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8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충주 문주리 요지는 팔봉 마을 입구 오른쪽 달천강변 강안의 경사면에 위치하고, 자기나 기와, 그릇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이다. 1985년 토지 소유자인 유기붕 씨가 밭갈이 도중 소가 지하로 빠지는 바람에 이상히 여겨서 신고하였다. 현지 조사 결과 조선시대 가마터로 확인되었고, 가마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강안의 자연 경사면과 단구상의 지형 조건을 이용하여 남에서 북으로 오르는 단상 하부 지면을 파내 아궁이를 만들었으며, 단상부를 이용하여 소성실을 경사지게 했다. 소성실과 아궁이는 생토층을 깊게 파내고 천정부를 지표로 삼은 일종의 지하식 오름칸 가마 등요이다. 이곳에서는 조선시대에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파도 무늬가 찍히고 두께가 비교적 두꺼운 기와가 출토되었다. 주변의 보호 구역은 철제 난간이 둘려 있다. 이곳은 원형이 살아 있는 조선 후기의 기와 가마터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25-03-18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중원대로 1480
수안보 온천지구에 있는 곳으로 근처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쉼터이다. 한국전력공사가 수안보연수원을 신축하면서 부대시설로 만든 곳이다. 주민과 관광객, 연수원생들의 체력훈련과 볼거리 제공을 위해 1989년 조성되었으며 이용은 무료이다. 수안보온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팔각정등산로와 식물원, 동물원, 체육관, 수족관, 박제관 등 다양한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조산공원 입구에서 정상까지 800미터에 이르는 등산로는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길로 숲이 우거져 있어서 산림욕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정상에 오르면 수안보온천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팔각정이 있다. <출처: 충주문화관광 홈페이지>
2025-11-04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
충주시의 남한강 인근 장미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둘레 삼국시대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에 산성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92년 조사 결과 성 안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들을 통해 백제, 고구려, 신라가 치열한 영토분쟁을 벌인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봉학사 지역 일부를 빼고는 성벽이 원래 모습대로 남아 있다. 성벽은 돌을 다듬어 직사각형으로 쌓았다. 북쪽 정상 부분의 성벽을 따라 나 있는 좁고 긴 군사용 참호는 주변 성벽의 재료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장미산성 위에서는 남한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근처에 중원고구려비와 누암리 고분군 등 충주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2025-03-17
충청북도 충주시 풍동
임경업 장군 묘소는 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명장 임경업 장군의 묘소다. 임경업은 광해군 10년(1618) 무과에 급제한 후 인조 2년(1624)에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 때에는 의주 부윤으로 있으면서 백마산성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등 큰 공을 많이 세웠지만, 청을 반대하던 장군은 병자호란이 끝난 뒤 반대파에 의한 모함으로 희생되었다. 숙종 23년(1697) 다시 좌찬성의 관직이 내려지고 충렬사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묘소의 석물로 양호석, 망주석, 묘비 등이 있었으며, 이 외에 정화 사업으로 상돌, 동자석, 무관석, 장명등을 새로 만들어 설치하였다. 충주 임경업 묘소는 부인 전주 이 씨와의 합장묘로 큰 편이며 봉분 아랫부분에는 화강암으로 둘레돌을 두른 원형분이며 주위에는 망주석과 신도비 등이 놓여 있다. 묘소 주변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가까이에 영정을 모신 충렬사가 있으며 유물 전시관에서 임경업 장군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2025-11-03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이시진 효자각은 충주시 동량면 마을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뒤쪽 언덕에 그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시진(1578~1633)은 조선 중기 때 효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슬퍼함이 극진하여 난리를 만나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또 어머니의 병환이 심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케 하였으며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를 하였다. 이시진의 효행은 임금에게까지 알려져 1608년(선조 41) 효자문이 세워졌다. 지금은 낮은 담장을 둘러 효자각을 보호하고 있으며 담장 앞에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남향으로 배치된 정려각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구획하여 사면에 홍살을 둘렀다. 기단은 자연석을 낮게 쌓았으며 그 위에 사각주 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공포는 만들지 않고 창방으로 결구된 주간에만 네 개의 소로를 놓아 주심도리 장형을 받치고 있다. 가구는 양측 대량 상부에 제형 대공을 설치하여 종도리를 받치도록 한 삼량집이며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단청을 하였다.
2025-04-09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충주시 산척면에 있는 고려 시대 인물 우천석과 우팽 부자의 묘소이다. 조성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조선시대에 조성된 묘로 추정되며 단양 우 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우천석은 1280년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그가 죽은 후 장지를 충주로 정하면서 후손들이 대대로 충주에 살게 되었다. 묘표는 1919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우팽은 우천석의 둘째 아들로 우천석 묘소 뒤편에 있는데 조선시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묘표와 문관석은 조성 당시의 것이고 묘비는 1980년에 세웠다. 두 기의 무덤은 거의 같은 방법으로 쌓았는데 평면 형태는 4 각형이며 돌을 4~5단 쌓아 호석으로 삼았다. 묘소들은 별도의 가공을 하지 않은 자연 활석으로 쌓아 올려 경사면을 따라 묘가 조성되었다. 호석의 측면은 앞이 높고 뒷면이 낮은 방형분으로 이러한 형식의 무덤은 이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예이다.
