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30
인천광역시 연수구 아암대로 612
인천시 연수구 옥령동에 조성된 해안 공원이다. 공원 입구가 아암대로와 맞닿아 있으며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계단이 놓여 있다. 아암도해안공원은 갯바위가 많고 작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으로 바다 건너로 인천 대교와 송도 국제도시가 훤히 바라보인다.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도시의 스카이라인 너머로 지는 일몰이 볼 만하다. 아암도는 원래 육지에 인접한 작은 바위섬이었다고 한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온전한 섬이 되었다가 물이 빠지면 걸어서 갈 수 있어 과거에도 사람들이 자주 찾던 곳이었다. 이곳에 1980년대 말 송도 해안도로 매립공사가 진행되면서 섬이 육지화되었으며, 2000년 4월에는 기존에 있던 해안 초소와 1.2km가량 이어진 철조망을 제거해 약 1만 2,000㎢ 규모의 해안공원이 만들어졌다. 아암도해안공원 앞쪽은 너른 개펄이 펼쳐져 갯벌 탐사를 하거나 철새들을 관찰하기 좋다. 복잡한 도시 속에 남겨진 섬 아닌 섬 같은 분위기이다. 바닷가 갯바위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언제든 찾기 편한 공간이 되어준다. 호젓하고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거나 바닷가의 색다른 일몰을 담고 싶을 때 한번 방문해 보자. (출처 : 인천관광)
2026-06-30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우현로90번길 19-13
인천광역시 인현동에 있는 조선 후기 우물이다. 1996년 6월 12일 인천광역시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처음에는 자연 연못으로 수량이 많고 물 맛도 좋아 식수로 이용되어 왔다. 그 후 1883년 제물포구를 기점으로 한 인천의 개항과 함께 현재와 같은 우물로 만들어졌다. 내부는 자연석과 가공된 돌을 둥글게 쌓아 만들었고 지상에 드러난 부분은 원형의 콘크리트 관으로 마감하였다. 1967년 우물을 보호하기 위해 한식 기와지붕의 육각형 정자를 건립하였고 현판은 인천 출신의 서예가 박세림(朴世霖)이 썼다. 이 주변을 큰 우물 거리라고 부르며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용동 일대의 상수원이었다.
2026-06-30
인천광역시 영종구 잠진도길 11
거잠포해변은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해돋이 명소로, 인천국제공항 인근에 있어 수도권에서 접근이 용이하다. 해변에서는 상어 지느러미 모양의 섬 하나가 보이는데, 이 섬이 바로 매도랑이다. 매도랑 너머로 떠오르는 붉은 해는 장관을 이루며, 이곳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해변을 따라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하얀 모래사장과 갯벌이 어우러져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휴양지로 주목받고 있다. 거잠포해변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면, 거잠포선착장에서 약 300m 거리에 위치한 용유 하늘전망대를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2026-06-30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제물량로 183
인천광역시 항동에 있는 인천우체국은 일제강점기 우편 업무를 담당하던 건물이다. 인천우체국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12월 10일 건축됐다. 우편 업무를 담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은 근대식 건물로, 당시 행정 관청 건물 중에서 큰 규모로 만들어졌다. 총면적 1,787㎡, 약 540평으로 웅장한 건물이었다. 건립 당시의 명칭은 인천우편국이었으며, 해방 이후인 1949년 8월에 인천우체국으로 바뀌었다. 인천우체국의 전체적 구조는 벽돌조이지만 바닥은 콘크리트로 시공하였다. 외부 마감은 징두리(건물 안팎 둘레의 밑동 부분)에만 화강암을 2단으로 쌓고, 나머지 윗부분에는 모르타르로서 석조 모양을 표현하였다. 건축될 무렵 유행하던 절충주의 건축양식을 단순화해 지은 것도 특징이다. 입구 양쪽에 큰 기둥 형식의 탑부를 세우고, 그 사이에 주두(기둥 머리를 장식해 공포를 받치는 재료)가 없는 여러 개의 기둥을 받쳤다. 당시 행정 관청 건물은 윗부분에 돔 모양의 탑옥을 올려놓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건물은 돔 모양 탑옥을 생략하는 등 평면과 세부적 외양이 기본 형식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6·25전쟁 때 일부가 파손돼 슬래브 지붕을 슬레이트로 보수하는 등 1957년 복구를 마쳤다. (출처 : 인천투어)
2026-06-30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월미로 376 (북성동1가)
