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자연휴양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한천자연휴양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한천자연휴양림

한천자연휴양림

0m    41384     2021-09-14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죽헌로 719

한천자연휴양림은 해발 610M의 천운산 자락에 위치하고 4개 노선 21.7km등산로가 있으며 주능선은 남동쪽으로 팔을 벌린 듯이 휴양림을 감싸고 있어 좋은 기운이 흘러 여기서 휴식을 취하면 건강 수면을 연장 할 수 있다. 화순읍에서 약 20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용이하며 여기에는 숲속의 집, 잔디관장 등과 캠핑장, 유아숲 체험원이 있어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한천자연휴양림캠핑장

한천자연휴양림캠핑장

726m    0     2021-09-03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죽헌로 719

화순군 천운산 자락, 한천자연휴양림 내 위치한 한천자연휴양림캠핑장은 깨끗한 카라반과 쾌적한 야영장 시설로 편리한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화순군 중심부에 위치해 산이 깊지 않아 시내와의 접근이 용이하다. 해발 601m의 천운산 정상에 오르면, 화순읍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동시에 남동쪽으로 팔을 벌린 듯이 휴양림을 감싸고 있는 울창한 숲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속의 푸른 숲과 맑은 계곡이 흐르는 청정지역인 이곳은 자연과 함께 특별한 하루를 선물 받을 수 있는 장소다. 자연 친화적인 캠핑장에서 심신이 편안해지고 면역력이 향상되는 삼림욕이 가능하다. 주변 관광지로는 도곡온천, 화순고인돌공원, 운주사, 용암사 등이 있다.

워렉스 캠핑랜드

워렉스 캠핑랜드

3.2 Km    0     2021-09-14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죽헌로 376-37

워렉스 캠핑 랜드는 광주에서 30분 거리인 화순군 한천면에 있다. 금자라가 살았다는 금오산 자락에 약 25000㎡ 넓은 대지에 자리 잡고 있어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온 가족이 여유롭게 힐링 할 수 있다. 사찰 금오사를 둘러볼 수 있고 금오산 산성이 가까이 있어 산책하기 좋다. 화장실, 샤워장, 개수대, 매점, 족구장 등 각종 편의 시설과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전기 사용과 온수 사용이 가능하다. 사설 캠핑장임에도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

퓨어존사평 오토캠핑장

퓨어존사평 오토캠핑장

5.2 Km    0     2021-08-31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사호로 236-40

퓨어존사평 오토캠핑장은 전남 화순군 남면에 있다. 화순군청을 기점으로 15Km가량 떨어져 있는데 자동차로 20분이면 도착한다. 캠핑장에는 일반야영장 14면이 있는데, 바닥은 모두 잔디 블록으로 이뤄졌다. 개인 카라반과 개인 트레일러 동반 입장이 가능하다. 반려동물 출입은 불가능하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남녀를 구분해 각각 4개소와 2개소가 있다. 개수대는 1곳이다. 전기, 무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다. 캠핑장 외에 펜션을 운영 중이다. 사계절 내내 평일 주말 모두 운영한다. 예약은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받는다.
캠핑장 인근에 한천자연휴양림, 임대정원림, 사평폭포 등의 관광지가 있어 연계 여행이 가능하다. 화순군청 방면으로 나가면 음식점도 다양하게 많다.

충의사(최경회장군)

충의사(최경회장군)

5.6 Km    18134     2020-09-17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충의로 409

충의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삼장사의 일원으로 순국한 최경회 선생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선생의 자는 선우, 호는 삼계, 당호는 일휴당이며 본관은 해주로서 화순에서 태어났다. 1567년(명종22)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형조좌랑, 옥구.장수.무장현감, 영암군수, 영해.담양부사 등 내외 관직을 지냈다. 1591년 어머니 상으로 관직을 떠나 고향에서 시묘하고 있을 때,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운, 경장 두 형과 아들 홍기, 조카 홍재, 홍우와 함께 의병청을 설치하고 수천의 의병을 일으켜 전라우도 의병장이 되어 상복차림으로 북상하여 금산.무주의 왜적을 격퇴하였다.

경상우순찰사의 지원 요청을 받고 "영남도 우리나라 땅이다."하고 달려가 1차 진주성 싸움의 외원으로 대첩을 거둔 뒤 바로 거창에 주둔하고 개령지방의 왜군을 공격하여 성주성 탈환에 큰 공을 세우는 등 영남 7읍을 평정하니 그 전공으로 1593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특별 임명되었다. 이해 6월의 제2차 진주성 싸움에도 참가하여 9주야의 항전 끝에 중과부적으로 성이 무너지니 조카 홍우를 탈출시켜 조복과 언월도를 고향의 중형께 보내고, 김천일, 고종후 장군 등과 함께 촉석루에 올라 서사일절을 남기고 남강에 투신 순절하니 그의 나이 62세였다. 뒤따라 논개가 왜적장을 껴안고 순절하였고, 중형 경장도 의병대장이 되어 사천, 고성 등지의 왜적을 격퇴하였으며 장형 경운도 오성산성에서 항전하다가 부자가 순절하였다. 뒤에 좌찬성에 추증되고 충의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진주의 창열사, 능주의 포충사,화순의 삼충사에서 제향해 오다가 고종 때 포충사와 삼충사는 훼철되었고 오늘에 이르러 국민의 숙원으로 2003년에 준공하여 후세를 위한 충효 교육의 도장으로 삼는다.

