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Km 2025-08-04
경상북도 경주시 경감로 375-16
엘로우는 경상북도 경주시 천군동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이다. 한옥과 현대식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보문호를 바라보며 음료를 즐길 수 있다. 카페에 계단과 유리 난간이 많은 탓에 안전사고를 방지하고자 내외부 모두 14세 미만은 입장할 수 없다. 대표 메뉴는 슬로우 커피이며, 바나나 푸딩, 쑥쑥페너, 아메리카노, 수제 바닐라빈 라테, 아인슈페너 등도 맛볼 수 있다. 인근에 보문관광단지가 있어 연계 여행이 수월하다.
5.8Km 2024-02-02
경상북도 경주시 후곡안길 13
경주시 동방동에 위치한 신라 제45대 신무왕(재위 839)의 무덤이다. 신무왕의 본명은 김우징이고 희강왕의 사촌 동생이다. 839년 4월에 청해진대사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 민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그 해에 병으로 죽었다. 무덤은 높이 3.4m, 지름 15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으로 주변에는 아무런 시설이나 표식이 없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자 이름을 [신무]라 하고 제형산 서북쪽에서 장사지냈다고 하나, 이 무덤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5.8Km 2025-03-16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로 182-27 경주한화리조트
054-777-8400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1979년 콘도미니엄 건설을 통하여 레저산업에 첫발을 디딘 이후 현재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직영 콘도 체인 및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범주의 푸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21세기 건전한 여가 생활문화 창조를 위하여 미래지향적 가치관, 다양한 레저시설 및 풍부한 운영 노하우를 기반으로 질적/양적 측면에서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최대의 국민 레저기업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한화리조트 경주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경주 보문 단지의 대표적인 숙박지이다. 연회장, 세미나실, 온천사우나, 자전거 대여, 볼링장, 옥외수영장, 슈퍼마켓, 노래방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체 객실 가운데 에톤(신관) 2객실, 담톤(본관) 2객실 모두 4개의 장애인용 객실이 있는데, 에톤만 침대 객실이다.
객실은 언제 들어서더라도 깨끗함과 안락함을 느낄 수 있도록 늘 준비되어 있으며 현대적인 감각에 발맞춰 모던하고 심플하게 꾸며져 있다. 넉넉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객실에는 다양한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으며, 고객을 한 번 더 생각하는 서비스를 통해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5.9Km 2025-07-03
경상북도 경주시 칠불암길 6
통일전은 삼국 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 경내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통일을 위한 격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화가 긴 회랑을 따라 전시되어 있다. 통일전은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만큼, 초·중등학생들의 이념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삼국 통일 당시의 전투 장면이 여러 액자에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며, 남산 답사 중 잠시 호국영령에게 참배하고, 넓은 잔디밭에서 쉬어가는 것도 좋다.
5.9Km 2024-12-31
경상북도 경주시 배리1길 3
남정 부일 기사식당은 경북 경주시 배동에 자리했다. SBS 백종원의 3대 천왕 등 여러 방송에 소개된 바 있다. 대표 메뉴는 짬뽕이지만, 중국집 짬뽕이 아닌 낙지, 돼지고기, 각종 채소, 양념장을 넣어 끓이듯 조리고 나중에 밥을 볶아 먹는 형태이다. 이 밖에 낙지볶음, 돼지볶음, 김치찌개로 유명하다. 간판은 기사식당이지만 일반 손님이 더 많이 찾는 곳이다. 음식점은 경주 IC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 관광지로는 경애 왕릉, 경주남산, 신라 월성대군 단소 등이 있다.
5.9Km 2024-07-24
경상북도 경주시 산업로 3549-30
경주 초우 오토캠핑장은 경상북도 경주시내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 IC로 나와 경주박물관 사거리를 거쳐 울산 방면 국도 7호선을 타고 진행하다 보면 ‘천선사’ 입석이 보인다. 거기서 우회전하여 농로(뚝방길)로 진입하면 큰 기와집이 보인다. 이곳이 ‘어성초 농장’을 겸한 캠핑장이다. 게스트하우스로도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곳은 어성초 농장과 오토캠핑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주변이 모두 농지다. 사이트는 A, B, C 구역으로 나뉘며, 오토캠핑 사이트 41개가 마련되어 있다. 가장 큰 장점은 경주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기 위한 최적의 입지조건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관광·캠핑을 목적으로 하는 방문객이 많이 찾고 있다. 인근에 경주박물관(차량 5분), 안압지(차량 5분), 불국사(차량 10분), 보문관광단지(차량 10분) 등 유명 관광지들이 있어 연계 관광이 용이하다. 주변에는 식당이 없고, 안압지나 보문관광단지 주변에 다양한 음식점들이 성업 중이다.
