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귀정사(남원)

귀정사(남원)

2025-03-05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2길 246

귀정사는 백제 무녕왕 15년(515년)에 현오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본래는 만행사(萬行寺)라 불렸다. 이후에 백제의 왕이 절에 참배를 와서 고승(高僧)의 설법에 탄복하여 3일간 절에 머무르며 국정을 살피고 돌아갔다 하여 귀정사(歸政寺)라 고쳐 불렀다. 왕은 “죽고 살기를 스님과 더불어 같이 한다”는 글귀를 남겼다고 한다. 1221년 대방(남원의 옛 이름) 태수 복장한(卜章漢)의 요청으로 귀정사에 제2의 백련결사를 개설했다. 고려 목종 5년(1002년) 대은스님이 크게 중창하였고, 조선 세조 14년(1468년)에 낙은스님이 각각 두 차례에 걸쳐 크게 중창하였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모두 소실됐다. 현종 5년(1664년) 설제대사가 비교적 옛 모습대로 고쳐졌고, 순조 4년(1804년)에 현일대사가 다시 보수하였으나, 우리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와중에 옛 건물이 모두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옛 귀정사에는 법당, 정루, 만월당, 승당, 연화당, 삼광전, 문수전, 명월당, 시왕전, 향로전, 영당의 전각이 있었으며, 부속 암자로는 남암, 상암, 대은암, 낙은암 등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귀정사에 살던 스님들이 모두 흩어지자 만공스님이 큰 법당에 모셔졌던 삼존불상을 충청도 수덕사 대웅전으로 옮겼고, 지금도 그곳에 모셔져 있다. 1968년 유정동 스님이 보광전, 승당, 요사채를 복원하였다. 2006년부터는 새로운 대승불교운동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의 터전이 되면서 중창불사가 시작되어 보광전 개축, 만행당, 관음전, 산신각, 종각 등을 새로 건립하였고, 인드라망 수련원, 만행산 귀농학교, 숲살림원, 사회연대 쉼터 인드라망 등이 운영되고 있다.

국청사(부산)

국청사(부산)

2026-01-05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문로 42

국청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선 숙종 29년 금정산성 축조와 함께 중수하여 이름을 국청사라 칭하고 순조 26년의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청사지(國淸寺誌)에 '국청사에는 동래 부사 송상현, 부산진 첨사 정발, 다대포진 첨사 윤흥신 등과 함께 승장 만홍, 정안, 성관, 관찰 등 수백 명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고 있다.' 라는 기록이 있음을 비추어 볼 때 임진왜란 때 이미 의승군의 숙영지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703년 금정산성이 개축되면서 국청사와 해월사(海月寺)를 지었다. 국청사는 최근 들어 중창을 거듭하였다. 1978년 삼성각을 지었고, 1982년 승려 창봉과 혜성이 경내에 있는 연못 중앙에 3층 석탑을 조성하였다. 1992년 대웅전을 지었고, 1998년 요사를 지었으며, 2010년 일주문을 건립하였다. 국청사에는 조선 시대 승병장이 사용하던 금정산성 승장인이라는 철제 도장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자료를 통해 승군 작대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국청사와 해월사 모두 산성을 방어했던 호국 사찰로, 국청사에는 산성을 지키는 승병장이 거주하여 전략 기지의 역할을 한 의승군의 사령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절암(홍성)

구절암(홍성)

2025-04-30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거북로218번길 163

굽이굽이 산 길 따라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대숲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사찰, 구절암을 찾는 길은 산이 높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구불구불 꺾이는 산길을 지나 산사를 찾는 마음이 바쁘지만, 이정표도 없고 길을 물어볼 사람조차 발견할 수 없다.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한 산사를 이렇게 찾기 힘든 것처럼 구도의 길 또한 그만큼 멀고 험한 것이 아닌가 싶다. 구절암 가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길이다. 지나가는 사람 한 명도 만날 수 없는 인적 드문 시골길. 봄바람이 살랑살랑 귓불을 간질이고 작은 바람에도 대밭의 댓잎들이 서로 비비면서 내는 소리가 싱그럽다. 봄을 준비하고자 두엄용으로 뿌려놓은 쇠똥 냄새가 시골 내음으로 다가오고, 멀리서 밭을 돌보는 농부의 손길이 무척 바쁘다. 그다지 멀지 않은 절까지 가는 길이 유난히 험난한데, 어느 정도 가면 이제 가파른 경사길이 나오지만 절은 아직도 멀었다. 낮은 하늘 아래에 위치한 사찰이지만 아득하고 멀기만 한다. 이렇게 찻길이 꼬불거리고 가팔라 힘이 들고 절을 찾아가야 하는 마음은 바쁘며, 또 갈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산사에 도착하자마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구절암이 멀리서 보이게 되면 좌우에는 크고 작은 돌을 손 닿은 대로 올려 마치 탑처럼 쌓아놓은 것과 만나게 된다. 이제 굽이굽이 복잡하고 험난한 길을 지나 드디어 구도의 길을 찾아가듯 힘들었던 구절암에 도착하게 된다.

