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신라천년서고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천년서고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천년서고

2.1Km    0     2024-07-30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054-740-7500

2022년 12월 15일 개관한 신라천년서고는 박물관 소장 도서를 열람할 수 있는 박물관 안 도서관이다. 기존에 수장고로 이용되던 건물은 한옥 형태를 본뜬 외관을 그대로 살리고 내부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리모델링했다.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발간한 도서들은 물론 국내외 전시 도록과 신라 및 경주학 관련 도서 등을 소장하고 있다. 별도로 마련된 북큐레이션룸에서는 박물관 큐레이터와 사서가 함께 고른 책들을 주제에 맞춰 소개하며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가 주관하는 ‘2022년 골든 스케일 베스트어워드 협회상’을 수상했다.

유니레저 경주지점

유니레저 경주지점

2.2Km    0     2024-06-21

경상북도 경주시 경감로 466-311

(주)유니레저 경주지점(보문산카라반파크)은 경북 경주시 천군동에 자리 잡고 있다. 경주시청을 기점으로 8km가량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산업로와 동방북길을 번갈아 달리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15분 안팎이다. 캠핑장에는 일반캠핑 사이트 3면과 카라반 17대가 마련되어 있다. 카라반 크기 등에 따라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내부에는 침대, TV, 취사도구, 화장실, 샤워실 등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물품이 준비돼 있다. 부대시설로는 자이언트 트리 물놀이장, 친환경 생태공원 등이 있다. 주변에 첨성대, 보문관광단지 등 경주의 유명 관광지가 많다. ※ 반려동물 동반 불가

통일전 은행나무길

2.2Km    0     2024-09-19

경상북도 경주시 칠불암길 6 (남산동)

통일전 은행나무길은 경주시의 대표적인 가을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 정신과 화랑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이를 이어받아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 삼기 위하여 조성한 길이다. 근방에 삼국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건립된 통일 전부터 시작되어 직선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도로 양옆으로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형태이다. 은행이 절정으로 물드는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경주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외지인들도 많이 방문하기도 한다. 또한 통일전으로 올라가 누각 위에서 통일전 은행나무길 전체의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경주 일성왕릉

경주 일성왕릉

2.2Km    18754     2024-06-14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경주 남산 서쪽 약간 경사진 지점에 있는 일성왕릉은 신라 제7대 일성왕(재위 134∼154)을 모신 곳이다. 봉분의 높이 7m, 직경 10m이며 하단에는 석축을 쌓았다. 봉분 전면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호석으로 보이는 석열이 있고 봉분 주위에도 그러한 돌을 돌렸던 듯하다. 중단의 석상은 후세에 설치한 것이며, 그 뒤에는 장대석으로 얕은 1단의 석축이 있으나, 이것은 석상을 놓으면서 쌓은 듯하다. 하단의 석축은 잡석으로 쌓았는데, 이것도 후세에 손댄 것으로 보인다. 상당한 규모의 대형 분묘여서 일반 서민의 무덤이 아님을 알 수 있으나, 일성왕의 장지에 관한 기록이 없어 전해지는 말로 추정할 뿐이다. 일성왕은 <삼국사기>에는 제3대 유리왕의 맏아들로, <삼국유사>에는 제3대 유리왕의 조카 혹은 제7대 지마왕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일성왕은 농토를 늘리고 제방을 수리하여 농업을 권장하였으며 민간에서 금, 은, 주옥의 사용금지를 하는 등 백성을 위한 정치에 주력하였다.

통일전(경주)

2.2Km    26159     2024-09-23

경상북도 경주시 칠불암길 6

통일전은 삼국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 경내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통일의 격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화가 긴 회랑을 따라 전시되고 있다. 통일전은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자는 뜻으로 건립된 만큼 초중등학생들의 이념 교육장 형태로 이용되고 있으며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인 듯하다. 삼국통일 당시의 전투 장면 등이 여러 개의 액자에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며, 남산 답사 도중 잠시 호국영령을 참배하고 다리 쉼을 원하면 너른 잔디밭에서 쉬는 것도 좋을 듯하다.

