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9
대전광역시 서구 장안로 461
장태산 자연휴양림은 국내 유일의 메타세쿼이아 숲이 울창하게 형성되어 있어 이국적인 경관과 더불어 가족 단위 산림욕을 즐기기에 적합한 곳이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진 이곳은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지압로, 추억의 놀이, 출렁다리, 교과서 식물원, 생태연못, 숲 속 교실 등을 갖추고 있어 자연과 더불어 자연학습과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또한 단체오락, 미니축구, 농구 경기 등을 즐길 수 있는 소규모(380㎡) 운동공간과 스카이웨이, 전망대, 비탈 놀이 시설을 통해 메타세쿼이아 숲을 특별히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으며 장태산 정상의 형제바위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낙조를 바라볼 수 있고 장군봉, 행상바위 등 기암괴석도 볼 수 있다.
2026-06-26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남창동)
행궁은 정조가 현륭원에 행차할 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으로 그 어느 행궁보다 크고 웅장하였으며 활용도도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이다. 정조 18~20년에 화성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쪽에 행궁을 건립했는데 평상시에는 유수부(지금의 시청) 관청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화성은 창룡문(동), 화서문(서), 팔달문(남), 장안문(북) 4개의 문루로 이어져 있으며, 뛰어난 건축술로 인해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개발 사례로도 평가받고 있다. 조선 22대 정조는 아버지 사도 세자가 뒤주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자 그 무덤을 당시 최고의 명당이라 평가받던 수원(현재의 화성시)으로 이장하였고, 능 주위에 살던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도시와 성곽을 축성하였다. 화성의 국궁 체험과 팔달산 정상의 효원의 종 타종, 행궁의 여러 가지 전통문화체험은 우리 문화재를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외에도 대장금의상 입어보기, 소원 성취 나무와 스탬프 찍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2026-05-14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공룡로 659
화성 고정리 공룡알 화석산지는 공룡알 화석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유일하게 골격이 완전히 보존된 상태인 공룡화석이 발견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화석산지는 시화호가 조성되기 이전의 섬이었던 곳으로 약 1m 크기의 둥지 30여 개가 발견되었다. 이를 토대로 시화호 일대가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공룡의 집단 산란지역이었음을 추정하였다. 공룡알 화석산지 방문자센터 내부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공룡 ‘코리아 케라톱스 화성엔시스’의 공룡뼈 화석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이 화석은 전곡항에서 요트대회 개최를 준비하던 화성시청 공무원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 세계에서 이전까지 발견된 적이 없던 새로운 종류의 공룡으로 ‘코리아 케라톱스 엔시스’라는 명칭을 얻었다. 방문자센터 건너편에는 탐방로가 펼쳐져 있는데 입구에서 공룡알 화석이 있는 곳까지 약 3㎞에 이르는 목재 데크길이 설치되어 있어 편하게 탐방할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마치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같다고 해서 ‘한국의 세렝게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탐방로의 끝자락에 있는 무명섬은 산책로가 조성되면서 새롭게 지어진 이름으로 그 당시 단층과 공룡알 모습을 이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는 안경알 모양의 공룡알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화석산지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알 화석이다.
2026-02-11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수변로 13-16
영주 괴헌고택[榮州 槐軒古宅]은 입향조의 8대손이 1779년에 외풍을 막아주고 낙엽 등이 모인다 하여 잘 산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소쿠리형’(또는 삼태기형) 명형국지[名形局地]의 한 가운데 지은 집으로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사당․사랑채․안채가 유교사상에 입각한 위계질서에 따라 각기의 고유영역을 이루며 배치되고 구조양식도 이 위계에 따라 격조를 조금씩 달리하고 있으며, 쪽마루․수납공간․환기창․고창 등이 발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제작 년대 미상의 오래된 성주단지가 온전하게 보존․전승되고 있고, 큰 사랑방과 안방의 다락에 지혜롭게 위장해 둔 은밀한 비밀 피신처는 일제강점기 등의 시대상을 읽게 하는 흔치 않은 실례이다. (출처: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2025-03-17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단산로121번길 27-8
구고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이다. 서한정(1407~1490)을 제향 한 서원으로, 조선 후기 영주 지역 달성서씨 가문의 향촌 사회활동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구고서원은 서한정을 추모하기 위해 지역 유림들이 1786년(정조 10) 건립한 구고리사에서 출발한다. 구고리사는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따라 철폐되었으나 이후 구고서당으로 현판을 바꿔 달고 운영하였다. 원래는 영주군 단산면 구구리에 건립되었으나, 관리가 어렵고 퇴락이 심해져 1974년 종택이 있는 영주군 단산면 사천리 새내마을로 이건 하고, 구고서원으로 승격시켰다. 구고서원에는 상절사를 비롯하여 전사청, 강당, 책실 등이 남아 있다. 상절사는 서한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구고서원은 팔작지붕 건물로, 평면구성은 전면에 툇간을 두는 형태이다. 강당은 팔작지붕 건물로 평면구성은 중앙에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이다. 전사청은 현재 향사나 향사 전 당회를 개최할 때 모임 장소로 활용된다. 현대식 시멘트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덮었다. 책실은 목판을 보관하는 곳으로 창고형 건물이다. 책실에 있던 서적과 책판은 현재 소수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 중정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2026-02-13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단산로115번길 37
