원 옛터에 민주현이 3칸 팔작지붕의 정자를 건립한 것이다. 전통적인 한국 정원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는 임대정원림은 대상부와 대하부로 나누어져 있다. 대상부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중도가 있는 방지와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살구나무, 배롱나무, 은행나무 등이 심어진 숲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절벽 아래의 계단을 내려가면 위와 아래에 2개의 연못이 있다. 위쪽의 연못은 정자로 가는 길옆에 길게 늘어진 형태로 있고 가운데 2개의 섬이 있다. 아래쪽 연못은 중도가 하나인데 위쪽의 연못에 비해 좀 큰 편이며, 주위에 배롱나무가 있다. 두 연못 사이는 수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지난 날 이 정자에는 많은 문인이 찾아와 시를 읊었고, 충효 예절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9.9Km 2024-11-05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죽수길 73
죽수절제아문은 능성현(화순 지역에 있던 옛 행정 구역)의 동헌인 녹의당의 정문으로 지어진 관아의 대문이다. 최초의 건립은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녹의당 건립과 함께 지여 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동헌은 수령이 공사를 처리하는 곳으로, 조선왕조 지방 관청의 중심 건물이다. 1599년에 아문을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602년에 당대의 문필가이던 하동 정씨 정이가 능성관의 현판과 함께 쓴 죽수절제아문 현판이 오늘에 전한다. 1632년 능성현이 능주목으로 승격된 후에도 동헌의 정문으로 사용되었고 수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죽수절제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각집이다. 중앙칸은 옆보다 넓게 꾸며 2짝 판자문을 달았고, 그 앞으로는 외짝 문을 달았다. 기단은 막돌로 낮게 축조되어 있고 초석은 큼직한 자연석을 가공 없이 그대로 사용하였다. 관련된 동헌(녹의당) 등 옛 건물은 모두 훼철되고, 오직 이 문만 남아 있으며 옛 관아 자리에는 현재 현대식 건물인 능주 면사무소가 있고 이 건물과 약 50m 거리를 두고 죽수절제아문이 있다. 관아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대부분 철거되어 전국적으로 남아 있는 유적이 많지 않지만, 이 문은 비교적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특히 고흥의 동헌 아문과 함께 전라남도에서 2개밖에 안 되는 귀중한 관아 정문이다.
9.9Km 2024-01-15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정암길 30
조광조 유배지는 화순군 능주면에 있으며 작은 비각과 전각, 복원된 초가집이 전부인 유적지이지만 조선 중기 이상적인 개혁 정치를 꿈꾸었던 젊은 정치인의 노력과 37세 짧은 생의 마지막을 담고 있는 뜻깊은 땅이다. 조선 중종 때의 개혁 공신 조광조의 유배지와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붉은빛 글씨가 선명한 비석은 [정암 조선생 적려 유허 추모비]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을 도와 유교 정치의 이상향을 실현하는 과감한 개혁 정치를 시행한 조광조는 도교 사당인 소격서의 철폐, 향약 실시, 토비와 노비 하사의 특권을 인정받았던 훈구 공신의 명부인 훈적 삭제 등 왕도정치의 이상 세계 구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폈다. 그러나 결국 역성혁명을 꾀한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를 떠나게 되었으며 개혁 세력 모두 축출된 당시의 사건은 기묘사화로 불린다. 문화 관광 해설자가 있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며 역사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9.9Km 2023-08-11
화순은 전북 고창, 강화도와 함께 고인돌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곳이다. 대신리에서 효산리에 이르는 길에는 핑매 바위를 비롯한 수많은 고인돌과 돌을 떼어냈던 채석장의 흔적도 만나볼 수 있다. 고인돌 유적을 한 바퀴 둘러보고, 또 다른 돌의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운주사의 천불천탑, 쌍봉사의 철감선사탑도 함께 만나보자.
10.0Km 2024-12-05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정암길 30
조선 중기 성리학자이며 개혁주의자였던 정암 조광조 선생이 1519년 기묘사화로 인해 능성에 귀양을 와 사약을 받았던 곳으로, 조광조 선생을 추모코자 세운 것이 적려유허비이다. 적려란 유배되어 간 곳을 이르며, 유허비는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히어 후세에 알리고자 세워 두는 비를 말한다. 이 적려유허비는 능성현 당시 북문이 있었던 곳 부근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귀부와 비신, 이수를 갖추고 있다. 귀부는 자연석에 가까운 암석으로 거북의 형태만 갖추었고 귀부도 형상만 다듬었다. 이곳에 유배당한 조광조 선생의 자취를 기록한 비문은 의정부 우찬 겸 성균관제주세자이사 송시열이 짓고 전서는 충청도 관찰사 겸 수군절도사 순찰사 민유중이, 글씨는 의정부 좌참찬 송준길이 썼으며 현종 8년(1667년) 4월에 능주목사 민여로가 건립하였다. 정암 조광조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과 유배하러 와서 살았던 초가집이 함께 있다.
10.0Km 2025-03-25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광주광역시 금곡동제철유적은 금곡(金谷)이라는 지명이 쇳골을 의미하고 있으며, 유적 주위에 건물지의 기단부와 수많은 철재가 남아 있어 일찍부터 유적이 나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금곡동제철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1567~1596)의 의병 활동과 관련한 무기 제조창으로 알려졌다. 금곡동제철유적 일대는 산화철이 포함된 미문상 화강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이 암석을 모암으로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철을 채취할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무등산 내에서 제철 연료용의 목탄도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 작업장 내에서 제철, 정련, 단조 철기 제작의 전 공정을 보여 주는 유구가 일괄 확인되어 15~16세기 제철 및 철기 제조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또한, 금곡동제철유적의 발굴을 통해 김덕령의 의병 활동 과정에서 무기 제조 장소로 활용된 역사적 사건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유적지에 이르려면 무등산 의병길을 따라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10.1Km 2025-03-28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학포로 1877
061-373-5054
전남 화순시 한천자연휴양림 근처에 위치한 황토와참숯은 국내산 생고기만 취급하고 있어 다른 식당에 비해 고기가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강하며, 10여 가지의 맛깔스러운 밑반찬으로 다른 고깃집과는 엄격하게 차별화를 시키고 있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을 위하여 마당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이 있어서 좀 더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