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동락전승비

동락전승비

2025-03-18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

동락전승비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첫 승리를 거둔 동락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전승비이며, 동락 초등학교 인근 가섭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동락전투는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을 상대로 처음 승리한 전투이다. 1950년 7월 7일 당시 인근 동락 초등학교에 북한군 연대 병력이 집결하고, 수십 대의 차량과 포가 포진하고 있었다. 이때 동락 초등학교 여교사 김재옥이 기지를 발휘해 국군이 철수하고 있다고 북한군을 안심시킨 후 이를 기습의 발판으로 하여 이곳이 한국전쟁의 첫 전승지가 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획득한 북한군 무기를 통해 소련군의 간접적 참전을 증명해 유엔군의 참전을 끌어냈다. 동락전승비가 있는 곳에 기념 광장, 상징 조형물, 6.25 참전 유공자 기념비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해서 기념공원으로 조성하였다. 호국 전승 동락 전승비 근처의 동락 초등학교 교정에는 김재옥 교사 기념관과 김재옥 여교사 현충탑이 있다.

충주 청녕헌

충주 청녕헌

2025-04-18

충청북도 충주시 관아1길 21

충주 청녕헌은 충주 시내의 관아공원 안에 있는 충주목 동헌이다. 관아공원 안에는 웅장한 팔작지붕의 건축물들을 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 충주 목사가 충주를 다스리던 관아의 동헌인 충주 청녕헌과 관리들이 머물렀던 충주제금당이 있어 충주가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청녕헌은 옛 관청인 관아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이며 충주 목사가 근무를 하던 곳이다. 1870년 화재로 타버린 것을 같은 해 조병로가 다시 세웠다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중원군 청사로 개조하여 사용하다가 1983년 군청 자리를 옮기면서 원형으로 복원하였다. 앞면 7칸, 옆면 4칸의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집이다. 의병전쟁 때에는 호좌 의병장 유인석의 군대가 충주성을 점령하여 한때 위세를 떨쳤던 곳이다. 충주 시내에 얼마 남지 않은 옛 건축물로 보존 가치가 높다. 관아공원 내에는 곳곳에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천천히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충주 지당리 석조여래입상

충주 지당리 석조여래입상

2025-04-28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지당리

충주시 앙성면에 있는 원불사 경내에 봉안된 석불 입상이다. 마을 앞 과수원 근처의 민가 같은 곳에 모셔두었다. 원래의 위치는 확실치 않지만 마을에 불당, 미륵당, 산제당 등 3당이 있어 삼당리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근처의 절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머리에 비나 눈, 먼지 따위를 막아주는 보개를 쓰고 있었으나 보개는 불상에서 분리해 놓은 상태이다. 머리는 소발에 육계는 표현되지 않았으며 얼굴은 풍만상이다. 입술은 두꺼우며 눈은 마멸이 심해 잘 알 수 없으나 일직선으로 보인다. 양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여 밑으로 내렸는데 왼손은 약지와 소지를 구부리고 있다. 목 부분은 보수되었는데 삼도가 확인되며 배면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다. 조선 시대에 조성된 불상으로는 보기 드물게 2m가 넘는 대형의 석불로, 정형적인 모습에서 퇴보하거나 형식화되어 자비와 엄숙함보다는 다소 친근함을 느끼게 하는 모습으로 당시 지방 불상 양식의 일면을 알아볼 수 있는 석불이다. 조각 수법은 전체적으로 서툴고 정교하지 않다. 마을에서는 예로부터 이 불상에 기도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충주자연생태체험관

충주자연생태체험관

2026-05-11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등로 260

충주자연생태체험관은 전시관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놀며 생태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체험 공간이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일깨우는 이곳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방문객 누구나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설은 지하 및 지상 3층 건물과 용교생태공원, 별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층은 미끄럼틀과 놀이기구를 갖춰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실내 놀이공간이며, 1층과 2층은 생태 관련 도서와 희귀 생물종의 습성을 배울 수 있는 전시관, 자연 다큐멘터리 시청 공간 등으로 알차게 꾸며져 있다.

