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9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홍룡로 372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원효대사가 당나라의 승려 1천 명에게 천성산에서 화엄경을 설법할 때 낙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는데, 당시 승려들이 이 절 옆에 있는 폭포에서 몸을 씻고 원효의 설법을 들었다 하여 이름을 낙수사라고 하였다. 사찰이 있는 천성산의 산 이름은 본래 원적산이었으나, 당나라 승려 1천 명 모두 득도하여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천성산[千聖山]이라고 바뀌었다고 한다. 홍룡사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수백 년 동안 절터만 남아 있다가, 1910년대에 통도사 승려 법화가 중창하였고, 절 이름 홍룡은 사찰에 있는 폭포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홍룡폭포는 제1폭포와 제2폭포가 있는데, 옛날에 천룡이 폭포 아래에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으며, 1970년대 말 우광이 주지로 부임한 뒤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 종각, 선방, 요사채 등이 있고, 폭포 옆에 옥당이 있다.
2026-03-11
서울특별시 금천구 호암로 278 (시흥동)
서울시 금천구의 전통사찰인 호압사는 1393년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 무학대사는 호랑이 기세를 누르기 위해 호암산에 호압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호압사에서는 현재 서울특별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호압사 석불좌상이 모셔져 있고, 도량 내에 있는 500년 수량을 지닌 두 그루의 보호수는 호압사의 역사를 입증하는 자료이다. 호압사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마련해 주는 안식처로 오랜 세월을 품고 있는 전통사찰이다.
2026-03-09
부산광역시 연제구 고분로68번길 47
혜원정사의 창건은 1925년 일제강점기 때이며, 당시 부근 마을에 살고 있던 김덕만 노인이 땔감나무를 하러 이곳 산에 왔다가 옛 절터를 발견하고 부인 김순임과 함께 이곳에 작은 사찰을 건립하게 되었다. 이들은 가산을 털어 금동부처 한 분을 조성하고, 3칸 목조기와 금당을 건립하여 30여 년간 머물렀고, 그 이후 자손들이 이 사찰을 10여 년간 계승 유지하다가 뿔뿔이 흩어져 폐사되었다. 고산 스님이 1975년 사찰터 물색차 답사하던 중 묘봉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옛 절터를 발견하고, 이곳에 사찰 재건을 시작하여 오늘날의 혜원정사가 창건되었다. 혜원정사의 ‘정사’는 사찰을 의미하는 명칭이며, 떠돌며 수행하던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안거 하며 정진하는 곳을 말하고, 수행에 힘쓰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이 있다. 혜원은 지혜의 동산이며, 불교를 배워 깨달음을 찾는 이가 반드시 닦아야 할 3학 즉 계[戒], 정[定], 혜[慧]를 이루는 불교 수행의 동산을 의미한다. 혜원정사를 창건한 고산 스님께서 강조하시는 육화정신을 바탕으로 불교대학, 시민선방, 고산장학회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신행단체들이 부산지역 포교와 불교의 대사회적 소임을 다하고 있으며, 현재는 고산 스님의 제자이신 원허스님께서 주지를 맡아 적극적인 수행과 포교의 중심 사찰로서 나날이 발전해 나가고 있다.
2025-03-05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양시로 142-13
혜봉사는 김제 IC 및 금구면 소재지 인근에 있는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이 사찰은 1936년에 청신녀 전주이씨 청정월 보살이 인동장씨 종중의 땅을 헌사하면서 불사가 시작되었고, 1970~90년대에 지금의 규모로 중건되었다. 이곳은 볕이 잘 들어 아름다운 꽃이 자연적으로 피어 ‘꽃밭댕이절’이라고도 불린다. 건물은 대웅전, 염불전, 종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칠층석탑도 세워져 있다. 대웅전은 문살마다 아름다운 꽃무늬를 새겨 꽃 창살로 만들어 놓았고, 벽화로 사군자를 그려놓았다. 이곳은 또한 도량이 넓고 시설이 좋아 영산작법보존회의 하계 정기수련대회 장소로 활용되며, 약수가 유명하여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주변에는 금구향교, 남강정사, 선암저수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2026-03-12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1052-220
문경의 진산인 주흘산 중턱에 자리 잡은 혜국사(惠國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성왕 8년(846년)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법흥사라고 하였다. 고려 말에 홍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민왕이 이곳으로 피난하였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이 절의 승려들이 크게 활약하여 나라에서 절 이름을 혜국사로 바꾸었다. 임진왜란 당시에 청허와 송운·기허 등이 이 절에 머물며 승병을 지도했다고 한다. 산내 암자로 안정암이 있으며, 건물로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큰방, 요사채 등이 있다.
