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농악전수회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한천농악전수회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한천농악전수회관

한천농악전수회관

8.4 Km    14883     2021-04-19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김삿갓로 720

한천 농악은 호남 파도 농악의 본산으로 2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그 맥을 이어가고 있고, 1964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뒤 널리 알려졌다. 1979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전수관은 지상 2층으로 숙소와 연습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1995년 10월 완공되었다.

독상리석등

독상리석등

8.4 Km    16339     2021-09-03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 석등은 고려시대 시중 벼슬을 지낸 문헌공 오대승이 고려원종 8년(1267)에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대승은 동복오씨 비조로서 동복에 세거하면서 이 석등에 48개의 불을 켜 놓고 밤마다 하늘에 예를 올리니 그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였다고 한다. 이 같은 내용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복조에 보이고 있으며 현종11년(1670)에 세운 석등기에도 위 문헌에 나온 기록을 인용하여 후세에 전하고 있다. 석등은 홍살문이 있고 팔작지붕의 겹처마로 된 비각 안에 있는데 흔히 일반 사찰이나 민묘 앞에 있는 전형적인 석등이 아니고 약간 손질을 가한 자연석 암반(길이 136㎝, 폭 91㎝)위에 직경5~14cm, 깊이 2.5~8cm 되는 48개의 구멍을 파 놓은 상태이다.(실제 구멍수는 54개) 여기에 재래식의 심지를 놓고 기름을 부어 불을 켰던 것이다. 그런데 48등은 불교에서 말하는 48원을 의미한 것이다. 이 48원은 불교의 아미타불의 최고의 이상인 극락정토이다. 즉 생로병사가 없는 안락한 정토란는 뜻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보아 이 석등은 고려시대 민간신앙이 불교와 합치되어 나타난 현상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1990년에는 석등각을 보수하였다.

화순동복남덕원비

화순동복남덕원비

8.4 Km    16399     2021-08-17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

동복에 있었던 남덕원은 독상리 제궁동 입구 금계산 기슭에 있었던 역원으로 인근 한천리에 검부역이 생기면서 폐지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검부역이 언제 설치되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남덕원의 폐지연대도 추정이 불가능하다.남덕원비는 전체 높이는 320cm, 폭은 130cm, 두께는 위 14cm·아래 23cm이다. 비석은 거친 사암질 자연석이고 비문은 8행으로 새겨져 있다. 비문 내용 중 심지헌 이란 인물이 있어 확인 결과 그는 동복현감을 지냈는데 1666년 9월에 부임하여 1668년 7월에 이임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비석의 건립연대 또한 무신년 3월인데 이임하기 전 심지헌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비문을 쓰고 전각글씨를 새긴 사람은 광산김씨 김진도인데 그가 누구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남덕원비의 문화재적 가치는 역원에 대한 유일한 비이며 동복현의 역사와 관련시켜 살펴 보면 충분한 역사적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17세기에 새겨진 행서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17세기에 이러한 거친 자연석에 행서가 남아 있는 경우가 무척 드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교통시설이자 공공기관이었던 역원과 관련있는 원비로서는 유일하며 건립연대가 확인된 점 등 조선시대 제도사, 사회사와 지방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화순 오지호 생가

화순 오지호 생가

8.6 Km    17014     2021-09-28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1길 48-1

이 건물은 한국 근대 서양 화단의 거목이자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의 개척자인 오지호(1905~1982) 생가로, 이 지역의 일반적인 민가 구조인 ‘一’자형으로 되어 있다. 정면 7간으로 이루어진 사랑채와 안채가 앞뒤로 자리 잡고 있으며, 화실의 반은 마루 구조로 되어 있고, 반은 온돌 구조로 되어 있다. 오지호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일본 유학 후 한동안 기거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다. 일곽(안채, 사랑채) - 대지면적 2,979㎡ - 안채 84.6㎡, - 사랑채 81.3㎡ 일곽(화실) - 대지면적 496㎡ - 화실 7

오지호기념관

오지호기념관

8.6 Km    18630     2021-05-06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1길 10

화가로서의 오지호와 국한문 혼용체를 부르짖던 오지호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오지호가 태어난 동복에 자리잡은 오지호기념관은 그의 작품을 비롯해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기획전 등으로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5년 개관하였다.