2025-04-22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내포길 27-110
용담사는 충주시 신니면 문승리의 신덕 저수지 옆에 자리하고 있으며 문숭산 아래에 있는 사찰로 산이 절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1962년 창건되었으며 대웅전과 범종각, 요사채와 산신각이 있는 작은 사찰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조용히 머물다 갈 수 있다. 경내에 미륵불 표지석은 1689년부터 2년간 충주 목사를 지낸 이국헌의 선정비인데 그 위에 음각하여 새긴 것이다. 폐타이어로 만든 계단을 오르면 산신각을 마주할 수 있고, 경내에서 100여 미터 정도 길을 따라가면 용담사 미륵불인 석불입상과 마주하게 된다. 이 불상은 고려 시대의 석불입상으로 일제 강점기에 신덕 저수지 축조공사를 하던 중 하천에서 발견되었는데 몸체만 있고 대좌는 없이 선당리에 모셨다. 그러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송암리에서 1977년 대좌를 발견하여 1978년에 함께 지금의 용담사가 있는 곳으로 옮긴 것이다. 아담한 크기의 절로 뒤쪽으로는 산이 펼쳐져 있으며 고려 시대의 석불은 용담사 석불입상으로 불리고 있다. 근처에는 중앙탑 사적공원과 술 박물관, 충주 조정 체험학교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2025-04-22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모점1길 404
충주 오갑사지 석조여래좌상은 충주시 앙성면 모점리 동막마을에 있는 고려 시대 석불좌상으로, 얼굴의 일부와 머리가 떨어져 나갔을 뿐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통일신라의 사실주의 조각과는 거리가 있지만 옛 양식을 수용한 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오갑사지는 1978년에 새롭게 확인된 사지로, 이 절터에서 금나라 연호인 명창과 오갑사가 쓰인 기와가 출토되어 고려 1192년경에 창건되었거나 중창 불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좌상은 이 절터에 있던 것으로 현재는 동막마을 주민 소유의 담배 건조실 근처에 안치되어 있다. 불상의 앞에는 탑의 부재인 옥개석이 놓여 있는데, 넓적한 정방형이다. 1984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민가에 있으므로 관람 시 주의해야 한다.
2025-04-18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내동1길 26-11
충주 영모사는 충주 최 씨 후손들이 시조인 최승 등 8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기 위해 1922년에 세운 사당이며, 일제강점기 때 세워져 사액을 받지는 않았다. 최승은 신라 문성왕 8년에 흉년이 들어 도적이 많아지자, 중국 당나라 무종의 명을 받아 이들을 무력으로 평정하였으며, 통일신라 진성여왕 3년에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수습한 인물이다. 큰 암석 위에 쓰인 내동 부락 표석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충주 영모사가 나온다. 이곳은 남향으로 배치되었는데, 정면 4칸, 측면 3칸의 전퇴를 둔 목조 기와지붕이다. 특징적인 것은 충주 영모사 뒤편에 봉분이 모셔져 있다는 점이다. 영모사 앞쪽에 있는 문은 가운데를 높인 솟을대문이고 최승이 살았을 때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와 석교가 있다. 신라 말 최승이 충주에 거처한 이후, 후손들이 이 지역을 본관으로 하여 충주 최 씨가 되었다. 충주 최 씨 종중에서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리며 사당을 관리하고 있고, 뿌리를 잊지 않고 조상의 얼을 받드는 추모의 장소인 만큼 향토 문화의 정립과 역사 교육에 큰 의미가 있다. 상시 개방하고 있으나, 내부 관람은 행사가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따로 문의해야 한다.
2026-02-05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충주 주정산 봉수는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와 괴산군 장연면 추정리의 경계인 주정산 봉우리에 있는 봉수대이며 봉우리 인근에 비교적 넓게 조성되어 있다.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 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 봉수대는 고려 시대에 축조되어 조선 시대까지 이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남쪽의 미륵리 마골재에서 봉수를 받아 북쪽의 대림산 봉수대에 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 훼손되었으나 석축 원형과 봉대가 큰 훼손 없이 남아 있으며 발굴조사 결과 남북으로 긴 타원형의 방호벽, 석등을 갖춘 남북 2곳의 출입구, 화구와 화덕을 갖춘 봉조 5개소가 확인되었다. 또한 이곳에서는 조선시대의 자기류와 그릇 조각, 한자와 한글을 같이 새긴 그릇 뚜껑, 석제품 등의 각종 유물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 봉수대는 봉수대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기우제를 지내는 제의 장소로도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