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6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구암정은 순창 구미마을과 내월교 사이 섬진강 및 국도 21호선, 섬진강자전거길가에 세워진 정자이다. 이 정자는 돈암 혹은 배암이라 불리는 바위 위에 서 있다. 이 바위는 인근 남원 출신의 조선 전기 학자 구암 양배(?~1500)가 그의 동생 양돈과 함께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곳이다. 양배는 일찍부터 학문을 닦아 그 지식이 높았으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양대 사화로 어진 사람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 조정을 등지고 동생과 함께 이곳으로 내려와 자연 속에 묻혀 세상을 잊고 살았다. 그 후 1901년에 양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 정자를 세운 것이 바로 지금의 구암정이다. 1990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인근에 위치한 구미마을은 남원 양씨의 집성촌으로 남원 양씨 종가 등이 있다. 그 외에는 주변에 용궐산자연휴양림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2025-09-15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동로 117
이 서원은 고려개국공신 태사 충렬공 전이갑과 충강공 전의갑 형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팔공산 동수에서 견훤군과 맞서 싸우다 태조 왕건을 피신시키고, 장절공 신숭겸 장군등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여 그들의 영명을 후세에까지 남겼다. 뒷날 태조가 몹시 슬퍼하여 전이갑은 통합삼한개국공신 태사 충렬공으로 추증하고 전의갑은 시중개국공신 충강공으로 봉하였다. 공의 충절이 병조, 예조등 열성조 수교가 조선왕조에도 전교되어 서기 1864년(고종 8년)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설단하고 제각을 지어 공의 높은 충의를 기려오다가 서기 1989년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대지 800평 규모에 1곽 3동으로 되어 있으며 뜰에는 달성군 보호수 8-1호인 10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출처 : 대구트립로드)
2026-03-18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달성 조길방 고택은 원래 대구 동촌 비행장 근처에 살던 현 소유자의 10대 조가 조선 중기 난리를 피하여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로 들어와 정착하면서 지은 초가집이다. 경사가 급한 산기슭에 자리한 한덤마을에 있다. 1784년에 건립한 함안 조씨가 살았던 집으로 안채는 정착 당시 건립한 건물이며 사랑채와 아래채, 부속채는 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안채 종도리 하부에 ‘성상 재위 구년 갑진 이월 십구 일 묘시 견주 미시 상량’이라는 묵서명이 있어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다. 안채를 중심으로 좌·우측에 사랑채와 아래채가 위치하여 전체적으로 ㄷ자 형태이다. 달성 조길방 고택은 삼량 구조로 결구된 초가로 초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안채의 마루 정면에 원기둥을 사용하여 대량과 원초적인 상투걸이 수법으로 결구되었으며 특히 안채의 창호 규모와 성격은 주택 발달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2025-11-17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남지장사길 127
청련암은 우록리 최정산(最頂山) 있는 남지장사의 부속 암자로 지장보살을 모시는 도량이다. 신라 신문왕 4년(684) 양개조사가 왕명으로 남지장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지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유정의 지휘 아래에 있던 승병들이 훈련장으로 사용하였으나 전쟁 때 화재로 소실되었고, 1808년에 재건한 것이다. 청련암의 인법당은 청련암의 중심 건물로 법당의 기능과 요사의 기능이 혼합되어 있다. 따라서 평면의 구성이 사찰 건축의 일반적인 구조와는 달리 가운데 3칸의 법당을 중심으로 좌측에 방 2칸이 이어 붙어 있고 우측으로 부엌이 자리한다. 전후에는 툇간을 내고 좌측 전면으로 방 1칸과 마루 1칸을 덧대어 일견 민가의 사랑채를 연상시키며, 부엌 뒤편으로도 방 2칸을 더 두었다. 법당이 있는 건물은 6칸의 정면 건물 오른쪽 뒤와 왼쪽 앞으로 각각 3칸 건물을 이어 지어 평면 배치가 특이하다. 남지장사 대웅전 동쪽에 있는 청련암은 남지장사 수목장림이 있는 소나무 숲길을 가로질러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세속과 동떨어져 숲으로 둘러싸인 고요하고 단아한 사찰의 분위기가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로 하여금 평온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 운이 좋다면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마루에서 차 한잔을 즐기며 풍경에 취할 수도 있다.