한산사지삼층석탑

한산사지삼층석탑

9.0 Km    15886     2021-09-27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탑동길 21-23

한산사지 삼층석탑은 신율리 탑동마을 옆에 있다. 탑 바로 뒤편으로는 해발 339m의 종산이 배경을 이루고 있으며 탑은 개인이 경작하는 밭 가운데에 있다. 지대석 주변으로는 시멘트로 바닥을 처리하고 그 위로 지대석을 겸한 하대석을 1매 판석으로 하여 지대석을 깔았으나 일부 파손되어 역시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기단부 증석은 중앙에 탱주가 생략되고 각면에 벽판석 1매씩을 짜맞추어 기단부를 구성하였는데 각 모서리에 세운 우주는 별석으로 하여 삽입시켰다. 갑석은 1매 판석이며 상하는 수평으로 부연이 생략되었고 윗면에는 높직한 각형 2단 괴임을 하여 윗층의 탑신부를 받고 있다.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 1석씩으로 1층탑신은 2매를 결구, 탑신으로 삼았으며 각면의 모서리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하면의 층급받침이 각층 3단이며 추녀는 수평이다.

상면의 낙수면은 급경사를 이루다가 전각에 이르러 경쾌한 반전을 보이고 있다. 2층 이상은 급격히 체감되어 탑신이나 옥개석이 짧아지거나 그 폭이 좁아지고 있다. 상륜부는 유실되고 없으나 현재 유사한 자연석을 올려 놓았다.이 석탑이 위치한 곳은 예부터 한산사지로 전해지고 있으며 빈대로 폐사되었다고 전해온다. 석탑의 재질은 부식상태가 심하며 일부 부재(기단부 우주)가 유실되어 시멘트로 보수하는 등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다. 또, 석탑의 조형면에서도 탑신이 장대하여 안정감이 결여되고 일부 양식에서 퇴화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시대적으로 뒤떨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단부에서 우주가 별석으로 삽입되는 특이한 예는 주목되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영벽정

영벽정

9.2 Km    22565     2021-09-02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학포로 1922-53

영벽정이란 계절따라 변모되는 연주산의 경치를 맑은 지석강물에 투영되어 운치있게 바라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연주산 아래 지석강의 상류 영벽강변에 있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경승지에 있기 때문에 행락객들이 널리 이용하고 있다. 2층 팔작지붕에 기와를 얹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형이다. 건립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양팽손 등이 쓴 제영으로 보아 조선 명종때나 선조때(16세기 후반)인 것 같다. 건립자는 능 주목(군), 즉 관청이 건립의 주체였었다고 생각된다. 인조의 모후인 인헌왕후의 고향이라 하여 목사골이 되고 목사 정윤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정자를 개수하였다고 한다. 후일 고종 9년(1872)에 화재로 인해 소실됨에 따라 다음 해인 1873년 계유에 능주목사인 한치조가 중건하였고, 1920년 군민의 출연으로 중수하였다.정자 안에는 9개의 현판이 있다. 기단위에 주춧돌을 넣고 원형기둥으로 세웠다. 이 기둥 위에 마루를 깔아 중층 누각형 정자를 만들었다. 마루의 사방에는 계자 난간을 돌려 장식하였고 처마밑에는 활주를 세웠다. 누 위의 기둥머리에는 익공형식의 공포를 하였고 천정은 연등천정이나 중앙부는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지붕을 3겹으로 한 것은 아주 보기드문 예로 주목된다.

워렉스 캠핑랜드

워렉스 캠핑랜드

9.3 Km    0     2021-09-14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죽헌로 376-37

워렉스 캠핑 랜드는 광주에서 30분 거리인 화순군 한천면에 있다. 금자라가 살았다는 금오산 자락에 약 25000㎡ 넓은 대지에 자리 잡고 있어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온 가족이 여유롭게 힐링 할 수 있다. 사찰 금오사를 둘러볼 수 있고 금오산 산성이 가까이 있어 산책하기 좋다. 화장실, 샤워장, 개수대, 매점, 족구장 등 각종 편의 시설과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전기 사용과 온수 사용이 가능하다. 사설 캠핑장임에도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

약사암(광주)

약사암(광주)

