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9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산 2-1
한라산 고지대의 백록담 성판악 등반코스 남측에 자리한 오름으로, 서귀포시 남원읍과 제주시 조천읍의 군계에 걸쳐져 있다. 오름분화구에 물이 고여있는 몇 안 되는 산정 화구호를 갖고 있는 오름이다. 제일 높은 표고에 위치한 산정화구호이며 화구호는 접시 모양으로 그리 깊지는 않다. 장마철에 이곳을 찾으면 분화구 가득 물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사라오름을 만나볼 수 있다. 물이 많이 차올라 데크가 잠기면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려 건너야 할 정도다. 고지 1300m의 꽁꽁 언 호수와 설록의 모습 또한 장관이어서 많은 등산 마니아들이 찾는다. 이 산정 화구호 주변은 2011년 10월 13일 명승으로 지정받았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영암읍 교동로 73
영암향교는 조선 세종 2년(1420)에 처음 지어졌다. 이후 임진왜란과 1918년 화재로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세웠지만 한국전쟁으로 또 한 번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지는 수난을 겪었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1951년에 대성전, 1963년에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1969년에 명륜당을 다시 세웠고, 나머지 건물들은 이후에 차례로 지은 것이다. 건물의 구조는 교육 공간과 제사 공간을 동·서로 나란히 배치한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었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은 소박하게 단장하였다. 그 외에 두 공간을 구분 짓는 내삼문이 있고 네모반듯한 연못을 볼 수 있다.
2026-04-02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비룡로 1635
몽골문화촌은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리에 위치하며, 1998년 남양주시와 몽골 울란바타르시의 우호 협력 협약을 바탕으로 2000년 4월 개관했다. 총면적 6만 2,479㎡ 규모의 공간으로 조성됐다. 몽골 전통악기 연주와 마상 공연 등 다양한 전통 예술을 선보이는 국내 유일의 몽골 민속 예술 상설 공연장이다. 전시관에는 전통의상, 악기, 생활용품 등 약 800여 점이 전시돼 있어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몽골의 종교, 의복, 생활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관람은 무료이다. 야외에는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와 돌무덤이 설치돼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관람객은 전통가옥 내부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현재 남양주시는 2025년 상반기 재개장을 목표로 문화촌을 전면 재정비하고 있다. 리모델링은 실내외 공연장, 글램핑 카페, 미디어아트 영상관, 디지털 체험관 등 4개 섹터로 나뉘어 진행 중이다. 재정비 후에는 문화와 여가, 체험이 결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운영될 예정이다.
2026-06-10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어음13길 196
제주힐링명상테마파크는 명상 분야의 자격을 갖추고 오랜 기간 전문성을 키워온 운영 인력과 함께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힐링 및 체험 프로그램을 보유한 테마파크이다. 한국 고유의 호흡법과 명상, 기문화 전파를 통해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공간이 되고 있으며 2021년 제주 웰니스 관광지로 선정됐다. 자연이 선물한 드넓은 들판이 있고 한림해변과 비양도를 품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교육 및 연수용 강의장, 아름답게 꾸민 일지기(氣)가든, 역사문화공원, 자연쉼터에서 가볍게 산책을 즐기기 좋다. 또 다른 시설 국궁장에서는 국궁지도사의 전문지도를 통하여 전통 활 쏘기의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2026-03-12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경기도 최북단의 도마치계곡이라 일컫는 곳으로 가평 적목리 방향 시내버스 종점인 용수동 마을에서 3·8교 다리를 지나 무인의 계곡을 한없이 거슬러 오르노라면 노변을 따라 이어진 계곡의 진경에 넋을 잃게 된다. 이곳은 환경청이 고시한 도내 유일의 청정 지역으로 천연기념물인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다. 상류로 3㎞ 지점에는 용소라는 소가 있는데 물이 깊고 청명하며 용이 승천하던 것을 임신한 여인이 발견하여 용이 낙상하여 소를 이루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2026-04-30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천안리
용문산전투 전적비는 6·25 당시 가평 지역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에 맞서 싸운 국군 제5사단, 제6사단 및 미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 전투는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를 제6사단이 혈전 끝에 완전히 섬멸시키고 대승을 거둔 전투로서, 이 전투의 승리를 기점으로 하여 국군과 유엔군이 재반격의 기반을 마련하다. 이 승리는 미 육군사관학교 전술 교본으로 활용될 정도로 전략적 중요성이 큰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매년 5월 넷째 주 금요일에 전승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2026-03-19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영연방참전기념비는 경기도 가평읍 행정복지센터 앞에 공원처럼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 4개국 장병들이 UN군의 일원으로 우리나라에 파병되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싸운 전공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전적 기념비이다. 영연방전투는 1951년 4월 22일부터 4월 25일까지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를 맞아 가평군 북면 일대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의 승리로 서울-춘천 간 도로를 향해 진격하던 중공군을 막아 한국군과 UN군군의 퇴로를 확보하여 막대한 피해를 막아 낸 큰 의미를 지닌 전투이다. 842평의 대지에 1m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높이 12m의 대리석을 사각으로 쌓아 올린 비가 중앙에 있으며 우측에 참전 약사가 한글과 영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비의 중앙에는 4개국 국기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 한국 전쟁 참전으로 인한 영연방 군의 희생자 수와 참전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는 1967년 9월 30일 유엔한국참전국 협회와 가평군민이 힘을 합해 건립하였다. 이곳에서는 매년 4월 말에 영연방 한국참전기념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에 참전하기 위해 4개국의 참전용사와 가족 및 정부 요인 등 200여 명이 방문하고 있다.
