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용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충용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충용사

0m    1910     2023-12-15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광로114번길 113

충용사는 의당 박세화를 봉안한 사당으로, 1964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맛배 지붕 목조 기와집으로 건립, 충용사라 편액을 달았으며, 솟을삼문은 광제문이라 하였다. 충용사에는 의당 박세화, 회당 윤응선, 직당 신현국, 명와 정규해를 배향하고 있다. 박세화는 1895년 을미사변으로 일본인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되자 윤응선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1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지자 망국의 비분을 참지 못하여 자결한 순국열사이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추서되었다. 음성 가섭산 남쪽 자락에 있으며, 홍삼문은 상시 개방되어 있으나 내부 관람은 행사 시에만 가능하며 낮은 담장을 통해 충용사를 구경할 수는 있다.

충강공 이상급 신도비

10.4 Km    14442     2023-12-13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504

충주 이상급 신도비는 충주시 주덕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강공 이상급(1571∼1637)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이다. 이상급은 선조 39년(1606) 문과에 급제한 후 형조 좌랑, 평안도 도사를 역임하였다. 그 후 벼슬을 버리고 학문 연구와 후진 교육에 힘썼다. 인조반정 후 다시 단천 군수, 연안부사 등을 역임하고 병조 참지가 되어 군비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왕을 모시다가 강화도로 가던 중 적병에게 피살되었다. 사후에 이조판서의 벼슬로 추증되었고 순조 때 [충강공]의 시호를 받았다. 8각 석주형의 이 신도비는 숙종 40년(1714)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 비의 받침돌은 8면인데 6개 면에는 꽃무늬를, 마주 보는 두 면에는 동물의 모습을 조각하였다. 받침돌 윗면에는 큼직한 꽃잎을 새겼고 그 위에 8각 기둥형의 비신을 세웠다. 이 비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비 몸체와 머리 부분인 이수는 하나의 돌로 구성되었다. 이수의 앞, 뒷면으로는 두 마리의 용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비신이 8각형인 점에서 형태가 특이하고 조각 수법이 뛰어난 작품이다. 바로 옆에 푸르른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그의 기상을 나타내는 듯하다.

(주)마치공작소

(주)마치공작소

10.4 Km    0     2024-06-20

충청북도 충주시 마치4길 9-6

주식회사 마치공작소는 충주의 서부쪽에 위치한 옛 말죽거리인 마치마을에 위치한 공작소다. 골드러쉬라는 행복을 찾아 서부로 떠난 개척자들 처럼 공예가들이 행복을 찾아 충주의 서부쪽인 마치마을로 정착하여 공예로 행복한 마을을 만들고 있는 로컬기획자와 로컬 공예가의 체험장이다. 다양한 공예 체험거리가 있고 농촌 지역 다운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는 아이디어 넘치는 충주의 대표적인 관광두레 주민사업체이기도 하다. 충주에서 휴식과 충주의 멋을 그리고 기발한 상상력 기반의 지역 정착기를 들려주고 체험해보는 곳이다.

네이스트 프라이빗

네이스트 프라이빗

10.7 Km    0     2024-05-23

충청북도 음성군 덕생로 167-15

네이스트 프라이빗 음성은 충북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자리 잡았다. 음성군청을 기점으로 10km가량 떨어졌다. 자동차를 타고 음성로와 덕생로를 번갈아 달리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15분 안팎이다. 캠핑장에는 파쇄석으로 이뤄진 일반캠핑 사이트 14면이 마련돼 있다. 사이트 크기는 가로 10m 세로 10m로 널찍하다. 글램핑 6개 동도 운영 중이다. 내부에는 침대, TV, 취사도구, 화장실, 샤워장 등이 갖춰져 있다. 주변에는 백야자연휴양림이 있어 연계 관광에 나서기 좋다. ※ 반려견 동반 불가능