9.5 Km    25436     2021-11-12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160번길 89

약사암은 증심사의 부속 암자로 새인봉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도윤(道允)이 847년(문성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당시에는 인왕사(人王寺)라고 했다가, 고려 예종(1105~1122) 때 국사 혜조(慧照)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약사암으로 바꾸었다.조선시대인 1856년(철종 7) 3월에 성암(性庵)이 약사전을 중수하였고, 1905년 9월에 선주(善周)가 관청의 도움과 시주로 중건했다. 이후 1970년대부터 주지 석담(石潭)이 법당과 요사채 등을 중건·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약사사의 볼거리와 문화재 *

약사암에 보존되어 있는 유물로 석조여래좌상(보물)과 3층석탑이 있다. 이 두 가지의 유물이 9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추정되어 이 절의 역사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현재 약사암에는 대웅전, 운림당, 운림서원, 강원, 일주문 등이 있으나, 모두 1970년 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의 건물이다. 대웅전에는 독성탱화·칠성탱화·산신탱화·신중탱화 등의 불화가 있는데 독성탱화는 1912년에 그린 것이며 칠성탱화와 산신탱화도 이와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신중탱화는 근래의 것이다.

[문화재정보]
지정종목 :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 광주문화재자료
지정연도 : 1984년 2월 17일
시대 : 신라
종류 : 사찰

능주장 / 능주전통시장 (5, 10일)

능주장 / 능주전통시장 (5, 10일)

9.8 Km    9073     2021-03-10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관동길 7
061-372-1178

능주면 관영리에 자리한 능주장은 오랜 역사에 비하여 옛 모습을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함은 있으나 현지에서 생산되는 각종 특산물 때문에 인근 광주시민이 자주 찾는 곳이다. 현재 능주면, 한천면, 춘양면, 도곡면과 도암면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무등산

