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리빙스턴교

리빙스턴교

2025-07-04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

리빙스턴교는 인제군 인제읍 덕산리에서 합강리를 잇는 다리이다. 길이 150m, 폭 3.6m의 아이빔에 붉은 페인트를 칠한 목제 난간으로 세워진 생소한 이름의 리빙스턴교에는 한국 전쟁 당시의 가슴 아픈 사연이 전해져 온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중공군의 5월 총공세 속에 인제지구 전투에 유엔군으로 참여했던 리빙스턴 소위는 6월 10일 인제 북방 2㎞ 지점에서 매복해 있던 적군에게 기습을 받아 덕산리까지 밀리게 되었다. 설상가상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적의 총탄 세례를 막을 길이 없어 대부분의 군사들이 전사하였고 리빙스턴 소위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리빙스턴 소위는 강에 다리가 없어 일어난 일에 대해 통탄한 마음으로 이곳에 다리를 놓아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6.25 전쟁이 끝나자, 고 리빙스턴 소위의 배우자는 한국을 방문해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다리 건설에 필요한 기금을 희사했고, 1957년 12월 4일 리빙스턴 다리가 준공되었다. 이후 목제 시설의 노후화로 1970년 12월 육군 207 공병단이 당초 리빙스턴교보다 상류지점인 위치에 길이 148m, 폭 7m의 콘크리트 새 교량을 가설한 뒤 리빙스턴교라고 명명해 리빙스턴 소위의 정신을 이었다. 인제군은 리빙스턴 교량의 역사적 가치를 살리고 안보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2013년 6월 보수공사에 착수하여 2015년, 리빙스턴교는 붉은색 상판 구조물을 통해 다리의 면모를 되살리고 시가전·진지전을 형상화한 포토존과 전망·휴게시설, 파고라 공원 등을 갖춘 새로운 역사관광명소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쇠점골계곡

쇠점골계곡

2025-06-20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

가지산에서 발원한 물결이 단숨에 달려 내려오면서 빚어낸 비경을 그대로 간직한 이 계곡은 옛날 밀양과 울주군을 오가던 사람들이 석남재 밑인 이곳에서 말의 편자를 갈았다고 해서 쇠점골이라 한다. 이곳에는 거대한 바위 하나가 계곡 전체를 덮고 있는데 그 크기가 크고 넓다는 뜻에서 붙여진 오천평반석과 형제폭포 등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물웅덩이와 작은 폭포들이 있다. 쇠점골 트래킹은 백연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쇠점골은 왕복 2시간 30분 정도 걸으면 되는 평탄한 계곡길이다. 호박소 갈림길 삼거리 구름다리를 지나 오천평반석을 경유해 석남터널 입구 소공원까지 가면 된다. 계곡이 비교적 평탄하고 길며, 수량도 매우 풍부하다. 특히 얼음골 인근이라 여름에도 시원해 산행 초보자도 비교적 트래킹이 용이한 힐링 산책길이다. 특히 쇠점골 가을단풍길은 트래킹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을 만큼 아름답다.

이승휴 상징 조형물

이승휴 상징 조형물

2025-07-10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조국이 대국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울분을 갈무리한 채 민족혼을 담아 집필을 한 동안거사 이승휴 선생을 상징하며 뜻을 기리는 조형물이다. 삼척 두타산 기슭에 위치한 천은사 입구에 위패와 함께 세워져 있다. 1998년 홍익대학교 현대조형연구소의 홍성도에 의해 조각되었다. 이승휴상징 조형물의 바닥에 놓인 4개의 화강암은 삼척의 바다와 산을 상징하며, 가운데 기둥은 동안거사 이승휴 선생의 맑고 강직한 정신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조형물 앞 위패에는 동안거사 이승휴를 기리는 말과 함께 생애가 시대별로 적혀있다. 그의 생애는 항몽전쟁의 수난기를 거쳐 몽고지배 초기까지 고려의 대내외적으로 격동기에 해당한다. (출처 : 강원도청)

춘천내평전투 호국경찰추모상

춘천내평전투 호국경찰추모상

2025-03-17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신북읍 상천3길 36

6·25 전쟁 첫 대승을 거둔 춘천지구 전투의 초석을 다진 고 노종해 경감 등 호국영웅 11인을 추모하는 동상이다. 옛 내평지서의 터(현 소양강 댐)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약 3m 높이의 노 경감 동상이 세워졌다. 그리고 좌우로 10인에 대한 부조가 설치되어 있다. 춘천시민의 숲에 있어 어린이를 위한 공간도 많고 각종 전시 및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출처 : 춘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인어상

인어상

2025-03-24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신동면 의암리 산 81-2

주변에 삼악산과 의암호가 어우러진 경관이 뛰어나 행랑객으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인어상은 1971년 당시 춘천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이길종 춘천교대 명예교수와 그의 제자들의 습작품이다. 그러나 40년이 지나면서 색이 변하는 등 노후화되자 2013년 청동 조형물로 새 단장하였다. 인어상은 자동차도로 너머로 낮게 자리를 잡고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기 때문에 방문 시 유의해야 한다.

