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Km 2025-03-26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대둔산로 2
대둔산(878m)은 동국여지승람에 씌어있는 바와 같이 진산(珍山)의 진산(鎭山)이며 금산 땅이니 금산의 산이라 할 수 있다. 속리산 법주사 하듯, 대둔산을 주산으로 하는 옛 절 태고사도 금산 땅에 있다. 비록 대둔산 전체에서 금산이 차지하는 지역의 비중이 작지만 분명 대둔산의 뿌리는 만해 한용운이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명승지를 말하지 말라"라고 했다는 태고사 자리가 대둔산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대둔산 하면 금산의 산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완주군 쪽을 크게 개발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 전북 또는 완주의 대둔산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금산의 대둔산으로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금산ㆍ완주의 대둔산’이라는 공동명의의 산으로 인식을 바꾸어 놓았으면 한다. 두 개의 도립공원으로 되어 있는 산이다. 군 행정구역으로 볼 때 전북 쪽은 완주군 하나의 군구역으로 되어 있으나, 충남 쪽은 금산군과 논산시 두 군의 구역으로 되어 있다. 대둔산은 기암괴봉들이 많고 그 바위 봉우리들이 수려하며 깨끗하다. 크지 않으나, 장한 맛도 있고 아기자기한 맛도 있다. 한쪽은 숲도 울창하며 계곡도 아름답다. 가을에 단풍이 기암괴봉과 어우러질 때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또 임진왜란의 전적지이기도 하고, 천하의 대지에 자리 잡고 있는 태고사 절 앞의 암벽에 새겨진 ‘석문[石門]’이란 글은 우암 송시열이 쓴 글자로 알려져 있으며 갖가지 전설도 서려 있다. 경관이 수려하고 여러 가지로 훌륭한 대둔산은 금산, 논산, 완주 세군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마다 각각 특색이 있어 재미있다. 금산은 임진왜란 전적지와 천하명당인 태고사가 있고, 논산지역은 숲이 좋고 계곡과 개울이 좋으며 완주지역은 기암괴봉이 수풀처럼 서 있고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있다. 산길도 진산면 향정에서 오르거나 배티재에서 산비탈을 엇비슷이 가로질러 오르다 태고사에 들른 뒤 낙조대에 오르는 길이 좋다. 논산 쪽은 수락리에서 승전 기념탑을 거쳐 수락계곡의 화랑, 금강, 비선 폭포를 보며 196계단을 타고 고스락 (‘정상’을 뜻하는 순우리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좋고, 완주 쪽은 집단 시설 지구에서 올라 구름다리 금강 다리를 건너는 재미가 좋다. 안심사에서 깔딱대는 넘어 오르는 길도 있다. 원효대사가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격찬한 대둔산은 정녕 아름다운 산이다.
15.3Km 2023-08-10
산에서 보내는 하루는 어떨까? 트래킹이 아닌 이상 기분 좋고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금산군의 산은 천년 영약 인삼을 품어 우리에게 내어주고, 일상에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줄 것이다.
