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Km 2024-04-29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장년층의 애창곡 가운데 [비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이 만들고 1946년에 가수 현인이 불러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이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된 곳 고모령에 가면 비 내리는 고모령의 노래비가 있으며, 노래비 뒷면에는 노래비를 세운 사연이 적혀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눈물 어린 인생 고개 몇 고개이더냐 장명등이 깜박이던 주막집에서 손바닥에 서린 하소 적어 가면서 오늘 밤도 불러 본다 망향의 노래]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고 하여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게 되었는데 현재의 모봉, 형봉, 제봉이라는 3개의 산봉우리가 되었고 동생과 형이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하여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는 죄스러움으로 집을 나와 버렸다.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이며 정상에 와서 집을 향해 뒤돌아 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 어미 모(母)를 합쳐 고모라는 마을 이름도 이곳에서 나왔다. 지금은 경부선 때문에 산은 잘렸고 망우공원에서 파크호텔 팔현부락을 거쳐 고모역으로 이어지는 옛 고갯길이 이어져 있다.
12.8Km 2024-07-25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금호강변에 자리하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큰 전공을 세운 곽재우 장군의 호로 공원명을 지었다. 임진왜란 때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른 의병장이자 경상도 방어사, 함경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홍의장군 곽재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조성하였다. 망우당공원 내 망우당 기념관은 곽재우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으며 금호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가장 높은 곳에 말을 타고 군대를 이끄는 모양으로 조성된 홍의장군 동상 받침돌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홍의장군 곽재우 선생상'이란 한자 휘호가 새겨져 있다. 도로변에 있는 임란호국영남충의단에는 의병 관련 내용이 상세히 전시되어 있다. 공원 잔디밭에는 한국 현대서예 10대 작가인 소헌 김만호(1908~1992)의 예술비가 있으며 서상일이 건설한 근대교육의 산실이자 대구 독립운동의 대표 유적지인 조양회관이 이전 복원되어 있다. 회관 옆으로는 1945년 광복을 상징하기 위해 45m로 조성된 대구경북 항일독립운동 기념탑이 있다. 공원은 현재 임진왜란, 항일운동, 6.25 전쟁, 베트남전쟁의 역사 속 모습을 한 번에 담고 있어 가볍게 산책하며 역사적 의미를 새길 수 있고 더불어 호국충절의 정신을 기리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2.8Km 2024-07-23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헐티로2길 26
불향 가득한 돼지불고기로 유명한 맛집이다. 대구에 사는 사람들은 도심을 벗어나 가창으로 나들이를 나갈 때 들러 보기 좋다. 대구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도 많다. 대표 메뉴인 돼지불고기 외에도 육수가 진하고 면발이 쫄깃한 칼국수가 별미다.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오후 8시에 마감한다. 휴무는 매주 일요일이다.
12.8Km 2024-10-17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30길 10
053-985-5478
‘쉬어가는 집’은 불로동에 있는 코다리찜 전문 음식점이다. 메뉴에는 코다리찜, 낙지볶음, 도루묵찌개, 도루묵구이, 돼지껍데기, 양념닭발, 계란말이 등이 있다. 대표메뉴인 코다리찜에 콩나물을 함께 넣어 먹으면 매콤함과 시원한 식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고 남은 양념은 하얀 쌀밥과 함께 비벼 먹으면 맛이 좋다. 주꾸미 사리는 코다리찜 양념과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12.8Km 2024-02-05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조길방길 92-1
원래 대구 동촌 비행장 근처에 살던 현 소유자의 10대조가 조선 중기 난리를 피하여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로 들어와 정착하면서 지은 초가집이다. 해발 고도 450m 경사가 급한 산기슭에 자리한 한덤마을에 있다. 1784년(정조 8)에 건립한 함안 조씨가 살았던 집으로 안채는 정착 당시 건립한 건물이며, 사랑채와 아래채, 부속채는 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안채 종도리 하부에 [성상 재위 구년 갑진 이월 십구 일 묘시 견주 미시 상량]이라는 묵서명이 있어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다. 안채를 중심으로 좌·우측에 사랑채와 아래채가 위치하여 전체적으로 [ㄷ]자 형태이다. 달성 조길방 고택은 삼량 구조로 결구 된 초가로, 초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안채의 마루 정면에 원기둥을 사용하여 대량과 원초적인 상투걸이 수법으로 결구 되었으며, 특히 안채의 창호 규모와 성격은 주택 발달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12.8Km 2024-08-30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26길 9-1
