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7
부산광역시 동구 홍곡로 75 (수정동)
문화공감 수정(국가유산명:부산 수정동 일본식 가옥)은 1943년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로 넓은 대지 안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는 대문 3칸이 있고 몸채 1동이 남쪽을 향해 있다. 몸채 현관의 오른쪽은 벽돌(조적조)로 지어져 있으며 이를 제외한 대부분은 일본식 목조 주택으로 지어졌다. 현재 1층의 일부는 온돌방으로 개조되어 있으나 2층에는 전형적인 일본 식 주택에서 볼 수 있는 툇마루(연가와)와 장마루를 설치한 복도, 그리고 다다미방이 원형대로 남아있다. 또한 다다미가 깔려 있는 실내에는 도코노마, 쓰케쇼인, 명장지, 다다미, 일본식 창호 문양 등의 세부적인 장식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고급 일본식 건물의 외장 요소를 잘 갖추고 있으며 특히 2층의 일본 식 전통 주택의 형식을 철저히 따른 공간의 구성과 치장이 특징적이다. 일제 강점기 근대 주택 건축사와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곳으로 평가받는 공간이다.
2025-10-23
부산광역시 동구 범상로1번길 35
보광사는 수정산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사찰로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위치해 있다. 현대에 지어진 사찰로서 깨끗한 경내시설을 갖추고 있고 도시에서 산을 접할 수 있는 곳에 자리해 방문객들의 편의를 높였다. 보광사 대웅전에는 18세기 전후에 제작된 불상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색난 계열의 조각승에 의해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본존은 아미타여래이며 양측의 좌우협시보살은 관음과 대세지보살로서 모두 3구로 구성되어 있다.
2026-01-21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양림길 48-63 (노암동)
남원항공우주천문대는 천문 과학 및 항공 우주 분야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시립 과학관으로, 춘향테마파크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태양과 천체관측 4D 영상관람, 가상항공체험, 천문강연 등의 프로그램을 한다. 천체 관측실에 설치된 다양한 천체 망원경과 디지털 천체 영상을 활용하여 달과 행성은 물론 성단, 은하 등 다채로운 천체를 관측할 수 있으며, 항공 체험실과 야외 광장에 전시된 전투기를 통하여 항공 분야를 보다 가깝게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여름방학 캠프를 비롯하여 하반기 현장체험 학습과 다채로운 과학체험교실을 운영한다.
2025-03-18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동충동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 때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원지역에 소경(지방도시)을 설치하였고, 691년에 쌓은 네모난 형태의 평지 읍성이다. 1597년에는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성을 크게 다시 쌓고 수리하여 담을 높였다. 그해 8월 조·명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왜군에게 크게 패했고, 이때 싸우다 죽은 군인과 주민들의 무덤이 만인의총이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많이 허물어져 약간의 성터 모습만 남아있다. 돌축대의 길이는 2.4㎞가 넘고, 높이 약 4m에 이르며 성 안에는 70여 개의 우물이 있었다. 성 내에는 남북과 동서로 직선대로가 교차하고, 그 사이에도 너비가 좁은 직선도로가 교차하여 바둑판 모양의 도로구성을 볼 수 있다. 근대에 들어와 도시가 들어서며 성곽은 대부분 헐려나갔으나, 시내 중심부의 도로는 지금도 바둑판 모양으로 되어 있어, 과거 성내의 가로 구성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 읍성의 가장 전형적인 구조를 하고 있으며, 규모가 크고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네모 반듯한 구성과 성내의 가로가 직선으로 구성된 점이 흥미롭다.
2026-03-23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4
범어사(梵魚寺) 산내암자인 금강암(金剛庵)은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기록에 의하면 1803년 범어사 대성암과 함께 취규 대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1899년 승려 오성월이 범어사 금강암에 처음으로 선원을 개설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 금강암이 선풍을 일으키는 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800년대에 제작되어 현재 남아 있는 중수기문들 중에서 금강암의 사명이 발견되어 범어사 금강암의 중창 시기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1980년대 벽파가 범어사 금강암에 주지로 주석하면서부터 범어사의 산내 작은 암자에 불과하던 금강암이 점차 명성을 떨치며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하였으며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약 7년간 벽파의 상좌인 정여가 중창 불사를 주도 하면서 범어사 금강암은 지금의 가람을 갖추게 되었다. 금강암은 범어사 왼쪽의 금정산 북문 방향으로 가다 보면, 범어사 대성암이 나오고 대성암을 지나 바위로 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범어사 팔경 중 한 곳인 금강만풍으로 잘 알려진 금강암이 나온다.
