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9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석정길 53
송학서원은 숙종 연간(1674~1720)에 건립되었다. 이황(1501~1570), 김성일(538~1593), 장현광(1554~1637)을 배향하고 있다. 송학서원은 제향 공간인 사당, 강학 공간인 강당과 동재·서재 및 외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중앙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을 구성하고 있다. 송학서원 현판이 있다. 동재·서재는 건물 양식이 동일하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정면에 툇마루가 있다. 사당인 존덕사는 이황, 김성일, 장현광의 위폐를 배향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다.
2025-10-28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봉화로 1001-28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에 위치한 송록서원은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송천서원과 반천서원, 백록이사 등에 봉안되었던 진일재, 류승조 선생을 비롯한 10분의 위패를 모셨던 곳으로 140여 년 만에 복설 되었다. 봉안위의 유덕을 추모하고 높은 학문과 충효사상을 계승 및 발전시키기 위해 이 서원을 세웠다.
2025-10-29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애련길 174
영천시 청통면 애련리에 있는 송곡서원은 1702년(숙종 28)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유방선과 곽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진 서원이다. 처음에는 묘우 경현원에 위패를 모신 후 그 뒤 원호를 송곡으로 고치고 1712년(숙종 38) 이현보, 심지원을 모셨다. 이후 이보흠과 윤봉오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며, 1965년 유림의 공의로 복원하여 유방선과 이보흠만 배향하였다. 경내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신문, 동서 협문, 강당, 서재, 대문과 사당 옆에는 태재유선생신도비도가 있으며 매년 3월 상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2025-10-29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주속길 116-6
속수서원은 신우, 손중돈, 김우굉, 조정, 조익 등 다섯 선현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속수서원의 내력은 서원 경내에 세워진 속수서원 사적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509년(중종 4) 구서당 마을에 세워진 생사당(백성이 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생전부터 모시던 사당)에서 비롯되었다. 생사당은 손중돈이 상주 목사로 재임하면서 베푼 선정을 잊을 못하는 마을 백성들이 건립하였다. 「가규 선생 문집」, 「속수 서원 추향 시 고유문」에는 덕과 충효가 있고 유교적 교화 등이 사표가 될 만하므로 사당을 짓고 배향한 것이라 기록하고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56년(효종 7) 중건하고 경현사로 개칭하였다. 이때부터 손중돈과 함께 신우를 배향하였다. 1703년(숙종 29) 현재 장소로 이건하여 와 속수서원으로 개칭하였다. 1730년에 김우굉과 조정을 추향 하였고, 1826년에 조익을 추향 하였다. 1868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서원은 없어지고 매판소만 남아 있던 것을 1972년 세 문중 후손인 조성학, 신기성, 김영해 등을 주축으로 매판소 앞에 명륜당을 건립하였다. 1983년 봄부터 단소향사를 지내고, 사적비를 세웠다. 1988년 경현사를 복원하여 다섯 선현을 제향하고 있다.
2025-10-29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외무길 30-24
이 서원은 전원발[全元發]을 봉향하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1701년(숙종 27)에 건립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오다가 1869년(고종 6)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었고 1918년 중건되었다가 1968년 복원되었다. 서원은 소천마을 북서쪽 금천변 산 밑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은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이 동일축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강당인 전교당[典敎堂]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 기와집이고, 사당은 숭덕사[崇德祠]이며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그 이외에 소천서원과 관련된 소천재[蘇川齋]와 청원정[淸遠亭] 등의 건물이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소천재는 재실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고, 청원정은 정자건물로 경관이 뛰어나다.
2025-10-30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소양서원길 8
소양서원은 문경시 가은읍 전곡리 마을 중간쯤 전망이 아주 좋은 곳에 뒷산을 등지고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강학과 제향공간이 각기 별도의 곽을 이루며 앞뒤로 배치하고 있다. 고종 8년(1987) 서원 훼철 당시 사당만 철거되고 강당과 동재는 존치되었으며, 강당은 당시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강당의 천장은 양측 청방 간 상부의 종보와 종보사이에 종보폭으로 길게 설치하였으며, 반자꾸밈은 반자대를 도리방향으로 길게 걸치고, 그 사이에 반자판을 끼워 독특한 천장 구성을 이루고 있는 등 건축적 가치를 살필 수 있다. 또한 16세기 가은 인근 지역에서 출생하여 각각 예조좌랑, 형조좌랑 등 중앙관직에 나아가 활동하다가 만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나암 정언신, 인백당 김낙춘, 고산 남영, 가은 심대부 및 가은 이심 5인을 배향하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주목되는 서원이다.
2024-11-12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지산로 807-11
소암서당은 투암 채몽연(1561~1638), 백포 채무(1588~1670), 극명당 장내범(1563~1640)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서원이다. 1703년(숙종 29) 유학자인 장벽, 장세휘, 박정석 등 20여 명이 소암동 팜암바위 뒷산에 사당과 강당을 지어 소암사라하고 같은 해, 1712년(숙종 38)에 투암, 백포 부자를 봉안하였다. 1803년(순조 3)에 서원으로 승격하고 1847년(헌종 13)에는 극명당을 배향하였으나 1871년,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모두 훼철되었다. 이후 1932년, 강당을 복원하고 이를 소암서당이라 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강당 대청 상부에는 기문 등이 남아 있다.
2025-10-27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길 512-5
섬계서원은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섬계서원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순절한 충의공[忠毅公]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충절을 숙모[肅慕]하고 현창 하고자 창건했다. 지금은 조룡리로 바뀐 섬계리는 김문기를 중시조로 하는 김녕 김씨 집성촌이다. 경내는 강당과 사당 구역으로 대별되며 경내로 진입할수록 표고가 높아져 산으로 닿는다. 중심 건물에 해당하는 경의재는 석축 기단 위에 섰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 반의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 구조이다. 가운데 2칸은 대청이며 내진주[內陣柱]가 있고, 양쪽 협간은 온돌방으로 구성했다. 세충사와 동별묘는 그 동편에 위치한다.
2025-01-16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정동길417번길 105
수성서원은 농암 김달한(1554~1612)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이다. 김달한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인물이 준수하고 어릴 때부터 영특하여 1568년에 사마시와 1572년 문과에 합격해 통훈포천현감에 제수되어 많은 치적을 쌓았으나, 광해군 때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서사를 공부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수성서원은 1964년에 재실을 건립하여 수성재라 하고 1979년에 유림이 추모하여 향사를 하였으며, 1990년 봄에 유림이 논의하여 서원으로 승격, 명칭을 수성서원으로 개칭하였다. 정통문을 정문으로 하여 강당 및 부속 건물과 강당의 뒤편에 사당인 상덕사가 배치되어 있다.
2025-06-26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선암로 455-27
이 서원은 동창천 물이 굽이쳐 흐르는 선암(仙巖)에 자리 잡고 있다. 김대유(金大有)와 박하담(朴河淡)을 향사(享祀)하던 곳이다. 초기 창건은 1568년(선조 1) 매전면운수정(雲樹亭)에 두 분의 위패를 봉안하고 향사하여 향현사(鄕賢祠)라 하였다. 이곳은 1577년(선조 10) 군수 황응규(黃應奎)의 주선으로 사우(祠宇)와 위패(位牌)를 옮겨 선암서원이라 개칭하였는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지금의 건물들은 1878년(고종 15) 박하담(朴河淡)의 후손들이 다시 중창하여 선암서당으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