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동방동 와요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경주 동방동 와요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경주 동방동 와요지

2.4Km    18438     2024-05-31

경상북도 경주시 동방북1길 14

경주 동방동 와요지는 1977년 택지 조성공사 도중에 우연히 발견된 가마터로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발굴조사하여 9기의 도자기와 기와를 굽던 가마터를 발굴하였다. 그중 1기를 조사한 결과 가마의 전체 길이는 10.5m, 넓이 1.72m인 구릉 경사면을 이용하여 만든 굴가마(등요)로 밝혀졌다. 도자기를 굽던 곳의 천장 부분 벽 일부가 남아있으며, 도자기를 빚던 곳과 굽던 방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있다. 출토된 기왓조각은 고려시대에 성행한 새 깃털 모양 무늬와 연꽃무늬의 장식기와, 그리고 조선시대에 제작된 기와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마바닥에서 출토된 건륭이 새겨진 암막새는 가마터가 없어질 당시의 것으로 생각되며, 가마터의 제작시기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로 추정하게 한다. 가마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토기와 기와를 만들 수 있는 양질의 흙과 물, 그리고 구워내기 위한 연료가 필요한데 이곳 동방동 일대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교통로가 있어 운반도 용이하였기에 오랜 시간 도자기 생산을 담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보리사(경주)

2.5Km    21503     2024-06-17

경상북도 경주시 갯마을길 41-30

경주 남산 자락에 자리한 보리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됐으며 남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다. 에 의하면 신라 헌강왕과 정강왕의 능이 보리사 동남쪽에 위치한다는 내용이 등장할 정도로 유서 깊은 사찰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산신각, 선원, 종각, 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과 보리사마애석불이 있다.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은 남산에서 가장 잘생긴 부처님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얼굴의 윤곽이 뚜렷하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좋다. 또, 보리사에서 산길을 따라 35m쯤 오르면 바위에 새긴 마애석불이 있다. 조각이 거칠고 아랫부분이 생략되어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보리사는 경북천년숲정원과 통일전, 서출지 등의 명소와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 좋다.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2.5Km    19740     2024-06-14

경상북도 경주시 갯마을길 41-30

경주 남산 보리사에 있는 석불좌상이다.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었고,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하나 많이 형식화되어 있다. 얼굴은 둥글지만 풍만하지 않으며 가는 눈과 날카로운 코, 뚜렷한 입이 8세기 신라인의 정신적 고고함과 비범한 조각 솜씨를 보여준다. 이 불상은 옷 주름이 복잡하고, 가슴은 평평한 편이며 무릎은 다소 작게 표현되었는데 이는 신체의 비율과 함께 8세기 불상의 이상형에서 9세기 양식으로의 이행을 보여준다. 불상과 별도로 만들어 세운 광배는 꽃무늬, 불꽃무늬, 작은 화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광배 뒷면 왼손에 약그릇을 든 약사불을 선으로 새긴 점이 독특한데 동방 약사, 서방 아미타라 하여 석조여래좌상을 아미타불로 보기도 한다.

보리사마애석불

보리사마애석불

2.5Km    8     2024-02-02

경상북도 경주시 갯마을길 41-30

보리사는 경주시 남산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로 이 보리사 초입에 높이 2m의 바위벽에 새겨진 마애불이 있다. 보리사의 석불좌상보다 후대에 만든 것으로 여겨지며,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바위벽을 얕게 파 높이 1.5m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약 0.9m 정도의 작은 부처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양쪽 뺨 가득히 자비 넘치는 미소를 간직하고 앉아 있는 불상은 전체적으로 조각 수법이 거친 편이다. 특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선을 그은 것처럼 얕게 새겨 매우 독특한 조각 수법을 나타낸다. 불상의 높이는 1.1m에 지나지 않으나, 발아래에는 급경사로 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볼 때 하늘에 떠 있는 느낌이다. 보리사에서는 멀리 선덕여왕이 잠들어 있는 낭산이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고, 사천왕사·망덕사·황룡사도 한눈에 들어온다.

카페 스튜디오0330 경주본점

카페 스튜디오0330 경주본점

2.6Km    1     2022-08-25

경상북도 경주시 동방안길 26

카페 스튜디오0330 경주본점은 경상북도 경주시 동방동에 있다. 잔디가 깔린 널찍한 외부와 차분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대표 메뉴는 오렌지청, 우유, 에스프레소를 층층이 쌓은 오렌지비앙코다. 이 밖에 딸기 얼음과 레몬청이 어우러진 핑크레몬에이드, 콜롬비아와 과테말라 원두를 사용한 아메리카노 등도 맛볼 수 있다. 경주IC에서 가깝고, 인근에 황성공원, 첨성대, 국립경주박물관이 있다.

