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42
063-540-4993
벽골제는 김제시 포교리와 월승리 일대의 저수지를 이르며 약 2.6㎞의 제방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농업 국가로서 일찍부터 농사를 위해 수리 시설을 갖춘 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벽골제에 대한 연혁을 살펴보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330년(신라 흘해왕 21)에 공사를 시작해 790년(신라 원성왕 6)에 증축했다고 했고,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고려 현종 및 인종 때와 조선 1415년(태종 15)에 개축했다고 했다. 이러한 곳에 자리잡은 벽골제 농경문화 박물관은 사적인 벽골제와 김제 만경평야, 수천년 농경문화의 가치를 선양하기 위한 전시교육공간으로 1998년 개관하였다. 사적 벽골제와 농경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김제 지역을 발견하며 조사연구 · 자료수집 · 보존관리 · 전시교육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농경문화, 생활민속, 벽골제언실, 동진관의 상설전시실 4개와 기획전시실이 운영되고 있으며, 실감콘텐츠 디지털영상관이 있다. 이외에도 식당과 매점 등의 편의 시설이 있다.
8.4Km 2025-03-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학전길 32-57
정암 조광조를 중심으로 덕촌 최희정을 기리고 있는 서원으로 1960년 지방 유림이 지었다. 조광조(1482∼1519)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성리학자이다.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 사림파의 중심이 되었으며 급진적인 개혁을 실행하였다. 이를 반대하는 훈구세력의 모함으로 유배되어 기묘사화(1519) 때 희생되었다. 최희정은 조광조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선 중종 11년(1516)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때 함경도에 여진족이 침입하자 조광조가 추천하여 적을 크게 물리쳤다. 중종은 그 공로로 현재 서원이 있는 땅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8.7Km 2024-10-31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1길 59
정읍시 태인면 소재지에서 있는 항가산을 300m 올라가면 중턱에 다천사가 있다.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는 다천사는 옛날 절이 있던 자리라고 하는데 벽산스님이 1930년경 이 절을 창건했다. 항가산은 불교적 향기가 가득한 곳으로 항가산이라는 이름은 [항하사 : 모래와 같다]고 할 때의 [항]자에다, 석가모니의 [가]자를 합쳐 만들어진 산이다. 그 뜻은 수 많은 모래와 같이 부처님이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다천사라는 이름은 차를 끓여도 좋을 만큼 맑은 물이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름은 예전에 이 곳에 절을 지으려 할 때 오래된 괴목나무 옆에 우물이 있어 깨끗이 청소하였더니, 바위에 다천[茶泉]이라 새겨진 글씨가 발견되어 지었다고 한다. 결국 다천사의 우물은 차를 끓이던 물로 사용되었을 것인데, 예전에 이 물을 바르고 백일기도를 했던 나병환자가 병이 나았다는 영험한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게다가 이곳에서 공부하고 고등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많아서 고시 명문 사찰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다천사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옛 명성에 걸맞게 부처님의 불력으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한여름에도 시원한 대나무숲이 주는 청량감과 아주 오래된 나무 사이로 깔끔하게 정돈된 법당과 그 내부, 그리고 부처님을 호위하듯 법당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고시원과 서너 채의 요사채에서 그러한 느낌을 받는다. 주변 관광지는 태인동헌, 피향정 등이 있다.
8.8Km 2025-08-13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망제동
망제동석불입상은 전라북도 정읍시 두승산의 지맥인 만제봉 중턱에 있는 석불로 대암석불이라고도 한다. 머리에는 마치 갓과 같은 테가 큰 모자를 쓰고 있어 유교적인 성격이 가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모습이며, 턱 밑에는 옷 주름이 있다. 손목 아래에는 세 줄의 평행선이 내려지고 있다. 오른손은 어깨높이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며 손끝은 위를 향하고 있다. 왼손은 마찬가지로 손바닥을 보이는데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얼굴 표현과 손 표현에 노력이 집중된 불상으로 민속적인 특색을 띠고 있다. 큰 부처로 한 덩이 돌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주변 관광지로 창동서원, 백운암 석불입상, 말목정과 감나무, 전봉준 선생 고택, 말목장터 유지비가 있어 연계 관광할 수 있다.
