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7
충청북도 영동군 양강면 괴목1길 13-5
영동 김참판댁은 17세기 후기에 건축되었다고 전해온다. 이 집은 현재 안채와 별당형식의 안사랑채만이 남아있다. 또한 안채는 18세기 중엽, 안사랑채는 훨씬 뒤인 19세기 중엽에 지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무성한 팽나무 숲을 뒤로 안채가 자리하며 그 앞쪽으로 안사랑채가 직각으로 위치하는데, 담장을 앞뒤 좌우로 빙 돌려서 딴 공간으로 구분하며 쪽대문을 설치해서 사랑마당과 연결 지었다. 안채는 사대부 집에서 흔히 쓰는 ‘ㄷ’자형 구조로 부엌, 안방, 대청을 일직선으로 배열하는 남도방식을 취하고 있다. 양 옆의 날개 부분에는 부엌 옆으로 뜰아랫방이, 대청 옆으로 찬방과 윗방, 아랫방이 있다. 찬방은 조금 특이한 공간으로 안방 뒤의 골방에 만들기도 하는데 모두 대청에 곁들여 배치된다. 주기능은 음식을 보하하고 분배하는 곳으로 이용되며, 이밖에도 물건을 보관하거나 여름철 안사람의 휴식공간으로 이용하는 등 여러 용도로 쓰이는 장소이다. 안방부터 오른쪽 날개 부분의 아랫방까지 앞과 뒤 모두 툇마루를 놓아 연결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양 옆 날개 부분의 지붕인데 왼쪽 부분의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이고, 오른쪽은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좌우를 대칭시키지 않은 구조가 흥미롭다. 안사랑채는 안에서 사용한 사랑채란 뜻으로, 안채 맞은편에 댓돌만 남아 흔적을 전하는 사랑채와 다르게 돌아 앉은 것이 특이하다. 역시 남도 방식을 보이며 대청, 웃방, 안방, 부엌, 모퉁이방이 배열된 ‘一’자형 집으로, 모두 툇마루와 쪽마루가 있어 동선이 연결이 된다. 전체적으로 건축 장식 기법이 우수한 건물이다.
2026-04-17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하도대3안길 33-18
원래는 조선 중기인 명종 1년(1546)에 옥계서당으로 세워졌던 건물이다. 이것을 순조 4년(1804)에 고성 남 씨의 수일파 문중에서 후손들에게 학문을 전수할 목적으로 지금의 위치에 옮겨 짓고 그 이름도 화수루로 바뀌었다. 앞면 2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면 2칸은 우물마루를 깔아 누마루를 만들고 뒷면 2칸은 온돌방을 만들었다. 영동 화수루는 앞면과 옆면의 칸수를 같게 하고 4면에는 난간을 돌리고, 누마루를 만들어 놓은 것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즐겨 이용하던 누각과 정자건축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2026-04-17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내동1길 40-2
봉유재는 조선 중종 때 안주목사를 지낸 박성량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인조 10년(1632) 3월에 건립한 재실이다.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중수 과정이 있었으며, 2019년에 해체 보수하였다. 건물이 세워진 당시에는 대종재인 흥학당 앞에 세워져 있다는 이유로 현판도 설치하지 않은 채 소종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선조를 받들고 후손에 복을 준다’는 의미로 봉유재라는 현판을 설치하고 재실, 서당으로 사용하였다. 봉유재는 저연석 기단과 초석을 사용하여 건립하였는데, 정면 4칸 및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구성하고 정면 2칸은 큰 대청마루를 이루고 있으며, 높이가 낮은 굴뚝 등은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변을 토석담으로 두르고 전면에는 삼문을 배치하였으나, 이는 후대에 복원된 것으로서 초기에 건물이 어떤 형상으로 건립되었는지는 추정하기 어렵다. 충주 박 씨 종중 세거지인 매곡면 노천리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인 ‘흥학당’, ‘사로당’과 인접 마을에 문화재 자료인 ‘세천재’가 세워져 있어 서당, 사당, 재실이 모두 갖추어진 전형적인 마을로 종중의 지역 정착과 발전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25-12-19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내오곡길 94-97
이 건물은 충주박 씨 종중에서 후손들의 강학을 위하여 조선 중종 15년(1520)에 건립한 것으로 흥학당기에 의하면 조선 숙종 때 중수한 뒤 영조, 고종 때에도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오량집으로 활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남향하여 있다. 덤벙 주초석을 놓고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기둥 위의 공포를 초포를 초익공 양식으로 짜고 안쪽으로는 보아 지를 둘 출시 켜 대들보의 안쪽을 받쳤는데 특히 대청의 중간 기둥 위에 용두를 결구하였다. 중앙 2칸은 우물마루로 깔아 넓은 대청으로 이용하고 양끝 방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가구는 전후 평주위에 대들보를 건 형식이며 동자주 위에도 주두가 짜여 있다.
