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진보향교

진보향교

2026-03-18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신한2길 63

청송군에 위치한 진보향교는 조선 태종 4년인 1404년 창건했다고 알려진다. 향교 건립 이후 1694년 광덕사 기슭으로 이건했다가 1882년에는 구읍으로, 1886년이 되어서야 현재의 위치에 터를 잡고 이전 개축되었다.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로 강학 공간이 전면에, 제향 공간이 후면에 자리 잡고 있다. 외삼문을 지나면 명륜당이 위치하고 있으며, 명륜당 뒤로는 기숙사에 해당하는 동·서재가 위치하고 있다. 제향 공간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기둥과 전면 벽체 구성 수법이 건축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진다.

지례향교대성전

지례향교대성전

2025-10-27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향교길 84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지례향교대성전은 조선 세종 8년(1426)에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1592) 때 불탄 것을 숙종 16년(1690)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다. 안에는 묵판음화[墨版陰畵]의 공자 영정이 보관되고 있었는데, 1978년 도난당하였고 지금 있는 공자상은 이것을 대체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자인향교

자인향교

2025-10-29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교촌길9길 14

자인향교는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지어진 조선 시대 경상도 자인현에 건립된 공립 교육 기관이다.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다시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광해군 7년(1615)에 도천산 아래로 옮겼다가 영조 4년(1728)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1900년과 1922년에 대성전을 수리하였고, 1924년에 명륜당을, 1926년에 다시 대성전을 수리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모성루, 동재 등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와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인동향교

인동향교

2025-12-24

경상북도 구미시 수출대로 333 (임수동)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인동향교는 고려 공양왕 2년에 처음 지은 것으로 보이며, 그 뒤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지었다. 조선 인조 12년(1634)에 인의동으로 옮겨 세웠으며 1988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내삼문·명륜당·외삼문 등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의흥향교

의흥향교

2025-03-15

대구광역시 군위군 의흥면 읍내길 89-5

군위군 의흥군에 있는 의흥향교는 1398년(태조 7) 조선 인종 때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조선시대의 국립교육기관이다. 임진왜란 때 건물은 모두 소실되었으나, 이곳 유림 손돈암이 위패를 선암산으로 피난시켜 병화를 면하였고 이에 경상북도에서 오직 이 향교만이 당초 그대로의 위패를 보존하고 있다. 1601년(선조 34)에 중건하고 1641년(인조 19)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면서 이때 대성전이 세워졌다. 1950년 6·25 사변으로 삼성재, 노사 등이 소실되었으며, 1968년에 광풍루를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성, 송조 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대성전과 광풍루, 사물재, 신문 등이 있다.

용궁향교

용궁향교

2025-10-29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용궁향교길 59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 태조 7년(1398)에 지금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100m 지점에 세웠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36년(1603)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인조 14년(1636)에 세심루를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출입문인 외삼문, 휴식공간인 세심루,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 사당인 대성전 등이 일직선으로 서있다. 또한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 후묘의 형태로 되어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예천향교

예천향교

2025-11-11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대창학교길 35

예천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 예천읍 현산에 처음 건립되었고, 태종 18년(1418) 군수 김겸이 현재 위치로 옮겨지었다. 이후 효종 7년(1656), 효종 9년(1658) 등 여러 차례 다시 고쳐지었다. 오늘날 대창중·고등학교 동쪽에 위치해 있다. 처음 세워진 당시에는 풍영루, 전곡청, 동무, 서무, 동재, 서재, 이층 문루 등 9개 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제사공간인 대성전과 교육공간인 명륜당,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인 주사, 향교의 대문격인 외삼문과 대성전 앞의 내삼문 등이 남아 있다. 2005년에 동무와 서무에 해당되는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齋)를 복원하였는데, 일신재에는 제복(宫服)을, 직방재에는 제기(祭器)를 보관하고 있다. 외삼문으로 들어서서 계단을 오르면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인 명륜당이 있고, 명륜당 뒤쪽에 위치한 내삼문으로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인 대성전이 별도의 공간을 이루고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25위의 성현을 모신 곳으로, 지금까지도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제를 올리고 있다.

영덕향교

영덕향교

2025-03-18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개서길 13

영덕향교는 고려시대에 설립했다. 설립 당시에는 대성전과 동서무, 행랑, 담으로 이루어졌다. 조선 선조 때 누각인 태화루가 건립되었고, 숙종 45년(1706)에는 경각, 전사청, 주방, 별고, 하인청 등이 건립되었다. 현재는 대성전과 명륜당, 태화루, 동재, 서재, 그리고 관리사가 남아있다. 「영영승람」에 의하면 1950년 전쟁으로 건물이 소진되기 전까지는 대성전, 명륜당, 양호루, 동재실, 전사청, 하인청, 주사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영덕향교의 배위와 제의의 절차는 영해향교의 배위와 제의의 절차와 대동소이하다. 영덕군과 영덕향교에서는 우리의 옛 가례를 바탕으로 현대적 운치를 가미한 전통혼례 지원사업을 마련하여 군내 거주자 또는 출향인들을 대상으로 연중 희망신청을 받아 전통혼례를 대행해 오고 있다. 전통혼례는 영덕향교 명륜당에서 향교임원들의 진행으로 초례상 준비 및 가마타기, 혼례청 불 밝히기 등 전안례와 교배례, 합근례 순으로 1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잔치를 북돋우고 뜻깊은 혼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혼례청을 울려 줄 풍물놀이도 곁들여 흥겹게 펼쳐진다. 특히 혼례장소는 물론 신랑신부 대례복, 대례상차림, 꽃가마 등 일체의 소품을 무상으로 지원받게 되며,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특별한 혼례를 치를 수 있다.

안동향교

안동향교

2025-03-17

경상북도 안동시 향교길 65

안동향교는 6.25 전쟁 때 창건 연대나 향교와 관련된 수많은 기록문서들이 모두 불타 문헌상으로는 고증이 불가능하다. 다만 고려시대의 웅부(雄府)요 조선 개국 이후 많은 인물이 배출된 점으로 미루어 상당히 이른 시기에 개교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고려 말 공민왕이 안동부로 몽진(蒙塵)했을 때 이미 향교가 있었다는 「고려사절요」의 기록이 남아있다. 안동향교는 당초 안동시 명륜동 현 안동시청사 구내에 있었으나 6·25 전쟁 때 소실된 이후 1987년 현 위치에 복원했다. 조선시대의 안동향교는 대설(大設) 규모로 설치되어 있었고, 이는 1987년 복원 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현재 대성전에는 송조 사현과 동국십팔현을 봉안하고 있다.

영양향교

2026-02-04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향교길 22-16

영양향교는 조선 숙종 3년(1677)에 건립되었으나 모든 건물들이 조선 후기 건축 양식으로 되어 있다. 대성전과 명륜당은 처음 건립할 때 세웠고, 이후 육영루, 동·서무, 동·서재 등을 차례로 건립하였으나 부분적으로 철거되었다가 현재는 대성전, 명륜당, 신문(내삼문) 등이 남아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고,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곳 대성전에서는 매년 봄, 가을에 중국과 우리나라 명현에게 제를 올린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되어 있다. 명륜당의 현판은 고려말 명필인 한수(韓修)가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