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곱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여진곱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여진곱

여진곱

1.6Km    2021-03-09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30
02-762-5157

서울특별시 종로에 있는 한식당이다. 낙원상가 근처에 있는 곱창전문점이다. 대표메뉴는 곱창전골이다.

제로띵스

제로띵스

1.6Km    2024-11-29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로 32-1 (저동2가)

제로띵스(zerothings)는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진 제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으로 초록색 소비를 지향하는 곳이다. 초록색 소비란 생활 속에서 버려지는 것을 최소화하고, 친환경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다회용품으로 일회용품을 대체하여 일상을 좀 더 건강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판매하는 품목은 욕실, 주방, 일상용품, 식품, 기프트 세트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번 빨아서 쓰는 화장솜이나 친환경 비누와 샴푸바, 양말목으로 만든 가방, 천연 수세미, 버려지는 커피 생두 껍질로 만들어진 친환경 컵, 비건 견과 초코볼 등의 여러 상품을 구매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 버려지는 것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창덕궁 인정문

창덕궁 인정문

1.6Km    2025-03-13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인정문(仁政門)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의 정문이다. 인정문은 왕의 장례(국장)가 있을 때 다음 왕의 즉위식을 치렀던 곳으로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천장은 천장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며, 단청은 가장 소박하게 꾸몄다. 왕위를 이어받는 의식이 거행되던 곳으로, 정전인 인정전과 함께 조선왕조 궁궐의 위엄과 격식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베니키아 노블 호텔

1.6Km    2024-04-09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6길 13-3 노블호텔
02-742-4025~9

베니키아 노블 호텔이 위치한 종로는 수도 서울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지역으로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관광자원이 적절히 융합된 한국관광의 중심지이다. 서울 시내의 유명 관광지나 쇼핑센터가 모두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곳에 위치하여 편리하다. 베니키아 노블 호텔의 카페에서는 그릴샌드위치를 비롯한 간단한 식사대용의 베이커리류와 에스프레소, 다양한 음료를 먹을 수 있다. 노블호텔만의 고유 서비스철학과 차별화된 시설 및 상품을 제공받을 수 있다.

낙원동 아구찜 거리

낙원동 아구찜 거리

1.6Km    2025-01-02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28

1972년 낙원동 거리에 서울에서 처음으로 아구찜을 하는 식당이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아구를 찜으로 해 먹는 것은 저 먼 마산에서만 듣던 소리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인 인천에서도 아구를 찜으로 해 먹지는 안았다고 한다. 아구찜 거리에 처음으로 문을 연 식당은 그래서 아구찜을 만드는 데 온갖 정성을 다 들였다. 물에 끓으면 흐물흐물해지는 아구의 살을 꼬들꼬들하게 만드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산에서 말려도 보고 인천 앞바다 섬에 들어가 모래사장에서 말려보기도 했으나 파리가 꼬이는 등 위생상 문제가 심했다.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때마다 아구의 살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결국 터득한 방법은 찬얼음물과 끓는 물을 번갈아 가며 끓이고 식히는 식이었다. 서울에서 아구찜을 맛볼 수 있다는 말에 소문은 퍼져나갔고 소문 따라 주변에 아구찜을 하는 식당도 늘어났다. 한때 십여 집을 넘던 아구찜 식당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문을 닫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시기가 있었다. 한 번 그렇게 시련을 겪고 난 뒤 다시 아구찜 거리에 아구찜 식당이 들어차게 됐고 그 결과 지금의 거리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지금 이 거리에는 불과 3~4년 전에 문을 연 집부터 30년을 훌쩍 넘긴 집까지 사이좋게 식당문을 열고 성업 중이다.