충주 신흥사 석조 나한상

충주 신흥사 석조 나한상

2025-04-24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족동2길 197

장병산에 있는 신흥사는 산속에 있는 사찰로 대웅보전에 봉안된 석조 나한상이 있다. 신흥사는 1890년에 창건되었고, 1924년에 중건되었다. 이곳의 십육 나한 중 현재 4구만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4구의 나한상은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크기가 비슷하고,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어서 다른 나한상과 다른 독특한 양식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목구비와 두건의 모습, 삼도, 의문, 옷 주름 등 상반신부터 하반신의 표현이 섬세하게 드러난 나한상으로 불상 양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석조 나한상은 근래에 채색하여 본래의 색상은 알 수 없으나 원형은 잘 보존된 상태이다. 원래 토제불상 1구와 석고 나한상이 6구 있었는데 토제불상은 훼손이 심해 땅에 묻고, 북쪽 바위벽에 있던 목이 잘린 나한상 2구는 도난당했다고 한다. 엄정면 일대는 고려 시대에 큰 사찰이 있던 곳으로 신흥사 석조 나한상은 이 절터에서 다른 유물과 함께 출토되었다. 나한상들을 통해 신흥사는 십육 나한을 봉안하는 나한 도량으로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

2025-04-30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은 추평리 탑평 마을에 있으며 탑 주변의 경작지와 인근 민가 일대까지 주초석과 많은 기와가 나오고 있다. 또한 추평리 사지의 암자로 추정되는 뒤쪽 8부 능선상에도 많은 기와가 확인되고 있다. 절 이름은 밝혀진 바 없으나 근처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을 통해 고려 전기인 11세기경 축조된 탑으로 추정된다. 이 주변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엄정사일 가능성이 크며, 절터는 3층 석탑이 있는 주변과 인근 민가 일대까지 포함되는 약 3,000평 규모로 추정된다. 삼층석탑은 가종 문화재 자료에 단층 기단의 삼층 석탑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지금은 기단 갑석 아랫부분이 시멘트로 고정되어 있어 확인할 수 없으며 남아있는 탑신의 비례도 균형을 잃고 있어 일부 층의 탑신이 유실된 것으로 생각된다. 2매의 판석으로 조성된 기단 갑석 위에 초층 탑신이 놓였는데 이점은 각 층이 같다. 탑신의 양쪽에 우주가 모각되었다. 낙수면은 급하며 옥개에는 전각의 반전이 있으며 탑신 괴임은 생략되었다. 옥개의 양쪽 끝에는 풍경원공의 흔적이 또렷하고 층급받침은 모두 4단이다. 상륜부에는 복발로 보이는 부재가 남아있다. 탑은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갖춘 일반형의 석탑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3층까지 남아있다. 탑 주변에서 토기 편 외에 수막새 기와, 백자발 등 다량의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충주 부흥사 방단적석유구

충주 부흥사 방단적석유구

2025-04-09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서계1길 15-25

충주 목계나루는 수상운송이 중심을 이루었을 때 강원도와 서울을 연결해 주는 남한강을 다니던 배들의 휴식처이자 근처의 물류들이 모이는 큰 시장이 열렸던 곳이다. 이 목계 나루가 있는 곳 인근에 위치해 있는 부흥사에는 산신당 옆에 신비로운 돌탑이 있는데 바로 부흥사 방단적석유구이다. 네모지게 쌓아 올렸다는 방단, 돌을 쌓아 올렸다는 적석, 옛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자취를 뜻하는 유구가 합쳐진 말이다. 돌계단을 올라 부흥사 경내에 들어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돌탑으로 의성 석탑리 방단형적석탑, 단양 사지원리 방단적석유구, 제천 교리 방단적석유구 등 전국에 비슷한 모양의 유구들이 남아 있다. 충주 부흥사 방단적석유구는 방단식 이형 탑으로 추정되며 축조에 사용된 돌은 벽돌 크기보다 작은 타원형의 납작한 돌을 한 켜씩 쌓아 올려 만든 것이다. 밑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가면서 폭이 좁아지는 사각 추 형태이다. 산비탈에 붙여 쌓아서 탑의 뒷면은 지면에 기대어 있다. 돌탑의 앞면 아래에는 사람이 허리를 구부리고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출입구를 갖춘 감실이 있다. 그 내부에는 부흥산 신위라고 새긴 비석이 있어 본래 산신각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탑의 조성 시기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로 추측하고 있으며 돌탑이 자리한 일대는 현재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윗부분이 허물어져 다시 쌓아 올리면서 약간 변형된 것으로 보이나 축조 형태가 매우 희귀한 문화재이다. 사진을 찍으러 오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2025-03-18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56