영벽정

영벽정

6.5 Km    22565     2021-09-02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학포로 1922-53

영벽정이란 계절따라 변모되는 연주산의 경치를 맑은 지석강물에 투영되어 운치있게 바라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연주산 아래 지석강의 상류 영벽강변에 있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경승지에 있기 때문에 행락객들이 널리 이용하고 있다. 2층 팔작지붕에 기와를 얹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형이다. 건립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양팽손 등이 쓴 제영으로 보아 조선 명종때나 선조때(16세기 후반)인 것 같다. 건립자는 능 주목(군), 즉 관청이 건립의 주체였었다고 생각된다. 인조의 모후인 인헌왕후의 고향이라 하여 목사골이 되고 목사 정윤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정자를 개수하였다고 한다. 후일 고종 9년(1872)에 화재로 인해 소실됨에 따라 다음 해인 1873년 계유에 능주목사인 한치조가 중건하였고, 1920년 군민의 출연으로 중수하였다.정자 안에는 9개의 현판이 있다. 기단위에 주춧돌을 넣고 원형기둥으로 세웠다. 이 기둥 위에 마루를 깔아 중층 누각형 정자를 만들었다. 마루의 사방에는 계자 난간을 돌려 장식하였고 처마밑에는 활주를 세웠다. 누 위의 기둥머리에는 익공형식의 공포를 하였고 천정은 연등천정이나 중앙부는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지붕을 3겹으로 한 것은 아주 보기드문 예로 주목된다.

황토와참숯

황토와참숯

6.8 Km    15439     2020-08-19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학포로 1877
061-371-5020

전남 화순시 한천자연휴양림 근처에 위치한 황토와참숯은 국내산 생고기만 취급하고 있어 다른 식당에 비해 고기가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강하며, 10여 가지의 맛깔스러운 밑반찬으로 다른 고깃집과는 엄격하게 차별화를 시키고 있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을 위하여 마당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이 있어서 좀 더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화순성화명도로수축시주목록암각기문

화순성화명도로수축시주목록암각기문

6.9 Km    17308     2021-04-13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능주면 잠정리 충신강변에 있는 삼충각 중 최경회 선생 정각(旌閣)이 있는 석대 아래에 새겨져 있는 기문으로 바로 위에는 목사송후유룡청덕애민비(牧使宋候儒龍淸德愛民碑)가 있다. 전체적으로 가로 150cm, 세로 80cm 가량의 면을 이용하여 약 5cm의 크기로 25행 180여자를 새겨 놓았는데 석질이 좋지않고 풍화가 심하여 왼편으로 갈수록 판독이 곤란하다. 이 기문은 각행의 글자수나 줄 등이 나란하지 않고 매우 불규칙한 형태로 새겨져 있다.판독 가능한 부분을 통해 보면 이 기문은 성화 21년에 능성현의 남쪽 오리정(五里亭)앞에서 구질건연(仇叱健硯=거치른벼랑)까지 도로수축 사업에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 것이다.성화21년 을사년은 조선성종 16년(1485)에 해당된다.도로수축의 시주자들은 대시주, --시주, 상-시주, 대화주, 몽민화주 등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장의 이름도 나온다. 기문의 두곳에 여고리라는 지명이 보이나 의미는 잘 알 수 없다.이 기문에 보이는 여러 인명들 자료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는 사람은 대시주로 기록된 장사랑(將仕郞) 구용연(具龍淵)뿐이다.

구용연은 본관이 능성, 자는 회관, 호는 농포로 고려때 평장사를 지낸 구민첨(具民瞻)의 후손이며 구득인(具得仁)의 아들이다. 1450년(세종32)에 태어나 1534년(중종29)에 85세로 졸하였다. 이를 보면 도로수축에의 시주는 그의 나이 36세의 일이다.효행이 뛰어났다 하며 문행이 있어 음직으로 장사랑을 지냈다. 부인은 우산송씨 중인의 딸로 그와 동갑이며, 그보다 2년 앞서 졸하였다.한편 이들 인명들이 모두 시주, 화주, 거사 등 불교적 용어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로 보아 불교 신앙단체가 도로수축에 관여했거나, 절에서 도로수축사업을 주관하였을 추측이 들기도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이 암각기문은 조선초기에 도로를 수축하는 사업에 지방민들(혹 불교의 신앙단체)의 많은 경제적 도움을 얻었다는 구체적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 성화 21년이라는 절대연기가 명기된 점, 오리정 및 구질건연, 여고리와 같은 지명이나 시주한 인물들의 구체적 이름 및 시주의 등급 등이 명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방사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화순능주삼충각

