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970.5M    17654     2024-09-23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지산리 당간지주는 3.14m의 높이의 당간지주로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산동 민가 안에 있는데, 그 일대가 부락으로 변하여 옛 절터를 찾아볼 수 없으나, 원위치에 원상태로 70cm의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을 미루어 당시 이 일대가 대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외면의 모서리를 죽이고 종문를 조각하여 매우 장식적이고 화려한 의장 수법을 보이고 있다. 지주의 정상부는 뾰족하고 바깥으로 내려오면서 3단의 굴곡을 활 모양의 선으로 처리하였으며, 지주의 안쪽에는 간공 2개가 있는데 이들은 장방형의 형태로 구멍을 뚫어 간을 끼우도록 하였다.지산동 당간지주는 상·하부의 크기가 거의 같아서 약간 둔중한 인상을 주지만 지주의 바깥둘레 각 면의 조각장식 수법으로 보아 가작[佳作]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단아한 조각이나 솜씨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조각기법과 다듬은 돌 등을 보아 통일신라시대 중기(8세기경)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되어 진다.

소문난할매국밥집

소문난할매국밥집

978.1M    1     2024-02-29

경상북도 고령군 시장길 41

소문난할매국밥집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시장에 위치한 국밥 맛집이다. 장날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소문난 맛집이다. 투박하고 구수한 옛날 국밥 형태로 고기 양이 많고 국물 맛이 진하다. 오전 7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여행길에 아침 식사를 하기 좋다. 돼지국밥과 순대국밥을 비롯하여 모듬국밤, 암뽕국밥, 술국 등이 있다.

고령 대가야 카라반

고령 대가야 카라반

1.0Km    0     2023-11-01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신남로 61

고령 대가야 카라반은 대구에서 차량으로 1시간 이내에 위치한 카라반 전용 캠핑장이다. 4인용으로 넉넉한 카라반이 총 10개 운영되고 있고, 승마체험장이 함께 있는 테마형 캠핑장이다. 카라반마다 바비큐를 즐길 수 있도록 데크에 개별 천막과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어 편리하다. 투숙 시에 승마, 국궁, 마차 체험 등이 할인되며,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넓은 잔디광장을 비롯 수영장, 동물원 등 아이들이 놀기 좋은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 캠핑객이 많다.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 모형관

1.1Km    0     2024-09-12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벽화길 104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은 가야 유일의 벽화 고분으로 1963년 발견 된 이후 내부훼손이 많이 진행되어 2015년 영구 폐쇄결정이 내려졌고 고분 내부 관람이 어려워지자, 2016년부터 모형관 건립 사업을 시작하여 2022년 개관하였다.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 모형관은 무료로 운영되며 벽화 고분에 담긴 찬란한 가야지역의 역사를 미디어아트 등으로 즐길 수 있다.

카페포카오

카페포카오

1.1Km    0     2024-08-15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신남로 47

편안하게 아로마 향을 즐기며 피로를 풀 수 있는 족욕 카페다. 맞춤형 족욕 카페로 본인의 컨디션과 선호에 따라 오일을 선택해서 즐길 수 있다. 간단한 어깨 마사지와 뜨끈한 찜질팩도 함께 제공 받을 수 있다. 고령군 대표 관광지를 마지막 코스로 선택해 피로를 풀고 힐링을 할 수 있는 카페다. 고령군에서 나온 제철 재료로 만든 음료와 디저트를 즐길 수도 있다. 가족, 연인 등 모든 연령대가 이용 가능하며 단체 손님도 가능하다.

