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향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결성향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결성향교

결성향교

16.2Km    16919     2024-08-30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홍남서로707번길 21-8

향교는 공자 등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결성향교의 언제 지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고려 현종 1년(1010)에 세웠다고 전한다. 조선 인조 1년(1623)과 현종 15년(1674), 순조 8년(1808)에 수리하였고 1923년에 크게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건물 배치는 외삼문 없이 바로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그 뒤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는 전학 후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외에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제기고, 홍살문, 내삼문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결성향교

결성향교

16.3Km    7     2022-12-27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홍남서로707번길 21-8
010-6512-6112

향교는 조선시대 관학교육을 위한 시설이며, 결성향교는 600년의 전통을 간직한 전통한옥이다.

문수사(서산)

문수사(서산)

16.3Km    23092     2024-08-30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문수골길 201

문수사의 확실한 창건연대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창건연대를 알 수 없지만 1973년에 극락실전 내에 안치된 금동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서 고려제 29대 충목왕 2년(1346)이란 기록이 있어 고려 때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한편 발원문 발견 시에 생모시, 단수포, 쌀, 보리 등 600여 점이 함께 발견되기도 하였다. 조용한 산사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봄철에는 주위의 산과 목장에 벚꽃과 야생화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 문수사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주심포식과 다포식을 절충한 아름다운 건물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앞칸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앞면과 뒷면의 기둥 사이마다 2개의 공포를 배치했으며 옆면에는 공포를 두지 않아서 맞배지붕 건물의 일반적인 옆면 설계방식을 따르고 있다. 내부에는 중앙에 불단을 배치하고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달았다.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아서 의식을 행할 때나 도를 닦는데 도움이 되게 하였다. 극락보전은 조각 수법이 매우 수려하고 웅장하며, 여래상을 비롯하여 삼세불상과 나한상·각종탱화 등 많은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 문수사금동여래 좌불상 극락보전 내에 봉안된 금동여래좌불상으로 앉은 높이 70cm, 무릎 폭 50cm이다. 이 좌불상은 고려 제29대 충목왕 2년(1346)에 조성관 단아한 금동불좌상으로 장곡사금동약사불좌상(보물)을 비록산 고려 후기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계란형의 갸름한 얼굴, 가늘고 적정한 눈, 오뚝한 콧날, 미소를 머금은 단정한 입 등 섬세한 표현이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균형 잡힌 체구에 하품중생인의 손모습 등 신체는 현안 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신체의 특징 뿐 아니라 적절하게 가해진 옷주름 왼쪽 팔꿈치의 Ω자형 주름과 가슴의 승각기와 띠매듭 등 모든 점에서 장곡사불상과 동일한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조성연대도 같고 또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같은 조각가의 작품이거나 혹은 동일 유파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

김공 휘 유경 효자문·김공 휘 홍익 충신문

김공 휘 유경 효자문·김공 휘 홍익 충신문

16.5Km    19062     2024-07-25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김공 휘 유경 효자문은 김공 휘 유경(1669~1748)이 10세 때 친상을 당하여 예법대로 옷을 입지 못한 것을 애통해 한 나머지 71세에 추복을 하고 조석으로 곡하며 여묘 3년간 슬픔을 다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정문이다. 영조가 듣고 가상한 마음이라 하며 식물까지 내리고는 경은 사양치 말라 하였다고 한다. 김공 휘 유경은 충신문 김묵재의 종증손이며 자는 덕유, 호는 용곡이다. 김공 휘 홍익 충신문은 김공 휘 홍익(1581~1636)이 병자호란 때 연산 현감으로 재직 중 근왕병을 이끌고 수원 험천땅에서 중과부적의 적병과 일척단검으로 항전하다가 서기 1636년 12월 27일 56세로 순국한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정문이다. 또한 논산군 부적면 충곡리 소재 충곡서원에 사육신과 함께 위패가 봉안되어 춘추로 제향을 받들고 있다.

예산황새축제

16.5Km    0     2024-10-04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시목대리길 62-19
041-339-7338

천연기념물 199호 '황새'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이번 축제의 슬로건으로 삼아 전국의 가족단위 방문객들과 지구를 살리는 황새특공대가 되어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친환경 생태 축제이다.

