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Km 2022-11-11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 27
02-579-7282
다수의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곳이다.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있는 한식전문점이다. 대표메뉴는 안동국시다.
5.5Km 2025-07-02
서울특별시 송파구 삼학사로 136
석촌호수 북쪽 잠실벌은 서호의 남쪽에 나루터가 있던 한강이었으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토사가 쌓여 인공섬이 생기면서 광진교 밑에서부터 잠실야구장까지 지금의 석촌호수를 지나는 송파강과 신천강을 이루는 샛강이 생기게 되었다. 1969년 한강본류의 하상 정비 개발에 착수하면서 이 강을 매립하였으나 일부는 호수로 남겨놓았고, 1980년대 초 호수를 정비하여 공원화하였다. 송파나루공원은 송파대로가 개통하면서 석촌호수가 동서로 같은 모양의 동호, 서호로 나누어져 있으며, 호수와 공원으로 조성된 이상적인 형태의 공원으로 조깅 코스 및 산책로가 설치되어 있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서호에는 서울놀이마당 및 롯데월드의 매직아일랜드가 설치되어 있다. 봄에 벚꽃이 만개하면 주야간으로 벚꽃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며 주변에는 롯데월드, 롯데타워, 한강공원이 있다. 수도권 지하철 9호선 석촌고분역 2번 출구에서 560m에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BTS 공식 트위터에 RM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는데 햇살을 맞으며 웃고 있는 RM의 뒤로 보이는 장소가 팬들의 궁금증을 일으켰다. 그 장소는 바로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석촌호수’이다. ‘석촌호수’는 송파 대로를 기준으로 서호와 동호로 나뉘어 있는데 RM이 사진을 찍은 곳은 동호 호수이다. 근처에는 유명 테마파크 롯데월드부터 분위기 있는 카페와 맛 집들이 즐비해 있고, 매년 봄에는 벚꽃축제가 열리기도 해 많은 시민이 방문하는 명소이기도 하다.
5.5Km 2025-07-21
서울특별시 송파구 삼학사로 136 (잠실동)
병자호란 때 청에 패배해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청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적은 비석이다.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워진 비석으로 높이 3.95m, 폭 1.4m이고, 제목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로 되어있다. 조선 전기까지 조선에 조공을 바쳐오던 여진족은 명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 급속히 성장하여 후금을 건국하고, 더욱더 세력을 확장하여 조선을 침략하는 등 압력을 행사하면서 조선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였다. 나라의 이름을 청으로 바꾼 여진족이 조선에게 신하로서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하자 두 나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결국 인조 14년(1636) 청나라 태종은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조선에 쳐들어와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남한산성에 머물며 항전하던 인조가 결국 청나라의 군대가 머물고 있는 한강가의 삼전도 나루터에서 항복을 하면서 부끄러운 강화협정을 맺게 되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새긴 기념비를 세우도록 조선에 강요했고 그 결과 삼전도비가 세워졌다. 비문은 이경석이 짓고 글씨는 오준이 썼으며, ‘대청황제공덕비’라는 제목은 여이징이 썼다. 비석 앞면의 왼쪽에는 몽골글자, 오른쪽에는 만주글자, 뒷면에는 한자로 쓰여져 있어 만주어 및 몽골어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 송파구청 홈페이지)
5.5Km 2024-11-22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로 124 서울놀이마당
서울놀이마당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각종 민속예술이 공연되는 노천공연장이다. 우리 민속과 전통 놀이를 시민들에게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1984년 12월 25일 건립된 서울놀이마당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수시로 공개하고 전수하는 옛 조상들의 멋과 흥에 알맞도록 꾸며진 원형 무대로 노천 공연장이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연 120여 회의 공연을 실시한다. 평균 관람객은 1,300명 정도 된다. 서울놀이마당 내에는 송파민속보존회가 상주하고 있는데 송파산대놀이, 송파백중놀이 등을 보존하기 위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방학 중 무료 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5.5Km 2025-03-18
서울특별시 송파구 삼학사로19길 3 (삼전동)
02-416-4555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에 위치한 드럼통 참숯석쇠구이는 질 좋은 고기만을 취급하여 이미 인근 지역에서는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고기는 숯불에 구워 불 맛을 내어 맛이 좋고, 후식으로 나오는 열무김치와 새콤하고 시원한 국물이 조화를 이루는 열무냉면도 별미이다. 그리고 이곳은 가게 앞 노상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날씨가 좋은 날 야외에서 맛있는 고기를 즐길 수 있다.
