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Km 2025-03-19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헐티로10길 18
동제미술관은 대구 달성군 가창면에 자리 잡고 있다. 2002년 개관한 대구 사설 미술관으로 상시 전시를 하고 전시 작품은 가격 협의를 통해 소장이 가능하다. 미술관에는 널찍한 잔디 광장, 화가의 작업 공간, 카페, 아트숍, 전시 공간 등이 갖춰져 있다. 입장료를 내면 카페에서 파는 모든 음료 중 하나를 선택해 맛볼 수 있다. 미술관은 파동 IC와 가깝고, 주변에는 화원자연휴양림이 위치해 있다.
7.7Km 2025-11-28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로 1099
가창 찐빵 골목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위치하고 있다. 대구방향에서 가창, 청도 방향 신천대로로 진입하다 가창댐으로 들어가는 길목 대로변과 가창면 행정복지 센터로 들어가는 가창로 주변에 모여 있다. 대구 수성구 파동에서 가창 냉천(스파벨리), 가창댐, 헐티재, 청도 방면으로 오가는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맛있는 찐빵으로 알려졌으며, 2000년에 가창면사무소 맞은편 찐빵집이 문을 열면서 시작된 골목의 역사가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9곳의 찐빵집이 골목을 이루고 있다. 대구 지역 방송에 처음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해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구 명물거리가 되었고, 가창 찐빵은 대구 달성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골목 어느 상점이어도 찐빵 맛집으로는 손색이 없어 가게마다 나름의 특색과 장점을 내세워 단골을 확보, 가게 앞에 구매 고객들의 행렬을 만들고 있다. 겨울이면 만두와 찐빵을 찌는 하얀 김이 거리를 덮어 이곳이 가창 모락모락 찐빵 골목임을 증명한다.
7.7Km 2024-05-24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로 1099
053-768-5768
대구 달성군 가창면에 위치한 박지연의 가창옛날찐빵본점은 대한민국의 대표 먹거리이자 전통 간식인 찐빵을 판매하고 있는 대구 일대 유명한 찐빵집이다. 2000년, 처음으로 가창에서 찐빵집을 시작한 이 가게에 영향을 받아 부근에 찐빵, 호빵, 만두를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찐빵거리가 형성되었다. 대구 지역 방송에 찐빵거리가 방영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특성화 골목으로 명성을 펼치게 되었는데, 이는 소위 가창 찐빵 거리의 원조 가게인 박지연의 가창옛날찐빵본점의 영향이 크다. 20여 년 동안 한자리에서 당일 제조 판매를 고수하고 있으며, 반죽부터 시작해 직접 손으로 빚어 수작업으로 만드는 찐빵이 인기가 많다. 주력 메뉴는 찐빵과 손만두로, 이 맛을 기억하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 줄서서 기다리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홈페이지를 통한 주문도 받고 있으며, 찐빵연구소를 설립하여 신메뉴 개발 및 제품 생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7.7Km 2024-12-19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로 1102
053-767-1007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에 있는 호찐빵만두나라는 찐빵, 만두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다. 메뉴에는 팥찐빵, 쑥찐빵, 호박찐빵, 찐만두, 왕만두, 고기만두 등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며 선물용 박스로도 구입이 가능하다.
7.7Km 2025-10-23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525길 14-23 (만촌동)
053-666-4930
모명재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조선에 귀화한 두사충을 기리기 위하여 두릉 두씨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모명재’는 고국인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이다. 두사충은 중국 두릉 출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제독 이여송 휘하의 장수로 조선에 파견되었다. 그는 지세를 살펴 진지를 설치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는 수륙지획주사라는 직책을 맡았으며, 이여송의 일급 참모로서 조선군과도 전략·전술상의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였다. 임진왜란이 평정되자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아들 두산, 두일건과 함께 매부인 진린 도독과 다시 출진하였다. 전란이 끝난 뒤 두사충은 두 아들과 함께 조선에 귀화하였고, 조정에서는 그에게 대구 시내 중앙공원(현 경상감영공원) 일대의 땅을 하사하였다. 이후 그 땅에 경상감영이 들어서자 두사충은 자신의 토지를 내어주고 계산동으로 이주하였다. 고국에 두고 온 부인과 형제들을 그리워하던 그는 최정산(현재의 대덕산) 아래로 거처를 옮기고, 동네 이름을 ‘대명동’이라 붙였다. 또한 단을 쌓아 매월 초하루가 되면 명나라 황제가 있는 자금성 방향으로 배례를 올렸다고 전한다. 모명재는 네모 반듯한 대지 위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기와집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앞쪽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마련하였다. 이 건물은 20세기 초 대구 지역 재실 건축 형식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모명재는 1912년 경산 객사가 철거되자, 그 재목을 후손들이 옮겨와 두사충의 묘소 앞에 지은 것으로, 1966년에 낡은 건물을 중수하였다. 대구를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재정비 사업을 통해 새롭게 단장되었다.
