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CC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서라벌CC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서라벌CC

서라벌CC

16.8 Km    0     2023-12-05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내외로 577-189

서라벌 CC는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 자리 잡고 있다. 클럽 하우스를 중심으로 좌우 능선이 36홀의 코스를 감싸고 있어 클럽 하우스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편안하면서도 와이드하다. 9홀 단위로 특징이 차별화된 홀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도 각각 독립성을 유지하여 플레이어가 최상의 조건으로 즐길 수 있다. 자연 지형을 최대한 살려 공략에 대한 묘미를 배가 시켰다. 계곡을 그대로 이용하여 코스를 조성하고, 자연계류와 연못을 재생하여 마치 자연 속에 그대로 안착된 듯한 홀을 만들다.

35mm

35mm

16.8 Km    0     2024-01-12

경상북도 경주시 후동길 11-13

35mm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에 있는 베이커리 카페이다. 현대적인 감각의 웅장한 건물은 A, B, C동으로 나뉘어 있으며, 내부는 사방을 통유리로 되어 있어 호수와 바다를 바라보며 브런치, 베이커리, 음료를 즐길 수 있다. 또한, 반려동물은 야외 공간에 동반이 가능하다.

와나스타

와나스타

16.9 Km    0     2024-05-23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암1길 207

울주군 대암댐 안쪽 숲에 위치한 와나스타는 ‘숲에 머물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숲속요가명상업체이다. 요가와 명상이 좋아서, 이를 이웃과 더불어 나누고 싶어서 숲 속에 집을 짓고 요가명상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생태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경험하고, 재능과 공간을 나누며 지역에서 자리 잡을 무렵 관광두레업체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상시운영 프로그램'과 '맞춤형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며 지친 일상에서 내 몸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제대로 된 호흡명상, 하타요가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시간을 제공한다. 오직 자연 속에서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을 느끼며 자신이 곧 자연이며 우주가 됨을 경험한다. 어느 날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면 와나스타의 숲 속요가명상을 추천한다.

남창옹기종기시장

16.9 Km    1     2023-06-10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남창장터길 24

울산시 울주군 온양면에 자리한 유서 깊은 남창 옹기종기 시장은 매월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에 열리는 전통시장이다. 조선시대 곡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울산 남쪽에 있어 ‘남창’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1970~80년대 인근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생산된 옹기가 전국으로 유통되어 옹기종기 시장으로 불린다. 울산 지역의 특산품인 서생배를 비롯해 과일, 육류, 해산물, 채소 등 없는 게 없이 갖춰 놓았다. 근처에 있는 남창역은 1935년에 개설된 것으로 일제강점기 때의 건축양식을 보존하고 있어 현재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옛날 그 모습을 그대로 갖춰 놓았다. 전통시장의 현대화 사업으로 주차타워, 화장실이 잘 구비되어 있어 장 보는 일이 더욱 편리해졌다.

하서항

하서항

16.9 Km    1     2024-02-29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 61

하서항은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에 위치하고 있다. 율포진리항으로도 불리는 이곳에는 자물쇠 모양의 조형물인 사랑의 열쇠가 있다. 이 덕분에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여행객이 많다. 낚시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아 연중 많은 사람이 찾는다.

완도참전복

완도참전복

1.7 Km    1     2023-09-14

울산광역시 남구 남중로94번길 13

완도참전복은 삼산동 삼산 초등학교 근처에 있다. 전복을 여러 방식으로 조리해서 풀코스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매장은 대부분 방으로 나뉘어 있어서 모임별로 프라이빗하게 식사하기에 좋다. 전복회, 전복무침, 전복장, 전복구이, 전복죽 등 전 메뉴 모두 추가로 주문할 수 있고, 코스 요리 중 더 먹고 싶은 메뉴는 추가 주문할 수 있다. 죽부터 오독오독 씹히는 전복의 식감이 재미있는 전복구이까지 다양한 전복 요리를 맛볼 수 있고 특히 노릇노릇 구워져 나오는 버터구이는 모양도 좋고 맛도 좋다. 넓은 전용 주차장이 있어 주차하기에 편리하다. 울산박물관, 선암호수공원이 인접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천전리공룡발자국화석

