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양동호가옥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화순양동호가옥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화순양동호가옥

화순양동호가옥

10.7 Km    19375     2023-05-16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달아실길 24

마을 가운데에 약간 긴 네모꼴로 담장을 두르고 뒤쪽에 ㄷ자형 안채를 동쪽에서 약간 북쪽으로 틀어서 배치하고 축을 맞춰 앞쪽에 사랑채를 두었다. 안마당과 사랑채는 담장없이 그대로 이어 중문칸을 사랑채 왼쪽에 작게 만들었다. 중문 왼쪽 곁에는 세로로 헛간채를 두어 안마당의 남쪽을 막았다. 그 앞은 중문밖으로 샘이 있고 담장을 따로 돌렸다. 그 앞에 단칸의 대문을 만들었는데 사랑마당에 직각축으로 놓여졌다. 사랑마당 북동쪽 모퉁이에는 뒷간과 돼지우리가 시설되었다. 또 사랑채 북쪽에는 안마당에서 계속된 광채를 두었다. 이것은 남도 양반주택의 인위적인 형태로서 안채는 약 18세기, 사랑채는 19세기 말경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큰방과 대청이 나란히 있는 남방식이지만 대청공간이 매우 크며 세 공간으로 구분되는 점이 특이하다. 뼈대는 기본적으로 양쪽 날개를 3칸으로 처리하고 몸채는 후퇴로 구했으며 왼쪽날개는 3칸, 오른쪽은 4칸, 몸채는 5칸이다.

부엌은 동쪽에 두어 앞 3칸은 부엌이며 뒷칸은 부엌방이다. 다음은 복판에 좌우 2칸인 큰방, 2칸대청, 몸채끝이 가운데 대청인 차례로 놓여졌다. 왼쪽 날개에는 앞칸에 갓방, 다음은 2칸의 갓대청이다. 큰방과 큰 대청 앞에는 쪽마루를 시설하고 뒷퇴에는 각각의 골방을 만들었다. 그러나 가운데 대청과 큰대청 웃칸의 뒷퇴는 나중에 다시 빈칸을 뒤로 더 빼내서 각각 고방을 크게 만들어 두었다. 골방이나 고방은 모두 우물마루를 깔아 중부지방과 다른 특이함을 나타내고 있다. 부엌도 앞쪽으로 1칸은 별도로 후에 보수한 것이며 오른쪽 측벽은 처마밑을 이용하여 헛기둥을 세우고 증축한 것이다. 그러나 이 헛벽의 구조는 특이해서 도리가 서까래 밑까지 가지않고 울담처럼 허공에 떠있는 헛도리이다.

벽체도 두꺼운 빈지널을 세로로 끼워 넣은 점이 고전적 느낌을 준다. 구조는 3평주 3량으로서 내진주도 평주로 처리하고 종도리는 양기둥 중앙에 두었다. 납도리이고 장혀를 받쳤으며 사다리꼴 판대공을 세웠다. 대들보의 단면은 양면치기한 둥근네모꼴이고 전면 기둥에만 단이를 받쳤다. 내진주 머리에는 대들보와 갓보와 같은 위치에서 맞춰지며 대들보 아래에만 보아지를 끼워 보강했다. 도리간으로는 헛장혀가 맞춰진다. 이 집은 특히 양쪽 날개의 기둥을 몸체기둥과 구분함으로써 구조체를 완전히 따로하였다. 지붕의 몸체는 합각이고 날개는 박공인데 오른쪽 전면만 증축하면서 눈썹지붕을 덧붙여 마치 합각지붕으로 보인다. 사랑채의 평면구성은 역시 남방식으로서 5칸 -자형 전후퇴집이다. 간살이는 맨 북쪽으로부터 아랫방, 웃방, 부엌, 사랑방, 사랑대청으로 구성했다. 1989년 안채와 사랑채를 보수하였다.

* 규모 - 가옥 일원
* 시대 - 조선시대 18세기

양참사댁(양동호 가옥 / 한옥152) [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양참사댁(양동호 가옥 / 한옥152) [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10.7 Km    8     2023-04-13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달아실길 24
010-4200-6789

전라남도 화순에 자리한 양참사댁은 사대부가의 형태를 갖춘 300년 된 고택으로,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안채와 사랑채에 총 5개의 객실이 있다. 다양한 전시회나 음악회가 진행되고, 전통문화․예술 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다. 전통 혼례나 야외 결혼식, 각종 연회나 기업 워크숍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운영 중이다. 마을에 학재고택과 화순고인돌유적지 등이 있고 차량 15분 거리에 고찰 운주사가 있다.