8.2 Km    65974     2021-03-03

전남 화순군 이서면
061-379-3503

무등산은 무돌뫼(무진악), 무당산, 무덤산, 무정산, 서석산 등의 별칭을 갖고 있다. 무진악이란 무돌의 이두음으로 신라 때부터 쓰인 명칭이다. 무돌의 뜻은 무지개를 뿜는 돌이란 뜻이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불려진 이름으로,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란 뜻이다. 무등산에는 수많은 볼거리가 많이 있는데, 어떤 것은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우뚝 솟아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가까이 가서야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무등산은 오르기에 가파르지 않다. 그래서 휴일이면 무등산의 경승을 즐기려는 인파가 끊이지 않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간편한 옷차림으로 산을 찾는다. 볼만한 풍경이 있는 구경거리는 서석대, 입석대, 세인봉, 규봉, 원효계곡, 용추계곡, 지공너덜, 덕산너덜 등이 있다. 전망을 즐기려면 중머리재, 장불재, 동화사터, 장원봉 등이 있다. 이 중 화순쪽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입석대, 규봉, 지공너덜, 장불재, 백마능선, 규봉암에서의 동복호 조망 등이 있다. * 무등산의 구성 1) 새인봉 임금의 옥새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인괘봉이라고도 한다. 또 천제등을 향해 엎드려 있으므로 사인을 닮았다 하여 사인암이라고도 한다. 2) 서석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 있다. 저녁 노을이 들 때 햇살에 반사되어 수정처럼 빛나기 때문에 서석을 수정병풍이라고도 했다고 전한다.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른 것은 이 서석대의 돌 경치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석대의 병풍바위는 맑은 날 광주 시가지에서도 그 수려함을 바라볼 수 있다. 3) 입석대 석축으로 된 단을 오르면, 5~6각형 또는 7~8각형으로 된 돌기둥이 반달같이 둘러 서 있는데 이를 입석대라 부른다. 이런 절경은 다른 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어 온 입석대는 석수장이가 먹줄을 퉁겨 세운 듯, 하늘에 닿을세라 조심스럽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우람하기만 하다. 옛날에는 이곳에 입석암이 있었고 주변에는 불사의사, 염불암 등의 암자들이 있었다. 4) 규봉 규봉을 보지 않고 무등산을 보았다고 말하지말라 할 정도로, 한 폭의 한국화를 대하듯, 신들이 옥을 깎아 놓은 듯 무등산에서 가장 절경이 빼어난 곳 이 바로 이곳이다. 여기서 멀리 바라보면 동복댐의 물이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하다. 원래 규봉이란 절 입구에 우뚝 솟은 세 개의 돌기둥이 마치 임금앞에 나갈 때 신하가 들고 있는 홀 같이 생겨서 이를 한자로 취하여 규봉이라 한 것이다. 이 바위를 또 삼존석이라 부르는데 여래존석, 관음존석,미륵존석으로 불리우며 도선국사가 명명했다고 전한다. 또 규봉십대가 있는데 광석대, 송하대, 풍혈대, 장추대, 청학대, 송광대, 능엄대, 법화대, 설법대, 은신대 등이 그것이다.규봉에 는 두 바위 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어 문바위라 한다. 이곳에는 김덕령장군이 문바위에서 화순 동 면 청궁마을 살바위까지 화살을 쏘고 백마가 먼저 도착하는지를 시험하였다가 화살을 찾지 못하고 백마가 늦었다하여 백마의 목을치니 그제서야 화살이 날아와 바위에 꽂혔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무등의 단풍은 규봉의 것을 제일로 친다. 5) 지공너덜 장불재에서 규봉쪽으로 가다보면 바위무리 바다를 만날 수 있다.이 너덜경은 지공대사가 법력으로 수많은 돌들을 깔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무등산의 대표적인 너덜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천연석굴 은신대가 있는데 보조국사가 좌선수도 했다하여 보조석굴이라고도 한다. 6) 장불재 광주시와 화순군의 경계가 되고 있는 능선고개로 해발 990m의 고갯길이다. 규봉과 입석대, 서석대로 가는 유일한 등산로이다.이전에 동복, 이서 사람들이 광주를 오갈 때 지나던 고갯마루이다. 정상을 향해 왼편에 서석대,오른편이 입석대이고, 이서면쪽으로 능선을 따라 돌면 지공너덜과 규봉에 다다른다. 7) 백마능선 장불재에서 방송시설이 있는 쪽으로 펼쳐진 능선인데 가을이면 억새의 흰 손이 바람에 흩날릴 때 마치 백마의 갈기처럼 보인다. 장불재에서 이어지는 고산초원지대이기도 하다. 8) 중머리재 증심사에서 지정 등산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3㎞ 올라가면 대피소가 있다. 이곳에서부터 가파른 고갯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중머리재이다. 산 위에 올라가서 편안한 능선이 이어져 있어 사람들이 휴식하기에 적당하다. 이곳을 통하여 더 올라가면 중불재로 가고 이어 입석대, 규봉을 갈 수 있다.

죽수서원

9.5 Km    18575     2021-09-27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학포로 1786-45

1986년 9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이 서원은 조광조(趙光祖)와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을 배향하고 있다. 1570년(선조 3)에 능성현령 조시중(趙時中)의 협조로 지금의 자리에 서원을 짓고, 죽수(竹樹)라는 사액을 받았다. 조광조는 1519년(중종 14)에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능성현에 유배되었다. 이때 조광조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함께 했던 양팽손도 관직을 삭탈당하고 고향인 능성현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은 자연히 만나 서로 의리를 다지게 되었다. 그러나 조광조가 유배된 지 한 달여 만에 사약을 받고 죽자, 양팽손은 몰래 시신을 거두어 화순 쌍봉사 골짜기에 장사를 지내고 마을에 초가집을 지어 제자들과 함께 제향하였다. 그러다가 1568년(선조 1)에 조광조는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이듬해 문정(文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와 함께 조정에서는 조광조를 향사할 서원을 건립하기로 하고 지은 것이다. 1613년에 중수하였고, 1630년 유림들과 조정의 김장생(金長生) 등이 뜻을 모아 양팽손도 추배하였다. 그러다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려 겨우 단 을 마련하여 제향하여 왔다. 1971년 제주양씨 후손들이 도곡면 월곡리에 죽수서원을 복원하였다. 1983년 다시 한양 조씨 조국조(趙國朝)를 중심으로 한 후손들이 본래의 위치인 모산리에 복원을 추진, 월곡리의 건물을 이전 신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89년에 동재를, 1994년에 관리사를 신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