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장 (2, 7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산서장 (2, 7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산서장 (2, 7일)

산서장 (2, 7일)

11.1 Km    9246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보산로 1864-11
063-351-3460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2, 7일마다 열리는 전통시장이다. 산간부 지대층에서도 장수군의 곡창지대로 알려졌으며 평야를 이루고 있고, 기름진 미질이 아주 뛰어나 각지에서 밥맛이 좋은 산서 쌀을 찾는 이가 많다. 특히 곡물류는 물론 고추 생산이 많아 오수, 남원 등지의 상인이 많이 찾는 곳이다.

번암장 (1, 6일)

번암장 (1, 6일)

11.1 Km    748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번암면 신평로 317-1
063-353-2303

번암장은 전라북도 장수군에 위치한 장으로 1일, 6일에 열린다. 산세가 험준하고 공기 맑고 물 좋은 오염 안된 자연 그대로 보존된 고랭지로서 약초와 산채가 다량으로 채취하여 판매하고 인근 남원 상인들이 번암에서 생산되는 곡물류 및 산채류 등 특히 약초생산 물량을 사다가 전국 각지로 판매하며 5일장이 유지되었다고 한다.

장재영가옥

11.2 Km    15757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번암면 원노단길 15

*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양반집 *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으로 전라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양반집이다. 안채, 사랑채, 곳간채, 솟을대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3칸에 홑처마이고 팔작지붕오량집이다. 정면에서 볼 때 왼쪽 맨 끝이 부엌이고, 앞쪽으로 찬방이 있다. 주춧돌은 직사각의 자연석 화강암을 사용하였고, 토방은 자연석을 중첩하여 쌓았다. 안채의 정면 앞쪽에 있는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 오량집이다. 기둥은 두리기둥[圓柱]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다. 정면에서 볼 때 왼쪽 첫 칸의 지붕이 다른 것보다 휠씬 낮은데 이것은 후에 단것이기 때문이다. 기둥도 이 칸만은 각기둥이다. 다음 칸은 방이고 이어서 대청, 건넌방 순이다. 사랑채 정면에는 솟을대문이 있다. 행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이며 전체가 널빤지로 구성되어 있다. 공기가 잘 통하도록 지표면으로부터 40㎝ 높이에 바닥을 널빤지로 깔았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고 솟을대문이다. 왼쪽에는 변소와 헛간이 있고 오른쪽에 문간방이 있다. 문 앞 양쪽에는 너비 56㎝, 길이 47㎝, 높이 40㎝의 화강암 노둣돌[下馬石]이 있는데, 원래 하나는 집 앞 도로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 철종 때에 에 건립된 건물 *

본래 문간채 오른쪽으로 곳간채가 보이는 정면에 솟을대문 형식의 중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안채와 사랑채의 중간에 동서로 길게 자리 잡은 곳간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고 팔작지붕이다. 상량문에 “숭정기원후사병진삼월이십팔일을유오시(崇禎紀元後四丙辰三月二十八日乙酉午時)”라고 기록되어 있어 1856년(철종7)에 건립된 건물임을 알 수 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

장수 논개생가마을 [농촌전통테마]

장수 논개생가마을 [농촌전통테마]

11.5 Km    2312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 논개생가길 21-5

논개생가마을은 임진왜란 때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한 주논개가 태어난 마을로서 주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옛적 마을은 대곡제 저수지 축조로 수몰되고 2000년에 조부가 살던 곳에 논개 생가지 확장 정화사업으로 20,000평이 조성되며 수몰되었던 생가마을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부지에는 의랑루, 단아정, 연못, 논개동상, 논개부모묘, 기념비, 시비, 논개생장지사적불망비, 최경회현감선덕추모비, 그리고 논개의 초가집 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생가 복원의 맥을 이으며 마을 전체를 민속마을로 가꾸고 있다. 마을입구에는 주논개를 낳기 위해 공을 들였다는 성황당이 마을의 지킴이로 남아있고, 매년 정초가 되면 노송 앞에 제수를 차려놓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지금은 호수로 변한 주논개의 생가터에는 부친에게 조석으로 정화수를 떠다 드려 해수병을 낳게 했다는 약수천이 남아 있다. 주변여행지로는 생가지와 인접한 논개생가체험마을(주촌민속마을)과 한옥숙박단지, 힐링산책로, 도깨비전시관이 있는 대곡관광지가 있다.

논개생가

논개생가

11.6 Km    27964     2024-01-24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 의암로 558

임진왜란 때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은 논개를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논개는 선조 7년에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훈장 주달문과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천품이 영리하고 자태가 아름다웠으며, 임진왜란 당시 나라가 위태롭자 19세의 꽃다운 나이로 자진하여 기적에 이름을 올렸다. 나라와 부군 최경회의 원수 왜장 게야무라 로꾸스께를 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 순절한 의암 주논개의 충절 정신을 기리고자 20,000여 평의 부지에 50억 원을 투자한 논개생가 복원사업이 2000년 9월 완료되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논개생가 주변에는 생가뿐 아니라 논개기념관과 단아정, 의랑루 등의 건물과 주논개비, 최경회비, 주논개부모묘 등이 있고 민속놀이마당과 인공폭포등이 조성되어 있다. 논개생가가 있는 지역은 덕유산, 오동제 등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장안산 군립공원과 지지계곡, 동화댐을 연계한 등산 코스가 열려있어 논개생가와 연계한 관광코스로 손색이 없으며, 연중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다.

