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8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서원재로166번길 32-49
오천서원은 포항시 남구에 있는 서원으로, 고려 시대 문신 정습명과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588년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습명과 정몽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2년 현 위치에 중건되었다. 1613년 ‘오천’이라고 사액되었으며, 1740년에 정사도와 정철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이후 1868년에 훼철되어 위패를 땅에 묻고 단을 만들어 향사하다가 1975년에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사우, 강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전사청 등이 들어서 있다. 사우 상경사는 3칸 규모의 건물로 정몽주, 정사도, 정철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 명륜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옆의 협실로 이루어져 있다.
2025-03-17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참별로 1
오암서원은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1714년(숙종 40)에 사림이 오암에 운암서원을 세워 최항경(1560~1638)을 제향 하다가 1741년(영조 17)에 서원 정리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1781년(정조 5) 사림의 공론으로 복원하여 ‘오암서원’이라 편액 하였다. 1782년(정조 6)에 죽헌정사 자리에 오암서원을 세우고 최항경의 두 아들 최은(583~1656)과 최린(1597~1644)을 추배 하였다. 이후 1865년(고종 2)에 다시 훼철되었다가, 1918년에 후손들이 서원이 있던 터에 서당을 세웠고, 1977년에 중수하였다. 1985년에 후손들이 대강당과 광영루를 지었다. 2002년에는 후손 최창곤이 효덕사를 건립하였고, 2009년에 정부의 지원으로 오암정을 세웠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구조는 중앙에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양측 칸에 1칸 반씩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이다. 사당인 효덕사는 3칸의 맞배지붕집 구조이다. 재사는 서원 밖에 동향하여 위치하고 있으며, 재사의 우측에 오암정이 있다.
2025-03-17
경상북도 영주시 대동로103번길 31-32 (가흥동)
영주시에 위치한 오산서원은 순조 34년(1834) 오산서원을 창건 하고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난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묘호를 경현사라 하고, 강당을 명교당이라 하였다. 기문은 이휘녕이 짓고, 봉안문은 유태좌가 지었으며, 상향문은 이광정이 지었다. 서원이 승격할 때 고유문은 김희주가 지었다. 오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경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 지금은 서원자리에 김난상의 정자인 매양정과 김난상의 신도비, 사당이 세워져 있으며, 사당안에는 오산이사, 경현사, 오산서원 현판이 보관되어 있다.
2025-09-17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55-1
오계서원은 1570년(선조 3)에 이덕홍(李德弘)이 학문 연마와 심신수련을 위해 건립한 「오계정사」의 후신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소실(燒失)되었으나, 1595년(선조 28)에 쌍계(雙溪) 언덕으로 이건(移建) 하였고, 1636년(인조 14)에 홍수로 유실되는 등, 여러 차례 이건과 중건을 거쳤다. 사림의 공론으로 1665년(현종 6) 10월 2일에 도존사(道存祠)를 建立하고 이덕홍(李德弘)의 위패를 봉안한 후 1691년(숙종 17) 오계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699년과 1707년의 대홍수로 물길이 바뀌어 서원이 침수 피해가 있자 1711년(숙종 37)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724년(경종 4)에 그의 장자 이시(李蒔)를 배향하였다.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가 1919년에 복향하였고 1978년에 道存祠를 재건하였다.
