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25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청담25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청담25

청담25

0m    2     2022-10-14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로79길 32

청담25는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한우 구이와 한우등심 미역국이 있는 한식당이다. 넓은 홀과 룸으로 구성되어 있어 가족 모임 등 단체 회식을 하기 편리하다. 주차는 발레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런치 메뉴로 옥돔구이, LA갈비, 한우불고기전골, 곤드레솥밥이 있고 세트 메뉴는 2인 기준과 4인 기준에 차이가 있지만 정지녕간장게장1마리, 한우등심 미역국, 제주갈치구이, LA갈비찜, 육전등이 나온다. 식사류는 미역국이 포함된 옥돔구이정식, 간장게장정식, 제주갈치구이 등이 있는데 메뉴마다 미역국이 준비돼 있어 가족이나 연인끼리 생일상차림으로 좋다. 4인 룸부터 16인 룸까지 있고 예약 후 이용할 수 있다. 식당 인근에 청담동명품거리, 압구정로데오거리, 압구정카페거리 등이 있어 연계 관광이 할 수 있다.

청담고수 청담2호점

청담고수 청담2호점

100.47845534897273m    5     2024-05-03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로79길 18

청담고수 청담 2호점은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 한우와 한돈 구이 전문점이다. 대중교통 이용 시 수인분당선 압구정 로데오역 2번 출구에서 약 700m 거리, 지하철 7호선을 이용한다면 청담역 10번 출구 청담동 행정복지센터 인근에 있다. 건물 뒤편에 주차장이 있어 발레 주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대표 메뉴는 최고 등급의 삼겹살과 한돈을 숙성하여 숯불에 굽는 고기 요리이다. 한우 안심과 등심, 차돌박이가 있고 한돈 삼겹살과 목살, 항정살이 있다. 콜키지 프리 서비스는 1병까지 무료이고 룸 차지는 유료이다. 특히, 1일 40인분 한정 판매하는 고수 숙성 돈마호크가 인기고, 우니 채끝 솥밥, 트러플 차돌 버섯솥밥, 가리비관자, 새우구이, 트러플 커리 퐁듀도 있다. 블랙톤으로 꾸민 식당 내부는 깔끔하고 세련되어 가족 식사는 물론 데이트 코스로도 좋다. 인근에 청담근린공원, 삼성목련공원, 청담동명품거리 등이 있어 연계 관광을 할 수 있다.

3.1독립선언기념탑

3.1독립선언기념탑

10.0 Km    6596     2023-12-05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손병희 등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삼창함으로써 거족적인 3.1 독립만세운동의 불을 지폈다. 3.1 독립선언기념탑은 이날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8월 15일에 당시 재건국민운동본부 주관으로 온 국민의 성금을 모금하여 3.1 독립만세운동의 현장이었던 탑골공원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1979년 탑골공원의 정비사업으로 철거되어 12년간 방치되었다가 각 계에서 복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1992년에 항일 독립운동의 터전인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옮겨 세우게 되었다. 탑의 높이는 4.2m이며 탑 뒤에는 3.1 독립선언문과 손병희 등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판각되어 있다.

송재서재필선생상

송재서재필선생상

10.0 Km    3935     2023-12-05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전남 보성 출신으로 개화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건립되었다. 선생은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독립신문」을 발간하였고 윤치호, 이상재 등의 협력을 얻어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종래 중국을 사대하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국민의 성금을 모아 한국독립의 상징으로서 독립문을 세웠으며 종래의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고치고 독립협회의 집회장소와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또한, 토론회를 통해 시민들을 모아 나라의 독립과 개혁에 대한 토론을 시키고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 조차(租借) 요구를 반대하는 등 국민의 독립사상과 민권사상을 크게 신장시켰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구미위원회를 설치하자 그 위원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의 경비에 바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셨으나 1951년 1월 5일 미국에서 87세의 생을 마감하였다. * 규격 - 동상높이 3.5m, 좌대높이 2.8m * 건립주체자 - 송재서재필선생동상건립추진위원회, (1990.04.07. 건립)