경주 신무왕릉

2.6Km    16465     2024-02-02

경상북도 경주시 후곡안길 13

경주시 동방동에 위치한 신라 제45대 신무왕(재위 839)의 무덤이다. 신무왕의 본명은 김우징이고 희강왕의 사촌 동생이다. 839년 4월에 청해진대사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 민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그 해에 병으로 죽었다. 무덤은 높이 3.4m, 지름 15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으로 주변에는 아무런 시설이나 표식이 없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자 이름을 [신무]라 하고 제형산 서북쪽에서 장사지냈다고 하나, 이 무덤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옥스테이 여여

한옥스테이 여여

2.7Km    0     2024-07-31

경상북도 경주시 갯마을길 53 (배반동)
010-8959-9091

경주 남산국립공원 아래에 자리한 한옥스테이 여여는 소나무 숲이 한옥 뒤에 자리잡고 있어 공기가 맑고 시원하다. 침실, 거실 겸 주방, 화장실로 이루어진 공간에 서까래, 찻자리와 방석, 다도 식기, 조명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감성을 자아낸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는 소나무 숲, 프라이빗한 뒤뜰과 조적욕조에서 즐기는 아름다운 정원, 나만의 빔프로젝트 영화관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천년숲정원이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고두반

2.8Km    5358     2024-09-19

경상북도 경주시 대기실3길 11
054-748-7489

부부가 운영하는 랑산도요의 멋스러운 도자기를 이용해 직접 꾸민 좌식 실내에서 편안하고 오붓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마당 곳곳에 꽃과 나무, 건물 전체가 텃밭과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당 한 쪽에 가마솥을 걸어 전통방식으로 만든 다시마 손두부와 소나무 장작을 사용해 도자기를 직접 굽는 장작가마에 구운 소금으로 장을 담그고 요리한다. 도자기 전시실도 있어 식전이나 식후에 랑산도요의 아름다운 도자기를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다.

펜션600 캠핑장

펜션600 캠핑장

2.8Km    0     2024-07-23

경상북도 경주시 장골길 61

펜션600은 경북 경주시 동방동에 자리 잡았다. 경주시청을 기점으로 6㎞ 정도 자동차로 운전하면 15분 안팎에 도착한다. 이곳 캠핑장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자연 그대로를 체감할 수 있다. 더불어 카페, 세미나실, 수영장, 노래방, 족구장, 당구장 등 알찬 부대시설이 있어 캠핑 외에도 즐길 거리가 많다. 캠핑장에는 카라반 7대가 있다. 4대는 대형이며, 3대는 소형이다. 객실에는 침대, 소파, 테이블, 에어컨, 개수대, 취사도구, 식기류, 화장실, 샤워실 등이 비치되어 있다. 외부 전용 데크에는 비바람을 막아줄 어닝 아래 바비큐 시설을 완비했다. 캠핑장 주변으로는 보문관광단지, 첨성대, 황룡사지 등 경주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많다. 인근에 음식점도 많아 식도락을 즐기기에 좋다.

경주 망덕사지

2.9Km    18435     2024-02-02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망덕사는 679년(문무왕 19) 당나라가 신라의 사천왕사 창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신을 파견하자, 신라 왕실이 이를 속이려고 임시로 지은 절이다. 그 뒤 692년(효소왕 1)에 다시 지어 완공하였으나, 현재는 그 터만 낭산 남쪽의 사천왕사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망덕사지에는 동서 목탑터와 금당터, 강당터, 중문터, 회랑터 등이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쌍탑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남쪽에는 계단 터가 있고, 서쪽에는 망덕사지 당간지주가 자리하고 있는데 원래의 위치는 아닌 듯하다. 1969년∼1971년 3차례에 걸쳐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굴한 결과 현재의 금당 터는 축소된 것으로, 원래의 받침 부분 너비가 동서 방향으로 좀 더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탑이 있던 자리에는 받침돌 아래의 바닥돌과 계단의 바닥돌이 남아 있고 동탑에도 대부분의 주춧돌이 원래의 위치에 남아 있다. 중문 터와 동서 회랑은 받침 부분의 범위가 확인된 정도지만, 회랑은 일부 자연석 또는 벽돌로 된 받침돌만 확인되었다. 특히 금당과 회랑 사이에는 익랑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신라의 쌍탑 가람에서 익랑이 필수적이었음이 알려지게 되었다. 강당 터는 훼손이 심하여 받침 부분의 흔적조차 확인할 수 없으나, 주변에서 발견된 유구로 보아 조선시대까지 작은 암자 등이 자리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문 앞 경사진 곳에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거대한 돌계단이 있는데, 이것은 불국사의 경우와 같이 중문 앞에 규모가 큰 계단을 설치하는 방식이 당시 사찰의 일반적인 사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