창덕궁과 후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창덕궁과 후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1.6Km    2025-04-02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창덕궁(昌德宮)은 1405년(태종 5) 법궁인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궁궐 중 처음으로 다시 지어졌다. 이후 역대 왕들이 1867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약 270여 년 동안 창덕궁을 더 많이 사용하여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다. 특히 대조전 부속 건물인 흥복헌은 1910년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며, 낙선재 권역은 광복 이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가족인 순정황후(순종의 두 번째 황후),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고종의 딸)가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창덕궁은 창경궁(昌慶宮)과 경계 없이 ‘동궐(東闕)’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창덕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1406년(태종 6) 창덕궁 북쪽에 처음 조성된 후원은 세조 대에 확장하였고, 성종 대에 건립된 창경궁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후원 권역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소실되었고, 1610년(광해군 2)에 다시 조성되었다. 이후 인조, 숙종, 정조, 순조 등 여러 왕들이 개수하고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정자를 만들었다. 4개의 골짜기에는 각각 부용지(芙蓉池), 애련지(愛蓮池), 관람지(觀纜池), 옥류천(玉流川) 영역이 펼쳐진다. 왕가의 휴식과 산책을 위한 곳이지만, 여러 가지 다른 용도로도 사용하였다. 자연 풍광을 느끼면서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는 것을 포함하여 군사훈련 등의 활쏘기 행사, 연못에서 낚시를 하거나 배를 띄우기도 하고 꽃구경을 하였으며, 화약을 이용한 불꽃놀이도 하였다. 또 대비를 모시는 잔치, 종친이나 신하를 위로하는 잔치 등 임금이 주관하는 잔치도 자주 열렸다. 또한 왕은 이곳에 곡식을 심어 농사를 직접 체험하고, 왕비는 양잠을 직접 시행하는 친잠례(親蠶禮)를 열었다.

동양예술극장

동양예술극장

1.6Km    2024-10-31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14길 29 (혜화동)

아트센터 K는 다양한 형식과 가치를 가진 차별화된 공연 예술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전문 공연장이다. [원더스페이스] 공연장이 2012년 [아트센터 K]로 재개관을 하여 창작, 교류, 교육 및 공연 활동의 장으로 예술인들을 지원하고 있다. 대중들과 문화적인 연결 통로가 되어 문화 향유의 공간뿐만이 아닌 예술 참여와 창조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아트센터 K에 있는 동그라미극장, 세모극장, 네모극장은 이름만큼이나 무대 및 객석의 구조가 뚜렷한 개성을 자랑하며, 그중 1개 극장에서는 재미있고 유익한 아동극이 상시 공연된다. 다른 2개 극장에서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연극, 뮤지컬, 콘서트 외 기타 문화행사를 선정하여 대관하고 정기적으로 자체 기획하여 운영한다. 2008년 9월 복합문화공간의 교육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추가로 조성된 사이스튜디오는 다양한 주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개최하고 아트센터 K 내, 외부 공연의 연습실로도 활용된다.

창덕궁 달빛기행

창덕궁 달빛기행

1.6Km    2025-03-11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1522-2295

창덕궁 달빛기행은 은은한 달빛아래 녹음이 어우러진 창덕궁에서 전문해설사와 함께 궁궐의 곳곳을 관람하며, 각 전각에 대한 해설과 전통예술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돈화문 공사로 인해 창덕궁 금호문에서 출발해 진선문 · 인정전 · 희정당 · 낙선재 · 상량정 · 부용지 · 불로문 · 애련정 · 연경당 · 후원 숲길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창덕궁 낙선재

1.6Km    2025-04-10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낙선재 일원은 조선 24대 헌종이 후궁 경빈 김씨를 맞이하면서 1847년(헌종 13)에 창경궁 낙선당 터에 낙선재를 지었고,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과 수강재(壽康齋)를 지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로 사용하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였던 순원황후 김씨(순조의 왕비)의 처소로 사용되었다. 특히 이곳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 순정황후 윤씨와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 등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가족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낙선재 일원은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고, 낙선재 뒤로는 후원을 만들었다. 건물과 후원 사이에는 작은 석축들을 계단식으로 쌓아 화초를 심었고, 그 사이사이에 세련된 굴뚝과 괴석들을 배열했다. 궁궐의 품격과 여인의 공간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정원이다.

신석구 사택 터

신석구 사택 터

1.6Km    2025-03-19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100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신석구가 1919년 3·1운동 당시 살던 곳이다. 신석구(1875~1950)는 1907년 기독교에 입교하여 이듬해 세례를 받고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했다. 경기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1917년 9월 남감리교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18년 11월부터 서울 수표교교회 담임 목사로 재임하던 중 오화영의 권유를 받고 3·1운동 민족대표로 참여했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일경에 붙잡혀 2년 8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1938년 7월 신사참배 반대투쟁을 일으켜 옥고를 치렀으며, 1945년 5월 일제가 강요한 전승기원 예배와 일장기 계양 등을 거부하는 활동을 펼치다 연행되어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다. 1949년 4월 19일 진남포 반공비밀결사 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6·25전쟁 때 희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