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양지(위양지 이팝나무)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위양지(위양지 이팝나무)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위양지(위양지 이팝나무)

위양지(위양지 이팝나무)

8.9Km    2025-04-14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로 273-36

위양지(位良池)는 ‘선량한 백성들을 위해 축조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이 이름은 근래에 바뀐 이름으로 본래 이름은 양양지다. 신라 때 축조됐다는 양양 지는 논에 물을 대던 수리 저수지였지만 인근에 거대한 가산저수지가 들어서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 그러나 논에 물을 대는 대신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또한 밀양 팔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인기 여행지로 저수지 둘레를 따라 웅장한 기둥을 자랑하는 이팝나무 군락이 사계절 멋스러운 풍광을 뽐낸다.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은 위양지의 절정이다. 맑은 날에는 못에 비친 이팝나무 꽃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예부터 이팝나무는 한 해의 풍년을 점치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는데, 만발한 꽃송이가 마치 하얀 쌀밥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름드리 왕버드나무와 소나무들로 울창한 숲을 두르고 있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운치를 즐길 수 있고 연못에 떠 있는 섬 하나에 1900년에 지어진 안동 권 씨 문중 소유의 정자 완재정은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더한다.

소곡서당

소곡서당

9.1Km    2025-03-16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우천길 111

소곡서당은 1650년경 창건된 소곡서원이 창건 200여 년 후 퇴락됨에 따라 1856년 당초 서원 터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북쪽 산기슭에 지금의 소곡서당을 건축하고, 청민공, 노변소, 만취공, 참봉, 노침, 절효공, 진사, 노홍언 3인을 합향하다가 대원군의 서원 훼철 시 피해를 입었다. 소곡서당의 현 배치형태는 튼ㅁ자 형으로, 남북축선 상에 대문채와 강당을 두고, 그 정면 좌우에 관리사와 영사정이 자리 잡고 있다. 경내 영사정은 1825년에서 1830년경에 창건된 건물로, 1925년에 강당 동편으로 옮겨 중건되었으며, 1998년에 지붕 등을 크게 수리하였다고 한다. 1998년 강당 서편에 있는 관리사를 크게 수리함과 동시에 강당의 한식기와를 철거하고 대신 근년에 공장에서 암수 일체형으로 생산되는 간이기와를 매입하여 보수하였다. 대문채는 2000년에 정면 5간, 측면 1간 규모로 신축한 건물이다. 소곡서당과 관련하여 남쪽 500여 미터 지점에 청민공묘(기념물 153호)가 자리 잡고 있고, 북쪽 500m 지점에는 절효공 노침의 묘가 있다.

풍각장 (1, 6일)

풍각장 (1, 6일)

9.5Km    2025-09-09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송서5길 10-1
054-370-6704

1925년 시장 개시 이래 풍각 지역 상권의 중심지 역할을 해오면서 70∼80년대에 가장 번성하였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 5시까지 풍각 홍고추, 수박 등 지역 특산물과 각종 일용잡화들이 거래되고 있으며, 94년 장옥을 새로이 정비하여 시골 사람들의 정보교환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이 지역의 특산물은 풍각 토종 고추, 차산 수박, 청도 반시, 복숭아, 양파가 유명하며, 전통식품 가공공장에서 빛고을 된장, 조선 된장, 풍년 된장, 고추장, 메주, 간장, 마실 감식초, 청도 감식초, 생칼국수가 생산되고 있다.

청련사(창녕)

9.6Km    2024-04-30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 계성화왕산로 288-102