충주 미륵리 오 층 석탑은 수안보 미륵사지 안에 있는 석탑이다. 이곳에는 고려 시대의 석불입상이 있을 뿐 아니라 이 석불을 위해서 석굴이 만들어졌던 자취가 있어 주목되고 있으며 그 앞면에 석탑과 석등이 남아있다. 현재 기단 아랫부분이 파묻혀있어 그 구조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탑신부는 4 각형 중층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드러난 부분은 자연석에 가까운 네모난 돌로 특별하게 장식하지 않았으며, 그 위로 기단의 맨 윗돌이 올려져 있다. 덕이 높은 승려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세운 철제 찰간이 꼭대기에 남아있는 것이 희귀한 유례이다. 5단의 지붕돌 밑면 받침과 직선의 처마는 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른 것이며 지붕돌의 급경사와 형식적인 기둥 새김을 보아 고려 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보인다.

충주 미륵대원지 석조귀부

충주 미륵대원지 석조귀부

2025-05-09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충주 미륵대원지 석조귀부는 소백산맥 계립령(하늘재) 북서쪽 자락 충주 미륵대원지 내에 보존된 석재 귀부이다. 귀부는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이다. 이곳의 귀부는 현재 미륵리 사각 석등 옆에 자리하고 있다. 옮기기 힘든 만큼 크기 때문에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자연 암반을 이용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외형상 거북의 머리와 몸을 하고 있고, 윗부분에 비석을 끼워 고정하는 홈이 있어서 이 절터의 사적비를 받치는 데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비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뒷부분 일부가 조각이 덜 된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다. 전체적인 외형과 돌 다듬는 기법으로 볼 때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대원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지금도 귀부 외에 석등, 석불, 삼층석탑 등이 남아있다. 인근에 위치한 고갯길 계립령은 조령, 이화령보다 앞선 삼국시대에 개척되어 미륵대원지 등 이 고갯길을 이용한 고대인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주변에는 계립령 외에 충주 미륵리 요지, 문경새재(조령), 미륵사지 오토캠핑장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충주 미륵대원지 사각석등

충주 미륵대원지 사각석등

2025-04-09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52-3

충주 미륵대원지 사각석등은 충주시 수안보면의 고려 시대 석굴사원인 미륵대원지 내에 있는 석등이다.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기단부, 화사석, 옥개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의 지대석은 일부 파손되기는 하였으나 평면 사각형의 판석형 석재가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화사석은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모서리마다 원기둥꼴 기둥을 세워 옥개석을 받치도록 했다. 옥개석은 하부를 수평으로 치석하고 관통된 원공을 시공하였다. 하대석은 투박한 복판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고,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내려오고 있으며, 합각부는 약간 돌출시켜 치석함으로써 마루부처럼 보이도록 했다. 상륜부는 현재 사각형 받침대가 올려져 있고 나머지 부재들은 결실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미륵대원지 사각 석등은 전형적인 석등 양식에서 다소 벗어난 이채로운 결구 수법을 보인다. 특히 화사석은 고려 초기와 중기에 걸쳐 건립된 일부 석등에서만 채용된 기법이며, 고려 시대 개경 일대에 건립된 사찰에서 확인되고 있다. 고려 시대 수도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있는 미륵대원지에 이런 양식의 석등이 세워졌다는 것은 석등 양식이 지방으로 전파되는 측면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