구절사

구절사

2025-04-17

충청북도 옥천군 상중길 226 문화재(전통사찰-구절사)

구절사는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 구절사는 옥천의 상동 부락 서북쪽에 우뚝 솟아있는 식장산 영축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구절사는 조선 태조 2년, 1393년에 무학대사께서 최초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전의 사명은 영구암이었는데 이는 영축봉의 동쪽과 서쪽의 두 정상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놓여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탑 사거리에서 구절사까지는 좌우에 수많은 아카시아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 나무들은 5월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향기가 온 천지를 감싸는 아카시아 꽃길을 이룬다고 한다. 이 사찰은 어느 순간 폐사되었으나, 1933년에 절 아랫마을의 한병석이 이곳에 참배하러 왔다가 중건했다. 이후 사찰의 명칭이 구절사로 바뀌게 되었는데, 절 뒤에 있는 영축봉을 구절산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구암사(순창)

구암사(순창)

2026-06-25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

구암사는 백제 무왕 35년(634) 숭제법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 태조 원년(1392) 각운선사에 의해서 중창되었다. 무학대사가 구암사를 방문했을 때 마치 붓처럼 우뚝 솟은 문필봉을 가리키며 후세에 선승과 문인이 많이 배출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이 예언과 같이 후대에 석전 박한영을 비롯한 불교계의 많은 지도자들이 구암사에서 배출되었다. 구암사에는 전북특별자치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조선 태조 원년(1392) 무학대사 자초의 방문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로 추정되며, 조선 왕조의 번창과 태조의 안녕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구암사 일대와 주변의 숲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은행나무는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보물로 지정된 월인석보 권15도 발견되었는데, 완전한 상태로 전존되는 판본이 없었다는 점에서 초간본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1998년에 소개된 바 있는 성암본이 모두 30장에 불과한 점으로 보아 구암사본은 비록 앞뒤의 표지가 결락되어 있으나, 본문에는 낙장이 전혀 없는 완전한 상태이다. 월인석보 권15는 완전한 초간초쇄본이라는 점에서 그 진가가 높다.

증평 광덕사

증평 광덕사

2025-03-17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상그린로 239

광덕사는 1949년 이묘연 보살이 석불의 몽조(夢兆)를 얻어 석불 옆에 3칸의 암자를 짓고 마을 이름을 따서 광덕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사찰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나 석불입상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곳에 계속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자리에서 천여 년을 비바람과 더불어 지키고 있다. 이 불상은 광덕사 석조여래입상으로 현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체 높이 4.8m, 불상 높이 4m나 되는 거대한 불상이다. 긴 얼굴에 눈은 반쯤 뜨고 정면을 바라보며, 목에는 3개의 줄 삼도(三道)가 있고, 귀는 긴 편이다. 위엄이 있으면서 자비로운 인상을 풍기고 있는 고려 초기의 작품이다.