영취산의 북녘 기슭에 자리한 청련사는 영취산에 있던 대흥사(大興寺)의 작은 암자로 세워졌으며, 대흥사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암(東庵)이라 불려왔다. 대흥사는 청련사뿐만 아니라 인근의 극락암(極樂庵)ㆍ삼성암(三聖庵)의 기록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일대의 많은 암자들을 거느릴 만큼 사격이 높았던 듯하다. 따라서 청련사의 중창주 덕암(德庵) 스님 또한 사라져버린 대흥사를 아쉬워하며 퇴락한 암자를 새롭게 일으켜 세울 목적으로 법당을 창건했을 것이다. 현재 청련사에 남아 있는 현판 자료에는 하나같이 청련암 앞에 ‘영산 대흥사’를 붙이고 있어, 대흥사는 이미 폐허가 되었지만 청련암이 그 법등을 잇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사중에 전하는 1842년(헌종 8)의 중창기(重創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어, 청련사가 자리한 자연적 입지를 짐작게 한다. 좌우에 둘러 있는 봉우리들이 높이 솟아 있어 마치 많은 별들이 북두성을 향하는 것과 같고, 앞뒤로 흐르는 골짜기 시내가 잔잔하여 수많은 옥가루가 허공에서 부서져 내린 듯하다. 이는 반드시 하늘이 아까워 숨겨놓은 곳이며 땅이 내보이기 인색하게 숨겨놓은 명승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가람을 세워 법당을 창건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표충비

표충비

9.6Km    2025-12-17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동부동안길 4

밀양시 무안면 홍제사 경내에 위치한 비각으로 사명당 송운대사를 일명 사명대사비라 부른다.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을 이끌어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일본에 전쟁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3,000명을 환국 시킨 유정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즉 표충사의 동쪽인 이곳에 1742년(영조 18) 대사의 5대 법손 남붕이 경산에서 갖고 온 돌로 건립하였다. 비신과 화강암의 비개를 갖추었고, 경주석재인 빗돌은 까만 대리석이며 좌대석과 이수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뒷면에는 서산대사 휴정[休靜]과 기허[驥虛]대사의 행장[行狀]이 새겨져 있고 측면에는 표충사[表忠祠]에 대한 내력을 새겼다. 비문의 내용은 영중추부사 이의현이, 글씨는 홍문관 부제학 김진상이 쓰고 판중추부사 유척기가 전서하였다. 표충비가 유명해진 이유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비신에서 땀이 흘렀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마치 구슬처럼 흐르는데 이것을 두고 이곳 사람들은 나라와 겨레를 존중하고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 하여 신성시한다. 그래서 ‘땀 흘리는 표충비’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밀양 얼음골과 만어산어산불영경석과 함께 밀양의 3대 신비로 일컬어진다.

홍제사(밀양)

홍제사(밀양)

9.6Km    2025-12-17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동부동안길 4

홍제사는 조선시대 승병장인 사명대사의 표충사당과 표충비각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사당 수호사찰이다. 그 연혁은 자세하지 않으나 이곳 무안에 표충비가 세워진 1742년(영조 18)에 사명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찰로 알려져 있다. 무안면은 사명대사의 출생지이기도 하며 사명대사가 창건한 백하암이 있던 곳으로, 홍제사는 사명대사가 입적한 뒤 백하암에 세웠던 표충사의 후신이다. 백화암은 병자호란으로 그 내부에 있던 사당이 퇴락하자 1710년(숙종 36) 밀양부사 김창석이 사명대사의 영정을 봉안하는 영당을 짓고 사당을 정비하였다. 이후 표충비각의 창건주로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태허당 남붕선사가 나라로부터 표충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으면서, 현재의 터에 표충비각을 세우고 백화암에 있던 사당을 홍제사터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사당 수호사찰로 명맥을 유지다가 1838년(헌종 4)에 표충서원이 사명대사의 8대 법손인 천유대사의 주도로 재약산 아래 영정사로 옮겨지면서, 비각을 독자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자그마한 원당과 삼비문을 형성하여 현재의 가람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비각의 관리는 표충사 승려가 번갈아 파견되어 담당하다가 일제 때에는 대처승이 허물어진 원당과 요사를 헐고 현대식 법당과 요사를 지어 포교당으로 삼고 비각을 보존하기도 하였다. 광복 후에는 구연운 화상이 비각의 관리를 맡아 비각과 법당을 중수하였으며, 그 뒤 거의 폐허가 되어 표충비만 남게 되었다. 1977년에는 창건주 한월 동조선사가 홍제사라는 이름으로 재창건하여 국가의 지원으로 표충비각을 중수하면서 현재의 가람을 이룩하였다. 1978년에 표충비를 보호하는 보호각을 건립하고 그 주위로 담장, 삼비문과 비각을 수호하는 인법당 등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연경장엽 선사가 경충당을 건립하였고, 1981년에는 현재 요사로 쓰고 있는 인법당을 축대 아래로 내려 현재의 설법보전을 신축하였다. 1981년부터 수년간 홍제사 2대 중창주인 정상 스님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도움으로, 주법당인 설법보전과 사적비, 범종각, 경충당, 요사 등 현재 홍제사의 가람 기틀을 이룩한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는 표충비각의 수호사찰로 밀양시가 추진하고 있는 사명대사 성역화작업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가의 중대사나 위기 때마다 표충비에서 땀이 흘러 '땀 흘리는 비'를 지키는 사찰로 전국에 알려져 있기도 하다.

