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Km 2025-03-07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동
광안리 SUP Zone은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에 위치한 스탠드업 패들보드(SUP) 전문 체험 공간이다. 이곳은 바다 위에서 패들보드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맑고 푸른 바다와 광안대교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수상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다.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다양한 수준의 이용자가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전문 강사와 장비를 제공한다. 또한, SUP 외에도 카약, 윈드서핑 등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체험할 수 있어 여름철 인기 있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광안리 SUP Zone은 바다와 함께하는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최적의 장소이다.
11.8Km 2025-08-20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로405번안길 22-9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년) 4월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김해를 지키다 전사한 김득기, 송빈, 유식, 이대형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의 명으로 1871년에 건립한 묘단이다. 처음에는 동상동 873번지에 있었던 것을 김해의 도시계획으로 동상동 161번지 일원에 확장 이전하였으며, 매년 음력 4월 20일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0년(선조 33)에 이들은 모두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에서 김득기와 이대형은 이조참판, 유식과 송빈은 호조참판으로 각각 추증(追贈) 되었다. 이 중 김득기의 묘는 한림면에 있고 이대형의 묘는 상동면에 있다.
11.8Km 2024-06-10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로405번안길 22-9
송담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김해에서 의병을 일으켜 성을 지키다 전사한 4명의 의병장 김득기, 송빈, 유식, 이대형의 공을 기리는 묘단이다. 조선 선조 25년(1592) 부산에서 동래성을 함락한 왜적이 병력을 이끌고 김해성을 공격해 오자 당시 장군 서례원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니 네 의병장이 각기 의병들을 거느리고 성으로 들어가 적과 죽을힘을 다하여 싸우다 순절했는데, 이것이 임진의병의 시작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3년 만인 1600년 선조가 이들의 충절을 기리고자 각자 벼슬을 올려주고, 숙종 34년(1708) 지방 사림들의 도움으로 송담사와 송담서원을 세워 위패를 모셨다가 순조 33년(1833) 표충사라 이름하였다. 고종 8년(1871) 단을 설치하여 사충단이라 이름 짓고 비를 세웠으며 매년 음력 4월 20일을 제사를 지내고 있다. 현재 비각 이외에는 모두 새로 지은 건물들로, 비각은 앞면 1칸, 옆면 1칸의 규모로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의 선을 그리는 맞배지붕 형태를 띠고 있다.
11.8Km 2023-08-08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년) 4월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김해를 지키다 전사한 김득기, 송빈, 유식, 이대형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의 명으로 1871년에 건립한 묘단이다.
11.8Km 2025-03-16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150번길 21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김해향교의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김해읍지』에 의하면 옛 김해부 동쪽 다전동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향교가 있던 산이 무너져 숙종 14년(1688)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전체적인 배치는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앞에 있고 제사 지내는 곳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일반 향교의 배치와 비슷하다. 정문인 풍화루는 누형식의 건물이 아닌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된 1층 건물로 지어져 특이하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제사만 지내고 있다. 김해지방 향토사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향교이다.
11.9Km 2025-03-19
경상남도 김해시 전하로 269-74
* 김해를 번성하게 해주는 절, 흥부암 *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국을 하는 김해 임호산(林虎山) 꼭대기 가파른 자리에 위치한 가야불교의 성지 흥부암(興府庵)은 가락국의 수로왕 때 장유화상(長遊和尙)이 도성의 흥성을 빌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신비로운 땅 ‘가락국’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예로부터 그 형상이 거북, 용, 호랑이 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김해 사람들은 언젠가는 이곳에서 수로왕 이후 사라진 훌륭한 임금이 다시 나올 것으로 믿고 있다. 이러한 기운을 간직한 임호산은 유민 산유민산, 가조산, 호구산, 안민 산안민산, 봉명산, 임오산임어산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데, 임호산(林虎山)은 이름 그대로 생긴 모양이 호랑이 머리와 같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특히,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김해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는 형상이라 사람들이 불안함을 느껴 그 입을 막아 주기 위하여 흥부암을 지었다고 한다. 곧 김해 지방이 흥하게 된다고 하여 흥부암(興府庵)이라는 절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옛 가야인들은 이곳에 도읍을 정할 때 이미 임호산의 사나운 기운을 느끼고 수로왕의 처남으로 허왕후를 따라 아유타국에서 온 장유화상이 절을 지어 가락국(김해)의 나쁜 기운을 눌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820년 곽기형이 쓴 흥부암 중수기에도 이 같은 내용이 언급되어 있는데, ‘김해의 오른쪽 안민산은 읍의 백호로 옛날 풍수사가 이 산에 나쁜 바위가 있어 읍에 이롭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절을 세워 그 험함을 가렸다’라고 적고 있다. 흥부암이 풍수지리적으로 창건되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에 새로 지은 대웅전의 주춧돌도 호랑이 석상이라는 사실이다. 흥부암 자체가 호랑이 입막음인데, 거기에 더해 호랑이 모양의 주춧돌을 대웅전 기둥 아래 놓아 아예 호랑이를 꼼짝 못 하게 짓누르고 있다. * 흥부암의 창건배경 및 역사 * 옛 가야국의 중심지인 금관가야의 중앙에 위치한 흥부암은 허황후 오빠인 장유화상이 서기 48년에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하고 있다. 임호산의 풍수지리적 조건에 따라 가야국의 흥성을 빌기 위해 장유화상이 수로왕의 명을 받아 보탑을 세우고 절을 세웠다고 한다. 오랫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1700년 조선 숙종 때 새로이 중수하였는가 하면, 1760년 영조 때에도 중수를 하였다고 한다. 이어 1820년 조선 순조 때 부사 유상필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법당 등의 전각을 중건하였으며, 19세기 중반에 김해 부사 정현석이 중창을 하여 법당을 중건하였는데, 당시에는 가람이 지금의 산령각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85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89년 복원하였고, 1997년 부임한 주지 혜운 스님이 부설 김해불교대학을 운영하면서 김해인의 중심적 기도처이며, 가야 불교문화의 대표적 사찰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