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3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길 3-291
함양군 백전면에 위치한 상연대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 경애왕 1년(924) 고운 최치원 선생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건립하여 관음 기도를 하던 중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상연(上蓮)이라는 이름을 하여 상연대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창건한 이래 신라말에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선문(實相禪門)을 이곳에 옮겨와 선문(禪門)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 후 역대의 고승· 대덕스님이 수도 정진해 오던 곳으로 천여 년의 영험 어리고 신령한 수도 도량이었으나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해 불에 타고 1953년경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의 뒤편으로는 백두대간으로 연결되는 백운산(1279m)이 우뚝 솟아 있다.
2026-03-12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구룡길 57-125
사자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절터다. 백제 무왕과 선화비가 행차 중 미륵삼존불을 목격한 사건을 계기로 미륵사가 창건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자사는 백제 불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93년 발굴조사에서 ‘지치 2년 사자사조와’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이 사자사터임이 확인되었다. 유구에서는 고려와 조선 시대의 건물터 흔적과 함께 통일신라 토기, 백제 기와, 분청사기, 청자, 백자 등이 발견되어 다양한 시대의 흔적이 공존함을 보여준다. 현재는 대웅전과 요사채, 석탑 1기가 남아 있으며, 발굴 후 과거 법당 자리에 약간 확장된 형태로 대웅전을 복원하였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문척면 사성암길 303
사성암은 구례읍에서 약 2㎞ 남쪽인 죽마리 오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원래 오산암이라 불렀는데, 성왕 22년 (544)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의상대사 4명의 고승이 수도하였다고 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 사성암은 높이 20m의 바위 사이에 박혀 있는 듯한 약사전과 바위와 계단으로 이어지는 건물들이 산과 하나 되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약사전 아래로 보이는 섬진강과 구례읍, 지리산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애여래입상이 약사전(유리광전) 건물 내 암벽에 새겨져 있으며 원효 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사성암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주차장이 협소하여 주차가 제한적이다. 사성암을 가는 방법은 걸어 올라가는 것과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마을버스 가격은 왕복 기준 3,400원 (13세 이하 2,800원)이다. 사성암 주차장 마을버스 매표소나 안전 운수사를 검색하여 찾아가면 된다.
2025-04-16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당로16길 41
불탑사는 제주시 삼양동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관음사의 말사이다. 불탑사는 원당봉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불탑사의 원찰인 원당사는 고려 말 제주도의 3대 사찰 중 하나였다. 1948년에 발생한 제주 4.3 사건 당시 사찰 대부분이 파손되었으며 1953년에 재건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보수와 확장 작업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 요사채, 종각, 천왕문 등이 있으며 특히 이곳에 보존된 오층석탑은 제주도 유일의 고려시대 석탑으로 1993년 11월 보물로 지정되었다.
2025-12-17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남고산성1길 33-24 (동서학동)
불정사는 전주 고덕산에 자리한 한국불교태고종 사찰이다. 서녘의 해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찰로 뒷산의 둥근 모습이 마치 부처님의 머리와 같기 때문에 절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빛이 난다고 하는 불광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불정사로 바뀐 것이다. 불정사는 숲이 깊고 그늘지다. 시원한 곳에 위치해 있는데 이끼가 끼어 오래된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다. 대웅전이나 산신각이 원래의 전통적인 전각에서 벗어나 있으며 종각 또한 마찬가지이다. 군데군데 석물이 많고 존상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 산과 나무가 띄엄띄엄 가려져 있어 사찰의 멋스러움을 더한다. 대웅전 내부에 위치한 아미타불좌상은 조선 후기 17세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각형의 무표정한 얼굴에 반개된 눈과 함께 목에 삼도가 표현되어 있으며, 단순화된 옷자락에 의해 경직된 모습이고 가슴 높이 걸친 군의의 상단 깃을 몇 가닥 겹친 수직적인 표현 또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오른팔을 소맷자락에서 빼낸 듯한 특징적인 옷차림새 또한 17세기 이후 불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다지 험하지 않으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나타나는 불정사는 해질녘 노을이 아름답고 산세에 맞게 정갈한 절집과 그 안에 모셔진 조선후기 불상의 조화를 함께 맞볼 수 있는 사찰이다.