8.8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화평길 2
063-533-6492
100% 정읍 한우만을 판매하며, 넓은 주차공간을 갖춘 곳이다.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한식 전문점이다. 대표메뉴는 한우 육회비빔밥이다.
9.1Km 2025-08-13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장문리
정읍시 고부면 창문리에 있는 장문리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5층 석탑으로 탑신의 1층 몸돌이 헌칠하게 높고 2층 이상은 급격히 낮아졌으나, 지붕돌의 크기가 거의 일정하여 안정감을 주면서도 전체적으로 경쾌한 느낌을 준다. 각 탑신은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옥개석은 5단의 층급 받침이 조각되었으며 낙수면은 경사가 급하고 네 귀의 추녀 끝이 위로 약간 처들려 있어 날씬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 탑의 높이는 6.5m인데 정상의 상륜 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노반만 남아 있지만 대체로 원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석탑이다. 이 탑은 고려 초인 것으로 추정되나 그 형태가 부여 정림사지탑과 상통한 백제 석탑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어 지방색이 강했던 당시 시대상을 잘 담아내고 있다. 주변의 관광지로 고부향교, 장문남복리 오층석탑, 남복리미륵암석불, 용흥리 석불입상, 용흥리해정사지석탑, 고부관아지 등이 있다.
9.3Km 2025-03-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후지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해정사 절터의 남북 쪽 산기슭 탑동마을에 위치한 높이 96㎝의 좌상이다. 머리가 없어진 상태이며, 풍화가 심해 세부표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양손은 가슴에 모으고 있어 비로자나불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4 각형 대좌(臺座)의 아래와 위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대좌의 형태와 연꽃무늬 등으로 보아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국가유산청)
10.2Km 2024-11-06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장화동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김제 벽골제 인근에 있는 화동서원은 정 씨 효자 3형제(정윤교, 정윤준, 정윤검)를 기리는 서원이다. 이들은 16년 동안 상복을 입고 전국을 누비며 무고로 사망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그리고 그 후 동헌에 자진 출두해 벌 받기를 자청했다. 그러자 사또가 그 효성에 감복해 3형제 중 첫째만 옥에 가두었다. 그러자 나머지 두 동생이 함께 벌을 달라 호소했다. 그간의 사정을 들은 인근 선비들이 탄원해 첫째가 풀려날 수 있었는데, 가뭄을 앓던 마을에 단비가 내려 해갈되었다고 전한다. 그 후 3형제는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이 서원은 지역 유림이 이들 3형제의 효심과 우애를 본받고자 1924년에 세웠다. 주변에는 벽골제 외에 장화쌀뒤주, 정화암 생가, 아리랑 문학마을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10.3Km 2025-08-13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정읍 고사부리성은 성황산 정상부 두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성으로 백제시대 처음 쌓고 통일신라 때 고쳐 쌓았으며, 조선시대 영조 41년에 관아가 현재 고부초등학교 자리로 옮겨질 때까지 활용하였다. 조선시대 전기까지는 돌로 쌓은 성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흙으로 다시 쌓았다.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여러 가지 유물과 건물터, 우물터, 물 저장소 등이 확인되었다. 상부상항이라 새겨진 백제시대 기와와 말을 탄 병사의 모습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이 백제시대 5 방성 가운데 중방성의 터였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정읍 고사부리성은 잔존상태가 양호한 다양한 유구와 유물로 인해 우리나라의 고대 산성 연구에 중요하고 획기적인 자료가 되는 중요 문화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주변 관광지로 고부향교, 장문리오층석탑, 군자장, 남복리 미륵암석불, 용흥리 석불입상이 있다.
10.3Km 2025-03-05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영원로 596-31
정읍시에 위치한 남복리오층석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편편한 4매의 돌로 짜 맞추고, 위층 기단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기단 맨 윗돌 위에는 높은 괴임을 두었는데, 이곳에 난간모양을 새겨놓아 독특한 특징이 되고 있다. 탑신의 1층 몸돌 4면에는 중앙을 직사각형모양으로 얕게 파내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머리장식 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