6.0Km 2025-03-05
경상북도 경주시 칠불암길 6 (남산동)
통일전 은행나무길은 경주시의 대표적인 가을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 정신과 화랑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이를 이어받아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 삼기 위하여 조성한 길이다. 근방에 삼국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건립된 통일 전부터 시작되어 직선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도로 양옆으로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형태이다. 은행이 절정으로 물드는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경주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외지인들도 많이 방문하기도 한다. 또한 통일전으로 올라가 누각 위에서 통일전 은행나무길 전체의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6.0Km 2024-05-31
경상북도 경주시 동방북1길 14
경주 동방동 와요지는 1977년 택지 조성공사 도중에 우연히 발견된 가마터로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발굴조사하여 9기의 도자기와 기와를 굽던 가마터를 발굴하였다. 그중 1기를 조사한 결과 가마의 전체 길이는 10.5m, 넓이 1.72m인 구릉 경사면을 이용하여 만든 굴가마(등요)로 밝혀졌다. 도자기를 굽던 곳의 천장 부분 벽 일부가 남아있으며, 도자기를 빚던 곳과 굽던 방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있다. 출토된 기왓조각은 고려시대에 성행한 새 깃털 모양 무늬와 연꽃무늬의 장식기와, 그리고 조선시대에 제작된 기와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마바닥에서 출토된 건륭이 새겨진 암막새는 가마터가 없어질 당시의 것으로 생각되며, 가마터의 제작시기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로 추정하게 한다. 가마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토기와 기와를 만들 수 있는 양질의 흙과 물, 그리고 구워내기 위한 연료가 필요한데 이곳 동방동 일대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교통로가 있어 운반도 용이하였기에 오랜 시간 도자기 생산을 담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6.1Km 2025-01-20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포석로 534-1
신라 월성대군 단소는 월성 박 씨의 후손 11위를 모신 곳으로 2005년 월성 박 씨 대종회가 조성했다. 월성대군은 신라 박혁거세의 29대손 경명왕의 8번째 왕자 박언의를 일컫는다. 박언의는 월성대군에 봉해졌을 당시부터 월성 박 씨의 시조가 된 인물이다. 신라 월성대군 단소엔 넓은 잔디와 다양한 식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여유롭게 산책이 가능하고 첨성대를 비롯해 경주 교촌한옥마을, 동궁과 월지 등이 가까이 있어 연계 관광도 용이하다.
6.1Km 2025-03-11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1길 17
문화관광과(관광홍보) 054-779-6079
관광안내소(경주역) 054-772-3843
신라 21대 소지왕이 서기 488년 정월 보름날 행차에 나설 때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말했다.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살피십시오” 왕은 장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동남산 양피촌 못 가에 이르러 장수는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풀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장수께서는 이 글을 왕에게 전하시오” 노인은 글이 써진 봉투를 건넨 뒤 물속으로 사라졌다. 왕이 봉투를 받아보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적혀있었다. 이를 본 신하가 말했다. “두 사람은 평민이고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킴이오니 열어보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왕은 신하의 조언에 따라 봉투를 뜯었다.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대궐로 간 왕은 왕비의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 갑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거문고 갑 속에는 왕실에서 불공을 보살피는 승려가 죽어있었다. 승려는 왕비와 짜고 소지왕을 해치려 한 것이었다. 왕비는 곧 사형되었으며 왕은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 연못은 글이 적힌 봉투가 나온 곳이라 해서 서출지라 부른다. 소지왕 10년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40년 전이다. 신라 눌지왕 시대에 묵호자가 불교를 전하러 왔으나 펴지 못했다. 소지왕 시대 아도 스님 역시 불교 전파에 실패했다. 법흥왕 15년 이차돈의 순교로 비로소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것이다. 당시 신라 귀족들은 민속신앙 특히 조상을 섬기는 신앙이 강해 쉽게 불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출지의 전설은 전통적 민속신앙 속에 새로운 불교문화가 전래되는 과정에 빚어지는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