2025-07-28
경상북도 경산시 장산로24길 7
대한불교 법화종에 소속된 혜광사는 1931년 창건됐다. 혜광사의 사찰 건물은 조선시대 자인현 객사로 쓰던 건물을 일제강점기 ‘투현’이라는 일본 승려가 일본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현 위치로 이건해 일본식 사찰로 건축해 운영해 왔다고 전한다. 일본 승려가 이곳에 터를 정한 것은 이 곳이 당시 경산의 중심지였으며 풍수적으로 연꽃이 물 위에 떠있는 형상인 연화부수형국의 명당자리였다고 알려져 있다. 해방 후 일본에 거주했던 한국 스님인 혜광스님이 이곳에서 주석하면서 왜색불교를 타파하고 대한 불교 법화종단에 사찰을 등록하게 됐다. 이때부터 주지스님의 법명을 따 혜광사라 사명을 짓고 지금의 대웅전에 봉안된 후불탱화를 국내 모 사찰에서 모셔와 명실공히 한국불교 법화종 사찰로 사격을 일신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혜광사는 점차 쇠락해져가 거의 폐사 직전에 놓였던 것을 1975년 사찰의 주지로 새로이 부임해 지금까지 주석하고 있는 법화종 원로 혜문스님이 대웅전을 중창하고 지금의 사찰 모습으로 변모시키고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2025-11-20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현풍동로27길 54-6
산 중의 큰 절이 도심의 포교를 위한 거점을 삼기 위해 도시민들의 생활터전 가까운 곳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놓고 보다 더 부처님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곳이 이른바 포교당이다. 현풍포교당은 애초 유가사의 포교당에서 출발해 현재는 동화사 포교당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1908년 창건된 현풍포교당은 창건 취지에 맞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포교의 최전선에서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현풍포교당은 어떠한 특별한 기도처로 표방하지도 않고 누구나 절에 와서 자신이 소원한 바를 부처님께 기댈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2025-03-06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대청호반로 149
현암사는 바위 끝에 매달려 있는 듯한 다람절이라는 의미에서 이를 한자화한 현암사(懸岩寺)라는 이름을 같게 되었다. 현암사의 창건시기와 창건주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 다만 절에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백제 전지왕 때 달솔해충(達率解忠)의 발원으로 고구려의 스님인 청원선경(淸遠仙境) 대사가 창건했으며, 원효대사가 중창했다고 한다. 현암사는 조선시대의 각종지리서에는 견불사(見佛寺), 혹은 현사(懸寺)로 나와 있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 같은 조선초기의 기록에서는 견불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다가 후기로 들어서면서 현사로 바뀐 것이 지금의 현암사가 되었던 것이다.
2025-08-08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향한로 27-7 향산사
무주 읍소재지에 위치한 향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사찰이다. 1936년 선파 스님이 법당을 중건하고 부처님을 모셨고 1975년 혜안 스님이 대웅전을 중창했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나한전을 비롯해 산신각, 일주문, 요사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당에는 3층 석탑이 세워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소박한 사찰이다. 대웅전은 불단에 석가모니불을 주존불로 하여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이 협시되어 있다. 대웅전에 걸린 후불탱, 칠성탱, 신중탱 등의 탱화는 모두 1924년에 조성된 것이다. 나한전은 수미단 위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장육존상 오존불과 16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2025-11-13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동작동)
호국지장사는 670년 풍수지리설에 뛰어났던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도선국사는 9세기 사람이나 7세기보다는 9세기 후반에 창건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도선국사는 이곳이 칡덩굴이 엉켜있고 약수가 나는 명당이므로 갈궁사라 했다고 전한다. 그 후에는 폐허가 되다시피 한 갈궁사를 고혀 공민왕 때 보인스님이 중창하고 절 이름을 고쳐 화장암이라고 하였다고 한다.『봉은 본말 사지(奉恩本末寺誌)』에 의하면 1577년에 선조의 생조모인 창빈 안 씨(昌嬪 安氏)의 묘를 부근으로 옮기면서 이 절을 능침 사찰로 삼고 이름을 화장사로 바꿨고, 이후 1663년에 중수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뒤 1862년에는 운담과 경해 두 스님이 중건하였다. 1870년에는 운담과 경해 두 스님이 경 파루를 새로 지었으며, 1878년에는 주지 성월스님과 경해스님이 대방 등을 수리하였다. 1896년에는 칠성각을 새로 지었고, 1920년에는 주지 원옹스님과 명진스님이 큰방을 수리하였으며, 1936년에는 주지 유영송 스님이 능인전을 중수하였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이곳에 국립묘지가 들어섰고, 1983년에는 호국지장사로 다시 사명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