화암사(예산)

16.5Km    19381     2023-03-13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1길 21-29

예산의 화암사에 가면 추사 김정희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문인인 추사는 예산 사람으로서, 이 사찰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색창연한 그의 생가, 추사고택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야트막한 오석산 아랫자락에 위치한 화암사는 추사나 그의 일가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절이다. 이 사찰을 중건한 김한신이 김정희의 증조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한신은 영조의 부마로서, 영조 임금의 둘째 딸이자 사도세자의 누이동생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로 봉해졌는데, 이들 부부는 죽은 후에 용산 아래에 위치한 앵무봉에 합장되었다. 이처럼 살아 생전에 사찰과 맺은 인연이 죽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화암사는 가까이 가 보아도 사찰 입구에 위치한 정갈한 요사채에 의해 사찰이란 느낌이 잘 들지 않는 그런 곳이다. 아주 오래된 고택의 편안함을 주는 요사채를 지나야 비로소 사찰에 들어서게 되는 데 곳곳에 추사와의 인연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이 산재해 있다. 게다가 요즘은 비구니 스님의 수도도량으로서 시골 사찰이 갖는 고즈넉함과 단정함까지 느낄 수 있다. 추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한번쯤 찾아가 보았으면 하는 그런 곳이다.

* 역사

옛 유래는 알 수 없고, 다만 삼국시대 절이었다고 전할 뿐이다. 절 뒤에 병풍바위가 있는데, 옛 절은 이 병풍바위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에 절이 없어지고,그 들에 조그만 탑이 남아 있었는데, 근래 현위치로 옮겨졌다. 화암사의 역사는 문헌을 전래되는 것이 거의 없어,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절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다 현재는 수덕사 유물전시관에서 소장 중인 「화암사중수건기(華巖寺重修建記)」현판에 절의 연혁이 기록 되어 있어 많은 참고가 된다. 이 중건기는 1848년(헌종 14)에 김명희(金命喜, 1788~?)가 짓고 김상희(金相喜)가 쓴 뒤 조석신(曹錫臣)이 새긴 것이다. 김명희는 서예가이자 금석학자, 실학자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동생인데, 학문이 깊고 글과 시문에 뛰어났다. 이 현판문의 내용으로 절의 역사를 알아보면, 처음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고, 1752년(영조 28) 본관이 경주인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이 그의 아버지 김흥경(金興慶, 1667~1750)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하여 절을 중건하였다. 김한신은 영조 임금의 둘째 딸 화순옹주(和順翁主)의 남편으로서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는데, 사후에 부부가 용산 아래 앵무봉에 합장되면서 김한신 일가가 화암사와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 뒤 1846년(헌종 12) 절이 허물어지며 퇴락되자 김명희가 여러 친지와 더불어 무량수각ㆍ요사ㆍ선실(禪室)ㆍ시경루(詩境樓)ㆍ창고 등을 지었다. 또한 옛 법당터에 약사암을 중건하고 삼존상을 봉안하였다.

이처럼 화암사는 조선 후기에 경주 김씨, 특히 김정희 일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 유적지, 화순옹주홍문(和順翁主紅門,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45호) 등 예산에는 본래 김정희 및 그의 일가와 관련된 유적이 많은데, 화암사 역시 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화암사의 북서쪽으로 약2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약 100여평에 걸친 평평한 지대가 있는데 스님의 전언에 의하면 원 화엄사의 사역이 이 곳이었다고 한다. 약 100여평에 걸친 사지는 산사면을 깍아서 동남향으로 사찰을 조영했던 것으로 추저되나 사지의 가람을 추정할 만한 유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화암사의 원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원래 절 뒤에 병풍바위 앞에 있던 절이 폐사되고 탑만 남아 있던 것을 화순옹주의 부군인 월성위 김한신이 중건하고 영조가 화암사라 명명했다 한다. 즉 영조 임신년(A.D 1752) 영조의 부마인 월성위 김한신이 이절을 중건하였다.

