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청송 홍원리 개오동나무

청송 홍원리 개오동나무

2026-04-17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홍원리 547

청송 홍원리 개오동나무는 청송군 부남면 홍원리에 있는 노거수이다. 모두 세 그루이며, 그중 가장 오래된 나무의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8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는 3.9m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나무로, 수형이 아름답고 노거수로서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당산나무로 정하여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에는 이 나무에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며 보호하고 있다.

청송 장전리 향나무

청송 장전리 향나무

2026-04-17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영양 남씨의 무덤 옆에 위치한 청송 장전리 향나무는 1580년 경 심어진 것으로, 나이는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나무 높이 8.0m, 가슴높이 둘레 1.8~3.8m이다. 줄기는 지면에서 1m 정도 올라가서 네 개로 갈라졌으며, 나무의 키는 비록 작으나 밑둘레가 굵고, 가지가 넓게 뻗어 자라고 있다. 청송 장전리 향나무는 무덤 옆에 심어져서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청송 후송당 고택

청송 후송당 고택

2026-04-17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청송로 2585-4

청송 후송당 고택은 1920년 무렵 후송 조용정(趙鏞正)이 건립하였다. 고택은 ㅡ자형 안채와 ㄴ자형 중문간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ㄷ자 모양이다. 안채는 오른쪽에 있는 부엌을 제외한 전면에 툇마루를 만들었으며, 네모기둥을 세운 5량가(한식 건물에서 도리가 다섯 개가 있는 지붕)의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달았다. 종도리(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밑면에 ‘단기사천이백팔십년 상량(檀紀四千二百八十年上樑)’이란 기록이 있다는 문화재지정 조사보고서로 본다면 고택은 화재로 불타서 없어진 것을 해방 후 1974년에 다시 건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사랑채는 안채와 같이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건물로 앞면 튓기둥만은 둥근기둥을 세웠으며, 후송헌(后松軒)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안채의 앞에 위치한 중문간채는 대청과 좌측의 사랑방이 다 같이 ㄴ자형을 이루어 사랑채와 함께 ㄷ자로 내정을 에워싸고 있다. 내정으로 출입하는 중문을 비롯하여 마구간, 방앗간, 하인들이 거처하던 방, 부엌 등이 있다. 고택 건립연대는 오래되지 않으나 50칸이 넘는 큰 규모의 주택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전통한옥이 변천해 온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각 건물의 배치 관계가 좋고 비교적 간소한 외관을 보여 주고 있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2026-04-17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는 은행나무로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되었다. 키가 47미터에 이르며, 가슴 높이 둘레가 14미터로 한국 은행나무 가운데에서는 가장 굵으며 700살이 훨씬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으나 임하댐의 건설로 물에 잠길 위치에 있어 노거수의 이식이 불가하여 그 자리에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인공섬을 만들고 그 자리에 수직으로 옮겨 심은 것이다. 이 나무에는 조선 선조(재위 1576∼1608) 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이 서울에서 내려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은행나무 계를 만들어 이 나무를 보호하고, 매년 7월에 나무 밑에 모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 이 마을은 사라졌지만 탁씨의 자손들은 해마다 나무에 제사를 드리며 보호하고 있다. 용계리 은행나무는 주민 단합을 이루게 하는 상징물의 역할을 하여 온 나무로써 가치가 크고, 우리 선조들이 나무를 사랑하고 보호한 것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우리나라에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다음으로 크고 오래된 나무이며 주변 단풍나무가 조성되어 가을 단풍 명소로 유명하다. 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길가에 주차하고 인공섬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야 한다.

역동서원

역동서원

2026-04-17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국립경국대학교 안동캠퍼스 내에 자리하고 있는 역동서원은 고려 말기의 학자 우탁(禹倬, 1263~134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570년(선조 3) 퇴계 이황(退溪 李滉) 선생의 발의로 인근의 사족과 수령들의 협조를 받아 예안을 포함한 안동지역에서 최로로 건립된 서원이다. 우탁은 단양 출신으로 1290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북송의 성리학자 정이(1033~1107)의 저술 「역전」이 고려에 들어오자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역학에 조예가 깊었던 우탁이 이를 깊이 연구하고 터득하여 생도들을 가르쳤다. 역동서원은 1684(숙종 10)에 사액을 받은 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철되었다가, 1969년 현 위치에 이건 복원되었다. 1991년에 국립경국대학교 안동캠퍼스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대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서원은 정문인 입도문, 강당인 명교당, 원생들이 일상생활을 했던 사물재와 삼성재, 우탁의 위패를 모신 상현사, 그 외 서원의 부속 건물로 구성되었다. 서원에는 이황의 역동서원기와 다수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