7.8Km 2024-11-28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범로39길 11-12 (범물동)
053-782-9571
대구 향토전통음식점으로 지정된 업소로서 5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육개장 전문점이다. 무와 고기를 네모지게 설어 넣고 파를 많이 넣어 매콤하게 양념한 육개장은 대구식 요리법을 따르고 있다. 선지를 말아 나오지 않고, 별도로 주문해서 섞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넘치도록 담아낸 육개장과 밥 한 그릇, 깍두기 하나가 전부이지만 그 맛은 일품이다.
7.8Km 2025-10-23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대구 팔거산성이 위치한 함지산은 대구 분지의 북쪽 부분을 감싸며 동에서 서로 흐르는 금호강의 북안에 솟아 있어 산 정상에서는 남쪽으로 대구 분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의 북서쪽으로는 구암동으로부터 다부~가산을 거쳐 영남 북부의 군위·의성(현 5번 국도), 북서부의 구미·상주( 현 25번 국도) 방면으로 연결된다. 이처럼 팔거산성은 구암동 일대는 물론 대구분지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다. 그리고 성 아래를 지나는 금호강을 따라 동쪽으로 경산·경주지역, 서쪽으로 낙동강 본류와 합류하는 다사 지역이 연결되는 통로를 관리할 수 있다. 더하여 북쪽으로는 영남 북부 지역과 곧바로 연결되는 길목의 시작점이 된다. 따라서 산성은 대구 분지 일원을 조망하면서 동시에 동쪽과 서쪽, 북쪽으로 연결되는 육로와 수운을 관리할 수 있는 요충지에 축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팔거산성은 5~6세기에 축조된 삼국시대 산정식 성곽이며, 성벽은 함지산의 자연지형을 따라 축조되었다. 1999년 지표조사를 통해 파악된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1,136.8m, 성내 면적은 약 55,101.67㎡이다. 발굴 조사 결과 신라시대 산성에서 주로 나타나는 양식인 현문(縣門)식 구조, 곡성(曲城) 등이 확인됨에 따라 신라시대 축성양식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는 한편, 완만한 경사의 성벽, 곡성과 성벽의 접합부 축조방식 등을 통해 해당 산성만의 독특한 축성 양식이 확인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뛰어나다. (출처 : 국가유산청)
7.8Km 2025-05-30
대구광역시 동구 방천로2길 3 (불로동)
여행자의 책은 이름에 걸맞게 대구공항 앞에 있다. ‘삶이 곧 여행이고, 사람이 바로 책’이라는 생각으로 서점을 열었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시작되는 인문여행을 기획함으로써 책 읽는 삶을 선사 중이다. 덕분에 바로 옆 금호강변을 산책하고 동네를 탐방하는 서점여행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멀리서 찾은 이들이 오래 쉬어갈 수 있도록 곳곳에 의자가 있으며 책과의 하룻밤을 꿈꾸는 이들이 묵어갈 방이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 1층은 서점으로 2층은 북스테이로 운영 중이며, 느린카페와 전시공간이 함께 있다. 대구사람 열두 명을 집중조명한 코너와 36인 작가의 방 책장이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끈다. 어떻게 하면 책으로 한번 놀아볼까 탐색하는 놀이연구소로서 ‘없는 길을 떠나는 곳’을 지향하고 있다.
7.8Km 2024-12-10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로3길 47-19
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는 고려 후기 충신 구홍과 조선 후기 의병장 구회신을 기리는 재실 송계당은 1960년에 중건하였으며, 후손 구현이 중건 기문을 썼다. 고려말 충신이었던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인 시문정공 송은 구홍과 그의 8세손이며 조선조 임진왜란 때 대구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첨정공 계암 구회신의 절개와 위업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659년(효종, 10년)에 세운 건물인데 두 분의 아호를 따서 당호를 송계당이라 하였다. 가구는 3량 집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대청양쪽의 툇마루는 대청보다 한단 높고 난간이 둘러 쳐져 있다. 제고물 반자로 천정의 경사가 매우 낮고, 대공은 원형 판대공으로 되어 있으며 1960년에 중건하였다. 송계당 강당에는 기문과 시가 편액되어 있으며, 송계당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무태 지역의 선비 정신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웃하여 현손이 거주하고 있는 능성세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