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6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
성황단(서낭당)은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에 원뿔꼴으로 쌓아놓은 돌무더기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적인 기능을 한다. 거창 거기리 성황단은 거기천이 형성한 곡저평야의 평지에 조성되었는데, 높이 4.6m, 아래 둘레 24.3m로, 수많은 돌로 층층이 쌓아 올린 적석총 형태로 500년 전에 깃대봉의 용마가 아이와 함께 말 무덤으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성황단은 경계의 표시이거나 위급할 때 무기로 쓰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다. 돌무더기 옆에는 보통 신성시되는 나무나 장승이 함께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서낭신을 모신 성황단은 신성한 영역이자 신앙의 장소였다. 그래서 그곳을 왕래하는 사람은 돌, 나무, 오색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갔다. 거창 거기리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성황단에서 마을에서 공동으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2026-07-16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샘골길 6
거창 서간소루는 첨모당 임운 선생이 살던 고택의 사랑채로, 그의 아들 서간 임승신이 학문을 닦던 공간이기도 하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1596년 동계 정온이 남긴 기문을 통해 임진왜란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다. 임운은 정여창의 학문을 이어받아 수양하였으며, 형 임훈과 함께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다. 서간소루는 은진 임씨 집성촌인 갈계리에 자리한 전통 건축물로, 정면 4칸·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을 갖추고 있다. 대문채와 사당 등도 함께 남아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의 공간 구성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인근에는 갈계숲과 갈천서당, 거창 갈계리 임씨고가 등이 있다.
2026-07-16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샘골길 6
거창 갈계리 임씨고가는 갈천 임훈 선생이 살던 집으로 부친인 임득번이 1507년에 건립한 주택이다. 임훈선생은 생원시에 합격하여 광주목사를 역임하였고 장례원 판결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후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다. 부역제도와 군정의 폐단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등 백성을 사랑하는 목민관으로서 추앙받았다. 가옥의 구조는 솟을대문채, 사랑채, 안채, 장판각,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에는 정려가 걸려 있고, 홍문의 초석이 거북머리로 되어 있는데 작품성이 뛰어나다. 안채는 선생의 호를 따 자이당이라 부르며, 정면 5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이다. 안채 옆에 갈천 선생과 동생 임운 선생의 문집책판을 보관한 장판각과 사당이 있다. 고가는 솟을삼문을 한 대문채, 사랑채, 안채가 각각 독립적인 일자형 건물을 이루어, 전체적으로 三자형으로 배치되었다. 이러한 배치는 경남 지방의 옛 주택에서 자주 나타나는 독특한 방식이다. 안채와 장판각, 사당 등의 건물은 최근에 신축되었다.
2026-07-16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2길 34
거창 영빈서원은 1744년에 창건한 서원으로 동래정씨 정구, 정종, 정표, 정응두, 정시수, 정영진 선생 6위를 제향 하던 영천사에서 출발하였다. 서원철폐령에 따라 1864년에 훼철되었다가, 일제 강점기에 절의, 충효, 성경 정신을 일깨우고자 사림과 후손들이 1919년에 다시 세우고 영빈서원으로 개칭하였다. 강당의 마당에는 1951년에 다시 세운 육현묘정비가 있다. 영빈서원은 1991년에 중건되었으나, 평면의 형식이나 가구의 기법은 조선 후기 이전의 것으로 1744년에 창건되었던 영천사의 모습이나 건축 기법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빈서원은 일산봉의 서사면 끝자락에 서향 하여 자리 잡고 있는데, 높은 곳에 사당 영역을, 낮은 곳에 강당 영역을 동서축선상에 배치하였다. 사당인 구인사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평면은 정면에 툇간을 두고 배면에 통칸 마루방을 둔 형식이다. 공포는 다포식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사당 정면에는 3칸 규모의 내삼문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 마루 2칸, 툇마루가 딸린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포 양식은 소로수장집이며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5량 구조이다. 대문채는 광재문으로 정면 3칸의 솟을대문이다.
2026-07-16
경상남도 거창군 용문들길 103-21
용암정은 조선 순조 1년(1801)에 용암 임석형(1751∼1816) 선생이 바위 위에 지은 정자이다. 임석형이 지은 『용암정 창건기』와 이휘준의 『중수기』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고종 1년(1864)에 보수 공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정자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중앙에 방 1칸을 만들어 마루 아래에서 불을 땔 수 있게 하였고, 둘레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고결한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정자 안에는 ‘용암정(龍巖亭)’, ‘반선헌(伴仙軒)’, ‘청원문(聽猿門)’, ‘환학란(喚鶴欄)’이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다.