출처 : 머물수록 매력있는 충청
15.4Km 2025-11-06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
운주계곡은 전라북도의 명산인 대둔산을 품고 있는 곳이다. 대둔산 외에도 천등산을 비롯해 많은 산들로 둘러쌓여있다. 넓고 맑은 계곡물이 양옆으로 흐르고 있어 무더운 여름철에 시원함을 제공한다. 운주계곡은 완창마을 앞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으며, 수심이 깊지 않아 가족 단위는 물로 혼자만의 힐링 여행지로도 제격이다. 17번 국도를 따라 음식점과 쉼터가 모여 있어 가볍게 와서 놀다가기에도 좋다. 자연이 주는 평화로운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5.4Km 2025-10-23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신원사동길 1
신원사는 계룡산국립공원 남서쪽 자락에 위치한 사찰이다. 동학사, 갑사와 함께 계룡산 3대 사찰로 불린다.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창건되어 여러 번의 중건을 거쳤으며 1876년, 1946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신원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위치를 옮긴 것으로 전해지며 원래의 건물터는 신원사와 중악단 남쪽에 있는 넓은 밭으로 추정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국보로 지정된 노사나불 괘불탱을 소장하고 있으며 대웅전, 중악단, 5층석탑, 소림원 석고미륵여래입상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5.4Km 2025-07-21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신원사동길 1
1394년(조선 태조 3년)에 창건한 신원사(新元寺)의 산신각이다. 산신은 원래 산하대지(山河大地)의 국토를 수호하는 신이며 산신제는 민족정기의 고양과 모든 백성의 합일(合一) 및 번영을 기원하던 팔관회(八關會)를 후에 기우제, 산신제라 부르게 된 것이다. 제단의 명칭은 계룡산 신 제단이라는 뜻에서 계룡단(鷄龍壇)이라고 하였으나 고종 때 묘향산과 지리산 산신각을 각각 상악단(上嶽壇)과 하악단(下嶽壇)이라 하고 두 산의 사이에 있는 계룡산 산신각을 중악단(中嶽壇)이라 하였다. 1651년(효종 2년)에 철거되었다가 1879년(고종 16년)에 명성황후가 다시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궁궐 양식을 그대로 축소하여 만든 건물의 안에는 산신도(山神圖)가 모셔져 있다. 산신제는 예부터 내려온 산악신앙인 바, 현재 상악단과 하악단은 소실되었고 이 제단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 백제 시절의 고찰, 신원사 * 신원사(新元寺)는 동학사 갑사와 함께 계룡산 3대 사찰로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소재한다. 이 절은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화상이란 고승이 창건하고 그 뒤에 여러 번의 중창을 거쳐 1876년 보련 화상이 고쳐 짓고 1946년 만허 화상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신원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전해지며 원래의 건물지는 신원사와 중악단 남쪽에 전개된 넓은 밭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은 금당지를 중심으로 신원사의 원건물지가 있을 것으로 믿어지나 조사의 결여로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이 금당지로 믿어지는 지역을 중심으로 오층의 석탑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본래의 사역이었음을 쉽게 알게 한다.
15.4Km 2025-12-16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계백로219번길 40-1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충남 논산시 강경 읍내에 위치해 있다. 초기 선교 과정에서의 토착화 현상에 의해 기독교 건축의 형태는 한옥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당시 신부 및 목사가 대부분 서양인이었기에 한옥의 불편함을 느꼈고, 서양식 건물을 동경하는 일부 신도들로 인해 점차 서양식 예배당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초기 한옥 교회가 대부분 소멸되거나, 개축 또는 신축되어 원형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옥 형태로 남아있는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희소적 가치가 높다. 특히 내부 구조는 기독교의 토착화 과정에 나타난 한옥 교회의 건축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는 흔히 칸막고교회라고 하여 제단을 중심으로 천을 설치하여 남녀를 구분하기 위한 초기 교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내부의 벽돌 위의 회반죽 마감과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한 연등천장은 단순한 목조건축의 구조적인 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목재의 치목수법과 가구기법은 전통적 기법에서 근대화에 따른 기술적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강경성결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국도 23호선, 지방도 68호선, 799호선에서 옥녀봉로를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IC와 호남고속도로 지선 논산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호남선 철도 강경역과 강경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강경젓갈시장, 강경역사관, 강경근대거리, 강경포구 등이 있다.
15.4Km 2025-03-19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 8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은 1930년대에 붉은 벽돌을 쌓아서 만든 건축물이다. 강경중앙초등학교는 논산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학교이자 졸업생 기수로 충남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이다. 1905년 4월 2일에 2년제 사립학교인 보명학교로 개교한 이래, 1907년 4년제 강경공립보통학교, 1938년 강경중정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강경중정공립국민학교, 1946년 강경중앙초등학교로 여러 차례 학교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당은 1937년 6월 30일에 세워진 지상 1층의 건물이다. 이 건물은 강경공립보통학교 개교 30주년을 기념하여 강경공립보통학교 후원회에서 기증한 것이다. 콘크리트 기초 위에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지었고, 외벽 둘레에는 콘크리트로 흰색 띠를 둘러 두 층높이로 나누고, 모서리에는 벽돌 내어쌓기 방식으로 띠를 둘렀다. 이 건물은 당시 강당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을 따르는데, 건물에 흰색 띠를 둘러 입면의 단조로움을 없애 단아한 멋을 보여준다.
