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9
울산광역시 북구 당사동
봉수는 과거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대의 군사통신제도이다. 조망이 양호한 산정에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중앙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봉수제가 성립된 것은 1149년으로 1급에서 4급의 봉수 거화수(炬火數)를 규정하고 봉수군의 생활대책을 마련해 주었다.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 그 체제가 정비되었다. 5 거 거화수 등 관계 규식 마련, 각 도 연변의 연대(烟臺) 축조하고 봉수선로 획정 등을 통해 그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각 봉수에는 오장(伍長)과 봉수군(烽燧軍)이 교대로 근무하면서 평상시에는 한 홰, 적이 나타나면 두 홰,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홰, 적이 국경을 넘어오면 네 홰, 적과 접전하면 다섯 홰의 봉수를 올리도록 하였다. 1894년에 전보통신이 보급되면서 폐지가 결정되었고 다음 해 각처 봉대와 봉수군을 폐지함으로서 모든 봉수제는 폐지되었다. 봉수는 성격에 따라 경봉수(京烽燧), 내지봉수(內地烽燧), 연변봉수(沿邊烽燧)로 구분된다. 경봉수는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였던 중앙봉수로서 서울 목멱산(木覓山)에 위치하여 목멱산봉수 또는 남산봉수라고 불렀다. 연변봉수는 해륙 변경(海陸邊境)의 제1선에 설치하여 연대라 하였으며 내지봉수는 연변봉수와 경봉수를 연결하는 중간봉수로서 수적으로 다수였다. 우가산 유포봉수대는 우가산 정상에 위치한 연변봉수의 하나로, 남목천(현재의 주전)에서 봉수를 받아 경주 하서지로 전하였다. 각 봉수와의 거리는 남쪽 남목봉수(주전봉수)와는 5.17㎞, 북쪽 하서지봉수와는 10.85㎞이다. 유포봉수는 조선전기에 유등포(柳等浦) 봉화로 불리기도 하였다. 연대를 둘러싸고 있는 약 216m 길이의 방호벽은 석축으로 방형에 가까우며, 석축의 높이는 1m~2m가량 남아있다. 2003년 실시한 지표조사에 의하면 유포봉수대는 방호벽으로 조성된 공간의 동쪽으로 치우쳐서 서쪽과 남쪽으로 넓은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이곳에서 많은 양의 기와편과 약간의 자기편이 수습되었는데, 봉수대를 운영하기 위한 봉수군의 주거건물과 창고가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6-07-22
울산광역시 동구 동해안로 230
주전봉수(남목봉수)는 울산광역시 동구 주전동 봉대산 정상에 위치한 조선시대 봉수대로, 천내봉수에서 봉수를 받아 유포봉수로 전달하였다. 18세기 이후에는 천내봉수뿐만 아니라 동쪽의 경주 하서지봉수와도 연락하였다. 봉수 간 거리는 북쪽의 유포봉수와 약 5.75㎞, 남쪽의 천내봉수와 약 6㎞, 하서지봉수와는 약 16㎞이다. 현재 봉호사가 있는 자리는 과거 봉수대의 부속 건물인 봉대사(烽臺舍)가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1981년 정비사업을 완료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026-07-22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
진천 이영남 묘소는 임진왜란 당시 7년전쟁을 마무리한 최후의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 순국한 임란 충신 가리포첨사 겸 조방장 양성 이영남(1563~1598) 장군이 잠든 유서 깊은 곳이다. 이영남 장군은 1563년 2월 13일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에서 태어나 선조 10년(1577) 별시무과 병과에 급제하였으며, 선조 25년(1592) 율포권관을 시작으로 소비포권관, 강계부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동래성 함락 이후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원병을 요청하여 연합함대를 결성하였고, 이영남 장군은 옥포해전, 사천포해전, 한산대첩 등 주요 해전에 참전하였다. 선조 31년(1598) 가리포첨사로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순국하였으며, 장군의 종복이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인 진천 기전리에 안장하였다. 선조 38년(1605)에는 절충장군 선무원종일등공신에 녹훈되었다. 이영남 장군 묘소는 조선시대 묘소의 일반적인 형식을 바탕으로 최근에 정비·조성되었으며, 조선 중기 최대의 국난이었던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해전에서 나라를 지킨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정되었다. 묘소는 원형 봉분으로 직경 약 600㎝, 높이 약 240㎝이며, 둘레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긴 호석을 둘렀다. 묘소 앞에는 상석과 계체석이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1기씩 배치되어 있다. 우측에는 1983년에 건립된 이영남 장군 사적비가 있으며, 석물들은 모두 양호한 상태이나 근래에 조성된 것이다. 좌측에는 말무덤인 애마총이 있고, 묘소 상단에는 부모인 이사종과 광주 진씨의 쌍분 및 묘비, 조부 이극인의 묘소와 묘비가 자리하고 있다.
2026-07-22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보련골길 46
연제 안승갑 고가는 충청북도 진천군 보련마을에 자리한 전통 한옥으로, 1900년대 초 조선시대 가옥 구조를 계승하여 건립되었다. 이곳은 만뢰학원을 설립해 한글과 우리 역사, 민족사상 교육에 힘쓴 연제 안승갑 선생이 생활하던 곳으로, 근대 민족교육의 의미를 함께 간직하고 있다. 본채를 비롯한 대문채와 광, 외양간 등 전통 가옥의 공간 구성이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넓은 대청과 'ㄱ'자형 평면 등 당시 주거 건축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역사적 가치와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진천의 문화유산이다.
