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고택북촌산책길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성북동고택북촌산책길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성북동고택북촌산책길

성북동고택북촌산책길

14.6 Km    1     2024-08-16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성북동 고택 북촌문화길은 옛 정취를 느끼기에 제격인 곳으로, 600년 도성의 성곽을 사이에 두고 오랜 세월을 견뎌낸 성북동 고택과 북촌한옥마을의 고색창연한 길이다. 성북동 고택 북촌문화길은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사찰 길상사와 정법사, 만해 한용운 선생이 생애를 마친 심우장, 소설가 이태준 가옥 등의 역사적인 장소와 이태준이 머물면서 작품을 집필하던 개량한옥집으로 현재는 전통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는 수연산방, 성북구립미술관 등의 문화공간으로 가득 차 있다.

선녀와나무꾼

선녀와나무꾼

14.6 Km    0     2024-08-19

경기도 양주시 평화로1501번길 72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캠핑장이다. 카라반과 글램핑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공용 수영장과 넓은 잔디밭이 있어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다. 인근에 장흥자생수목원이 있어 관광하기에도 좋다. 반려동물 동반은 불가능하다.

정관장 신사

정관장 신사

14.6 Km    0     2024-03-23

서울특별시 은평구 증산로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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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별장

이종석별장

14.6 Km    1     2023-11-20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31 (성북동)

조선 말기 마포강에서 새우젓 장사로 갑부가 된 이종석이 1900년경에 지은 별장으로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건물을 통해 당시 규모가 큰 상인들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으며, 특히 가옥 주변의 조경은 한국의 멋이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다. 직사형의 집터에 [ㄹ] 자형의 평면으로 구성된 남향집으로 별장으로 지어진 집이라 구조가 일반적인 살림집과 다르다. 바깥마당의 동북쪽에 안채가 위치하고, 북쪽에 행랑채가 있다. 사랑채 비슷한 별채의 안채와 그에 부속된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대청 옆 누마루에 일관정이라고 쓴 편액을 걸고 추녀에는 풍경을 달았으며 회색 벽돌로 영롱담을 쌓아 집터 주위를 둘러막아 놓았다. 특히 안채로 드나드는 대문과 그 바깥마당의 우물가 등은 집터 주위의 수목과 어우러져 예스러운 느낌을 풍긴다.

흥천사

흥천사

14.6 Km    29689     2023-02-14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길 29

북한산 서쪽 기슭의 정릉 입구에 있는 신흥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 강씨의 능인 정릉의 조포사(제사에 쓰는 두부를 만드는 절)였다. 정릉이 이장되면서 몇번 옮겨지다가 정조 18년(1794년)부터 지금의 자리에 정착되었다.

성북동집

성북동집

14.6 Km    2296     2023-07-07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24길 4
02-747-6234

사골국물의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손칼국수와 담백한 맛을 내는 만두가 유명한 집이다. 두 가지를 섞은 칼만두와 칼국수, 고기만두, 김치만두 등의 메뉴도 맛볼 수 있다. 재료 소진시 조기 마감되니 서둘러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인근에 독립운동가이자 시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한용운 님이 만년에 거쳐하던 심우장, 이태준 가옥, 성북구립미술관 등이 있다.

성북동 마을과 고택, 예술가들의 이야기

14.6 Km    4207     2023-08-08

여기 마을과 집과 그 집에 살던 예술가들이 있다. 1970~80년대 서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북정마을이 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이 있고, 이종석의 별정이 있는 성북동의 고택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다. 문인가 화가들의 정취가 숨쉬는 성북동을 여유 있게 돌아보자.

출처:이야기를 따라 한양 도성을 걷다.

만해한용운심우장

만해한용운심우장

14.6 Km    28784     2023-07-05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29길 24

이 집은 3.1운동 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자 님의 침묵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동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가면 북쪽으로 향한 기와집인 심우장과 양옥의 관리사 그리고 만해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 등이 있다. 심우장은 전체 규모가 5칸에 불과한 작은 집으로, 이곳에는 가운데 대칭을 중심으로 왼쪽에 온돌방, 오른쪽에 부엌이 있다. 부엌 뒤로는 식사 준비는 하는 공간인 천마루방이 있다. 한용운의 서재였던 온돌방에는 심우장이라는 현관이 걸려있는데, 이는 근대의 대표적인 서화가인 위창 오세창이 쓴 것이다. 이 이름은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심우장이 있는 성북동 일대는 1930년대 서울이 확장되면서 주거지로 개발되었는데, 이 집은 당시의 여느 집과는 다르게 검소하고 소박한 구성을 보여준다. 한용운은 조선의 불교를 개혁하려고 했던 승려이자 조국의 독립에 힘쓴 독립운동가이며 근대 문학에 큰 업적을 남긴 시인이었다.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심우장은 그의 이 같은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아나키아

아나키아

14.6 Km    5     2023-11-20

경기도 의정부시 잔돌길 22 (산곡동)