15.5Km 2025-03-19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24번길 12-1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은 1920년대 강경시장 전경 사진 중에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이다. 강경의 하시장(下市場)을 중심으로 했던 번성시기에 시장 중심에 위치하여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건축당시 ‘남일당(南一堂) 한약방’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건축주가 바뀌면서 ‘연수당 건재 대약방(延壽堂 乾材 大藥房)’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운영되었고, 현재는 후손이 관리하고 있다. 지상 2층 규모의 한식 목조 건물로 지붕은 우진각 기와지붕이며, 지붕내부의 상량문을 통해 1923년(癸亥年 八月 五日 酉時 立柱上梁)에 준공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건물은 근대 한옥 변천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15.5Km 2025-11-18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선사로225번길 54
부여 송국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하천과 평지에 인접한 낮은 구릉과 대지 위에 100여 기 이상의 집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터는 평면 형태에 따라 둥근 것과 긴 네모꼴인 것이 있다. 둥근 집터는 30∼150cm 깊이로 땅을 파서(수혈식주거지) 만들었으며, 한쪽 벽을 얕게 파서 문을 만든 듯하다. 화덕자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다수의 저장용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바닥 중앙에 1m 내외의 긴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안에 몇 개의 둥근 구덩이를 만들었다. 네모꼴 집터는 30㎝ 미만으로 땅을 판 반움집이나 지상식에 가까운 것으로 기둥구멍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주춧돌이 있는 발달된 집 형태를 하고 있다. 집터 안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무문 토기와 붉은 토기(홍도), 검은간토기(흑도)가 나왔다. 무문토기는 납작한 밑, 긴 달걀형의 몸체, 목이 없이 아가리가 밖으로 약간 꺾인 모습을 하여 이전의 무문 토기와 달라 송국리식 토기라 불린다. 돌칼, 돌화살촉, 방추차, 돌도끼를 비롯하여 다양한 석기들도 출토되었다. 그 밖에 많은 양의 불탄 쌀과 벽체에 세웠던 판자가 불탄 채로 나오기도 하였고, 청동도끼 거푸집(동부용범)이 출토되었다. 청동도끼 거푸집은 부채날형 청동도끼의 틀로서 요령지역의 것과 닮은 것이다. 집터 서쪽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문토기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송국리집터에서 나오는 유물은 출토유물로는 서까래의 흔적을 비롯, 비파형 동검(琵琶形銅劍) ·붉은 간토기 ·민무늬토기 ·돌도끼 ·대팻날 ·끌 ·돌낫 ·돌검 ·숫돌 등 다양하다. 이러한 유물을 토대로 기원전 7∼6세기 전에 농경과 수렵에 기반을 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15.5Km 2025-12-18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 30-5
강경근대거리는 논산시 강경읍내에 조성된 근대역사문화거리이다. 강경은 근대에 금강 수운 포구를 중심으로 서해와 연결되는 상권이 형성되어 번성한 지역이었다. 거기에 1911년에 개통된 호남선 철도로 인해 교통의 요지가 되어 상업, 유통업이 더욱 발달하였다. 그러나 군산항이 성장하고 금강 수운이 쇠퇴하자 상업 중심지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강경이 번성하던 시절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대표적으로는 구 강경노동조합(현 강경역사문화안내소),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현 강경역사관),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강경성당, 구 강경성가결교회 예배당 등이 있다. 강경근대거리는 국도 23호선, 지방도 68호선, 지방도 799호선 등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IC와 호남고속도로 지선 논산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호남선 철도 강경역과 강경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강경젓갈시장, 강경포구, 죽림서원, 팔괘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