2026-07-22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회진면 덕산리
남해로 둘러싸인 장흥군 회진면의 한재공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할미꽃 자생군락지로, 보송보송한 솜털을 지닌 검붉은 할미꽃이 넓은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는 곳이다. 자생 할미꽃은 보통 3월 초순부터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해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절정을 이루며 아름다운 봄 풍경을 선사한다. 꽃대가 아래로 굽은 모습이 특징인 할미꽃은 가까이에서 보면 자주색 꽃과 부드러운 솜털이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특별관리지역으로 할미꽃을 불법 채취할 경우 처벌 대상이므로 눈으로만 감상해야 한다. 또한 한국 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촬영지로 알려져 있으며, 공원 정상에서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2026-07-22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
탐진강 생태습지공원은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한 곳으로 2004년 착공하여 2008년 7월 완공되었다. 장흥읍 평화교에서 부산교까지 4.92㎞ 구간으로 장흥 중심을 흐르는 1급수 탐진강 둔치에 조성된 4천여 평(13.130㎡)의 넓은 자연형 하천 생태습지원이다. 자연형 연꽃 방죽과 지압로, 목재데크, 꽃창포를 비롯한 수생식물과 생태관찰로, 산책로, 분수 등이 있다. 군민들이 휴식과 운동을 위해 찾는 친환경적 공간으로서 해마다 여름이면 물 축제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탐진강을 따라 제방에 벚꽃 가로수길과 수변 산책길 곳곳에 핑크뮬리, 연꽃 등 꽃밭과 자전거길이 조성되어 있다. 강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도 설치되어 있다. 물 축제가 펼쳐지는 장흥 토요시장 건너편 탐진강 강변 둔치를 거슬러 올라가면 장흥천변 체육광장과 정남진물과학관이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장흥읍 교촌남외길 33
장흥향교는 장흥군에 있는 조선 전기에 창건된 교육 시설이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 노비, 책 등을 지급받아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 2차례에 걸쳐 제사만 지낸다. 1398년에 창건된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30년에 중수하였다. 이후에도 1973년까지 총 8번 중수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제기고, 교직실,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경사지에 위치한 장흥향교는 내삼문을 경계로 배움의 공간과 제사 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앞쪽에 외삼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대성전과 전사청이 있어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2026-07-22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장흥읍 연곡길 31
장흥 연곡서원은 1698년(숙종 24)에 조선 후기 문신 노봉 민정중(1628~169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716년(숙종 42)에는 그의 동생인 민유중을 추가로 배향하였으며, 1726년(영조 2)에는 '연곡'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민정중은 호조판서·공조판서 등을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으며, 1675년(숙종 1) 장흥에 유배되었을 당시 이곳에서 지역 유림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이후 복원되었다. 연곡마을 뒷산 경사지에 자리한 서원은 앞쪽에는 강당인 연곡당을 중심으로 한 강학 공간, 뒤쪽에는 민정중과 민유중의 위패를 모신 사당 등 제향 공간을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을 갖추고 있다. 왼쪽에는 관리인이 머물던 공간과 영조의 친필 현판을 보관하는 어필각이 있으며, 현재도 해마다 3월 제향을 이어오고 있다.
2026-07-23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관산읍 삼산리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는 1580년경 경주 이씨 선조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의 동·서·남·북 방향에 심은 나무 가운데 남쪽에 남아 있는 후박나무로 전해진다. 마을이 형성될 때부터 함께해 온 당산나무로, 지금도 주민들의 쉼터이자 공동체 신앙의 대상으로 이어져 민속·문화적 가치가 크다. 또한 주로 해안 지역에 자생하는 후박나무가 내륙에서 이처럼 큰 규모로 생육하는 사례는 드물어 학술적 가치도 높다. 현재 세 그루의 후박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수관을 이루고 있으며, 높이 13m, 수관폭은 동쪽 12m·서쪽 12m·북쪽 13m, 가슴높이 둘레는 남쪽 나무 2.9m, 북쪽 두 나무가 각각 3.2m와 2.3m에 이른다. 이러한 역사적·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용산면
장흥읍 동남쪽에 있어 시가지를 굽어보고 있는 억불산은 높이가 518m로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능선이 길고 부드러워 마치 고운 여인이 치맛자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걷는 것과 같은 형상이다. 억불산이라는 이름은 정상 부근의 바위 모양이 억 개의 부처가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이름 지었다 한다. 옛날 봉수대가 있던 정상부에는 기암괴석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특히 탐진강과 함께 장흥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고 있다. 재미있는 전설이 담긴 며느리 바위는 어린애를 업은 여자의 형상, 아니면 스님이 합장하고 기도하는 부처 모습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 웅장함에 놀라게 된다. 또한 편백나무가 많기로 유명하다. 20만 평의 편백숲이 산책로로 최적이어서 아침 산행을 하는 사람들과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오르는 산으로 장흥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 주는 산이기도 하다. 특히, 산 중턱에 천문과학관이 개관되면서 5부 능선에 있는 천문과학관까지 4~6m 폭의 임도가 잘 조성되어 있고 가로등과 음향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낮이든 야간이든 누구나 부담 없이 공원에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를 수 있다. 억불산 기슭에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가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