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모명재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조선에 귀화한 두사충을 기리기 위하여 두릉 두씨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모명재’는 고국인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이다. 두사충은 중국 두릉 출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제독 이여송 휘하의 장수로 조선에 파견되었다. 그는 지세를 살펴 진지를 설치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는 수륙지획주사라는 직책을 맡았으며, 이여송의 일급 참모로서 조선군과도 전략·전술상의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였다. 임진왜란이 평정되자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아들 두산, 두일건과 함께 매부인 진린 도독과 다시 출진하였다. 전란이 끝난 뒤 두사충은 두 아들과 함께 조선에 귀화하였고, 조정에서는 그에게 대구 시내 중앙공원(현 경상감영공원) 일대의 땅을 하사하였다. 이후 그 땅에 경상감영이 들어서자 두사충은 자신의 토지를 내어주고 계산동으로 이주하였다. 고국에 두고 온 부인과 형제들을 그리워하던 그는 최정산(현재의 대덕산) 아래로 거처를 옮기고, 동네 이름을 ‘대명동’이라 붙였다. 또한 단을 쌓아 매월 초하루가 되면 명나라 황제가 있는 자금성 방향으로 배례를 올렸다고 전한다. 모명재는 네모 반듯한 대지 위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기와집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앞쪽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마련하였다. 이 건물은 20세기 초 대구 지역 재실 건축 형식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모명재는 1912년 경산 객사가 철거되자, 그 재목을 후손들이 옮겨와 두사충의 묘소 앞에 지은 것으로, 1966년에 낡은 건물을 중수하였다. 대구를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재정비 사업을 통해 새롭게 단장되었다.
문의
053-666-4930
홈페이지
이용안내
체험가능 연령 : 전 연령
문의 및 안내 : 053-741-6712
주차시설 : 가능
쉬는날 : 연중무휴
이용시간 : 상시 개방
상세정보
입 장 료
무료
화장실
있음(한국전통문화체험관)
위치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525길 14-23 (만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