대법사(밀양)

대법사(밀양)

9.7Km    2025-06-25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서로 163-158

경남 밀양시 일대에는 사명대사의 전설이 구석구석 배어 있는 지역으로, 땀 흘리는 표충비, 사명대사 생가 유적지, 표충사 등이 있다. 영취산 대법사에는 사명대사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 놓은 것이 자라나 잎을 피웠다는 아름드리 모과나무 한 그루가 대법사 경내 보광전 앞 마당에 서 있으며, 나무 밑동이 어른 두 사람이 양팔을 벌려야 마주 잡을 정도로 큰 모과나무이다. 대법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사명대사가 머물렀던 사찰로 열반 후 영정을 모신 곳이라 해서 조정에서 표충사라는 이름을 하사하여 표충비를 세우고 사당을 세웠다가 후에 영정이 단장면의 현 표충사로 모셔지는 바람에 대법사라 하였다고 한다. 초창기 학 세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하여 백하암이라는 사명으로 불리던 이 사찰은 사명대사의 위상 덕에 오랫동안 국가의 관심 속에 중건을 거듭해 왔으나, 국난의 영향과 조선조의 억불숭유 정책 등으로 인해 폐사되었다가 1968년 조실 지혜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대대적인 중창 불사를 통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9.7Km    2025-09-17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로 55-12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1.37m이다. 큰 바위에 앞면을 돌출되게 조각한 마애불로 바위 자체를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로 이용하고 있다. 민머리 위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육계)이 있으며, 둥근 얼굴에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온화한 인상을 풍긴다. 어깨는 넓게 벌어져 있고, 팔과 가슴은 넓지만 볼륨이 약화되어 차분한 느낌을 준다. 왼쪽 어깨를 감싸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면서 입은 옷은 얇게 신체에 밀착되었는데, 형식적으로 처리된 계단식의 옷주름 때문에 사실성이 떨어진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끝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으로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대체로 이 석불은 얼굴이나 얇게 밀착된 옷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 계열의 양식을 이어받은 작품으로 보이지만, 석굴암 불상보다는 사실성이 떨어지고 힘이 빠져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양식을 보여준다.

무안시장

무안시장

9.8Km    2025-06-25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사명로 510-7
055-359-5052

무안장은 경상남도 밀양시에 위치한 전통 재래시장으로, 주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임산물을 중심으로 판매하고 있다. 2012년에는 현대화 사업을 통해 시장 환경이 대폭 정비되어 지금의 쾌적하고 편리한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매달 1일과 6일로 끝나는 날마다 열리는 오일장이며, 장날이 되면 시장 곳곳에 다양한 노점상이 들어서 활기를 더한다. 이 오일장에서는 과일, 채소, 곡식 등 농산물은 물론, 의류, 신발, 생필품 등도 함께 판매되고 있다. 상인 대부분이 지역 주민으로, 판매뿐만 아니라 이웃 간의 소통의 공간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동부식육식당

9.8Km    2025-03-17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중앙길 5
055-352-0023

밀양 3대 국밥집 중에 하나인 이곳은 밀양 돼지국밥의 원조집이라 불리는 곳으로 맑고 깨끗한 국물에 잡내 없이 담백한 그 맛이 참으로 시원하다. 거기다 푸짐하게 담긴 쫄깃쫄깃한 고기의 육질 또한 이 집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데, 특별한 기교 없이 새우젓 하나로 간을 맞춰 먹는 이곳의 국밥. 은근히 입맛을 당기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