국립공원의 막내, 무등산을 오르다

국립공원의 막내, 무등산을 오르다

10.7 Km    1552     2023-08-11

무등산은 광주의 모산(母山)으로 일컬어진다. 무등산옛길을 따라 서석대에 오르면 그 까닭을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다. 광주와 담양에 걸쳐 가슴을 연 무등산의 장관도 누릴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증심사에서 출발하면 무등산의 서쪽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해망서원

해망서원

10.8 Km    24635     2023-03-31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섶메길 37-1

1508년(중종 3)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병화로 향사가 중단되었다가 1931년 유림에 의하여 제단을 복원하고 김일손(金馹孫)과 정여해(鄭汝諧)를 추가 배향하였으며, 1934년에 제단을 사당으로 개조하였다. 1979년에 중수하고 해망서원으로 불렀으며, 1984년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1987년에는 문화재 관리사업으로 중수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숭의사(崇義祠), 내삼문(內三門), 4칸의 구인당(求仁堂), 외삼문(外三門), 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사우인 숭의사에는 김종직을 주벽(主壁)으로 좌우에 김굉필·정여창·김일손·정여해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인 구인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9월 1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소장전적으로는『돈재문집(遯齋文集)』 등 20여 종의 문헌이 있으며, 재산으로는 대지 300여 평과 전답 2,800여 평이 있다.

증심사(광주)

증심사(광주)

10.8 Km    32578     2024-03-19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77

증심사는 광주지역의 대표적인 불교도량으로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통일신라 때 고승 철감선사 도윤이 9세기 중엽에 세운 절로 고려 선종 때(1094년) 혜소국사가 고쳐 짓고 조선 세종 때 김방이 삼창하였는데 이때 오백나한의 불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09년(광해군 1)에 석경·수장·도광의 3대 선사가 4창했다고 한다. 그 후 신도들의 정성으로 몇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으나, 6 ·25 전쟁 때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가 1970년에야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복구되었다. 증심사의 유물로는 오백전과 비로전(사성전)에 봉안된 철조비로자나불 좌상(보물), 신라 말기의 석탑인 증심사 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범종각, 각 층의 4면에 범자가 새겨진 범자칠층석탑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특히 오백전은 무등산에 남아 있는 사찰 건물들 중 현재 가장 오래된 조선 초기(세종 25년)의 건물로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과 계통을 같이 하는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단층 맞배지붕의 다심포 양식으로 그 희귀성이 돋보인다. 이에 1986년 11월 1일 광주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사찰이다. 다양한 템플스테이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체험프로그램이 있다.

삼애다원

삼애다원

10.8 Km    0     2023-12-05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77

광주 증심사 입구의 왼쪽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삼애다원(三愛茶園)은 춘설차(茶)의 본고장이다. 춘설차는 녹차가 어떤 음식보다 심신 건강에 좋다는 의미로 의재 허백련(1891~1977) 화백이 붙인 이름이다. 이곳은 총면적 9만 9174㎡의 차밭으로, 증심사의 소유로 수백 년을 내려온 곳이다. 1912년 일제강점기 때 한 일본인이 일부를 인수해 본격적인 기업형 차밭으로 개발, 1937년에는 생산량이 연간 5,333kg에 이르렀다고 한다. 예부터 무등산 차는 구례의 지리산, 보성의 대원사 등의 차와 함께 최고의 맛을 인정받았다. 일제가 물러가고 차밭이 방치되자 한국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화백이 이를 맡게 된다. 의재는 차밭에 ‘삼애다원’이란 이름을 붙이고, 여기서 덖어낸 찻잎으로 녹차와 홍차를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의재의 손자 허달재와 허달문 씨 형제가 3대째 운영하고 있으며, 광주시 전통식품 1호, 광주시 동구 명품으로 선정되는 등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한천농악전수회관