화순능주삼충각

6.9 Km    17542     2021-04-13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이 곳 삼충각은 조선 선조 26년(1593)에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장렬히 순절한 충의공 최경회와 지평 문홍헌 장군과 명종 10년(1555) 을묘왜변때 전라남도 해남지방에 침입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조현장군 등 세 충신의 애국충정을 추모하기 위하여 숙종11년(1685) 능주 향교 유림들이 건물 3동을 건립한 것으로, 현재 전라남도 지방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암산

4.3 Km    20174     2021-09-14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용암길 149

용암산(544m)은 화순군 한천면과 춘양면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화순 일대의 산세는 비교적 유순한 편이나 이곳 용암산 만은 말 그대로 용암이 솟아 오른듯 날카롭고 거칠게 보인다. 정상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은 능선은 석영암 바위들로 연봉을 이루고 있다. 특히, 정상을 비롯한 3개의 봉우리는 날카로운 바위봉으로 되어 있어 등산하는데 약간의 위험도 따른다. 그러나 오히려 아기자기한 바위봉은 스릴도 만끽할 수 있어 독특한 맛을 지닌 산이다. 그래서인지 이 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꽤나 있는 편이다. 정상을 향해 산등성이를 오르다보면 고려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축성했다는 금오산성 터의 흔적이 듬성듬성 남아 있는데, 역사의 흔적을 매만져 볼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용암산은 원래 금오산이라 불렸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산세가 솟은 바위가 있다 하여 용암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지역 한천이 물이 좋기로 유명하다. 능선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산 중턱에 자리잡은 약수터가 있는데 그 물 맛은 이 한천의 명성을 입증해 주는 듯하다. 계절에 따라 봄에는 용암산을 중심으로, 온통 진달래꽃이 온 산에 만개하여 녹색과 조화를 이룬 진분홍 꽃천국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몰래 핀 자생석란은 등산객들에게 더할 나위없이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풍겨준다.

죽수서원

5.9 Km    18575     2020-10-07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학포로 1786-45

1986년 9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30호로 지정되었다. 이 서원은 조광조(趙光祖)와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을 배향하고 있다. 1570년(선조 3)에 능성현령 조시중(趙時中)의 협조로 지금의 자리에 서원을 짓고, 죽수(竹樹)라는 사액을 받았다. 조광조는 1519년(중종 14)에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능성현에 유배되었다. 이때 조광조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함께 했던 양팽손도 관직을 삭탈당하고 고향인 능성현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은 자연히 만나 서로 의리를 다지게 되었다. 그러나 조광조가 유배된 지 한 달여 만에 사약을 받고 죽자, 양팽손은 몰래 시신을 거두어 화순 쌍봉사 골짜기에 장사를 지내고 마을에 초가집을 지어 제자들과 함께 제향하였다. 그러다가 1568년(선조 1)에 조광조는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이듬해 문정(文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와 함께 조정에서는 조광조를 향사할 서원을 건립하기로 하고 지은 것이다. 1613년에 중수하였고, 1630년 유림들과 조정의 김장생(金長生) 등이 뜻을 모아 양팽손도 추배하였다. 그러다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려 겨우 단 을 마련하여 제향하여 왔다. 1971년 제주양씨 후손들이 도곡면 월곡리에 죽수서원을 복원하였다. 1983년 다시 한양 조씨 조국조(趙國朝)를 중심으로 한 후손들이 본래의 위치인 모산리에 복원을 추진, 월곡리의 건물을 이전 신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89년에 동재를, 1994년에 관리사를 신축하였다.

지곡서원

6.3 Km    2369     2020-02-24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서당길 58-16

1584년(선조 17)에 도유림이 조흡(曺恰)의 서원을 전북 고창군 금과면 고례촌에 건립하여 향사하고 명액(命額)을 예천(禮川)이라 하였는데 임진왜란 시에 병화로 인하여 소진되었다. 그 후 1785년(정조 9)에 도내장보(道內章甫)가 연명발통(聯名發通)하여 화순역정(和順櫟亭)에 중건하여 액(額)을 역정서원(櫟亭書院)이라 하고 조흡의 5세손인 조대중(曺大中) 및 6세손 조수성(曺守誠)과 동 조수홍(曺守弘) 그리고 칠세손 조엽(曺熀)을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서원훼철령에 의하여 훼철됨에 따라, 화순읍 지곡중록(芝谷中麓)에 별묘를 건립하여 백여 년간 향사하다가 1996년에 별묘가 있는 서원지에 서원을 복설하고 익년 정축(丁丑) 춘(春)삼월육일에 봉안하니 이름 하여 지곡서원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