2025-12-03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용산3길 99-8
불령사는 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로 호랑산이라 불리는 효양산의 비룡골 옆 산비탈에 위치해 있다. 불심이 계곡에 충만하다고 해서 불령사라 불린다. 절의 창건이나 연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지만, 신라 645년(선덕여왕 14)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할 뿐이다. 그 뒤의 연혁은 없으며, 이후 낡고 허물어진 사찰을 1912년에 봉주 승려가 중건하였다. 그 뒤 1930년 이종태 주지가 중수하였다. 이후 폐사 지경에 있던 것을 1985년 지선 승려가 요사와 산신각을 새로 지으면서 현재의 사찰 모습을 갖추었다. 2000년에 퇴락한 인법당(人法堂)이었던 대웅전을 위쪽으로 올려 새로 짓고 원래의 인법당은 종무소로 사용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령사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령사 전탑이 있다. 이 전탑은 좁다란 골짜기의 절벽 위 널찍한 터에 자리하고 있다. 땅 위로 5단의 바닥돌을 놓고 1층의 기단을 마련한 뒤 5층의 탑신을 올려놓았는데, 오랫동안 무너진 채 방치되었다가 1968년에 다시 세워 놓은 것이어서 원래의 형태인지는 알 수 없다. 길쭉한 벽돌의 옆면마다 연꽃받침 위에 앉아있는 3구의 불상과 2기의 석탑이 서로 교차하여 돋을새김 되어 있는데, 이러한 까닭에 이 탑을 ‘천불탑(千佛塔)’이라 부르기도 한다. 통일신라 때의 조각양식을 보이고 있어 이 시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2025-05-12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90 (별내동)
불암사는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 후기 헌덕왕 16년(824) 지증대사가 창건하였고, 도선이 중창하였으며, 무학이 삼창하였다. 불암사는 보물로 지정된 ‘석씨원류 목판’으로 유명하다. 석씨원류 목판이란 석가의 일대기나 전법제자들의 행적을 목판에 새긴 것으로, 1673년 승려 지십이 불암사에서 ‘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이란 책을 펴낼 때 제작하였다. 자작나무판을 사용하였으며 양 끝에 나무를 끼워 나무판의 뒤틀림을 방지한 것으로 조선 판본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있다. 인조 16년(1638)에 왕명으로 역대 승려의 법통을 이어온 것을 판각한 것으로, 고창 선운사와 이 절에만 보존되어 있는 귀중본이다. 불암사 뒤 암 벽에는 근래에 조각된 마애삼존불이 있고 경내에는 1989년 태국과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 사리를 모신 진신사리보탑이 있다. 부처님의 모습을 닮은 산 아래 자리하여 이름마저 불암(부처바위)이라 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까지 모셔놓은 불암사는 그야말로 부처님의 도량이다. 이런 도량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기법회와 기도를 드리며 정진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2026-03-12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
분황사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선덕여왕 3년인 634년에 창건된 사찰로, 원효대사와 자장법사가 머물렀던 역사 깊은 절이다. 절 안에는 국보로 지정된 모전석탑이 있으며, 이는 통일신라 이전에 세워진 대표적인 전탑 양식이다. 모전석탑은 본래 5층 이상이었으나 현재는 3층만 남아 있으며, 고려시대에도 보수가 이루어졌음을 사리장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탑 1층에는 감실과 수문장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석사자상도 함께 배치되어 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형 돌우물인 삼룡변어정이 있으며, 호국용 전설이 전해진다. 이 우물은 1965년 석불 14구가 출토된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분황사에는 약사전, 약사여래입상, 석등, 대석 등 다양한 유적이 남아 있다. 화쟁국사비부는 원효대사를 기리는 비석의 받침돌로, 고려 명종 때 만들어졌다. 현재 분황사는 역사적·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고찰로 평가받고 있다.
2026-01-02
대구광역시 동구 도장길 243 (도학동)
북지장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로, 팔공산 맑은 계곡변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사찰의 전형인 쌍탑 가람으로 팔공산에서 동화사와 더불어 삼국유사에 공산 지장사로 기록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485년(소지왕 7)에 승려 극달화상이 창건했다는 연기설화와 684년(신문왕 4) 승려 양한이 달성군 최정산에 남지장사를 세우자, 동구 도학동 팔공산에 있는 지장사가 대구광역시를 기준으로 볼 때 북쪽에 있어 북지장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1192년(명종 22)에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한 것으로 보이나 중창 이후 이 절의 역사는 전혀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대웅전의 기와 중에 강희 4년(1665)의 명이 있는 것과 1623년의 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절이 1623년(인조 1)에 중창되고 1665년에 중수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에도, 북지장사가 팔공산에 있다는 내용이 보인다. 또한 1832년(순조 32)에 편찬된 경상도읍지에 북지장사가 청련암·도명암과 함께 동화사에 소속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사찰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지장전을 비롯하여 극락전(현 대웅전) 삼성각·산신각·천왕문 등이 있으며 특히 대구 북지장사 지장전은 한때 대웅전이 불에 의해 소실되었을 때 대웅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건립 연대는 1623(인조 원년)으로 정면 1칸, 측면에는 퇴칸을 달았다. 공포는 다포계 양식의 내·외 4출목이며 조선시대 중기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내부는 정자의 가구수법과 유사하며 불전의 가구로는 특이한 예이다. 대웅전의 동편에 남쪽을 향하여 나란히 서 있는 탑은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 탑의 뒤쪽은 법당이 있던 곳으로 많은 석재 유물이 산재하여 있다. 이밖에도 지장전 앞에는 지장사유공인영세불망비가 있는데, 이 비문에도 지장사가 신라시대의 고찰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팔공산 자락에서 묵묵히 세월을 지켜온 북지장사는 현재 대구 올레 팔공산 1코스의 종착지로서 대구 동구 방짜유기 박물관에서 도보로 코스를 즐기기에 맞춤하며, 북지장사 가는길은 사철내내 푸른 솔숲을 볼 수 있고 솔 숲에서의 향기는 북지장사 석조 지장보살님을 뵈러 가는 발 길을 가볍게 하여 준다. 더하여 북지장사에는 연못을 두고 있는데 연못 주변에 오래된 노거수 버드나무가 또 한번 세속의 번뇌를 놓고가라 하는 듯하다.
2025-09-09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197-22 (북한동)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는 북한산 원효봉 남쪽 중턱에 있다. 신라 때 원효스님(617∼686)이 삼천사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조선 중기 이후 승병들이 머물렀던 절이다. 1722년(조선 경종 2) 승병장 회수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노적사로 바꾼 것을 1813년(순조 13) 승병장 태월과 지청이 중건하면서 현재의 이름인 상운사로으로 바꾸었다. 1864년(고종 1) 긍홍이 극락전을 중건하고, 1898년 한암이 큰방을 중건하였으며, 1912년 주지 법연과 덕산이 법당을 중수하였다. 이후 1980년대에 법당을 중건하고 요사채를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 범종각, 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고려 중기에 제작된 석탑과 석등 부재가 남아 있다. 그중 석탑은 기단부와 1층 탑신만 전한다. 절 뒤에는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바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