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Km 2024-11-26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북촌 중앙고등학교 정문에서 90m 떨어진 계동길에 자리한 석정보름우물은 조선 중기부터 있던 것으로 여겨지는 오래된 우물이다. 서울 도심에서 조선 궁궐과 종묘를 제외하고 가장 오래된 우물로 가회동과 계동 지역 사람들이 오랫동안 식수로 사용했다. 한 달의 보름은 물이 맑고 보름은 흐려져서 붙여진 이름으로 물맛이 좋기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이 우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아들을 원하는 서울 아낙네들과 궁궐 궁녀들의 수요가 상당했다고 한다. 1794년 천주교 선교를 위해 청나라에서 넘어온 외국인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서 첫 미사를 진행하며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줬고 김대건 신부는 성수로 사용했다고 하여 천주교에서도 이 우물을 소중히 여긴다. 현재는 상수도 보급과 지하수 오염으로 사용하지 않은 우물이 되었고 입구도 봉쇄되어 있다.
3.1Km 2024-11-27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4길 10-4 (계동)
북촌의 좁은 골목 사이, 솔솔 퍼진 소나무 향기가 반겨주는 ‘유준당 바이 버틀러리’가 있다. 마당의 작은 소나무를 감싸 안은 ‘ㅁ’자 형태의 한옥인데요. 이 형태를 따라 머물면 ‘유준당 바이 버틀러리’의 매력을 더 깊이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입구 왼쪽에 있는 다도실에서 향긋한 차 한잔을 마시고, 바로 옆 편백 욕조가 있는 욕실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온몸의 피로를 녹일 수 있다. 저녁엔 거실 소파에 앉아 빔프로젝터로 영화를 본 후 포근한 이불 속에서 잠들어 보시길 바란다.
3.1Km 2024-12-18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6길 4-1 (계동)
0507-1411-1487
이씨함이 대한민국 조선시대 전통 가구 공예를 계승하기 위해 홀로 정진을 다하였던 [故]이성구 작가 [李性求, 1927-2000]의 장인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작품들과 함께하는 함 한옥 스테이입니다. 서울 북촌 정통 한옥과 조선 목가구를 동시에 경험 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에서 이제 스테이하세요.
3.1Km 2024-12-05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6길 3
010-7735-5916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이다. 방에 전용 욕실, 화장실이 있어 편리하게 이용 가능하고 근처에는 경복궁, 인사동이 있어 관광코스와도 멀지 않아 접근이 용이하다.
3.1Km 2025-01-07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1길 18 LG상남도서관
LG 상남도서관은 국내 최초의 ‘디지털 도서관’이자 세계 최초의 ‘책 읽어주는 도서관’이다. LG그룹 설립자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기증한 사저를 기반으로 1996년 개관하였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와 자료를 공급하는 곳으로 앞으로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만들어졌다. 국내에서 입수하기 힘든 해외 과학기술 논문을 디지털화하여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2층 세미나실은 소규모 과학기술 분야 학술 모임장으로 무료 대여하고 있다. 해당 세미나실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 가능하니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다면 최신 논문을 보고 토론을 할 수 있다.
3.1Km 2024-12-26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길 92-19 (계동)
온유헌 바이 버틀러리는 고즈넉한 마당을 품고 있는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따뜻하고 평온한 느낌을 준다. 마당 툇마루에 둘러앉아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를 보면 마치 비밀 정원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며,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면 포근한 느낌이 가득하다.
3.1Km 2024-12-08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6길 9
02-742-1115
서울 종로 계동 골목에 위치한 인우하우스는 전통한옥으로, 각 방에 전용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처마 아래 제비집이 있어 해마다 봄이면 제비 가족이 찾아오는 것이 이 집의 자랑이다. 전통문화 체험을 위해 전통한지공예, 전통매듭 팔찌 만들기, 부채꾸미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인근에 식당, 카페, 편의점 등이 있어 편리하고, 경복궁, 창덕궁, 인사동, 삼청동 등도 도보로 이동하기 좋다.
3.1Km 2025-04-04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4길 3
북촌한옥역사관은 종로구 계동 4길 3에 있으며, 한옥을 개조한 공간에서 북촌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다. 1920~1930년대 '조선집'이라 불린 소형 한옥과 이를 공급하면서 당시 '건축왕'이라 불렸던 기농 정세권 선생을 조명한다.
3.1Km 2025-03-19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344
광희문은 1396년(태조 5년) 도성 창건 때 동남쪽에 세운 소문이다. 광희문은 실질적인 도성의 남소문으로 이를 흔히 수구문으로 불렀다. 청계천이 흘러 나가는 곳에 세워진 수구가 거리상으로는 광희문보다는 동대문이 가깝지만, 남소문이 장충단공원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따로 있었기 때문에 편의상 수구문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수구문은 실제로는 시구문으로 이용되었으니, 서쪽의 서소문과 함께 도성 내의 장례행렬이 동쪽 방향으로 지날 때 통과하는 문이었다. 임진왜란으로 도성과 궁성이 파괴될 때 광희문도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숙종 때 기록을 보면 남소문과 광희문의 자리를 혼동하기도 하고, 성문 터과 군영의 위치 확인도 어려울 정도로 파괴된 도성을 수축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광희문은 도성 수축이 이루어진 이듬해인 숙종 37년(1711)에 중건에 착수하는데, 수구문을 다시 쌓고 아울러 문루도 조성하게 하였다. 수구문은 심하게 파괴되어 석축을 새로 개수하는데 시일이 많이 걸리므로 서대문 지역을 담당하는 아문에 목재를 넘겨주어 돈의문 문루를 만들게 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성문이 수축되고 그 이후 언제 문류가 중건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1719년(숙종 45)에 수구문은 옛 이름이 광희문이니, 해당 군문에서 액호를 써서 걸 것을 요청하자 대리청정하던 세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영조 때에 도성의 문루가 없는 성문을 중건하게 되었는데 그 대상에 광희문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1759년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성도에는 당시 문류 유무에 따라 성문을 그렸는데 수구문에는 문루가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광희문은 숙종 때에 재건된 것으로 확인된다. 광희문은 일제가 전차궤도를 부설하면서 성곽을 철거할 때도 문과 문루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6·25 전쟁으로 문루가 파고 된 상태로 방치되었다. 그 후 1975년에 도로 중간에 위치하게 되어 원위치에서 남쪽으로 15m 옮기는 이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1975년 11월에 준공되었다. 광희문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보면 1624(인조 2)에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가 수구문을 통하여 도망갔고, 병자호란(1636)때에는 임금이 역시 이문을 통과하여 남한산성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일본 사신들은 옥수동 두모포나루로 한강을 건너 광희문을 통하여 인현동에 있던 지정숙소인 동평관으로 향하였다. 성문은 서울성곽의 다른 소문과 같이 장방형 무사석으로 높게 축조한 육축을 마련하고 육축 가운데 홍예를 앞뒤로 설치하여 통로를 만들고, 그 위에 문루를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