인천항 갑문은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중요한 항만 시설로, 인천항의 선박 운항을 원활하게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갑문은 배가 항구에 안전하게 입출항할 수 있도록 돕는 조수 간만의 차이를 조절하는 시설로, 특히 큰 선박들이 통과할 때 필수적인 구조물이다. 이 시설은 선박이 높은 조수나 낮은 조수에서 어려움 없이 항구를 오갈 수 있도록 물의 높이를 조절하며, 인천항의 효율적인 운영을 돕는다. 인천항 갑문은 또한, 항구의 안전성과 선박의 통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국내외 무역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갑문을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선박들은 인천항을 통해 물류와 상업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으며, 이 시설은 인천항의 발전과 해상 물류에 기여하는 핵심적인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2026-07-02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
외국인 묘지는 인천이 개항된 뒤 인천에서 체류하다 사망한 외교관, 통역관, 선교사, 의사 등 외국인 66명의 유해가 안장됐던 장소이다. 이 묘지는 북성동, 율목동, 도화동에 흩어져 있던 외국인 묘를 지난 1965년 5월 25일 한데 옮겨 놓은 것이다.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사망하는 이들도 생겨나자 외국인들 유해를 본국으로 보내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거주지 인근 야산에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그 결과 일본인 묘지, 중국인 묘지, 기타 국가별 묘지가 조성됐다. 2017년 5월 인천시와 7개국 주한 대사관에 의해 청학동에 있던 외국인 묘지 66기는 인천가족공원에 마련된 묘역으로 이전됐다. 이곳에 묻힌 사람으로는 개항 후 인천에서 해외 무역을 주도했던 독일계 헤르만 행켈, 타운센드 상회의 월터 타운센드 등과 같은 상인들과 인천에 성 누가병원을 설립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서양 의술을 베풀다 요절한 엘리 바 랜디스 박사 등이 있다.
2025-09-02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룡로 80 (옥련동)
호불사는 부처님의 진리와 자비광명이 하늘과 땅 그리고 온 인류 중생들의 가슴에 길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인천 송도 앞바다와 송도 신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청량산 중턱에 위치한 관음기도 도량이며, 호불사로 올라가는 청량산 등산로는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주변 관광지로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인천시립박물관, 능허대 해안친수공원 등이 있다.
2026-04-07
인천광역시 연수구 능허대로 109
능허대는 백제 근초고왕 27년(372)부터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문주왕 1년(475)까지 사신들이 중국 동진(東晋)을 왕래할 때 출항하던 곳이다. 당시 백제의 정치 상황은 고구려, 신라와 적대관계에 놓여 있었으며, 중국도 남·북조(南·北朝)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남조와 교류하고 있던 백제 사신들은 고구려를 거쳐가는 육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이곳 능허대를 통해 산동반도의 등주와 내주에 이르는 뱃길을 이용하였다.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아파트와 유원지가 개발되어,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작은 정자와 연못이 있으며, 연못에는 인공폭포와 분수대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2026-06-30
인천광역시 서해구 도요지로 54 (경서동)
인천 검암동 일대에서 10∼11세기에 걸쳐 청자를 만들었던 5∼6기의 고려 가마터이다. 가마터 주위 지세는 얕은 비탈을 이루며 바다로 이어져 있다. 현재는 발굴조사 시 드러난 가마의 남은 부분에 보호각을 지어 보존하고 있지만, 나머지 일대는 골프장으로 변해있다. 발굴 당시 가마 1기를 조사하여 많은 녹청자조각과 가마도구들을 발견하였다. 가마는 자연 경사를 이용한 것으로 칸이 없는 통가마이다. 3차례에 걸쳐 다시 고쳤쌓았는데, 경사도 20°도 안팎의 가마바닥에 모래를 깔고 그 위에 경사진 넓적한 자기로 만든 도지미를 깔고 그릇을 구웠음을 알 수 있다. 이 가마에서 구운 것은 녹청색의 짙은 청자로 유약은 녹청색·녹갈색으로 표면이 고르지 못하며, 문양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고 드물게 병의 몸통에 주름무늬가 보인다. 토기의 형태는 대접, 접시, 병류가 많다. 이러한 녹청색의 청자가마터는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녹청자는 토기에서 변화 발전한 청자발생 이전의 것으로 보았지만, 이제는 초기 청자의 영향을 받아 지방수요용으로 대량 생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암동 가마터의 연대는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중엽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2026-06-30
인천광역시 영종구 용유로380번길 21
인천광역시에 있는 조선 말기의 고가이다. 1997년 7월 14일 인천광역시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1890년 건립된 전형적인 중부형 주택으로서 경기도, 충청도 지방에 많은 주거 형식이다. 일반적 중류 주택으로 ‘ㄱ’자형의 대문채와 안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변이 터진 ‘ㅁ’자형 구조이다. 전체적으로 비교적 큰 양재를 사용해서 정교하게 가공, 건축한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