『화암사』라는 절 이름은 영조가 명명한 것이고, 이 현판은 월성위가 쓴 것이다. 월성위는 화순옹주의 부군이고,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이니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가 된다. 화순옹주는 영조의 따님이니,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의 누이동생이다. 이러한 가계관계가 후일, 김추사 일문이 왕권투쟁에 말려들어, 죄없이 파멸을 당하게 되는 연유가 된다. 월성위가 이 절을 중건한 95년 후, 헌종 병오년에 절이 또다시 훼손되어, 승려들이 기거할 수 없게 되자 김추사 일족이 출자하여 다시 중건하였다. 그 건물이 현재의 화암사이다.

명종대왕태실및비

16.5Km    0     2024-10-02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태봉골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명종대왕태실및비는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태를 봉안한 곳이다. 명종대왕태실 앞에는 기념비 3기가 있다. 명종대왕태실과 오른쪽에 위치한 비는 1538년(중종 33)에 건립되었고, 왼쪽에 있는 비는 1546년(명종 1), 가운데에 있는 비는 1711년(숙종 31)에 세웠다. 오른쪽의 비는 태실을 만들면서 함께 세운 것이고, 왼쪽의 비는 왕자의 태실비로 용을 새긴 머릿돌을 올렸고, 가운데의 비는 주상의 비로 거북받침 위에 비몸을 올리고 용이 새겨진 머릿돌 얹었다.

정순왕후생가

정순왕후생가

16.6Km    26382     2024-05-14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길 39

이곳은 조선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1745~1805)가 출생한 곳으로 왕비가 되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정순왕후는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 서씨가 죽자 1759년(영조 35)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이 집은 승지와 예조참의 등을 지낸 학주 김홍욱이 노부를 모시고 있는 것을 알게 된 효종이 내린 집으로 효종 대인 1649~1659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서산 경주김씨 고택이라고도 한다. 건물은 ㅁ자형 평면으로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 건물 좌우에 각각 3칸씩 덧달아 ㄷ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남쪽에는 앞면 5칸, 옆면 1칸의 별채를 배치하였는데 ㅁ자형 평면을 하고 있다. 가옥의 후원과 안채를 둘러싼 담장은 자연석으로 쌓았으며 대문은 평문이다. 1988년에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뒤에 언덕을 두고 앞에 도담천과 너른 평야를 두고 있다. 지금은 서해 바다와 다소 떨어져 있지만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바다와 가까웠을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는 해미읍성, 해미순교성지, 간월호, 천수만 철새도래지 등이 있다.

서산 경주김씨 고택

16.6Km    20904     2024-06-05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길 45

이 고택은 정순왕후 생가와 나란히 있는 한옥으로, 정순왕후를 배출한 경주김씨 가문이 정착하여 거주하고 있는 집이다. 음암면 유계리의 ‘한다리’라 부르는 평지 마을의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동쪽을 바라보는 전통 목조 한옥 기와집으로 건축의 기법과 목재의 상태, 가옥의 배치 등으로 보아 19세기 중엽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태안에 살던 이씨가 건립했는데 풍수지리설에 이씨가 살 터가 아니고 김씨가 살 터라 하여 현재 거주 및 관리인이자 경주김씨인 김기현씨의 선조가 이 가옥을 사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김기현씨가 거주하여 김기현 가옥이라고도 한다. 가옥은 ㄷ자형의 안채와 ㄱ자형의 사랑채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평면을 이룬 가옥이다. 1984년에는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한옥숙박체험도 가능하다. 이 집은 뒤에 언덕을 두고 앞에 도담천과 너른 평야를 두고 있다. 지금은 서해 바다와 다소 떨어져 있지만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바다와 가까웠을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는 정순왕후생가뿐만 아니라 해미읍성, 해미순교성지, 간월호, 천수만 철새도래지 등이 있다.

결성동헌

결성동헌

16.6Km    18221     2024-08-30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읍내리

조선시대 홍성지방 관리들이 업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행정업무를 처리하던 동헌과 치안업무를 처리하던 형방청, 책과 문서를 보관하면서 관리의 자제가 지내던 책실로 구성되어 있다. 동헌은 고려말에 결성면 금곡리 분우터에 있다가 정종 2년(1400)에 결성읍 산성 정상으로 옮겼다. 현종 6년(1665) 현재의 위치인 읍내리에 다시 지었고,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동헌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형방청은 ㄱ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책실은 앞면 2칸·옆면 1칸 반 크기로, 지붕은 앞에서 볼 때 사다리꼴인 우진각지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