2026-03-17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성순환길 714 (산곡동)
남원 교룡산성은 해발 518m의 교룡산 지형을 활용해 돌로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약 3,120m이다. 현재 동문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옹성, 그리고 일부 성벽이 남아 있으며 특히 동문터와 수문은 성곽 연구에 중요한 구조를 보여준다. 성 안에는 우물 99개와 계곡이 있어 유사시 주민들의 대피나 전투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이곳에 군량을 보관하는 창고가 설치되어 전략적 중요성을 가졌다. 축성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입지와 형식으로 미루어 백제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026-04-06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요천로 1447 (천거동)
광한루는 원래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廣通樓)’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이후 세종 26년(1444)에 남원부사 민공이 중수하고 당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순찰사였던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 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떠 ‘광한루’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 광한은 ‘달나라 궁전’을 뜻한다. 춘향과 이몽룡도 바로 이곳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맺게 되었다. 광한루의 앞뒤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호남제일루라는 말 그대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에 들어서면 광한 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광한루 누각에 걸린 여러 편액 중 광한루란 편액은 신익성이 호남제일루와 계관의 편액은 1855년 남원부사 이상억이 누각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 걸었다. 이 중 계관의 편액은 동학란 때 없어진 것을 1930년대 광한루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때 남원유지 강대형이 다시 써 건 것이다. 또한 현재 광한루에 걸린 광한루란 편액은 전민의원 조정훈이 쓴 글씨라고 하는데 금암봉의 금수정과 용성관의 편액 글씨도 썼다고 전해온다. 1879년 광한루가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루의 북쪽에 다락(월랑)을 세워 층층대를 만들어 놓았다. 북쪽의 층층대는 1877년(고종 14년)에 부임한 남원부사 이용준이 광한루가 퇴락하여 본관 전체가 북쪽으로 기울어져 무너질 우려가 있어 수지면 고평리에 사는 추(秋) 대목의 묘안을 받아들여 북쪽에 누를 오르내리는 계단을 만들되 본관과 같이 아름드리 기둥을 세워 튼튼하게 고정시켜 본관의 기울음을 바로 잡고 외관으로도 더 화려하게 하였다. 이는 우연하게도 누각 건축사상 큰 의의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누각에 월랑을 가설하게 된 시초이며 이전까지는 누상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만 설치하였다.
2025-12-15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정령치로 1523
지리산 정령치에 연이은 고리봉 아래 개령암 터 뒤 절벽에 새긴 이 마애불상군은 크고 작은 12구의 불상으로 이루어진 규모가 큰 불상군이다. 울퉁불퉁한 자연 암벽이어서 조각 자체의 양각도 고르지 못하고 훼손도 심한 편이나 3구는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거대한 불상은 4m나 되는데 조각 솜씨도 제일 뛰어나 본존불로 여겨진다. 얼굴은 돋을새김이지만 신체의 옷 주름은 선으로 처리를 하고 있어 일반적인 고려 마애불의 수법을 따르고 있다. 또한 큼직한 얼굴과 형식화된 이목구비, 장대해진 체구와 간략해진 옷주름 등에서도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거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1∼2m의 작은 불상들 역시 조각 수법이 모두 같으며, 각 부분의 양식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서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규모가 큰 불상군은 희귀한 예로서 명문까지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마애불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2025-12-01
서울특별시 중랑구 봉화산로 109-8 (상봉동)
성덕사는 중랑구 상봉동 봉화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주택가가 밀집한 골목에 있다. 1957년에 세운 사찰로 경내 건물로는 대웅전, 종각, 칠성각, 삼신각, 미륵전 등이 있다. 주택가에 있어서 주민들의 신앙생활과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곳은 원래 애동지 전설이 내려오는 터가 센 땅이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한 노인이 산 중턱에서 나무를 했는데, 베어도 베어도 나무가 다시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마을로 도망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줬는데, 탁발시주를 위해 마을에 들렀던 한 스님이 그곳은 많은 사람의 원한이 서린 곳이라서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치성을 드리고 애동지(음력 11월 초순 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지 말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아이가 넷인 과부만은 스님이 당부한 대로 매년 치성을 올렸다. 이후 마을에 전염병이 크게 번졌을 때, 과부의 아이들은 아프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었다. 과부는 자기가 죽기 직전 자손들을 모두 불러 치성을 올려야 한다고 당부하며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45년 광복 이후 이 일대에 사람이 모여들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공사를 하면 서까래가 무너지거나 기둥이 내려앉았다고 한다. 조계종에서 절을 지을 때도 목재를 실어 나르던 황소가 죽고 인부가 여럿 다쳤을 정도였는데, 절이 완공된 이후에는 불의의 사고로 다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를 두고 성덕사가 치성을 대신 드리기 때문이라고 마을 토박이들은 말한다.
2026-02-20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노송로 1188-5 (노암동)
전라남도 남원시 노암동에 위치한 미륵암내에 있는 불상이다. 전체 높이는 192㎝이며, 전체적인 모습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솟아 있다. 목에는 3줄로 새겨진 삼도가 있고, 불상 뒤편에는 배모양의 광배가 있다. 지금은 왼쪽 윗부분과 오른쪽의 3분의 1 정도가 절단되어 없어졌으며,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불상이 서 있는 받침돌은 사각형으로 화강암을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그 위에 다시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불상의 발 부분이 표현되지 않아 불상과 받침돌이 별개의 돌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