2025-11-28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동로 219-5
박곡서당은 조선 태종 때 경상도, 경기도, 풍해도 ‘황해도’ 관찰사와 예조판서를 역임한 전백영의 추모 재실이자 서당이다. 박곡서당은 상원리 박실에 있다. 본래 이 재실은 내상원[안상원] 선생 묘소 곁에 있었다. 이후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인근 행정리 한천서원이 헐릴 때, 그 재목을 가져다 1872년경 안박실에 있는 정부인 인천이씨 묘소 옆에 재실을 다시 세웠다. 하지만 재실에 화재가 일어나자, 선생 묘소와 정부인 묘소 사이, 후손들이 많이 세거 하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 박곡서당이라 이름했다. 서당이라 이름 붙인 것은 묘소와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어 재가 아닌 서당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1964년 중건하고, 1984년 7월 담장 바깥에 문평공 신도비를 세웠다. 현 박곡서당 강당 숭정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좌측에서부터 2칸 방, 2칸 대청, 1칸 방이다. 대문은 앙지문으로 3칸 솟을대문인데 가운데 한 칸만 문이고 좌우 각 한 칸은 행랑이다. 박곡서당 동쪽으로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문평공 종택인 옥산고택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2026-03-23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구장군 폭포는 강천산 군립 공원 내 강천사에서 서남쪽으로 약 1.2㎞, 강천산 현수교에서 약 800m 상류에 있는 높이 120m의 웅장한 인공 폭포이다. 바위 사이로 두 줄기의 폭포가 흘러내리는 3단 폭포이며 아래에는 소가 형성되어 있다.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마한시대 9명의 장수가 전투해 패하자 이곳에서 자결을 시도하다 다시 결의를 다지고 전장에 나가 대승을 거두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2025-12-02
대구광역시 달서구 중흥로 67
1947년 3월 10일 수원 백씨(백남희 보살님)가 친정 부모님 무덤 옆에 절을 지으면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는 선몽을 받고 건립하였다. 1986년 3월 황정광 주지 스님이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며 만해 용운, 남전 한규, 도봉 본연, 석두 보택, 성월 일전, 만공 월면, 용성 진종, 초부 적음 스님등이 설립 조사인 선학원 소속 사찰이다. 주변에 관덕정, 앞산해넘이 전망대, 앞산빨래터공원이 있다.
2025-03-31
대구광역시 달서구 공원순환로 213
고려 중기에 한 부호가 문중의 원찰로 금봉산(두류산)에 절을 짓고, 금봉사(金鳳寺)라 했다고 한다. 1926년(병인년)에 김송동 보살님이 지금의 두류실내수영장 별관자리에 대웅전과 요사 2동을 창건하였다. 1986년 대구에서 개최한 전국체전 때 금용사의 부지가 실내수영장으로 편입되면서, 현 위치로 이전하여 중창하였다. 절 이름을 금용사라 한 것은 옛날 천재지변으로 금봉산 봉황이 용으로 화했다는 풍수 설화를 감안하여 금(金) 자는 옛 금봉사에서 따오고, 용(龍) 자는 천재지변의 풍수설화에서 딴 것이다. 지금의 금용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두류공원 안에 있는 사찰이다. 두류수영장 바로 뒤편 산자락의 이 절은 비구니 사찰로 대략 1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두류공원의 여러 시설과 더불어 사찰을 이용하는 것 역시 이 사찰의 장점이라 하겠다.
2026-07-23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부안군 하서면에 있는 청호저수지는 계화도 간척지 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축조된 방대한 저수지이다. 저수지의 물이 맑아 민물새우, 붕어 등 각종 담수어가 풍부해 민물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곳곳에 조형물들이 조성되어 있고, 들과 산, 하늘과 어우러지는 잔잔한 저수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동진강과 만경강물이 흘러들어오는 하구에는 갯벌이 발달하여 철새들과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식한다. 겨울에는 청둥오리, 가창오리, 흰뺨오리 등 많은 철새가 찾아오는 철새도래지이기도 하다. 주변으로 계화도, 계화조류지, 변산반도국립공원, 변산해수욕장 등이 있어 연계관광으로도 좋다.
2025-03-31
대구광역시 달서구 장기로12길 10
성화사(聖華寺)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末寺)이다. 1978년 7월 창건주 전복조 보살님의 "불교 포교를 통해서 시민 정신 순화"를 설립 목적으로 창건(創建)되었다. 이후 1994년 진각스님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되었다. 이 사찰은 태극권을 통해 정신 순화와 체력 단련 정진을 한다고 알려졌다. 창건 연대가 비교적 근세라 사찰 경내 모습이나 건축 양식이 콘크리트 양식의 3층 건물로 현대적이다. 도심(성당동)과 일상(어려운 이웃 자비 나눔 등)에서 수행에 정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