한천농악전수회관

10.8 Km    14882     2023-12-13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김삿갓로 720

한천농악전수회관은 한천 농악의 전수교육과 공연 등을 통해 무형 유산인 한천 농악을 보존, 전승하는 공간이다. 1996년 준공된 지상 2층의 1동 건물로, 숙소와 연습실을 갖추고 있다. 2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천농악은 일반적인 마을의 농악의 경우처럼 마을 내에서 당산굿을 하고, 마당밟이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역대 상쇠(꽹과리를 치면서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들의 활동상을 점검해 보면, 1950~60년대에 농악을 매개로 주변 마을과 경쟁하고, 유명 상쇠의 영향을 받아 체계를 갖춰간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독상리에 살던 이선일 씨가 가장 뛰어난 상쇠로 이름을 날렸고, 그가 한천마을로 이주해 오면서 비로소 한천 농악이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50년대 농악계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1960~70년대 왕성한 공연 활동을 하면서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1964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뒤 널리 알려졌으며, 이후 1979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도원서원

도원서원

10.9 Km    17311     2023-12-10

전라남도 화순군 연곡길 137 도원서원

도원서원은 동복 고을과 연고를 맺고 유학 진흥에 크게 이바지한 최산두, 임억령, 정구, 안방준을 모신 서원으로 현종 9년(1668) 지역 유림이 뜻을 모아 창건하였다. 숙종 14년(1688) 도원이란 사액을 받으면서 도원서원으로 불렸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으나, 최산두의 후손들에 의해 1975년 유허비가 세워졌으며 1977년 사당, 1978년 동서재가 복원되었다. 경내의 구성은 크게 4위를 배향하는 사당과 강학을 위한 동재인 숭의재와 서재인 집성재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바깥출입을 위한 외삼문인 건공문과 사당으로 연결되는 내삼문인 발일문이 있는데, 두 문 모두 맞배지붕 솟을대문이다. 해마다 음력 3월 10일이면 춘향대제를 지낸다. 서원과 직접 관련된 유적과 유물은 전해지지 않지만, 중종이 최산두에게 하사한 옥대가 전라남도 지방 유형 문재로 지정되어 있다. 도원서원에서, 차량으로 20분 거리에 화순적벽, 물염정이 있다.

화순동복남덕원비

11.0 Km    16399     2024-01-26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

남덕원은 고려, 조선 시대에 출장 중인 관리들의 숙박 장소로 이용하고, 공문 송달이나 물류 수송을 지원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설치한 기관이다. 동복 현감 심지헌이 주도하여 현종 9년(1668)에 건립하였다. 남덕원은 독상리의 금계산 기슭에 있었던 역원으로 인근 한천리에 검부역이 생기면서 폐지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검부역이 언제 설치되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남덕원의 폐지연대도 추정할 수 없다. 비석은 거친 사암질 자연석이고 비문은 8행으로 새겨져 있다. 비문 내용 중 심지헌 이란 인물이 있어 확인 결과 그는 동복현감을 지냈는데 1666년 9월에 부임하여 1668년 7월에 이임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비석의 건립연대 또한 무신년 3월인데 이임하기 전 심지헌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남덕원비의 문화재적 가치는 조선시대 교통시설이자 공공기관이었던 역원에 대한 유일한 비이며 동복현의 역사와 관련시켜 살펴보면 충분한 역사적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17세기에 걸친 자연석에 새겨진 행서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독상리석등

독상리석등

11.0 Km    16339     2023-12-13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 석등은 고려 시대 시중을 지낸 문헌공 오대승이 하늘에 제사하기 위해 제작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리 오대승이 관도 남쪽에 석등 48개를 만들어 밤마다 불을 켜 놓고 하늘에 절하였더니, 그 내외의 자손들이 모두 출세하고 계속하여 상부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독상리 석등은 높이 40㎝, 길이 164㎝, 너비 105㎝의 암반에 구멍을 파서 만든 것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비각의 홍살문 안에 있다. 구멍은 약간 손질을 가한 자연 암반 위에 지름 5~14㎝, 깊이 2.5~8㎝ 정도 되는 크기로 48개(실제로는 54개)이며, 이 구멍에 기름을 붓고 심지에 불을 켰던 것으로 보인다. 구멍 수인 48개 즉, 48등은 불교에서 말하는 48원을 의미한 것이다. 48원은 불교의 아미타불의 최고의 이상인 극락정토이다. 즉, 생로병사가 없는 안락한 정토(부처가 사는 세계)라는 뜻이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독상리 석등은 고려 시대 민간신앙이 불교와 합치되어 나타난 현상의 한 예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