남평문씨열녀비

11.6 Km    1542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

남평문씨열녀비는 산서면 소재지에서 임실 성수면으로 가는 도로의 하오마을 입구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정려각 안에는 ‘열녀학생권희언처남평문씨지려’라고 새긴 비석과 남쪽 벽면에는 문 씨 정문기가 걸려 있다. 이 정문기의 내용에 의하면 남평 문 씨는 시집온 지 3일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다가 양자를 두었으나 양자마저 병으로 죽게 되자 그도 3년 만에 죽었다. 그는 유언에서 내가 죽게 되면 내 남편의 무덤 옆에 묻어달라라고 하여 그 후손들이 문 씨의 유언에 따라 남편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주고 이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 정려각은 높이가 70cm 정도 되는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운 정면 1칸 측면 1칸의 지붕으로 되어 있다.

효자임옥산정려각

11.7 Km    1542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

이 효자각은 소재지에서 임실 성수면 방면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진 도로변에 있는 것으로 정면과 측면 모두 1칸으로 된 맞배지붕이다. 현재 효자각의 안에는 "효자주부임옥산지려”라는 명문이 음각된 비석과 중수와 관련된 5개의 현판이 벽면에 걸려 있다. 그리고 이 효자각의 서쪽에는 1990년에 세운 임산옥산정려라는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임옥산은 장수현감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호를 국헌이라 하였다. 그는 조선 성종 때 대궐에 있어 달라는 임금의 청을 버리고 향리인 장수로 내려와 현감을 하였다. 산서면에 있던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해지자 속칭 비행기 고개를 넘어 어머니의 문병을 다녔는데 야밤에 어머니의 병환이 위독하게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자기의 볼기를 칼로 떼어 어머님께 드렸더니 그 살과 피를 먹고 병이 나았다고 전한다.

권희문가옥

11.7 Km    1558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메길 9

산서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고택으로 현 수유주의 10대 조가 광해군의 사화를 피해 일가와 함께 오산리에 정착하면서 건립하였다. 상량문에 따르면 안채는 1866년, 사랑채는 영조 49년(1733)에 지었다. 사랑채는 1875년 중수하였는데 안채를 세운 후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 1973년 문간채를 짓기 전에는 사랑채 화단 앞의 서문이 대문이었으나, 좁아서 마차가 드나들기에 어렵고 대문 방향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따로 문간채를 세웠다. 일반적으로 옛 가옥의 중심은 사랑채인데 이 가옥은 안채가 중심이다. 전라도 지방 가옥의 일반적 특징인 일자형 구조가 아닌 ㄱ자형 구조에, 안채 전면 기둥은 둥근기둥인데 사랑채는 네모기둥인 것도 가옥의 중심이 안채임을 나타낸다. 안채와 사랑채 외에 서쪽채·아래채·문간채·바깥채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었다. 안채, 사랑채, 서쪽채 등은 거의 원형 그대로이나 나머지 건물은 많이 변형되었다. 문간채는 블록을 쌓아 창고로 만들고 바깥채는 외양간, 창고, 목욕탕 등으로 사용된다. 아래채에는 돼지우리와 외양간 등 축사를 두고 사랑채 한쪽에는 여물청을 두었다. 권희문 가옥은 많은 부분이 변화되고 개조되었지만 안채와 사랑채는 거의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김남택신도비

11.7 Km    14948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남면 원호덕길 79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 업적을 기록하여 무덤가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남택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김남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호는 손재, 성수이며, 본관은 함창이다. 고려말 공민왕 19년(1370) 현 계남면 침령마을에서 태중대부 원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목은 이색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였으며, 성격이 준엄하여 위언으로 항소하기를 좋아 하였다. 그는 조선조에 들어와 세종 조에 예조판서를 역임하다 만년에는 동생 형조판서 김남중과 함께 경상남도 하동에서, 다시 전라북도 장수 화산 북쪽 침령 아래로 퇴거하여 유학 진흥을 위해 진력하며 여생을 보내다 세종 18년(1436) 죽었다. 1828년(순조 28) 지방 유림의 공의로 월강서원을 창건하여 배향하였는데,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가 1948년 복설되었다. 이 신도비는 최근에 이르러 후손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주위에 둘러볼 곳은 논개사당, 뜬봉샘생태공원 등이 있다.

상연대(함양)

11.9 Km    17853     2023-02-17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길 3-291

상연대(上蓮臺)는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78-1번지 백운산(白雲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다. 상연대는 지리산 북쪽 자락에 자리하는 백운산에 위치한 고찰이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창건하였으며,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법등을 밝혀왔다. 법당에 봉안된 목조 관음보살좌상은 조선시대 중기에 조성되었는데, 만든 연도와 중수연도가 정확하여 조선시대 중후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