아나키아는 의정부 최대 규모로 카페와 레스토랑을 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하 3층, 지상 5층 규모의 대형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푸릇푸릇한 야외정원이 아름답고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다.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디자인 어워드이자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경력도 있다. 카페에서는 빵, 케이크 등 다양한 베이커리를 취급하고 있으며, 매일 음악 공연이 열려 2층에서는 피아노, 바이올린, 트럼펫 등을 활용한 음악 공연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3층에는 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커피바가 있으며, 4층은 레스토랑, 5층은 연회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5층에는 프라이빗룸(파티 공간) 대여가 가능한 12인, 16인, 32인 룸 세 개를 구비하고 있다. 건물 내부가 통창으로 되어있어 아름다운 숲속뷰와 함께 음료, 공연 관람, 식사 등 다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학도암(서울)

학도암(서울)

14.6 Km    22704     2023-04-23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로14다길 89

서울 근교에 자리한 사찰 가운데 학이 날아와 놀았다는 사찰은 아마도 학도암 뿐일 것이다. 그만큼 주변의 경치가 학이 와서 놀만큼 빼어나게 아름다웠다는 의미이다.지금도 학도암 주변은 이름에 걸맞게 경치가 좋다. 한여름에는 푸른 숲과 어울려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그 속에서 천진한 어린이들이 뛰어논다. 겨울이면 나뭇가지 위로 눈이 덮여 설국이 연출되기도 한다. 산중에 자리한 사찰치고 그러한 풍경을 가지지 않은 곳이 어디있겠냐 싶지만 학도암은 불암산의 감추어진 비경이 아닐 수 없다.

학도암의 상징은 암자 뒤쪽 커다란 바위 면에 새겨진 높이 13.4m 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관음보살좌상이다. 이 마애관음보살좌상은 1870년(고종 7) 명성황후가 발원하여 조성했다고 하는 것으로 자비로운 미소로 중생을 굽어 살피고 있어 학도암 뿐만 아니라 노원구의 명물이기도 하다.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은 전국적으로 많이 남아있지만 관음보살을 새긴 것은 많지가 않아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중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은 가장 크고 선명하게 남아있어 중요한 문화재로 여기고 있다.이처럼 학도암은 학이 날아와 놀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주변에 두고 전국에서 가장 큰 마애관음보살상 아래에서 향화(香花)를 올리고 있는 소중한 도량이다.

* 창건배경 및 역사

학도암은 1624년(인조 2) 무공화상(無空和尙)이 불암산에 있던 옛 암자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사정을 적은 기록이 없어 옛 암자라고 한 것이 어디에 있었으며,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1927년 편찬된 『봉선본말사지(奉先本末寺誌)』「학도암(鶴到庵)」조에 의하면 창건이후 250여년의 역사는 공백으로 남아있고, 1878년(고종 15)에 가서야 벽운화상(碧雲和尙)이 재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학도암 주차장 아래 자연암벽에 선각(線刻)으로 조성되어 있는 2기의 부도가 있어 1878년 벽운화상이 재창한 이전의 역사를 말해준다. 이 부도는 왼쪽부터 “청신녀월영영주지탑(淸信女月影靈珠之塔)”“환□당선사취근지탑(幻□堂禪師就根之塔)이다. 이 가운데“청신녀월영영주지탑(淸信女月影靈珠之塔)”은“가경이십사년기묘십월(嘉慶二十四年己卯十月)”이라는 명문이 함께 기록되어 있어 1819년(순조 19)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환□당선사취근지탑(幻□堂禪師就根之塔)도 19세기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이 된다.

또한 사찰의 뒤쪽 암벽에 선각된 마애관음보살좌상을 1870년(고종 7) 명성황후가 발원하여 조성했다고 한다. 이로 볼 때 1819년 무렵과 1870년 무렵에도 사찰은 법등을 이어오고 있었으며, 1875년에 이르러 벽운화상이 중창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에는 1878년 한씨(韓氏) 일가의 시주로 마애관음좌상을 보수하였고, 다시 1885년(고종 22) 벽운화상이 화승(畵僧) 경선화상(慶船和尙)을 불러와 불상 1구를 개금하고 불화 6점을 그려 봉안하였다. 이 시기 불사에 관한 내용은 〈천보산학도암개금탱화시주록기(天寶山鶴到庵改金幀畵施主錄記)〉로 기록되어 『봉선본말사지(奉先本末寺誌)』에 전하고 있다.

1922년에는 성담(聖曇)화상이 주지로 머물며 개인소유로 넘어간 사찰 소유의 산림(山林) 10여 정보를 매입하여 사찰의 경계를 확장하였다. 그 후 1966년에 이르러 김명호 주지가 퇴락한 법당을 중건하였으며, 1970년에 영산회상도를 봉안하였다. 1972년에는 삼성각에 칠성탱과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2000년에는 한사람이 겨우 출입할 수 있을 정도였던 자연 동굴을 넓혀 안에 석조약사여래좌상과 일광보살좌상, 월광보살좌상을 봉안하고 약사전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무이(無二) 주지스님이 법당 오른쪽 공터에 430cm 높이의 석조지장보살좌상을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