천전리공룡발자국화석

17.1 Km    26915     2024-05-22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천전리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약 1억 년 전 백악기 시대에 살았던 중대형 공룡들의 것으로 귀중한 자연사 자료이다. 천전리 공룡발자국 화석은 천전리 각석 맞은편, 대곡천 하천의 경상 누층군 대구층에 해당하는 암석 위에 드러나 있으며, 바위 위에 남아 있는 것은 대형 초식공룡인 한외룡(울트라사우루스)을 비롯한 용각룡 열 마리의 발자국과, 중형 초식공룡인 조각류 이구아나룡에 속하는 고성룡(고성고사우루스) 한 마리의 발자국 등 2백여 개가 확인되고 있다. 나타난 발자국들의 흔적으로 보아 공룡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고 자유롭게 돌아다닌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공룡의 생활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공룡들이 아열대 기후의 대평원이나 하천, 평야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곳 일대가 먼 과거에는 열대 무역풍의 영향을 받는 사바나 지역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공룡발자국 화석 AR 앱을 다운로드하여 이곳을 방문하면 백악기 공룡들의 모습을 증강현실로 만나 볼 수 있으며 공룡과 함께 사진촬영도 하고 공룡 수집도 하는 등의 특별한 체험이 가능하다.

울주 천전리 각석

울주 천전리 각석

17.1 Km    26854     2023-08-02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바위 위나 큰 절벽, 동굴 안 벽면 등에 사물이나 기호를 쪼기, 새기기, 칠하기 등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을 바위그림, 암각화(巖刻畵)라고 한다. 바위그림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에서도 발견되지만, 전형적인 사례들은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주로 찾아진다. 바위그림은 대개의 경우, 풍요, 다산 제의의 산물로 이해되고 있다. 이 바위는 상부에 면쪼기로 나타낸 사슴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동물과 선쪼기로 나타낸 다양한 기하무늬가 있고, 하부에 여러 명문(銘文)과 가는 선긋기에 의한 인물 및 동물상 등이 있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상부의 마름모꼴무늬, 굽은 무늬, 둥근 무늬, 우렁무늬, 사슴, 물고기, 새, 뱀, 사람 얼굴상 등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당시의 풍요의식과 관련된 표현으로 해석된다. 하부의 기마행렬, 배의 항해 모습, 용, 말, 사슴그림, 300여 자의 명문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이 남긴 것으로 신라사람들이 삼국시대 이래 이곳을 성지(聖地)로 여겼음을 짐작하게 한다.

구강서원

구강서원

1.7 Km    19071     2024-06-17

울산광역시 중구 서원11길 45

포은 정몽주와 회재 이언적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으로 강학과 교화, 제향 등을 하며 조선시대 선비를 양성했다. 숙종 4년(1678)에 세웠으며 숙종 20년(1694)에 구강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약 200여 년 동안 강학과 향사를 봉행해 오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철폐되었다. 훼철된 후 옛터는 주거지로 변하였고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지역 유림들이 서원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서원부지 800여 평을 매입하고 울산광역시에 기부채납해 복원했다. 현재는 한문교실, 청소년 인성 및 예절교육, 주부예절 및 교양강좌 등을 무료로 운영한다.

반구서원

반구서원

17.2 Km    3532     2023-09-05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안길 299

반구 서원(盤龜書院)은 『언양읍지』에 의하면 1712년(숙종 38)에 세웠다고 한다. 건립 주체 사림은 이위, 김영하(英夏), 김지(志), 박문상(朴文祥) 등이며, 착공 1년 만에 완공하고 1713(숙종 39)에 위의 3선현을 봉안하였다. 선현 중 정몽주와 이언적은 울산의 구강서원에 이미 봉안되었거니와, 정구를 봉안한 것은 그가 퇴계 문인이면서 언양과 그리 멀지 않은 성주 출신이라는 데서 근거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시경(詩經)의 반구 서원은 구강서원과는 달리 사액되지 못하였다. 이것은 언양 사림이 중앙의 정치세력과 연결하여 사액 운동을 벌일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실력이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그 후 1871(고종 8)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서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