2026-07-16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거창 농산리의 낮은 야산 기슭에 있는 이 석불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시대 불상 양식을 보여준다. 자연석을 다듬어 윗면에 두 발을 새긴 받침돌과 광배를 함께 조성한 불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 개의 돌을 결합한 형태이다. 신체에 비해 머리 부분이 다소 크고 얼굴 일부는 손상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후덕한 인상을 준다. 양어깨를 감싼 옷은 허리 부분부터 양쪽으로 갈라져 대칭적인 옷주름을 이루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양식은 통일신라 700년 전후로 추정되는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사암제불입상과 719년 명문이 있는 감산사상,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남면 불입상 등 8세기 이후 불상에서도 나타나며, 이 불상의 조성 시기를 추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2026-07-16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덕유월성로 2279-10
거창 만월당은 만월당 정종주를 기리기 위해 1666년에 건립한 양반가 주택이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며, 1786년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건립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창 지역의 대표적인 문인들과 연관을 맺고 있는 곳이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분들의 정신이 살아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정면에 완월당이라는 편액 옆에 팔완당이라는 편액이 있는데, 팔완당은 첨정을 역임한 정몽서를 기리기 위한 건물이다. 팔완당은 북상면 농산리 204번지에 있었는데 이 건물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만월당에 통합, 복원되었다. 만월당은 소정천의 곡저평야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네 칸, 측면 한 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평면은 중앙에 마루 두 칸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한 칸 배치한 형식이며, 정면과 배면에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2026-07-16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밤티재로 863
거창 일원정은 1905년에 강호산인 김숙자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선산 김씨 후손들이 유림 학자들과 함께 건립한 정자로, 개인의 인격 수양뿐만 아니라 인재를 양성하는 서원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정자의 기능과 함께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등 성리학의 연원을 같이하는 7현을 향사하는 서원의 기능도 병행하고 있다. 일원정 길 건너에는 김숙자 신도비가 있다. 본채인 일원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정면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평면 바닥 높이를 높게 하여 마치 중층 누각처럼 보이며, 좌측 앞쪽에는 2칸 규모의 대문채가, 우측에는 5칸 규모의 아래채가 있다. 일원정에서는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등 성리학의 뿌리를 같이하는 7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2026-03-04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강선대길 96-326
거창 모리재는 동계 정온(1569~1641)선생을 기리기 위한 재실이다. 정온은 남명 조식의 학맥을 계승하고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10년(광해군 2)에 진사로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14년에 부사직으로 재임하던 중 영창대군의 처형은 부당하다고 상소하고, 가해자인 강화부사 정항의 참수를 주장하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제주도 대정에서 10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모리재는 동계 정온이 사망한 뒤 선생의 덕과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역의 유림들이 지은 건물이다. 정문으로 사용된 화엽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층 누각으로, 자연석을 둥글게 다듬은 기둥을 세웠다. 화려한 팔작지붕의 처마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방 처마 끝에는 받침기둥을 세워 지붕을 떠받쳤다. 본당인 모리재는 자연석 초석 위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일자로 된 팔작지붕의 건물로, 지역의 유림들이 모여 선생의 학문을 추모하며 공부하였던 곳이다. 모리재는 재실로서 특이하게 남부 지방의 민가 형식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매우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1년에 중수한 것이며, 유생들의 생활공간이었지만 지금은 관리사로 쓰는 서무와 사당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2024-10-16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송계로 731-42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갈천 임훈 선생이 거처하던 가옥인 갈계리 임씨 고가로 가기 전에 자리하고 있는 갈계숲에 가선정 정자가 있다. 덕유산 기슭에서 발원한 원천이 송계계곡을 지나 위천에 이르러 동서로 나뉘어 흐르면서 시냇물이 자연섬을 만들고 수목이 어우러진 이곳은 북상면 13경의 하나인 갈계숲이다. 갈계숲은 갈천 임훈 선생이 태어나 자라고 묻힌 곳으로, 2~3백 년생 소나무, 물오리나무, 느티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갈계숲 안에 있는 가선정은 갈천 임훈 선생의 덕망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1934년 건립하였으며, 정면 2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의 8작 지붕으로 되어 있다. 갈계숲에는 가선정이 자리하고 있어서 가선림이라고도 부른다. 가선정 주변에는 갈계숲을 시작으로, 자이당, 석천재, 도계정, 병암정, 농운정, 갈천정 등 정자와 재실이 즐비하며, 관광지로는 월성계곡, 송계사, 수승대, 갈계리 임씨고가,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정온선생 생가, 금원산 자연휴양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