괴산 삼방리 삼층석탑

10.8 Km    14322     2024-02-01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삼방연지길 49

1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의 석탑이다. 기단부는 대석 위에 갑석을 올렸는데 갑석의 윗면에는 2단의 탑신괴임이 있다. 대석의 면석에는 양우주와 1탱주를 모각하였고 각층 탑신에는 양우주를 정연하게 각출하였다. 각층 옥개석 낙수면의 물매는 비교적 급한 편이며 층급받침은 모두 4단이다. 탑신부는 각기 다른 석재로 만든 탑신석과 옥개석을 번갈아 3층으로 쌓았고 위층으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진다. 팔작지붕처럼 생긴 옥개석은 윗면의 경사가 매우 급한 편이고 아랫면에는 4단의 각형받침이 선명하게 돌출된 모습이다. 1층 탑신 4면에 새긴 불상은 앙화좌 위에 결가부좌 하였으며, 모두 두광과 신광을 갖추었다. 동쪽은 약사여래, 서쪽은 아미타여래, 남쪽은 대일여래, 북쪽은 석가여래상을 조각하여 사면불의 의궤를 갖추었다. 이 석탑은 삼층탑신과 상륜부의 일부가 결실되어 최근에 보수하였으나 정제미와 조각기법이 뛰어나며, 옥개석의 전각, 층급받침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비채커피

비채커피

11.2 Km    0     2023-12-13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솔고개로 737

비채 커피는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리에 위치한 카페이다. 대표 메뉴는 에스프레소이고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카푸치노 등이 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가지기 좋고, 예약도 가능하다. 반려동물과 동반 입장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청평가든

청평가든

11.2 Km    1     2024-01-26

충청북도 충주시 솔고개로 739

청평가든은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리에 있다. 토속적인 느낌의 외관과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더덕과 돼지고기가 어우러진 더덕 고추장 불고기다. 이 밖에 제주흑돼지 오겹살, 생삼겹살, 한우 등심, 해장국, 설렁탕, 냉면 등도 맛볼 수 있다.

응천공원

응천공원

11.3 Km    0     2024-04-24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 773

응천공원은 충북 음성군 생극면에 있다. 공원에는 하천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많은 가로수가 식재되어 있어 여름철에 자연적인 그늘이 만들어진다. 공원은 나들이 장소로 유명하다. 텐트나 타프를 설치하고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봄에는 응천십리벚꽃길에 많은 인파가 봄꽃놀이를 즐긴다.

괴산 백운사 승탑군

괴산 백운사 승탑군

11.4 Km    15712     2023-08-23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사리로소매2길 125-146

괴산 백운사 승탑군은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둔 탑이다. 괴산의 백운사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부도밭에는 모두 5기에 이르는 부도들이 놓여 있다. 4기는 모두 조선시대에 세운 것이며 다른 1기만 1955년 송운제 스님이 세운 것이라 한다. 모두 낮은 받침돌 위에 종 모양의 탑몸돌을 올렸다. 그중 4기는 4각 지붕돌이나, 옛 가옥에서 보이는 독특한 모습의 지붕돌을 올려놓았다. 지붕돌은 각 귀퉁이마다 용머리 장식을 두고,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올렸다. 대체로 본래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가까운 곳에 가볼 만한 명소로는 홍범식 고택과 제월대, 괴강 유원지 등이 있다.

백운사(괴산)

11.4 Km    20848     2024-02-02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로소매2길 125-146 백운사

대한불교법화종에 소속된 사찰이다. 1321년(고려 충숙왕 8) 창건 당시에는 대흥사라고 하였으며, 조선 영조 때 승려들이 힘자랑을 하다가 살인을 하는 일이 벌어져 폐사되었다고 한다. 1930년에 하장우가 초막 네 칸을 짓고 백운사라고 하였으며, 1933년 봉국사 승려 송운재가 법당을 지었다. 1956년 법당을 중수하고, 1960년 불에 탄 것을 곧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사찰 입구에 모셔진 5기의 부도가 유명하다. 이들 부도는 괴산 백운사 승탑군으로 1997년 6월 27일에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1기는 1955년에 세운 송운재의 것이고, 나머지 4기는 대흥사터 산제당골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 모두 조선시대에 세운 것이라 한다. 이 승탑들은 조선시대에 유행하던 전형적인 승탑의 원형을 갖추었으며 밑에서부터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1941년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었으나 1965년 12월 증평에 주둔한 군 부대장이 가지고 갔다고 하며, 1952년 10cm의 철제여래좌상이 발견되었으나 1953년 분실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