053-982-8588
대구 국제공항을 지나 팔공산과 파계사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불로장은 1930년대부터 형성된 시장으로 상설시장과 함께 5일장이 서는 곳으로, 1980년대 초반까지 경상북도 5대 오일장에 들 만큼 상권이 활발하게 발달된 시장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상설로 운영되는 가게가 130여 개나 되어 장날 외에도 장보기 좋으며 매월 5일과 0일에 개설되는 오일장에는 여러 상인들이 모여 가판대를 형성하여 더욱 많은 상품을 선 보인다 특히 타 시장과 차이점으로는 고객안내센터, 휴게실, 수유실, 유아놀이방 등을 갖추고 있고 시장 내 상설공연장이 있어 장날이면 비정기적이긴 하나 공연관람도 가능하다. 또 지역 특산물인 반야월연근과 팔공산 청정미나리 등은 불로장에서 싱싱하게 구입이 가능하고 재래시장의 또 다른 즐길거리인 먹거리는 추어탕, 무침회, 코다리찜 외에 직접 손으로 미는 칼국수와 닭발구이도 유명하다 근처에는 불로동고분군을 비롯하여 봉무공원, 도동 측백수림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불로장은 다양한 먹거리 외에 주요 관광지와 맞닿아 있는 곳이라 전통시장의 분위기와 더불어 관광객이나 지역민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12.8Km 2023-10-17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47길 38
053-986-7424
이시아호텔은 복합산업단지 이시아폴리스 최중심에 위치한 신개념 호텔로,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감성적 디자인이 돋보인다. 복합테마파크는 이시아롯데몰 옆에 위치하고 있어 영화와 쇼핑, 외식, 문화시설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대구국제공항에서 10분, 팔공산 IC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다. 또한, 봉무동 팔공산 도입에 자리하여 주변에 문화재와 유적지, 관광지, 휴식공간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 즐길거리와 휴식이 공존하는 도심 속의 문화공간이다.
12.9Km 2024-08-16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대구 토성을 돌로 다시 쌓은 후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이다.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이 비는 직사각형으로, 바닥 돌 위에 비몸을 세운 간단한 모습이다. 비문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2,124보이며, 네 개의 문을 만들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군량, 전포 등을 갖춘 창고를 두었다. 석성의 공사 기간은 6개월이며, 동원된 인원은 78,534명에 달한다. 성이 완성된 뒤에는 여러 장사들을 모아 활쏘기 대회를 열어 상을 주었다 한다. 경상도 관찰사였던 민응수가 나라에 건의하여 영조 13년(1737) 대구 남문 밖 관덕정지에 세워두었으며, 민응수가 비문을 짓고, 백상휘가 글씨를 썼다. 1906년(고종 10) 당시 대구 군수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헐고 도로를 만들면서 옛 달성군청(현재 대구 백화점)에 옮겼으며 이를 다시 1932년에 대구향교에 이전 보관되어 오다가 1980년에 현재의 위치인 영남제일관으로 옮겨져 대구부수성비와 함께 보존되어 있다.
12.9Km 2024-08-16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대구부수성비는 1869년(고종 6) 8월에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로 부임한 김세호가 1870년에 대구부성을 보수하고 그 사실을 기리고자 세운 비이다. 대구부성은 영조 때 경상도 관찰사 민응수가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쌓았다. 그 후 성이 오래되어 성벽이 훼손되었지만 제대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김세호가 1870년(고종 7) 봄에 보수공사를 시작하여 11월에 공사를 마치고 이러한 과정을 대구부수성비에 기록하였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에는 공사에 관한 내용과 유공자에게 상을 내린 일이 적혀 있다. 관찰사 김세호가 직접 비문을 짓고, 당시 공사 책임관이었던 최석로가 글씨를 썼다. 광무 10년(1906) 대구부성이 헐리면서 갈 곳을 잃었다가 1932년 대구향교 경내로 옮겨 놓았고, 1980년 영남제일관을 재현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대구부수성비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인 영영축성비와 함께 서 있다.
12.9Km 2024-08-08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대구 읍성은 1590년(선조 23년)에 처음 만들 때는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뒤 1736년(영조 12년)에 돌로 다시 쌓아 석성(石城)으로 만들었다. 성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정문을 두었는데, 동문은 진동문(鎭東門), 서문은 달서문(達西門), 북문은 공북문(拱北門)이라 하였다. 그리고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은 이곳의 남문이었다. 1906년 읍성이 철거될 때 성문들도 함께 철거되었다. 영남제일관은 1980년에 만촌동 현 위치로 그 자리를 옮겨 중건한 것으로, 형태는 처음의 모습을 참조하였으나 규모는 원래의 것보다 더 크다. 영남제일관은 역사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대구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도 애용되고 있으며 야경의 모습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