생생국가유산 중랑구 체험학습 (생생문화재)

10.0 Km    1     2024-05-07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91길 2
010-8465-1945

본 프로그램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인 서동일, 오재영, 서광조 선생님과 독립운동을 소재로 구성되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봉수대공원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독립군 암호 쓰기와 해석 등 미션활동, 퀴즈활동이 진행된다. 프로그램의 대상은 ‘초등학생 또는 유아를 동반한 가족’이다. 최대 30명 참여 가능하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총 2종이다. 비밀결사 조직하기 등, 독립운동가가 실제 활동하였던 방식으로 미션을 수행한다. 독립운동가 묘역도 답사한다. 봉수대공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총 2종이다. 여러가지 연락 방법에 대한 체험, 독립운동에서도 사용된 봉수대에 대해서 배운다.

독립문

10.0 Km    35812     2023-11-13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독립문은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서재필과 독립협회의 주도로 세워진 기념물이다. 내정개혁과 제도개혁을 추진하였던 개혁운동인 갑오개혁이 외국 세력의 간섭으로 성공하지 못하였고 나라의 자주독립 또한 이루지 못하자, 국민들은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세웠다. 독립문은 높이 14.28m, 넓이 11.48m로 프랑스 개선문을 모방하여 만든 건축물이다. 화강석을 쌓아 만든 이 문의 중앙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왼쪽 내부에는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다. 정상에는 돌난간이 둘러 져 있으며, 홍예문의 가운데 이맛돌에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오얏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위의 앞뒤에는 한자로 한글로 [獨立門, 독립문]이라는 글자와 그 양옆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문앞에는 영은문 주초 2개가 남아있다. 원래 남동쪽으로 70m 떨어진 길 가운데에 있었는데, 1979년 성산대로 공사에 따라 지금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바로 인근에는 서대문형무소가 있어 독립문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을 되새겨 보는 역사 여행으로 둘러보면 좋겠다.

프라이탁 압구정

프라이탁 압구정

1.0 Km    0     2024-03-23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53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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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명일

이마트 명일

10.0 Km    0     2024-03-24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로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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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타우너 청담

1.0 Km    0     2024-04-29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53길 14
0507-1422-9399

Downtown(도시 혹은 시내)에서 유래한 ‘Downtowner’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바쁜 도시인들이 빠르고 편하게 즐겨 먹을 수 있는 고품질의 Fast&Premium 수제 버거를 판매하고 있다. 또한 수제 맥주와 함께 준비되어 있는 프라이즈 및 치킨 메뉴는 간단한 식사 및 맥주 안주로 즐길 수 있다.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

10.0 Km    26224     2024-01-31

서울특별시 관악구 낙성대로15길 56-39

관악산 북쪽 골짜기로 올라 약수터를 지나면 거대한 절벽이 서 있는데,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북쪽 바위 면에 미륵불 좌상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연꽃 봉오리를 든 불좌상으로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다. 얼굴은 온화하고 풍만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몸을 왼편으로 살짝 틀었다. 머리 광배에는 이중 테두리를 둘렀고, 몸 광배는 한 줄의 음각선으로 나타냈다. 몸에는 가사를 입혔는데, 가슴은 조금 돌출되었고 안에 입은 평행의 내의와 내의를 묶은 매듭이 자세히 조각되어 있다. 낮은 육계, 소반의 머리칼, 다소 풍성하게 보이는 갸름한 얼굴 등은 상당히 우수한 기법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늘씬한 체구나 타원형의 어깨 등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17세기 조선조 사회에도 미륵신앙이 상당히 유행하였음을 알려 주고 있다. 봉천동 마애미륵불은 17세기 조선조 불상을 대표하는 기준이 될 만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