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7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서부남로840번길 29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신창향교는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지었다고 하지만 기록은 없고, 고종 9년(1872) 처음 지은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서재, 내삼문 등이다. 대성전은 제사 지내는 공간으로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인 익고 양식으로 꾸몄다. 안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 중국·우리나라 성현들을 모시고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으로,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또한 향교·서원 문화유산 활용사업으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2026-07-20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다리안로 534
단양 시내에서 고수대교를 건너 6km를 달리면 다리안관광지와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천동관광지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소백산 깊은 골짜기에서 내려온 맑은 계류와 울창한 숲이 청정한 기운을 뿜어내는 천동계곡 주위로 오토캠핑장, 취사장 등을 갖추고 있는 다목적 관광단지이다. 1급수인 천동계곡은 푹푹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차갑고, 시원한 산그늘 아래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천동 물놀이장과 여름철 가족끼리 오붓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오토캠핑장까지 갖추고 있다.
2025-07-04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 42-15
이 건물의 건축연대는 19세기 말로 추정되며, 구한말 규장각(奎章閣)의 직학사와 참판을 지낸 이정렬이 고종황제로부터 하사 받아 지은 집이라 전한다. 이 집은 큰집과 작은 집의 2개군으로 되어 ‘므’ 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평면의 구성은 대체적으로 중부 방식(대청이 안방 구들에서 꺾여 놓이는 식)을 따랐지만 작은집 사랑채만은 대청이 한쪽으로 배치되는 남도풍이 가미되었다. 집안의 살림살이 기구도 비교적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특히 큰집 사랑채의 가구 배치 등은 우리 조상들 생활 모습의 멋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했다. 큰집의 특징은 집을 둘러싸는 돌담으로 공간을 구획한 것인데, 대문간 앞으로 돌담을 내쌓아 집안으로의 진입에 깊이감을 준다. 중문 간 앞에는 아담한 마당을 만들고 장독대 주위에는 나지막한 돌담을 두르는 등, 아름다운 공간의 연속을 연출한다. 작은 집의 사랑방 앞퇴에는 고방을 배치하고 분합문을 달아서 다용도로 쓰는데, 이것은 여느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25-04-09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양방산길 350
양방산 전망대는 해발 664m인 양방산 정상에 세워진 전망대이다. 전망대는 사방을 다 볼 수 있는 원형 모양으로 우주선을 연상하게 하나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다. 전망대 인근에 있는 작은 테라스에서 일몰과 남한강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어느 곳에서 봐도 남한강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더불어 단양 시내의 전경도 바라볼 수 있다.
2025-03-21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한산향교길 76-31
한산향교는 서천의 한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조선 전기의 교육기관이다. 한산향교를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고려 충렬왕(재위 1274∼1298) 때 동산리 유산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조선 현종 10년(1669)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고 철종 1년(1850)부터 이듬해까지 크게 고쳐 지었다. 건물 배치는 앞쪽에 학문을 배우는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이 있어 전학후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 옆면에 바람막이 풍판을 설치했다. 이외의 건물로는 학생들의 기숙사로 쓰이던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보통 명륜당의 좌우에 세우지만 이곳은 지대가 폭이 좁고 길이가 길어 동재는 명륜당 오른쪽에, 서재는 담장 밖에 자리 잡고 있다.
2025-10-29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가산리
단양팔경중 하나인 중선암은 조선 효종조의 문신인 곡운 김수증이 명명한 것으로 전해지며 삼선구곡의 중심지이다. 태고 때부터 바람이 다듬고, 계곡이 씻어낸 하얀 바위들이 옥빛 계류와 선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밝은 햇살이 계곡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하얀 바위들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눈이 부시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반한 옛 선인들은 감흥을 가슴에 새기는 것도 모자라 바위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깊게 새겨놓고 떠나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이름이 300명이 넘어 중선암을 향한 선인들의 열성을 느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옥염대 암벽에 사군강산 삼선수석이란 대서특필한 각자가 있는데 이는 관찰사 윤헌주가 1717년에 특서한 것이다. 단양, 영춘, 제천, 청풍 네 개의 군중에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중선암은 상선암과 하선암과 달리 너른 바위옆에 소나무숲이 있어서 바위에 그늘이 드리워져 햇살도 피할 수 있는 곳이어서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2025-03-18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로 47
객사는 국왕의 전패를 모시고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물던 곳으로 관아에 관련된 시설들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시설에 해당한다. 1836년(헌종 2) 당시의 군수 김용근이 건립했다고 전해지며, 한때는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83년 크게 중수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홍산객사 평삼문으로 된 외삼문을 들어서면 중앙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당(正堂)을 중심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동쪽 익실과 정면 3칸, 측면 2칸의 서쪽 익실이 붙어 있다. 정당은 겹처마 맞배지붕이고 동서 익실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홍산객사는 동·서익실의 규모가 달라 좌우의 균형을 이루지 않았으며 객사 건물로는 규모가 비교적 큰 건물이다. 홍산객사 내에 있는 은행나무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홍산객사의 건립 연대와 같은 수령인 수나무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높다고 한다. 인근에 홍산객사 은행나무, 홍산동헌, 홍산향교, 홍산 현관아, 홍산 형방 청을 연계 관광할 수 있다.
2025-03-21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동헌로 38
동헌은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 건물로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인 일을 하던 곳이다. 홍산동헌은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조선시대 홍사현 관아의 동헌 건물이다. 흥선대원군은 정권을 잡은 후 관청의 위엄을 세우기 위하여 전국에 걸쳐 관청건물을 정비하였고, 그 일환으로 고종 8년(1871) 당시의 군수였던 정기화가 건립하였다. 이곳은 해방 후 홍산 지서로 사용하다가 1984년에 부여군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하여, 앞면 7칸, 옆면 2칸의 크기로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에 각각 크기가 다른 온돌방을 설치했다.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관청의 위엄을 나타내고 있다. 동헌 앞에 있는 이정우 가옥은 관아문과 형방청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주변 관광 명소는 아홉 살이 관광, 보부상, 홍산객사, 성일사, 홍익향교가 있다.
2025-03-17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205
암서재는 우암 송시열이 만년에 정계에서 은퇴하여 화양동에 은거할 때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국립공원인 화양동 계곡의 제4곡 금사담 옆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위 바위 사이에는 노송이 울창하고 밑으로는 맑은 물이 감돌며 층암절벽이 더할 수 없는 경치를 엮어내고 있다. 대지 약 20평 정도의 목조 기와집으로 2칸은 방이고, 1칸은 마루로 되어있는데 여기에 현판 5점이 걸려있다. 앞에는 암반사이에 일각문이 세워져 있으며, 일제말에 후손들이 수리하였고, 1970년에 다시 보수하였다. 문인 권상하가 쓴 암서재기에 ‘우암선생어병오년간축정사어계남(尤庵先生於丙午年間築精舍於溪南)’이라 쓰여 있어서 1666년 8월 암서재를 신축하고 이곳에 거주한 것을 알 수 있다.
2025-03-18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홍내로21번길 61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홍산향교는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며 『부여향교지』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1591년 관찰사 이성중이 중건하고, 1597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10년 이덕기가 복구하였다. 1643년 부여지방의 유림 홍처윤이 향교의 위치가 너무 높아 불편하다 하여 평지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배움의 공간인 명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이외에 홍살문과 내삼문·외삼문이 있다. 인근에 홍산동헌, 홍산객사가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