경주 서출지

2.4Km    28046     2024-08-27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1길 17
문화관광과(관광홍보) 054-779-6079 관광안내소(경주역) 054-772-3843

신라 21대 소지왕이 서기 488년 정월 보름날 행차에 나설 때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말했다.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살피십시오” 왕은 장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동남산 양피촌 못 가에 이르러 장수는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풀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장수께서는 이 글을 왕에게 전하시오” 노인은 글이 써진 봉투를 건넨 뒤 물속으로 사라졌다. 왕이 봉투를 받아보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적혀있었다. 이를 본 신하가 말했다. “두 사람은 평민이고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킴이오니 열어보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왕은 신하의 조언에 따라 봉투를 뜯었다.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대궐로 간 왕은 왕비의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 갑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거문고 갑 속에는 왕실에서 불공을 보살피는 승려가 죽어있었다. 승려는 왕비와 짜고 소지왕을 해치려 한 것이었다. 왕비는 곧 사형되었으며 왕은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 연못은 글이 적힌 봉투가 나온 곳이라 해서 서출지라 부른다. 소지왕 10년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40년 전이다. 신라 눌지왕 시대에 묵호자가 불교를 전하러 왔으나 펴지 못했다. 소지왕 시대 아도 스님 역시 불교 전파에 실패했다. 법흥왕 15년 이차돈의 순교로 비로소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것이다. 당시 신라 귀족들은 민속신앙 특히 조상을 섬기는 신앙이 강해 쉽게 불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출지의 전설은 전통적 민속신앙 속에 새로운 불교문화가 전래되는 과정에 빚어지는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 수량 7,021㎡

경주 인왕동 사지

경주 인왕동 사지

2.4Km    19863     2023-11-01

경상북도 경주시 문천길 16

경주 인왕동 사지는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이자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을 위한 사찰인 인용사의 절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인용사는 신라시대에 승려나 왕이 아닌 개인을 위해 일반인들이 세운 절로서는 처음이라는데 그 의의가 크다. 현재 절터에 남아있는 석물들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로, 유례가 드문 亞자형 건물터를 비롯해 탑지, 금당지, 감당지, 회람지, 연지와 우물 등이 확인됐다.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멸망 이후 당나라는 신라를 정벌하려 하면서 당에 머물고 있던 신라의 장군이자 외교가 김인문을 감옥에 가두었다. 신라 사람들은 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관음도량을 열었으나, 이후 김인문이 귀국하던 중에 죽자 극락왕생을 빌며 미타도량으로 중국 당나라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의 안녕을 빌기 위해 신라 사람들이 세운 절이라고 한다. 처음 김인문을 위해 절을 짓고 그의 귀국을 바라는 법회인 관음도량을 열었다가 그가 죽자 명복을 비는 미타도량을 행했다. 김인문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로 당나라에서 22년간 생활하면서 많은 벼슬을 했다. 무열왕 7년(660)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고, 문무왕 8년(668)에는 고구려를 통합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월암종택(김호장군고택)

2.4Km    1     2022-12-28

경상북도 경주시 식혜골길 35

임진왜란 때 경주에서 최초로 의병을 창의한 월암 김호장군의 생가로400년 역사의 국가 중요문화재 34호이다.

김호장군고택(경주 월암종택)

김호장군고택(경주 월암종택)

2.5Km    2     2019-09-03

경상북도 경주시 식혜골길 35
010-4308-0852

역사의 깊이가 있는 고택이다.

경주 월성(반월성)

2.5Km    35297     2024-08-28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이곳은 서기 101년 파사왕 22년에 신라의 왕성으로 축성되어 신라가 망하는 서기 935년까지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 하여 '신월성(新月城)' 또는 '월성(城)'이라 불렸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려 오늘에 이른다. 월성의 성은 돌과 흙을 섞어 싼 토석축성인데 길이가 1,841m이며, 성내 면적이 193,585제곱미터이다. 동에는 동궁과 월지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첨성대가 있으며 남에는 남천의 시내가 하나의 방위선 역할도 하게 되어 있다. 기록에는 문으로 남문, 귀정문, 북문, 인화문, 현덕문, 무평문, 존례문과 임해문이 있었으며 누각으로 월상루, 망덕루, 명학루, 고루가, 전으로는 조원전, 숭례전, 평의전, 남당, 월정당, 우사록관, 좌사록관, 영각성이 있었으며 궁으로는 내성, 영명궁, 월지궁, 영창궁, 동궁, 내황전 등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월성지하에는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부터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기와, 건물초석 등이 깔려 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회공(瓠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석탈해왕(昔脫解王)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석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그 후 파사왕(婆娑王) 22년(101)에 여기에 성을 쌓고 옮긴 다음부터 역대 왕이 이 월성에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