2025-03-18
경상북도 상주시 지천1길 49
연악서원은 상주시 지천동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박언성, 김언건(1511~1571), 강응철(1562~1635), 김각(1536~1610), 조광벽(1566~1642), 강용량(1608~1676)을 배향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박언성은 12세에 할머니 상을 당하여 3년상을 마쳤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벼슬도 사양할 정도로 효자였다. 김언건은 1624년(인조 2) 효행으로 읍민이 정표할 것을 청하여 감찰로 증직 되었다. 강응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상주를 지켰고, 광해군의 폭정에 분개하여 은퇴하고 독서와 저술로 일생을 보냈다. 김각은 김언건의 아들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과를 올렸다. 조광벽은 류성룡(1542~1607)의 문인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 하여 공훈을 세웠다. 강용량은 강응철의 아들이다. 병자호란 이후 의리를 지켜 공조참의에 증직 되었다. 연악서원의 사당 창덕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1987년 서원을 복원하며 지은 건물이다. 박언성, 김언건, 강응철, 김각, 조광벽, 강용량의 위패가 있다. 묘우 정면은 현재 경지로 활용되고 있다. 묘정으로 출입하는 삼문은 솟을대문이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2칸을 어칸으로 하여 우물마루를 시공하였고, 전면에 빗살 사분합문을 두었다. 지천서당의 편액도 함께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연악서원이 훼철되고 복원할 때 재원의 부족으로 강당을 신축하지 못하고 지천서당의 건물을 함께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5-10-29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연정큰길 67
연계서원은 송계 한덕련(1881~1956) 선생이 배향되어 있는 서원이다. 한덕련 선생의 본관은 청주이며 호는 송계다. 조선조말엽인 고종 18년 당시 신녕현(현 영천시 신녕면)의 교전리에서 태어났다. 한일병합 후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군위군 고로면에 소재한 화산의 산중으로 들어가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방해로 계속 머무르지 못하고 다시 군위군 산성면과 영천군(현 영천시)임고면의 매호리 등지로 다니면서 후학을 가르치다 만년에 신녕의 연정리로 와서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연계서원 경내의 건물로는 묘우인 경덕사, 3칸의 사우, 각 3칸의 순리재와 구시재의 재사, 강당인 심락당 등이 있다. 사우에는 한덕련 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순리재와 구시재는 각종 유림의 회합과 학문 강론 및 숙소 등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2025-03-15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내외량길 243-55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홍관 (洪灌,?~1126년)과 홍언박 (洪彦博, 1309~1363년), 조선 중기의 문신 홍위 (洪瑋, 1559~?)를 배향하고 있으며, 남양 홍씨 문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다. 1786년(정조 10)에 창건하여 남양 홍씨 후손들이 제사를 담당하여 오다가 1868 년( 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1926년 이 지역에 오랫동안 세거해 온 남양 홍씨 후손들에 의하여 복설 되었다. (출처 : 군위군 문화관광)
2025-03-15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남산4길 32
1786년( 정조 10) 지방교육을 담당하고 성현을 받들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모든 건물이 훼철되었다. 이후 1897년(광무 1) 강당을 현재의 규모로 중건하였고 1989년 다시 중수하였다. 당시 강당 뒤쪽에 건립한 장판각에는 홍노의 ‘경재선생실기 (敬齋先生實記)’ 목판과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홍여하 (洪汝河)가 수찬한 ‘휘찬려사 (彙簒麗史)’ 목판이 보관되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출처 : 군위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2025-06-24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안포길 89
암포서원은 본래 선조를 제사하기 위한 사당과 교육을 겸한 서당으로 출발하였으나, 1569년 (선조 2) 국학의 제도에 따라 선현을 제사하고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건물의 중건과 함께 그 명칭을 서원으로 변경하였다. 1871년(고종 8) 음력 3월 20일 서원철폐령으로 전국에 사액서원 47개소만 남기고 통폐합할 때 훼철되었다. 1960년 5월 29일 정면 4칸, 측면 2칸의 한옥으로 복원하였으며, 복원된 건물이 퇴락하여 사당은 문화재적 가치 보존을 위해 존치하기로 했다. 그 외 건물은 경내에 이전 중건하였으며, 2007년 5월 13일 성주향교 유림 및 각 문중 대표 주관으로 낙성고유식을 거행하였다. 건물의 공간적인 구성은 풍수지리학적 지형·지세에 따라 서원의 우측으로 사당을 배치하였으며, 서원ㆍ사당ㆍ단목ㆍ단정 등이 있다.
2025-12-10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왕신1리길 151
신천서원은 조선 전기의 공신 맹암 김영렬(?~1404)의 가르침을 잇고 후손을 가르치기 위해 1945년에 세웠다. 김영렬은 정종 2년(1400)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태종 1년(1401) 좌명공신 3등에 오른다. 태종 4년(1404) 참판승추부사로 있을 때 왜선 1척을 싸워 빼앗고 왜병을 포로로 잡은 공을 세웠다. 후에 우의정에 증직 되었다. 신천서원은 왕신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솔 숲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입구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사주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전사청인 사주각(祀厨閣)이 있고, 정면에는 교육공간인 강당이 있다. 강당 뒤로는 내삼문인 남덕문(覽德門)을 지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경훈사(景勳祠)가 있다. 경훈사에는 태종의 글씨인 단서(丹書)와 김영렬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