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국삼장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명국삼장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명국삼장비

명국삼장비

10.4 Km    18484     2023-12-08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명국삼장비는 충남 공주시 공산성 공북루 아래에 위치한 비석이다. 이 비석은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선조 31) 가을, 공주에 주둔하면서 왜군으로부터 방어해 준 명나라의 3장수 제독 이공, 위관 임제, 유격장 남방위의 업적을 기린 사은 송덕비이다. 본래는 공주 금강변 남안에 세워졌던 것을 공산성으로 옮겨왔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일부 글자를 훼손하고 공주읍사무소 뒤뜰에 매립하였던 것을 해방 후 다시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총 3개의 비석으로 되어 있으며 내용은 [명나라의 3장수는 정유년 이듬해인 선조 31년 가을, 공주에 이르러 군기를 엄히 다스리는 한편 주민들을 정성껏 보살펴, 공주민은 왜구의 위협하에서도 안전할 수 있었고 임진년에 비로소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주변에는 공산성 외에 무령왕릉, 송산리고분군, 공주산성시장, 은개골역사공원 등이 있다.

공산성 광복루

공산성 광복루

10.4 Km    2     2023-11-14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광복루는 공주시 금성동의 공산성 중앙부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공산성 안에서 군사가 주둔하던 중군영의 문이었으나 광복 이후 광복을 기념하는 뜻으로 광복루라 불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모든 면이 개방되어 있으며, 왼쪽에는 오르내릴 수 있도록 층계를 만들어 두었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공산성 중에서 남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가장 높은 정상부인 해발 112.4m에 있어 임류각, 영동루를 거쳐 약간의 등산을 거쳐야 올라갈 수 있다. 공산성 광복루는 웅진로, 왕릉로 등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대중교통은 공주 시내버스 정류장을 거치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공산성 외에 은개골역사공원, 산성시장 등의 관광지가 있다.

공주산성시장

공주산성시장

10.5 Km    0     2024-04-23

충청남도 공주시 용당길 22

1937년에 개설된 공주산성시장은 백제의 왕궁터인 공산성 성곽 아래 있어 역사적, 문화적 전통성을 지닌 시장이다. 공주 유일의 장터로 2012년 문화광광형 시장으로 선정됐으며 특히 밤과 밤과자, 밤막걸리, 올방떡 등 공주의 특산물을 맛볼 수 있다. 시장 내에는 문화공원 분수대, 미니 식물원 등이 조성돼 있다. 상인들로 구성된 라디오 방송국 소리마루는 시장 활성화에 큰 몫을 해내고 있으며 가래떡 나눔 행사, 씨름대회 등의 축제로 일년 내내 다채롭다. 인근에 공주박물관, 공산성, 무령왕릉 등 관광지가 많아 당일치기 코스로 좋다.

로컬커피

로컬커피

10.6 Km    1     2024-02-22

충청남도 공주시 용당길 55-7

로컬커피는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에 있다. 1943년에 지어진 구옥을 멋스럽게 살린 외관과 예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공주알밤라테이며, 이 외에 캐러멜 마키아토, 아인슈페너, 아포가토, 자몽 에이드 등 여러 가지 음료가 준비되어 있다. 수제로 만든 라즈베리 플라워 타르트, 티라미수 등 각종 디저트도 판다.

종학당

종학당

10.6 Km    0     2023-10-19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종학길 35

파평 윤 씨 문중에서 자녀교육을 위해 세웠던 교육 도장이다. 조선 인조 때인 1643년 처음 세워졌으며, 화재로 인해 없어졌던 것을 1970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이곳에서는 파평 윤 씨 문중의 자녀와 내외척은 물론 처가의 자녀들까지 모여 합숙 교육을 받았다. 일반적인 서원이나 서당과는 다르게 문중에서 정한 교육목표에 따라 교육과정을 운영했으며, 학칙도 따로 정하여 시행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활발하게 운영됐던 종학당은 일제가 신교육제도를 도입하면서 폐쇄되었다. 바로 앞에 저수지를 끼고 있어 고즈넉한 풍경을 즐기기 좋은데, 대청마루나 누각인 정수루에는 직접 올라 앉아볼 수도 있다. 매년 봄이면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공주향교

10.6 Km    3209     2023-12-08

충청남도 공주시 향교1길 26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공주향교는 처음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웅진동 송산리에 있었으나 인조 원년(1623)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고 전한다. 그 뒤 여러 차례 보수가 있었고, 1954년 문묘, 명륜당, 동재, 존경각 등을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는 2단으로 땅이 나뉘어 있는데, 외삼문을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그 양쪽에 동재와 존경각이 있다. 뒤쪽 한층 높은 곳에 있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사당인 대성전이 있으며, 그 양쪽에 동무와 서무가 있다. 즉 교육 공간은 앞쪽에, 제사 공간은 뒤쪽에 구분하여 배치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1894) 이후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있다. 공주향교는 지역유림들의 모성계에서 기금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소장도서로 89종 337책이 있다. 1978년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쌍수정사적비

쌍수정사적비

10.7 Km    21942     2023-12-08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길 59-22

쌍수정사적비는 공주 공산성 진남루 서쪽에 위치한 비석이다. 조선 인조 2년(1624) 왕이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에 머물렀던 사실을 기록한 비석으로 숙종 34년(1708)에 건립됐다. 이괄의 난과 인조의 피난에 대한 내력을 쓰고 공산성에 머무른 10일 동안의 행적, 그리고 공산성에 대한 내용을 적았다. 비신은 방형의 오석이며 너비와 두께는 거의 같은 크기이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76년 1월 8일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공산성 쌍수정

공산성 쌍수정

10.7 Km    2     2023-11-14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쌍수정은 공주시 금성동의 공산성 서부 고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이 정자는 조선 영조 10년(1734)에 처음 세웠다. 인조가 이괄이 일으킨 반란(1624)을 피하여 공주로 잠시 피난 왔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다 1970년에 전체적으로 해체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쌍수정은 공산성 정문인 금서루와 쪽문인 진남루 사이에 있어 접근하기 용이한 편이며, 바로 밑에는 백제 추정왕궁지와 쌍수정 사적비가 있다. 공산성 쌍수정은 웅진로, 왕릉로 등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대중교통은 공주 시내버스 정류장을 거치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인근 관광지로는 공산성 외에 은개골역사공원, 산성시장 등의 관광지가 있다.

황토한옥고마

10.7 Km    1     2020-12-18

충청남도 공주시 미나리1길 18-4

천년을 기약하며 건축주가 직접 전 객실을 생황토와 편백으로 마감한 한옥 게스트하우스이다. 바로 앞에 공산성 터미널과 공산성이 위치하고 있고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과의 편안한 힐링여행, 행복한 추억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항상 준비하고 있다.

영은사(공주)

영은사(공주)

10.8 Km    21047     2023-12-08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길 59-22

영은사는 기록에 의하면 조선 세조 4년(1458)에 지은 사찰이고 광해군 8년(1616)에 이곳에 승장(僧將)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찰의 원래 이름은 묘은사였는데,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 인조가 이 절로 피난을 온 뒤 이름을 영은사로 고쳤다. 또한 영은사가 국방의 요지에 있음을 깨닫고 승병을 주둔하게 하여 대표적인 호국사찰로 거듭났다. 현재 영은사 내에는 주불전인 원통전과 강당인 관일루가 있다. 영은사 부근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불상 6구가 발견되어 조선시대 이전에도 이곳에 사찰이 있던 것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