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0
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래골길 47-73 (비래동)
옥류각은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이 우암 송시열, 송애 김경여, 창주 김익희 등 당대의 석학들과 함께 학문을 논하던 누각으로, 현재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형식으로 지어졌으며, 넓은 대청과 온돌방이 갖추어져 있다. 마루 아래에는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은 뒤, 굵은 두리기둥을 세웠다. 특히 골짜기 부분에는 팔각형 주춧돌을 사용해 구조적 안정성과 미적 감각을 더했다. 누각 아래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시원하고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누각 바로 앞 바위에는 ‘초연물외(超然物外)’라는 암각이 새겨져 있어 이곳의 역사성과 정신적인 깊이를 더해준다. 옥류각 주변은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등산로와 오솔길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접근하기 쉬워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이기도 하다. 몇 해 전까지는 직접 마루에 올라갈 수 있었지만, 현재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인근 관광지로는 비래사, 초연물외 암각, 비래동 고인돌, 계족산, 계족산성 등이 있다.
2025-11-13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상로 65-100 (비래동)
길치문화공원은 약 42만 평으로 대전광역시의 동부권에 위치한 주로 산림 형태의 공원이다. 남간정사가 있는 우암사적공원과 경부고속도로 대전육교 주변의 중앙광장이 조성되어 있는 곳으로 이용권이 양분되어 있다. 특히, 우암사적공원은 낮은 야산 기슭의 숲이 우거진 골짜기를 배경으로 하여 위치하고 있어 대전시민은 물론, 외지인들의 이용객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길치문화공원은에는 큰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접근성이 좋으며 상시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산책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원이다.
2025-09-11
경상남도 통영시 당동
충무교와 통영운하는 통영시 당동과 미수동(진남초교 입구)에 연결되어 있다. 바다의 물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배들이 오가는 통영운하의 주변 경관은 자연과 도시의 조화가 극치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야경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예로부터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고 있다. 호수 같은 바닷물 위로는 배들이 다니고, 그 바다 밑으로 뚫린 해저터널에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바다 위로 만들어진 육지(통영 시내)와 섬(미륵도)을 연결하는 다리(충무교)에는 자동차가 다니는 통영운하는 하늘과 바다와 바닷속이 하나로 이어진 한국 유일의 3중 교통로를 자랑하는 곳이다. 통영운하가 있는 좁은 목은 가느다란 사취로 반도와 섬이 연륙 되어 바다가 막혀 있었다. 한산대첩 때에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게 쫓긴 왜선들이 좁은 목으로 도망쳐 들어왔다가 퇴로가 막히자 땅을 파헤치고 물길을 헤쳐 도망친 이곳을 판데목이라고 부르는데, 왜군들이 도망칠 때 아군의 공격으로 무수히 죽었으므로 송장목이라고도 한다. 이 판데목에 운하가 만들어진 것은 1932년 12월로 5년 6개월 만에 운하가 만들어졌으며, 운하와 함께 같은 시기에 통영 해저터널도 개통되었다.
2025-06-20
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
법동 석장승은 대전 대덕구 중리동과 법동의 경계에 자리한 돌장승이다. 원래는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나무 장승이었으나, 약 300여 년 전 돌장승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이 마을에서는 전통적으로 음력 10월에 산신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에 산신제를 올리고, 이어 거리제(장승제)를 지낸다. 법동 택지조성 사업으로 이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한때 장승이 대덕구청으로 이전되었으나, 현재는 동춘당로 양쪽에 다시 세워졌다. 이 장승은 선돌과 함께 있는 점이 특이하며, 조선 시대의 장승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가치 있는 문화재이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인근 관광지로는 동춘당, 송애당, 이시직 공적려각, 계족산, 계족산성 등이 있다.
2025-04-09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일산2길
영산강 권역의 영산강 수계에 속하며, 영산강의 제1지류이다. 국가하천, 지방1급하천, 지방2급하천으로 나누어져 있다. 장성국 북하면에서 지방2급하천이 시작되고, 이후 북하면 용두교에서 지방1급하천으로 바뀌며, 광주광역시로 흘러들어 광산구 동남부를 관통한 다음 광산구 삼도동에서 평림천과 합류하여 국가하천으로 바뀌어 유계동에서 영산강으로 흘러든다. 장성군 북하면 쌍웅리 황룡강유역은 영산강 유역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백암산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황룡강 상류를 막아 만든 장성호가 있고 주변에 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 강이 흐르는 주변에는 황룡면, 황룡동, 황룡마을, 사호동, 복룡동 등 황룡강에서 비롯한 지명이 많다. 황룡강변으로 차박을 하거나 낚시를 하기 위한 강태공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황룡강 생태공원이 있어 수국꽃이 만발하고 강변으로 양귀비와 수레국화 안개초, 연꽃 등의 꽃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시원하게 쏟아지는 황룡강 폭포 등의 수변 시설들이 잘 조성되어 있다.