백산 서원은 단산면 사천리 새내마을 안쪽에 있는 서원으로 개항기 의병 서재승을 제향 하기 위해 1951년 설립한 서원이다. 백산 서원은 지방 유림과 달성 서씨 문중의 발의로 1951년에 창의사로 건립되었으며 1973년에 백산 서원으로 개칭하였다. 경내에는 강당인 삼안재, 전사청, 명사루, 창의정, 동재, 월영당, 학구재, 서장각 등이 있다. 경내에는 강당인 삼안재, 전사청, 명사루, 창의정, 동재, 월영당, 학구재, 서장각 등이 있다. 이 서원에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활동에 투신하여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총살당한 서재승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하정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2026-03-09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96
영주 선비촌은 한국 유교 문화 발상지인 영주 순흥 소수서원과 바로 접하여 위치한 곳으로 선현들의 학문 탐구의 장소 및 전통 생활공간을 재현한 곳이다. 또한 선비정신의 계승과 이를 통한 올바른 가치관 정립, 역사관 확립을 도모하고자 설립된 체험 교육장이다. 우리 민족의 생활 철학이 담긴 선비정신을 거양하고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재조명하여 윤리 도덕의 붕괴와 인간성 상실의 사회적 병폐 현상을 해소시켜 보고자 충효의 현장으로 재현하게 된 곳이다. 또한 선비정신의 계승과 이를 통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 역사관 확립을 위한 살아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각종 기획프로그램 (오감체험형 전시와 참여형 이벤트, 전통문화 체험 등)을 통해 옛 선비들의 당시 생활상을 체험함으로써 잊혀가는 수준 높은 선비문화의 숨결을 느껴보실 수 있다.
2025-09-17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청구길 15-36
순흥향교는 정확한 창건 시기는 미상이나, 고려 말기 혹은 조선 초기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처음에 순흥부 북쪽 금성에 창건되었다가 1718년(숙종 44) 동쪽 위 야동으로 이건 하였고 이후 1750년(영조 26) 남쪽 석교리로, 1770년(영조 46)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으며, 1971년에 중수하고 1975년에 누각과 단청을 보수하였다. 본래 순흥향교는 조선시대 순흥 지역 유생들이 머물며 학문을 닦고,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제향의 공간이었다. 후에는 향촌 자치 기구로 활용하기도 하였으나 16세기 이후 향교 운영상의 어려움과 사회, 경제적 변화 속에 교육 기능은 약화하고 제향의 기능만 남았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7칸의 대성전, 6칸의 명륜당, 각 5칸의 동무와 서무, 4칸의 동재 7칸의 문루, 삼문, 협문, 주사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 10 철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 6현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이 밖에도 조선 후기 향교 운영 과정에서 작성된 집사안, 면분류원임안, 교중잡록 등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2024-11-29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은 발견 당시 목에는 금이 가고 발목 아래는 땅에 묻혀 불완전한 상태였으나, 현재는 보수정비를 통해 양감이 강조된 발과 유려하게 흘러내린 옷자락 등 생동감 있는 세부묘사를 확인할 수 있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세련된 이목구비를 갖춘 얼굴은 둥글고 우아한 모습이다. 신체는 몸에 꼭 붙은 오른팔이나 처진 어깨 등에서 다소 부자연스럽지만,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양감 있는 다리에서 생동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으며, 옷깃은 굵은 선으로 둥글게 표현하였다. 특히 양다리에서는 각각 동심타원형의 주름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삼국시대 불상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표현기법이다. 동심타원형의 주름이 삼국시대 작품인 장창곡불보다는 형식적이면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보물)보다는 덜 형식적인 점을 볼 때, 만들어진 시대는 통일신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다소 이완되고 형식화되어 가는 면도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긴장감 넘치고 우아하며 세련된 특징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라 하겠다.
2025-12-12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길 옆 논 가운데에 있는 마애불로 바위 4면에 모두 불상을 새겼으나 지금은 삼존불(三尊拂) 외에는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다. 본존불은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크게 솟아있으며, 얼굴은 갸름하고 원만하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배에서부터 다리 위로 굵고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면서 늘어져 있다.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고 왼손은 무릎 위로 비스듬히 내리고 있는 모습이다. 얼굴의 형태와 옷주름 표현 등이 옛 양식을 보이고 있는데, 특히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과 비슷하다. 좌우에 있는 두 협시보살상은 모두 체구에 비해 어깨가 매우 좁고 몸의 굴곡이 표현되지 않았으며, 전반적으로 장식성이 없는 단순한 모습이다. 본존불과 좌우 협시보살은 모두 불꽃무늬가 새겨진 원형의 머리광배를 가지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전체적으로 양감이 풍부하면서도 부드러운 표현을 보이고 있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출처 :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