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순 효자문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서한순 효자문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서한순 효자문

14.8 Km    24486     2023-12-07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419-3

서한순 효자문은 진천군 사석리 민가의 낮은 언덕 위에 조성되어 있다. 이 효자문은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직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일생을 마친 서한순의 효행을 길이 후세에 기리기 위해 1971년 6월 6일에 건립한 효자 정문이다. 서한순 효자문은 목재를 이용한 기와집 형태로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방의 유림의 건의로 효자문을 세우도록 건의하였으나 조선조 말엽의 혼란과 외세 침략으로 정려(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던 일)되지 못하다가 1971년에서야 지방 유림이 당시의 감사, 현감 등의 표창장을 자료로 효자 정문을 세우게 되었다.

진희네생선구이

14.8 Km    0     2024-03-05

경기도 안성시 서동대로 4545

깔끔하고 심플한 인테리어의 안성 생선구이 맛집이다. 10여 가지 밑반찬이 정갈하게 차려져 입맛을 돋우고 여러 가지 다양한 생선구이부터 동태탕, 생선조림 등 다양한 생선요리를 즐길 수 있다. 생선구이를 주문하면 간단한 국물도 제공되어 가성비 좋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맛과 가성비뿐만 아니라 식당 내부의 청결함과 직원들의 친절함이 방문객들을 또다시 방문하게 한다.

어가명가

어가명가

14.8 Km    2     2024-04-03

경기도 안성시 금일로 40

어가명가는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에 위치한 한식당이다. 어죽칼국수, 어죽, 빠가사리 매운탕, 메기매운탕을 판매하고 있다. 사이드 메뉴로 미꾸라지 튀김, 추어군만두 등이 있다. 어죽칼국수와 어죽은 비린맛 없이 진한 국물이 특징이다. 2인분 이상부터 주문할 수 있다. 매운탕에는 추가 요금을 내고 참게를 추가할 수 있다. 매장 내부는 넓고 쾌적하다. 입식 테이블 좌석이다. 추가 반찬을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셀프 코너가 있다. 매장 앞에 주차 공간이 있다.

고삼저수지

고삼저수지

14.9 Km    0     2023-10-26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고삼호수로 108

1963년 준공된 광활한 저수지로 인근 지역 들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수초가 많아 물고기가 살기 좋다. 영화 <섬>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의 몽환적인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때문에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촬영지로 유명하다. 호수 둘레길을 아침 새소리와 함께 산책해도 좋다. 오토캠핑, 차박지로 알려지고 있다. 저수지에는 3개의 섬 (바석 섬, 팔자 섬, 동그락 섬)이 있다. 호수의 면적이 넓어 육지 속에 바다 같은 느낌을 준다. 호수 둘레는 14km로 차량으로 25분이 소요된다. 벚꽃 드라이브코스가 유명하다. 무료 야영지가 있고, 해돋이 해넘이 관람 장소이기도 하다.

올드타임

15.0 Km    2     2023-11-29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소신두길 52-9
031-654-7080

경기도 안성 올드타임은 1960~90년대 생활사를 전시하는 박물관이며 편집숍이고 레스토랑이다. 음료와 음식을 파는 카페테리아는 70, 80년대 종로와 명동 풍경을 배경으로 하였다. 근현대 생활사를 전시한 근현대사박물관의 골목길에는 구멍가게, 대폿집, 비디오 대여점, 만화방, 사진관 세트 등이 있으며, 실내 전시는 마치 실제 마을을 내려다 보는 듯 느껴진다.

용인비봉산캠핑장

용인비봉산캠핑장

15.0 Km    2     2023-02-16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상삼로 188-38

비봉산 자락에 위치한 자연친화적 캠핑장이다. 서울근교로 접근성이 좋고, 가족단위 캠퍼들 위주의 캠핑장으로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에도 좋은 캠핑장이다. 캠핑장 가까이 한택식물원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기에도 좋다.

안성죽산리삼층석탑

15.0 Km    19516     2024-06-19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봉업사의 옛터로 알려진 곳에 자리했으며 방형의 이중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갖춘 석탑이다. 발굴 조사결과 통일신라 석탑의 하층 기단을 재사용했음이 밝혀졌다. 또한, 석탑 기단 하부에서 태화 6년(832)의 기와가 출토되어 통일신라부터 이곳에 사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따라서 죽산리 삼층석탑은 후삼국의 혼란 속에서 사찰과 석탑이 훼손된 후, 고려 건국과 함께 대대적으로 석탑이 정비되면서 통일신라 석탑 기단을 재사용해 건립된 석탑임을 알 수 있다. 하층기단은 지면에 갑석만 노출되어 있고, 상층기단은 투박하게 다듬은 면석 모서리에 측면 기둥인 우주를 표현했다. 두꺼운 갑석 윗면에는 고려시대 석탑에 자주 사용된 복련 형식의 연잎 문양을 조각했고, 중앙에 사각형 탑신 받침을 낮게 표현했다. 탑신석과 지붕을 모방한 옥개석은 각기 1매의 석재로 이루어졌다. 탑신은 상층기단과 유사한 높이로 제작됐지만, 2층 이상부터 급격히 축소되어 고려 석탑 특유의 조형미를 보여준다. 옥개석 낙수면은 비교적 완만한 편인데, 추녀면은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부에 이르면 반전을 이루고 있다.