데미샘

데미샘

2025-08-13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1길 172

데미샘은 진안군 원신암마을 상추막이골에 위치해 있다.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이 있는 봉우리를 천상데미라고 부르는데, 데미라는 말은 전라도 사투리인 ‘더미(봉우리)’에서 유래 되었다. 천상데미는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데미샘으로 가려면 원신암마을의 팔선정 정자에서부터 오솔길을 한 시간 여 정도 걸으면 다다를 수 있는데 자연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자연생태학습장으로도 유용하다.

피의능선전투전적비

2025-03-27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

피의 능선은 양구군 동면 월운리 북쪽의 능선을 뜻한다. 한국군 제5사단, 36 연대가 미군 제2사단에 배속되어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피의 능선 전투에선 하루 평균 3만 여발, 최고 5만 여발의 포탄이 쏟아지곤 했다. 빗발처럼 포탄이 쏟아지고 2천 여발의 대인지뢰가 터지는 가운데 수많은 발목 절단 부상자를 감수해 가며 끝내 고지를 탈취하는 모습을 미국 기자가 ‘Bloody Ridge Line’이라는 제목으로 격전 상황을 보도하였다. 전투 결과 한국군이 승리함으로써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 능선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평창 지동봉가옥

2025-02-06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천동길 160

평창읍 천동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가옥이다. 강원문화재자료 제74호로 지정되었으며,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기와에 남아있는 명문으로 볼 때 일제 강점기인 1941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옥으로 지동봉이 소유하였다. 대지 52평에 안채와 행랑채, 별채로 이루어진 가옥으로 지동봉이란 사람의 증조부가 분가하여 집을 지은 뒤 지금까지 4대가 걸쳐서 살고 있는 역사가 깊은 가옥이다. 안채와 사랑채, 별채로 이루어졌지만 지어졌던 당시의 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안채뿐이다.

유동리 오층석탑

2025-03-31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유동리

유동리 오층석탑은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형태이다. 상당히 큼직한 기단부와 이 위의 적당히 체감된 옥개석과 탑신이 얇고 평판적이어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면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의 밑돌과 맨 윗돌 윗면에는 연꽃을 조각하였다. 네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고, 북쪽면에는 도깨비 얼굴 모습, 서쪽면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형상의 조각이 있으며, 남쪽면에는 감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파놓았다. 탑신은 1층 몸돌과 5층 지붕돌을 제외하면 모든 지붕돌이 위층의 몸돌과 한돌로 되어있다. 각 층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겨 놓았고 특히 1층 몸돌 남쪽면에는 문모양과 자물쇠가 조각되어 있다. 도톰한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네 귀퉁이에서 뾰족하게 치켜 올라갔으며,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후대에 만든 연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급격히 줄어들고 그 이상은 거의 줄지 않아 고려시대에 세운 탑으로 짐작된다.

사명당 대선사 진영

2025-03-27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삼척 영은사에 소장되어 있던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의 진영이다. 사명대사 유정은 조선 중기의 고승이자 의병장으로, 산대사 휴정(1520~1604)과 함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승군의 지도자로 활약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외교사절단으로 파견되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들을 귀환케 하였다. 얼굴의 모습은 사실적으로 세밀하게 표현하였고, 근엄하기보다는 늠름한 기풍과 인자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짙고 풍성한 턱수염은 가슴을 덮고 있으며, 우람한 어깨에서는 승장의 기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얼굴은 밝게 그렸으나 입술은 유난히 붉은색으로 그렸다. 왼손에 주장자를 들고 있으며, 족좌대를 따로 그려 놓았고 청회색 법복, 붉은 가사, 화려한 의자 표현과 화문석의 표현기법 등은 전통적인 양식이기도 하지만 영원사 범일국사 진영과 같은 기법이기 때문에 동시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얼굴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상체보다는 하체를 빈약하게 표현한 도식적인 방법에 의해 그려져 전체적인 비례는 잘 맞지 않는다. 사명당의 진영은 현재 10여 점이 있으나, 사명당이 오대산에 주석한 인연이 있다. 이 그림은 범일국사의 진영과 같은 시기(1788)에 같은 작자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원래 범일국사진영(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과 함께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영은사의 칠성각에 봉안되어 있던 것인데, 1999년 6월 18일 월정사성보박물관으로 옮겨 전시 중에 있다. 그림의 보존상태가 훼손이 없이 깨끗하고 조선후기 진영의 전형적인 양식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