관음사(대구)

관음사(대구)

2025-07-21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로 535

대한 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인 관음사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1호인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절벽 아래 난간과 계단을 세우고 자리하고 있다. ‘팔공산도동낙가산관음사사적비명’에 의하면, 관음사는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10년(670)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9세기 초에 심지왕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이후 관음사는 1933년에 해인대사가 중수하였고 교남지에 '해안면 도동에 관음암이 있다.'라고 함을 보아, 해인대사가 퇴락한 관음암을 중수하였다는 것은 사실로 추정된다. 1970년에 관음전을 신축하였고 1999년에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해탈문을 지나면 1층은 정면 7칸, 측면 5칸, 2층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구조의 무설전이 있다. 무설전 맞은편 2개의 석등 사이로 난 돌계단을 오르면 아주 작은 2층의 누각이 있어 1층에는 낙가산관음암이, 2층에는 관향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관음전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주심포식 팔작지붕 구조로 석조관세음보살입상을 주불로 봉안하고 오른쪽 미륵보살 왼쪽에 지장보살을 모셨다. 특히 주불인 석조관음보살은 외형이 매우 투박하여 옷의 주름 표현이 세련되거나 화려한 관을 쓰고 있지도 않다. 미륵전은 관향루 왼쪽 계단을 올라가면 자연석 바위를 머리에 인 상태로 조그마한 전각에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다. 누각 아래 길을 오르면 향산이라는 편액이 있는 요사가 있고 관향루와 요사 뒤쪽 산 중턱에 오층석탑이 있다. 관음사는 사찰의 규모가 크지 않고 모셔진 불상이 화려하지도 않은 소박한 사찰이다. 또한 오랜 세월 관음사와 함께 한수백 년 된 대구 도동 측백수림은 대구 10경 중의 하나로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극락사(경기)

2025-12-22

경기도 광주시 양촌길 268-1 (양벌동)

경기도 광주시 백마산 중턱에 위치한 극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말사이다.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624년 남한산성 축조에 동원된 의승들이 거주하던 사찰이라고 한다. 그 외에 승려들을 수용하기 위해 장경사를 비롯한 7개의 사찰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극락보전, 삼성각밖에 없어 절의 규모는 작은 편이나 주전인 극락보전 안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광주 극락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이 있다. 석조지장보살좌상은 조선시대의 지장보살상으로, 높이가 47cm 정도인 작은 상이다. 가부좌한 다리 위에 양손을 포개어 놓은 선정인의 손 모습을 하고 있다. 보주를 받들기 위해 선정인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민머리의 승려형 보살상으로 둥근 얼굴에 양 볼이 통통하며 얼굴 중앙의 코가 오뚝하다. 코 좌우의 두 눈은 가늘고 길며 살짝 다물고 있는 입에는 미소가 감돌아 온화한 인상을 자아낸다. 가슴에는 치마단이 수평으로 걸쳐져 있고, 이를 묶은 매듭이 반원형의 곡선을 그리며 좌우로 늘어져 있다. 또한 다리 중앙에서 삼각형 모양의 옷자락이 길게 흘러내리는 표현되어 있는데, 이 부분들은 다른 불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국녕사(고양)

2026-02-27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268 (북한동)

북한산성 가사당 암문 아래에 자리한 국녕사는 1713년 승병의 군영이라는 목적으로 창건된 사찰로 1711년에 북한산성 축성 이후 산성의 수비를 위해 창건한 13개 사찰들 중 하나이며 86칸 규모로 승려 청휘와 철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승군들은 북한산성 수비와 관리를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승군이 머무를 수 있는 도량은 필수적이었다. 창건 이후 국녕사는 갑오경장으로 의승군이 폐지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나 이후 노역에 지친 많은 스님들이 떠나게 되어 한국전쟁 이후까지 폐허로 남게 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국녕사가 편안하면 나라가 편안하다’라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보경 스님에 의해 법등을 다시 밝히게 된 국녕사는 1991년 화재로 소실이 되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지금의 국녕사는 1998년 폐허를 딛고 가람을 중창한 것이어서 예전의 모습은 찾을 길 없다.

광덕사(상주)

2025-09-04

경상북도 상주시 외남면 구서2길 138

상주 광덕사는 1925년 동학 상주지구 접주였던 해운당 배순광이 불교에 귀의하여 창건한 사찰이다. 1974년 대한불교법화종 말사로 등록하였고, 1988년 7월 전통사찰로 선정되었다. 1954년 배순광스님이 입적한 후부터 경수스님이 주지로 주석하며 1990년 대웅전·삼성각을 중수하고, 1992년 오층석탑, 1993년 종각을 지어 오늘의 모습에 이른다. 경내에는 1952년 동학의 거장 수운 최제우의 도덕연원 영세불망비를 세워 매년 이날 천제를 올리고 있다. 상주 인근 지역에 동학교당이 있어 이와 연계하여 관람하며 그 의미를 짚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