2026-04-17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금산로 242-5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선산부사를 지낸 이정(李楨)이 평안북도 정주판관으로서 약산성 공사를 마치고 귀향할 때 가지고 와서 심은 것이다. 『노송운첩』에 이에 대한 내력이 실려 있다고 한다. 이정이 약산산성 쌓기를 마치고 귀향하면서 세 그루의 향나무를 가지고 와서 도산면 온혜와 외손인 선산의 박씨에게 각각 한 그루씩 주고 남은 한 그루를 이곳에 심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모두 죽고 이 나무가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나무 높이 4.0m, 가슴높이 둘레 2.5m이며,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형태의 받침대를 세워서 관리하고 있다. 향나무와 비슷하지만 곧게 자라지 않고 전체가 옆으로 퍼지면서 자란다.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안동 진성이씨 종택

안동 진성이씨 종택

2026-04-17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금산로 242-5

이 건물은 진성이씨(眞城李氏) 주하세거(周下世居) 경류정종택으로 당초 건립 연대(建立年代)는 미상이나 별당(別堂)인 경류정은 조선(朝鮮) 성종(成宗) 23년(1492)에 이연(李演) 선생이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정은 이황(李滉)의 증조부로, 세종 때 영변판관(寧邊判官)으로서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영변진(寧邊鎭)을 쌓았으며, 선산도호부사를 지냈다. 진성이씨가 안동 풍산 마애(麻厓)에서 이곳 주하, 즉 주촌(周村)으로 옮겨온 것은 이정의 부친인 이운후(李云候)에 의해서였다. 이운후는 진성이씨 안동 입향조이자 부친인 송안군(松安君) 이자수(李子脩)와 함께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따라서 이 건물은 진성이씨 대종택의 위상을 갖는다. 건물의 구조는 정침 외에 경류정, 사당, 행랑채, 방앗간채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ㅁ자형이며 전면 좌측에 사랑채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에 바닥을 지면(地面)에서 높이 띄우고 앞쪽에 툇마루를 내었다. 경류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식(翼工式) 건물로 기둥은 원형(圓形)인데 일부에 배흘림이 남아 있어 주목된다. 정침과 경류정 뒤에 서남향으로 앉은 사당은 3칸으로 5량가의 겹처마집이다. 방앗간채는 문간과 고방 및 방앗간 2칸으로 된 4칸 집이다. 조선시대 이 지역의 사대부가(士大夫家)의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는 종택이다.

안동 사신리 느티나무

안동 사신리 느티나무

2026-04-17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

느티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자라서 둥근 형태로 보이며,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원반모양으로 10월에 익는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역할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거나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왔다. 안동 사신리의 느티나무는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9.7m, 둘레 10.1m이다. 중앙에서 두 갈래로 나누어진 큰 가지에서 사방으로 풍성하게 잔가지가 뻗어나간 모습이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생각하며 정월 대보름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밑에 모여서 새해의 행운과 풍년을 기원한다고 한다. 안동 사신리의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산수정

산수정

2026-02-25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길 70-31

산수정은 호봉 이돈(1568∼1624) 선생이 관직을 떠나 고향에 돌아와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전념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건립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610년경 지어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정면은 낮은 기단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우고 두리기둥 사이를 난간으로 처리하여 정자 건축의 멋을 돋우고 있다. 평면구성은 가운데 어칸의 대청을 전면의 3칸 툇마루와 이어서 우물마루를 깔았고, 전면의 툇마루는 측칸을 한칸으로 넓히고 툇마루 좌우측면으로 판벽과 두짝 밖여닫이 골판문을 설치하여 배면의 두짝 골판문과 함께 풍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사충단

사충단

2026-03-19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로405번안길 22-9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년) 4월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김해를 지키다 전사한 김득기, 송빈, 유식, 이대형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의 명으로 1871년에 건립한 묘단이다. 처음에는 동상동 873번지에 있었던 것을 김해의 도시계획으로 동상동 161번지 일원에 확장 이전하였으며 매년 음력 4월 20일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0년(선조 33)에 이들은 모두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에서 김득기와 이대형은 이조참판, 유식과 송빈은 호조참판으로 각각 추증(追贈) 되었다. 이 중 김득기의 묘는 한림면에 있고 이대형의 묘는 상동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