고령향교

1.1Km    18534     2023-11-17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향교길 29-18

고령향교는 그 창건 시기와 위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413년 고령 지역에 현감을 파견한 것으로 보아 이때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건립 이후 4차례 정도의 이건을 거쳤다. 임진왜란 때 위패만 주산 아래에 묻었는데 난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복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676년에 매몰기지에 중건하였으나 터가 불길하다 하여 1702년에 당시 현감 구문유가 현재의 장소로 이건하였다. 건물터 개척 당시 옥기와, 연화 기와 등이 나왔고 흰 까치가 집 주위에 날아다녔다 하여 길지로 여겼다. 경내에는 대성전. 명륜당 및 동무·서무·빈흥재. 내삼문. 외삼문. 관리사. 협문 등이 있다. 대성전과 명륜당은 1700년대 초 건축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고 명륜당은 한말에 학교로 활용하였기 때문에 창호 등이 다소 변형되었다. 1974년에 완전 해체하고 복원한 명륜당은 일제강점기에는 지금의 고령 초등학교 전신인 고령 보통학교와 더불어 학교의 역할을 하였다. 현재는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성현들에 대한 제향 기능만을 담당한다. 제향은 매년 춘추 중월 상정일에 제행한다. 고령향교에서는 문화재청에서 진행하는 향교의 활성화와 유교문화 계승 보급을 위한 향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 인문철학을 주제로 한 일반인 대상의 인문강좌와 초, 중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역사, 문화재 스토리텔링 그리고 외국인 교환학생과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대가야 문화역사체험 투어가 있다.

대가야기마문화체험장

대가야기마문화체험장

1.2Km    1     2023-11-07

경상북도 고령군 신남로 61

대가야기마문화승마체험장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창의적 체험활동과 일반인 승마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전통 말 문화를 선도하는 테마형 승마체험장으로 다양한 승마체험활동과 대가야 기마무예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전통문화 체험과 역사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주변 관광지 대가야생활촌,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 대가야 박물관, 왕릉전시관, 대가야 문화를 견학하고 탐방할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과 가족과 함께 농촌문화체험과 전통 농기구 전시장, 농작물 재배장을 탐방할 수 있다. 10개의 카라반 시설이 있어 어린이 청소년의 창의 인성 발달과 대자연 속에서 승마와 카라반 체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도암서원(고령)

1.2Km    2371     2024-06-1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칠등길 138

김면 장군 유적지 내에 위치한 도암서원은 김면 장군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서원이다. 1666년에 건립된 도암서원은 초기에는 대가야읍 연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후 1789년에 쌍림면 고곡리의 현재 위치로 이건 하였으나,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서원이 훼철되면서 1903년 문중의 주도로 도암서당으로 사당 왼편에 건립되었다. 그 후 1907년 지방 유림들이 도암서당 유계를 조직하여 해마다 곡식을 내어 김면의 묘사를 지냈으나 1910년 이후 없어졌다. 문중에서 1975년 도암재를 건립하여 문중의 재실로 사용하다가 2002년 고령 내 유림들이 발의하여 이 건물을 도암서원으로 복원하였다. 김면 장군은 1541년에 태어난 학자로 참봉, 공조좌랑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종도, 문위 등과 거창, 고령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적군 10만과 우지에서 대치하여 적을 격퇴하고 무계에서 승전하였다. 그 공으로 합천 군수로 임명되었으며 의병대장의 칭호를 받았다.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607년 이조판서에 가증되었다.

김면장군유적

1.2Km    18009     2023-11-13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칠등길 138

김면 장군 유적은 쌍림면 고곡리 칠등마을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 있다. 조선 중기의 무신 김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설립된 유적으로 묘소에 신도비와 망주석 2개가 있고 도암서당, 도암재, 도암사당, 2층 누각인 상평루, 교지 4장 등이 있다. 김면은 호가 송암이며 1541년에 태어난 학자로 참봉, 공조 좌랑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든 몸에도 불구하고 거창, 고령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적을 격퇴하고 승전하는 등의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합천 군수가 되고 의병 대장의 칭호를 받았다. 후에 곽재우 장군이 [영남을 보존할 분은 이 분 뿐이다]며 그의 인품에 탄복하였다고 한다. 여러 달 동안 의갑을 풀지 않았으며, 1593년 경상도 병마절도사로 임명되어 충청·전라의 의병과 함께 금산, 개령에 진주하였다. 1593년 병사하였고, 이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1607년 이조판서에 가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