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하나개해수욕장

하나개해수욕장

2026-06-30

인천광역시 영종구 하나개로 150 (무의동)

하나개해수욕장은 무의도 서쪽에 자리한 갯벌을 품은 해수욕장이다. 하나개는 가장 큰 갯벌이라는 뜻이다. 1㎞ 길이의 고운 모래 백사장이 펼쳐지고, 물이 빠지면 고운 모래사장 너머로 너른 갯벌이 드러난다. 갯벌을 조금만 파 내려가면 흰 속살의 동죽조개를 비롯하여 소라, 방게, 바지락 등이 지천이다. 해가 질 때의 붉은빛 노을은 해수욕장의 또 다른 장관이다. 하나개해수욕장은 아이들이 놀기에 수심이 적당하고 숙박시설과 샤워장, 식당, 노래방 등 편의시설이 많아 주로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해수욕장 뒤편에는 유원지가 조성돼 있어 즐길 거리도 많다. 유원지에서는 승마, 사륜오토바이, 씨 스카이월드를 즐길 수 있다. 씨 스카이월드는 백사장에 설치된 높이 25m의 철탑으로부터 413m의 와이어를 연결하여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하늘을 날 듯 하강하는 신종 익스트림 레포츠이다. 노천 포장마차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드라마 촬영지로 해변 한쪽에 촬영 세트장이 남아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실미해수욕장

실미해수욕장

2026-06-30

인천광역시 영종구 큰무리로 99

실미해수욕장은 무의도 북서쪽 해안에 자리한다. 약 2km에 걸쳐 초승달 형태의 백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해변을 따라서 100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촘촘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솔숲은 한낮에도 짙은 그늘을 만들어 쾌적하고 시원하다. 야영하기 좋은 환경 덕분에 차박 명소로 알려져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당일치기 캠핑으로도 많이 찾는다. 해변의 송림은 한낮에도 햇살 한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우거져 있다. 해수욕장 서쪽으로는 실미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실미해수욕장과 실미도 사이에는 하루 두 차례 바닷물이 빠지면서 너른 모래벌판이 드러나는데 이 길을 따라 실미도까지 걸어갈 수 있다. 실미도는 2003년 말 개봉한 684부대의 비극적인 실화를 그린 작품 영화 ‘실미도’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세트장이 모두 철거되어 흔적이 없다.

진촌해변

진촌해변

2026-03-11

인천 옹진군 북도면 장봉리

진촌해변은 장봉도 북쪽에 펼쳐진 작고 아담한 해변이다. 고운 모래사장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있고 해변 양 끝이 바위 절벽과 산등성이로 가로막혀 있어 한층 아늑하다.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아 해변의 정취를 한가로이 즐길 수 있다. 낙조 때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해변 오른쪽 끝에는 해안 탐방로가 있어 바다와 나란히 걷는 색다른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해변에서 마주 보이는 바위섬에는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백로와 괭이갈매기들이 날아든다. 장봉도는 이와 같은 희귀 조류들이 집단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봉도 한들해수욕장

장봉도 한들해수욕장

2026-05-06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장봉로465번길 70

장봉도 남쪽에 있으며 낮은 산이 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해수욕장이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해수욕장으로 약 500m에 걸쳐 희고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수심이 깊지 않아 아이들과 해수욕을 즐기기 좋다. 썰물 때 물이 멀리까지 빠지면 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해안가에 있는 갯바위에서는 낚시도 할 수 있고 해변 바로 뒤편에 소나무 숲이 있어 사유지인 캠핑장들이 있다. 장봉도 한들해수욕장은 인천 삼목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해서 갈 수 있으며 사람과 차, 자전거 모두 입도 가능하다.

함평 양재리의 이팝나무

함평 양재리의 이팝나무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손불면 모량길 38

손불면 양재리 함평 모씨 종중 모 씨 소유인 수정재 뒤편 동산의 소나무 숲 안에 두 그루의 이팝나무가 나란히 서있다. 그중 한 그루는 높이 14m이고 줄기의 가슴 높이 줄기둘레는 3.04m이며 다른 한 그루는 높이 12m, 줄기의 가슴 높이 둘레 1.43m로 두 그루의 굵기 차이가 크다. 크기로 보아 앞의 나무는 수령이 200여 살, 뒤의 나무는 100년 전후로 추정되어 약 100년의 간격을 두고 심은 것으로 여겨진다. 5월이 되면 이팝 나뭇가지에 하얀 꽃들이 한꺼번에 흐드러지게 피어 나무가 눈에 덮여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이팝나무는 그 수가 적지만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 분포하고 있어 농경문화와 깊은 관련을 가진 나무로 평가받고 있다. 개화 상태로 농작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는 등 우리 농촌의 숲 속에서 이팝나무를 예외 없이 찾아볼 수 있다.

함평용월리지석묘군

함평용월리지석묘군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월야면 용월리

함평용월리지석묘군은 1995년 12월 26일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영산강의 지류인 고막원천 주변에 총 16기가 한 군데에 밀집해 있다. 고인돌은 선돌과 함께 거석문화(巨石文化)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전세계적인 분포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돌방이 지상에 있는 북방식과 지하에 있는 것으로 크게 나누어지며, 지하에 있는 것은 받침돌이 있는 남방식과 받침돌이 없는 개석식(蓋石式)으로 구분된다. 용월리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축조되었다. 총 16기 가운데 12기가 받침돌이 보이는 남방식 고인돌인데, 상돌이 받침돌에 의해 들려진 상태여서 하부는 대부분 교란되어 있다. 상돌은 대부분 직사각형이다. 북방식 고인돌의 장벽석과 같은 두꺼운 판석을 가진 것도 있는데 대부분 유실된 상태이다.