2026-04-17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원당리
영동 덕수이씨 육세팔효정문은 조선 선조 때부터 영조 때까지 덕수이씨 가문에서 배출한 효자 6인과 효부 2인에 대한 효행을 기리는 정려를 영조 40년(1764)에 한 곳에 모아 건립한 정문이다. 정문(旌門)이란 충신·효자·열녀들을 표창하기 위해 마을 입구나 집 문 앞에 세우던 붉은 문을 말한다. 이곳에서 받들고 있는 효자 6명은 이학수, 이탱, 이만춘, 이채, 이복초, 이종철이고, 효부 2명은 복초의 처인 장씨와 종철의 처인 김씨이다. 정문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지붕선이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2025-06-04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청군로3274번길 37
포천향교는 고려 후기인 1173년에 처음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594년에 다시 지었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전부 파괴되었다가 1962년 이 지역의 유림들이 뜻을 모아 중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84년에 보수한 것이다.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서재를 앞쪽에 두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을 뒤쪽에 두었다.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에게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향을 피우는 의례를 행한다.
2026-04-17
경기도 포천시 청군로3290번길 19
포천시 군내면에 있는 산성이 있는 자리로 길이는 1,080m이다. 산성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쌓았다고 전해지나, 조사결과 고구려 때 쌓은 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여러 책에 고성, 산성, 반월산성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대동지지를 통하여 광해군 10년(1618)에 고쳐 쌓고, 인조 1년(1623)부터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연려실기술’, ‘포천군읍지’, ‘견성지’에서도 돌로 쌓았다는 기록과 함께 여러 가지 당시 성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성의 옛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시설물로는 남쪽과 북쪽의 문 터, 성벽 바깥쪽에 사각형 모양으로 덧붙여 만든 치성 4개소, 건물터 6곳, 배수시설이었던 수구터, 장수의 지휘대였던 장대터,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세웠던 망대터 등이 있다. 반월성이 위치한 청성산은 포천시의 진산으로 옛날부터 신성시되었다. 때문에 이곳에서 많은 제사 및 무속행사가 이루어졌으며 제사 유구로는 지역주민들이 애기당이라 부르는 당집이 있었다. 반월성은 조선 광해군대에 후금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수축하였으나, 이후 성의 기능을 잃고 포천의 치소와 종교적인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2026-06-19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 190-4
영월읍 하송리마을 가운데 있는 나무로 나이가 1000~1200년으로 전해지며 높이 23m, 가슴 높이 줄기 둘레 14.5m나 되는 세계 최대의 은행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 나무는 1962년 12월 7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영월 엄씨의 시조인 엄임의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예전에 대정사라는 절 앞에 서 있었으나, 절이 없어지고 주택이 들어섬으로써 마을 가운데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 나무는 마을의 정자목 역할을 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이 나무속에 신령스러운 뱀이 살고 있어 개미, 닭, 개 등과 같은 동물이나 곤충이 접근하지 못하여, 아이들이 나무에서 떨어져도 큰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소중하게 여기는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는 북쪽 가지가 부러지고, 8·15 광복 때는 동쪽 나뭇가지가 부러져 국가의 슬픔과 기쁨을 예언했다 한다. 옛날에는 자식을 얻기 위해 부인들이 치성을 드리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2026-04-17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홍원리 547
청송 홍원리 개오동나무는 청송군 부남면 홍원리에 있는 노거수이다. 모두 세 그루이며, 그중 가장 오래된 나무의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8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는 3.9m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나무로, 수형이 아름답고 노거수로서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당산나무로 정하여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에는 이 나무에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며 보호하고 있다.
2026-04-17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영양 남씨의 무덤 옆에 위치한 청송 장전리 향나무는 1580년 경 심어진 것으로, 나이는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나무 높이 8.0m, 가슴높이 둘레 1.8~3.8m이다. 줄기는 지면에서 1m 정도 올라가서 네 개로 갈라졌으며, 나무의 키는 비록 작으나 밑둘레가 굵고, 가지가 넓게 뻗어 자라고 있다. 청송 장전리 향나무는 무덤 옆에 심어져서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