이상설생가

이상설생가

15.1 Km    0     2023-12-05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이상설안길 10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1917) 선생이 태어난 생가로 목조초가집으로 안채와 헛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선생은 현 가옥에서 학자이신 이행우의 아들로 태어나 189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교수, 한성 사범학교 교관 등을 역임하면서 영어, 프랑스어 등 7개국어를 구사하여 신학문을 깨우쳤다.
1904년에는 보안회의 후신으로 대한협동회를 조직하여 민족 운동을 하였으며, 탁지부 재무관 법부협판을 거쳐 1905년에는 의정부 참찬에 발탁되었다.
같은 해인 11월7일에 수옥헌에서 이또 주재하에 대신회의가 강제 개최되어 이완용 박제순등의 찬성을 조약체결을 선언하였는바 선생은 대신회의에 실무 책임자임에도 일본군의 방해로 참석하지 못하고 다음날 새벽에 알게되어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1906년 4월에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설 것을 결심하고 이동녕, 정순만과 같이 망명길에 올라 상해를 거쳐 북간도 용정으로 가서 서전서숙을 건립하고 자비로 항일 민족교육을 시켰으며 1907년 6∼7월 헤이그에서 개최하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라는 고종황제의 위임장을 받고 이준, 이위종과 함께 한국의 실권과 국권의 회복문제를 국제여론에 호소하려다 실패한 후 이준은 현지에서 순사하였다. 선생은 귀국하지않고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여러나라로 다니면서 일본의 침략성을 폭로하고 한국의 독립이 동양평화의 열쇠라고 주장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소련령으로 이주, 한흥동의 한인마을을 건설, 민족교육을 시키다 1917년 47세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죽산성지(이진터성지)

죽산성지(이진터성지)

15.1 Km    25459     2023-12-27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종배길 115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교우들이 처형되고 심문과 고문을 하던 곳이다. 충청·전라·경상도로 갈라지는 주요 길목인 죽산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조선 시대에 도호부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현재 죽산면사무소 자리에서 천주교인들이 참담한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 여기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은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그 이름이 밝혀진 이만해도 25명에 이른다. 하지만 척화비를 세우고 오가작통(五家作統)으로 사학 죄인을 색출, 무차별하게 천주교인들을 끌어다가 처형하던 당시 상황으로 보아 순교자들이 더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夷陳) 터다.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竹州山城)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이다. 그래서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으로 불려 왔던 것이다. 하지만 병인박해를 지나면서 이진터는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 터]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죽산에는 또 두들기라는 곳이 있다. 죽산 읍내에서 15리쯤 지금은 삼죽면 소재지로 80여 호가 사는 큰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인가가 드문 작은 주막거리였다고 한다. 이 주막거리는 용인, 안성, 원삼 등지에 사는 교우들이 포졸에게 잡혀 가는 호송길에 잠시 쉬어 가는 곳이 되곤 했다.

안성죽산리석불입상

15.2 Km    19425     2024-04-30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안성 죽산리 석불입상은 봉업사지 사역의 북쪽에 위치한 용화사 경내에 있다. 안성 죽산리 석불입상은 높이 3.36m로, 죽산산성 아래에 쓰러져 있던 것을 다시 세운 것이다. 머리와 신체가 절단되었지만, 비교적 상태가 좋은 편이다.1980년 6월 2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원형 연꽃 좌에 직립한 이 불상은 풍문한 얼굴에 코는 마모가 심하지만, 지긋한 눈과 작은 입매가 단정한 인상을 주며 소발(素髮)의 머리에 큰 육계와 긴 귀가 특징적이다. 얼굴에 비해 어깨는 왜소한 편인데 두 팔을 몸에 붙이고 있어 위축된 듯한 어깨와 더불어 경직된 모습으로 보인다. 두 손은 신체에 비해 큰 편인데 오른손은 앞으로 들어 외장한 여원인(與願印) 형태이고 아래로 내려 몸에 붙이고 있다. 양어깨를 감싼 통견의 법의는 어깨에서부터 배 부근까지 일정한 간격의 평행 주름을 이루며 흐르는데 양다리에서 각기 동신 타원형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옷 주름 양식은 통일신라시대부터 많이 유행하던 불의 표현 양식 중의 하나인데 이 불상에서는 다소 경직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무릎 아래에는 군의(裙衣)가 보이고 두 발은 현재 보수가 된 것인데 가지런히 정면을 향하고 있다. 복련이 돌려 새겨진 원형 연화좌는 오랫동안 매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려 초기에 유행하였던 이 지방 불상 양식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