용천사 석등

용천사 석등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길 209

1981년 10월 20일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석등은 대웅전의 오른쪽에 있는 삼층석탑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석등은 절 안을 환하게 밝히는 기능뿐 아니라 부처님의 빛이 사방을 비춘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석등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석등으로 크기나 짜임새가 투박하면서도 정감이 있다. 쑥돌(화강암)로 만들어졌으며 높이 2.37m이다. 용천사는 신라 때 행은존자에 의해 창건된,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사찰 앞에는 용천이 있는데 이곳에서 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용천[龍泉]이라 하였고 이곳에 절을 지어 용천사라 하였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불에 타서 거의 모든 유물이 사라졌는데 다행히 이 석등은 기둥 받침석의 상단에 붙어 있는 두귀의 거북만 깨졌을 뿐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 용천사 석등의 형태와 모양에 대해 이 석등은 크기나 짜임새가 투박하면서도 정감이 있어 조선시대 석등으로는 대표급이다. 재질은 쑥돌이고 높이는 2.38m이다. 8각의 간석[竿石] 위에 4각의 화사석[火舍石]을 얹었고 그 위에 4각의 옥개석[屋蓋石]을 올렸다. 화사석의 네 벽면에는 둥근 화창[火窓]이 있으며 지붕돌의 네 귀에 거북을 조각하였는데 그 형상은 간략하나 모양이 세련되었다. 거북조각은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그 모양이 세련되어 보인다. 석등 상부의 지붕돌은 목조건물의 팔작지붕(옆에서 볼때 ''八''자 모양) 형식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특이한 양식이다. 석등 밑 8각 간석에 새겨진 글에는 숙종 11년(1685)에 만들어졌으며 당시 시주한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다.

용천사(함평)

용천사(함평)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길 209

용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백제 무왕 1년(600) 행은이 창건하였으며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세조와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하였으며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유물로는 용천사석등, 해시계 등이 전한다. 이 중 1981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석등은 높이 2.38m로 숙종 11년(1685)에 제작된 것이다. 해시계는 석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6·25 전쟁 때 잃어버렸다가 1980년 경내 흙더미 속에서 발굴되었다. 본래는 높이 14㎝, 가로 세로 각 39㎝의 정사각형이었으나 지금은 절반이 떨어져 나간 상태이지만 낮 시간에 해당되는 묘시부터 유시까지는 남아 있어 사용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보광사(함평)

보광사(함평)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함평읍 한재골길 26-32

보광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289번지에 자리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은 1924년 모진택이 처음 집을 짓고 별당으로 사용한 것에서 유래한다. 1938년 무렵 용천사[龍泉寺]의 신도에 의해 포교당으로 설립되었다가, 1942년에 모성월[毛性月, 1886~1979] 스님이 원명[圓明] 스님과 김남하[金南夏] 포교사 등과 함께 인수, 지금의 보광사로 만들면서 본격적 사찰로 경영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영명[英明] 스님을 거쳐 현재 법홍[法弘]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현재 절에는 극락보전과 요사 및 종각 등의 건물이 있고, 종각에 있는 범종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172호로 지정되어 있다. 범종은 법당 왼쪽의 범종각에 보관되어 있는 종이다. 원래는 무안 원갑사의 종이었으나 폐사되자, 함평의 용천사를 거쳐 한국 전쟁의 혼란을 피해 1967년 현 위치에 옮겨진 것이라 한다. 형태를 보면,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는 2마리의 용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고, 용의 다리와 종을 연결하여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몸통 윗부분은 2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8자의 범자를 새겼다. 그 아래에는 사각형의 유곽이 있고, 안에 돌출된 9개의 유두가 배치되어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을 양각하였다. 몸통 아래쪽에는 넓은 두 줄의 도드라진 선을 두르고 그 사이에 글이 있어, 이 종이 영조 43년(1767)에 만든 것임을 말해준다. 범종의 크기는 높이 2.1m, 윗둘레 2m, 밑둘레 2.65m, 직경 0.83m이다. 종의 형태는 정상부에 용뉴와 상대, 종신[鐘身], 유곽[乳廓], 보살상 등을 갖추었으나 당좌[撞座]와 하대를 생략하였다. 정상부의 용뉴는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용의 다리를 종신과 접착시켜 그 무게를 지탱하게 하고 있다. 상대에는 두 줄의 돌출대를 두르고 그 안에 8자의 범자[梵字]를 새겼다. 종신 상단에는 전후좌우면에 두광[頭光]을 갖춘 보살입상을 양각하였으며 그 사이의 4면에는 사각형의 유곽을 획정하고 그 안에 9개의 유두를 돌출시켰다. 몸체 하단에는 넓은 두 줄의 돌출대를 두르고 그 사이에 ‘정해삼월’이라는 명문을 새겨 놓았다. 이 명문에 따르면 범종의 조성연대는 18세기 후반인 1767년(영조 43)으로 추정된다. 이 범종은 정상부에서 음통은 물론 당좌와 하대 등을 생략하는 간략화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18세기에 조성되는 범종의 높이가 1m를 넘지 못하는 경향에 비추어 보면 그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소리가 해맑아 우수한 범종으로 평가된다.

자산서원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엄다면 곤재로 688

정개청이 1589년 일어난 기축옥사(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문인들이 스승의 신원운동을 전개하면서 1616년 건립하였다. 1678년 조정으로부터 자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나 계속되는 남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훼철과 복설(復說)을 되풀이하였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이르기까지 무려 5차례의 훼철을 당하였고 8·15 해방 이후 1957년에 복설 된 뒤 1988년 대규모의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1987년 6월 1일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정개청 문집 《곤재 우득록(愚得綠)》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