5.5Km 2025-03-19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남산 봉수대는 조선 태조 3년(1394)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설치하여, 갑오경장 다음 해까지 약 500년간 사용되어 왔다.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 봉수대’라 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다 하여 ‘경봉수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평상시에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경계에서 아군과 전투를 벌이면 5개의 불을 올리도록 하였다. 남산 봉수대는 전국의 봉수가 도달하게 되는 중앙 봉수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다.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하여 5개소가 있었다 하는데, 현재 봉수대는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다.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하 자리를 확인할 수는 없는데, 「청구도」등의 관련자료를 종합하여 1개소를 복원하였다.
5.5Km 2024-06-11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
이 가옥은 순종의 장인인 해풍 부원군 윤택영이 그의 딸 순정황후(純貞皇后)가 1906년 황태자비로 책봉되어 창덕궁에 들어갈 때 지은 집이다. 건축자재는 경운궁(慶蕓宮)을 헐 때 그 재목을 이용한 것으로 재질은 홍송(紅松)이다. 동대문구 제기동 224번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가옥의 평면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으뜸 원(元) 자’모양이다. ‘ㅡ자’형(一字形)인 사당(祠堂)은 ‘원자(元字)’의 머리에 위치하여 집의 제일 안쪽 높은 터에 자리 잡았다. 그 앞 남쪽 한단 낮은 터에 원자의 ‘ㅠ형’몸채를 두었다. 몸채의 구조는 안채와 사랑채가 연속되어 ‘ㅡ자’형(一字形)으로 ㅠ의 ㅡ를 이루고, 그 앞 동서로 행랑채가 팔을 이루며 연속되어 있다. 사당은 1960년에 소실되었던 것을 복원하였으며, 사당 앞에 두 단의 석축(石築)을 쌓아 화계(花階)를 구성하였다. ‘원형’평면의 중앙은 자연히 가운데 마당이 되는데, 전면 동서 행랑채 벽선을 따라 담장을 치고 일각대문을 두어 마당으로 드나든다. 안마당은 서쪽 행랑의 중문을 통하고 사랑마당에는 동쪽 행랑 끝에 뻗어 나온 담장의 일각대문으로 드나들게 되어 있다. 지붕은 팔작 기와지붕으로 사랑채는 부연(附椽)을 단 겹처마이고 나머지는 홑처마이다. 행랑채는 삼량가구(三樑架構)로서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가옥 전체의 분위기는 살림집이라기보다는 재실(齋室) 용도에 걸맞게 되어 있다. 때문에 대청을 중앙에 두고 안방과 사랑방이 마주한 것 등 특수한 요소가 많은 가옥이다.
5.6Km 2025-07-07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길 137 (신천동)
한국광고박물관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설립하여 2008년 11월 개관한 광고 전문 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한국 광고의 130년 역사와 문화를 시대별로 정리하여 전시하고 있어, 관람객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온 광고의 모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에는 광고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국내외에서 제작된 우수 공익광고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광고 제작 과정에서 실제로 사용되었던 카메라, 편집기, 촬영 장비 등 다양한 자료와 도구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박물관 1층 로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광고 관련 다양한 전문 도서를 읽어볼 수 있다.
5.6Km 2025-03-17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328길 49 (서초동)
기록상 백제는 384년인 침류왕 원년에 고승 마라난타가 동진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서 서울인 한산으로 들어오자 왕은 그를 궁 안에 머물도록 하였고, 이듬해 10명의 백제인을 출가시켜 승려로 만들었다고 한다. 마라난타는 백제로 오는 동안 풍토병으로 고생을 하였는데, 이곳에 와서 우면산 물을 마셔 병이 완쾌하였고, 이에 우면산에 대성초당을 짓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대성사의 전신이라 전해진다. 이후 알려진 연혁은 없지만 근대에 들어 3·1독립만세운동 때 불교계 대표로 참가했던 용성스님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대성사가 소실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한국전쟁 때 다시 한번 피해를 입었다고 전하며, 전쟁이 끝난 1954년에 중창된다. 현재 대성사에는 백용스님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대성사 목불좌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이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