2026-03-18
경기도 가평군 상면 태봉리
조선 중기 한문 사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인 월사 이정구(李廷龜, 1564∼1635)의 문집 『월사집(月沙集)』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이다. 원집(原集) 799판, 별집(別集) 79판, 연보 61판 총 939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28.0×53.0㎝, 두께 3㎝ 내외이며, 책판의 양 끝에 나무를 끼워 평평하게 하였다. 『월사집』은 최유해(崔有海)에 의하여 1636년 공주에서 처음 간행되었으나 병자호란을 겪으며 소실되었다. 이후 1688년 이정구의 손자 이익상(李翊相)이 경상감영에서 원집과 부록을 간행하였고, 1720년에는 증손 이희조(李喜朝)가 별집을 간행하였다. 연보 목판은 1930년에 새겨졌다. 월사집 목판은 원래 대구 용연사(龍淵寺)에 보관되었다가, 1928년 충북 옥천군 이원면 이원리로 옮겼고, 다시 1987년 4월 현재의 이곳으로 장판각을 지어왔다. 월사집 목판 자체의 의미와 함께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월사의 손자 이은상의 『동리집』, 월사의 6대손 이천보의 『진암집』 도 가평의 장판각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월사집 목판은 국내외에 잘 알려졌으나 『동리집』과 『진암집』은 제대로 알려지거나 평가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목판들은 조선시대에 이미 기록으로 남아있었으며 말기까지 그대로 유지된 것이 확인된다. (출처 : 국가유산청)
2025-03-18
경기도 가평군 북면 논남기길 402-19
효자 강영천은 진주 강씨로 3세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연일 정씨와 함께 살던 중 7세 때 모친이 병으로 몸 져 눕게 되었다. 나이는 비록 어렸으나 효심이 지극하였던 영천은 병든 어머니의 수발을 들던 중 병이 악화되어 정신을 잃자 자신의 손가락을 문지방에 깨트려 피를 내어 입에 흘려놓고 쓰러지고 말았다. 어머니가 깨어나 피를 흘리며 쓰러진 어린 아들을 발견하여 정성껏 간호한 끝에 깨어날 수 있었다. 정문 앞에 걸린 ‘효자업무강영천지문각 강희 39년 경진 3월 15일 입’이라 새겨진 현판으로 보아 이 효자문은 숙종 26년(1700년 3월 15일)에 건립했음을 알 수 있다. 본래의 건물은 29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멸실된 것을 1987년도에 복원한 것이다.
2025-03-18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별묘는 남도진(1674 현종 15∼1735 영조11)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설악면 방일리 음방[陰坊]에 있다. 이사당에 모셔진 영정은 가로 120㎝, 세로 200㎝ 크기의 두루마리 표구로 제작되었는데 1728년(영조5년) 6월에 조선 숙종조 시절에 이름이 알렸던 화가 함세휘가 그린 것으로 인물에 대한 선의 감각이 원형대로 잘 보존 되어있다. 이 영정은 그 후 후손들에 의하여 보관되어 오다가 그의 6대손이자 구한말 학자이며 정치가, 외교관으로 이름이 높던 예조판서 남정철(1840-1916년)이 1888년 2월 7일 이곳에 사당을 지어 모시며 매년 칠월칠일 제향을 드려 오다가 1985년 봄에 그 후손들에 의하여 다시 전통가옥으로 부연을 달아 중건한 것이다. 이 영정은 남도진이 쓴 명문과 그의 친구 박창언이 그 아름다움을 예서로 찬미한 글이 있고 조봉주가 찬미한 글과 함세휘가 [戊申六月下院] 무신유월하원에 그렸다는 표시가 있다. (출처 : 가평 문화관광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