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Km 2025-03-11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1522-2776
영풍문고는 1992년 서울 종각에 위치한 영풍빌딩 내에 국내 최대 규모의 종로점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시내와 지방 지역을 대표하는 서점이다. 다양한 도서와 편안한 쇼핑 공간을 제공한다. 최신 베스트셀러부터 고전, 전공서적, 아동서적, 외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또한, 도서뿐만 아니라 문구류, 선물용품, 음반 등 다양한 상품을 함께 취급하여 방문객들이 여러 가지를 한 번에 구입할 수 있다. 낭독회, 사인회, 강좌 등 문화행사나 강연 등도 진행되어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장소이다. 종로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며,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문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4.2Km 2024-06-13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186
02-2267-7285
동방명주는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1가에 위치한 중국요리 전문점이다. 대표 메뉴로는 짜장면이 있으며 새우, 삼선 가락국수 등 다양한 중국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돼지기름을 적당히 사용하여 불맛 나는 중국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군만두도 직접 빚은 만두를 사용한다. 돼지고기와 부추가 실하게 들어간다. 수도권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 4번 출구에서 약 50m 거리에 있다.
4.2Km 2025-03-19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66 (을지로2가)
명동 관광정보센터는 서울 중구 을지로 2가에 위치해 있는 관광안내소이다. 서비스 언어는 영어, 중국어, 일어이며, 외국인뿐만 아니라 서울시민에게도 관광, 축제, 쇼핑, 공연 등에 관한 서울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이벤트를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한다. 다양한 서울의 여행 정보를 알고 싶을 때 방문하면 좋다.
4.2Km 2025-03-18
서울특별시 성동구 독서당로63길 44 (행당동)
서울 성동구 대현산공원 안에 있는 대현산체육관은 성동구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공공 체육시설이다. 체육관은 3개 층으로 1층에는 6개의 코트 배드민턴장, 2층 샤워장, 3층 전망대 및 휴게실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배드민턴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체육관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으며, 사전예약은 전화를 통해 할 수 있다. 대현산공원, 응봉근린공원 내에 있기 때문에 행당제2동 둘레길에서 산책을 즐겨도 좋다.
4.2Km 2021-03-09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길 7
02-6226-8220
서울특별시 종각역 부근에 있는 한식당이다. 대표메뉴는 닭곱새다. 닭고기, 곱창, 새우를 매운 양념에 볶아서 먹는 매장이다.
4.2Km 2024-02-02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길 7 (청진동)
실속 있는 가격의 식사 메뉴부터 접대를 위한 코스요리까지 있는 한정식 식당이다. [진진하다]는 [입에 착착 달라붙을 정도로 맛이 좋다, 물건 따위가 풍성하게 많다] 라는 뜻이며 수라상은 왕에게 올리던 밥상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진진수라]는 정갈하고 맛있는 요리, 기품있고 세심한 서비스를 통해 왕에게 올리는 밥상처럼 최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코스요리는 8가지가 있으며 비교적 저렴한 평일 점심 코스요리와 단품으로 나오는 일품요리가 있다. 일품요리는 궁중구절판, 떡갈비구이, 궁중해물탕, 육회, 간장게장, 황태구이, 갈비찜 등 다양하다. 이외에 도시락 배달도 가능하다. 실내는 멋스럽고 기품 있는 인테리어와 서비스로 외국인 손님이나 VIP 접대에도 부족함이 없으며 음식의 구성과 퀄리티는 어떠한 만찬 자리에도 잘 어울다. 각종 모임과 돌잔치 및 회갑잔치, 스몰웨딩, 상견례 등 가족 연회장소로도 좋으며 세미나, 기자간담회 및 회식 장소로 독립적인 공간에서 편안한 외식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크기의 룸이 있다. 수도권 지하철 광화문역과 종각역 사이에 있으며 인근에는 광화문광장, 청계천, 경복궁, 덕수궁 등이 있어 연계하여 둘러볼 수 있다.
4.2Km 2025-03-13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1길 20
우당 이회영 선생 흉상은 대한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애국지사 이회영 선생을 기억하기 위해 건립된 흉상이다. 이회영은 이조판서 이유승의 4남으로 태어나 성장했다. 1905년에 을사늑약 체결의 음모를 저지하고 무효로 하는 운동을 주도하였고, 고종황제를 설득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 파견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때, 6형제 전원과 일가족 50여 명이 전 재산을 정리하여 망명을 떠났다.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개소하였고, 1912년에는 합니하로 이전하여 본격적인 무관학교 교육을 시작했다.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폐교할 때까지 독립군 간부 3,500여 명을 양성하는 성과를 이루고 독립전쟁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광복군을 창설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상해 임시정부가 구성됐을 때는 의정위원으로 참여했고, 이후 아나키즘 운동과 의열단 조직을 지원함과 동시에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하여 흑색공포단을 산하에 두고 의열투쟁에 매진했다. 중국의 항일부대와 독립군 부대가 연합하여 항일투쟁을 하도록 현지 지도 차 잠입하던 중 대련에서 체포되어 뤼순 감옥으로 이송됐다. 이곳에서 모진 고문과 굶주림으로 순국하는데 이때가 선생의 나이 66세였다. 흉상은 이회영 선생의 공적을 기려 기념사업회에서 건립하였으며, ‘이회영·이시영 6형제 집터’ 표지석이 위치한 서울 YWCA 앞에 함께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