2025-12-12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대장로 227 (대장동)
창원 불모산(801.1m) 자락인 화산(799.1m)에서 내려오는 계곡으로 성흥사 옆에 있는 계곡을 말한다. 계곡 주변 숲이 울창하고,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한 자연발생 유원지로 그늘진 숲속 바위에 앉아 맑은 계곡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 깊이 숨겨진 번잡한 생각들이 말끔히 없어진다. 성흥사 계곡 입구에는 넓은 주차 공간과 토속 음식점들이 있어 평소에도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여름철에는 무더위를 식히려는 피서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계곡을 벗어나 해안 관광도로로 접어들어 용원 방향으로 가다 보면 탁 트인 바다가 있다. 성흥사는 신라 흥덕왕 8년(833년) 무염국사가 웅동지방에 침입한 왜구를 불력으로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창건된 고찰로, 창건 당시에는 승려 수가 500여 명에 달하는 신라 유수의 고찰이었으나, 잦은 화재로 여러 차례의 중건과 이건으로 현재는 대웅전만이 창건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2025-06-19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청로526번길 45-24
취백정은 대청댐 인근에 금강변에 위치한 조선시대 문화재이다. 이곳은 원래 미호서원의 부속건물로 1701년(숙종 27)에 건립되었다. 건립 후 제월당 송규렴(1630∼1709)이 제자를 모아 학문을 가르치는 곳으로 활용되었다. 송규렴은 학문이 뛰어나 송시열, 송준길과 함께 ‘삼송’으로 일컬어졌다. 별세 후엔 ‘문희’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이곳은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또한 금강변 야산 구릉의 정상부에 자리하여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아름답다. 취백정은 국도 17호선과 지방도 32호선에서 대청로, 대청로 526번 길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 신탄진 IC와 당진영덕고속도로 문의청남대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대청댐, 금강로하스대청공원, 청남대, 용호동 구석기 유적 등의 관광지가 있다.
2025-01-20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아로 460
경장각은 조선 인조 대 문신인 이신의(1551~1627)를 배향하는 재각이다. 재각은 무덤이나 사당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말한다. 이신의를 배향하기 위하여 1754년 지어진 유애서원이 1868년 서원 폐지령으로 훼철되자 1901년 서적과 유물을 보관하기 위하여 금서재가 세워졌고, 이후 금서재를 철거하고 1919년에 경장각을 건립하였다. 2000년 경장각 후면에 단청 사우를 마련하여 이신의를 배향하게 되었다. 이 곳에는 이신의의 유물로 선조왕 친필병풍과 거문고가 보존되어 있다. 병풍은 인조가 그의 충절을 가상히하여 선조왕 친필을 하사한 것이며, 거문고는 석탄이 평소 애용하던 거문고이다. 의병장이자 학자인 석탄 이신의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유적지는 경기도 고양에는 위치한 도래울석탄공원, 이신의선생기념관이 있다. *석탄 이신의 이신의의 본관은 전의이며 자는 경칙이고 호는 석탄이다. 일찍이 어버이를 여의고 형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군 300명을 거느리고 적과 싸운 공으로 사옹원직장에 올랐으며, 이어 사재감주부·공조좌랑·고부군수 등을 지냈다. 1617년(광해군 9) 이항복·정홍익·김덕함 등이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광해군의 폭정에 대해 극간하다가 유배되자, 이신의도 분연히 항소를 올렸다가 이듬 해회령으로 유배, 위리안치되었다. 그 해 가을 북로의 경보가 있어 변경 일대가 불안하자 흥양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풀려 나와 형조참의·광주목사를 역임하고, 1626년 판결사를 거쳐 이듬 해 형조참판에 올랐다. 이 해 정묘호란으로 왕을 호종해 강화로 가던 도중 병이 나 인천에 머물다가 수원마정리에서 죽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고양의 문봉서원과 괴산의 화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이다. 저서로는 『석탄집』이 있다.
2023-12-11
경상남도 진주시 봉수대길 116
고종 32년인 1895년 봉수대가 폐지 전까지 수백 년 동안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통신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가진 곳으로, 1996년 8월 16일 폐지된 지 1백여 년 만에 진주시민의 힘으로 망진봉수로 복원되었고, 지금 복원된 봉수대는 옛날의 것보다 1/3로 축소 조성되었다. 진주 시내를 전체적으로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날씨가 맑은 날은 지리산까지 볼 수 있고, 이곳에서 보는 시내 야경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진주 8경 중 제5경에 속하는 아름다운 곳이며 자동차로 봉수대까지 올라갈 수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명곡길 170-30
영사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오씨 재실이다. 대동사와 함께 명곡부락 뒤쪽 산기슭에 있으며 조선 중기 학자이자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에 참여한 생노당 오효석(1620~1697)이 은거하며 후진을 길렀던 곳으로, 사후에 오효석의 재실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오효석은 광해군 때 본량에서 출생하여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양란에 참여하였으며, 효종의 사망으로 북벌 계획이 좌절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쓰다 68세로 사망하였다. 우암 송시열은 오효석을 대명처사라 불렀다고 한다. 오효석은 ‘생로당유고’를 남겼다. 영사재가 있는 곳은 골짜기가 길어 장탄이라고도 하는데, 워낙 골짜기가 깊어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의병들이 자주 머물며 무기를 제작하였다고 전한다. 특히 전해산 의병부대는 영사재에 주둔하며 무기를 수선하거나 화약과 탄환을 만들었다. 영사재는 한말 의병장 오성술 의병부대의 주둔지로도 자주 활용되었다. 오성술은 집안 사당인 영사재가 대명동천의 가장 깊숙하고 으슥한 곳에 자리한 점을 전술적으로 잘 활용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