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나포면 군둔길 226
대한 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나포면 군둔마을에 위치해 있다. 본래 불지사였는데 불주사로 개칭했다. 군산 지역 사찰 중 유일하게 일주문이 있다. 현판에는 취성산 불주사라 새겨져 있는데, 취성산은 서해를 바라보고 있어 망해사라 하다가, 산세가 석가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 모습과 닮았다 하여 취성산으로 불리며, 정상에 봉화가 있었다 해서 봉화산으로도 불린다. 불주사는 계절마다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봄에는 파릇파릇한 여린 새싹들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철쭉이 주변을 물들이고 나면 온통 신록의 세상으로 바뀐다. 초록의 나무들과 여름을 지내고 나면 사찰 주변으로 붉은 꽃무릇이 가을을 준비한다. 이렇듯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부처의 세계요, 진정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불주사 인근으로 망해산과 봉화산이 있고 임피향교를 함께 둘러볼 수 있으며 구불2길 햇빛길과 금강 자전거길도 한번 경험해 보기 좋은 코스이다.
13.3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산면 하흥로 243-16
063-540-3172
매월당 김시습의 위패를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전북 김제시 하정리 백산중학교 앞에 자리하고 있다. 이 서원에는 김시습 외에 강승, 남효온의 위패를 배향하고 있다. 세 명의 어질과 현명한 선비를 모시고 있다고 해서 삼현서원이다. 김시습은 단종이 폐위되자 전국을 유랑하며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집인 '금오신화'를 짓기도 했다. 김시습과 함께 모신 강승은 김제군수를 역임했고, 남효온은 추강집을 남기고 육신전을 기록한 인물이다. 삼현서원은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생건마을에 1784년(정조8) 창건되었으나, 1869년(고종6) 서원철폐령에 의해 다른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훼철당하였고, 1924년에 지금의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백산중학교 입구에 재건되었다. 매년 2월 중정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13.3Km 2024-05-29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지사제로 191
전북 혁신도시에 위치한 카페캔버스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함께 맛있는 커피와 베이커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커피는 물론 매일 아침 직접 굽는 베이커리와 제철과일로 손수 만든 수제청을 사용하여 신선하고 다양한 먹거리를 선사한다. 건물의 형태는 마치 그림을 그리기 위한 캔버스를 떠오르게 하며, 점/선/면이 만나 생기는 프레임 밖의 모습은 계절, 시간에 따라 아름다운 차경을 선사한다. 특히 노을이 아름다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2021 전라북도 건축문화상 대상’을 수상한 만큼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3.3Km 2024-09-11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 1217-9
전주 IC 인근에 있는 호남제일문은 길이 43m, 폭 3.5m, 높이 12.4m의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에서 가장 큰 일주문이다. 전주의 지역 특색과도 잘 어울리는 한옥으로 지어졌으며, 8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전주로 진입하는 차들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일주문으로, ‘湖南 第一門(호남 제일문)’이라는 큼직한 글자가 눈에 띄는데, 강암 송성용 선생이 직접 쓴 글자이다. 호남지역 제1의 문이라는 의미와도 어울리게 웅장하고 화려하여, 전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13.3Km 2024-09-12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소토리,청하면 동지산리 일대
김제평야는 김제시를 중심으로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에 펼쳐진 호남평야의 중심이 되는 평야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도 김제시 일대의 평야를 “대평, 속칭 김제만경평야라고 한다(大坪俗稱金堤萬頃坪)”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큰들’을 표현한 것이다. 김제시의 큰들로는 만경강과 그 지류의 주변이나 하구에 분포한 용지들, 부용들, 동계들, 백구들, 저산들, 청하들, 만경들과 같은 넓은 들을 비롯하여 봉산들, 봉남들, 월촌들, 남포들, 돔배들 등이 있다. 이들을 통칭하여 김제평야라고 부른다. 김제평야는 호남평야의 중심이 되는 지역에 위치해 있어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주요한 수탈지가 되기도 하였다. 농업이 발달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김제 지역은 우리나라가 농업 중심의 경제 체제를 갖고 있던 1950년대까지는 잘 사는 고장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가 공업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공업 발전이 상대적으로 늦어지면서 더디게 발전하고 있는 도시가 되었다.
13.4Km 2024-10-16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장중길 105-8
이 집은 조선 선조대 문인 표옹 송영구(瓢翁 宋英耉)선생이 선조 38년(1605) 선친을 여의고 지은 곳으로, 이곳에서 우산(紆山)에 있는 선영(先塋)을 망모(望慕)하였다고 한다. 망모당이란 편액(扁額)은 중국사신 주지번(朱之蕃)의 친필을 현각한 것이다.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집으로 전면의 초석은 기둥모양초석으로 누집 형식을 이루고 있다. 기둥위에 첨차를 놓아 굴도리 밑의 장혀를 받친것이나, 난간두겁대의 받침기둥을 계자각 비슷하게 다듬은 것 등이 이 건물의 특징이다. 당모당 부근에는 100여명 정도가 앉아서 놀 수 있는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밑으로는 왕궁천이라는 냇물이 흐르고 있어서 주변의 경치가 매우 좋다.
13.6Km 2024-10-16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낭산면 장암길 113
* 심곡사의 유물 심곡사칠층석탑 * 심곡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176번지 미륵산 기슭의 장암마을 위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이다. 심곡사는 사찰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시대에 무염대사(無染大師)가 수도할 장소를 찾던 중 미륵산 깊은 골짜기에 들어와 절을 세움으로써 심곡사(深谷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심곡사가 위치한 미륵산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 서동(薯童)왕자인 무왕(武王)이 백제의 부흥을 꿈꾸며 세웠던 미륵사가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심곡사의 대웅전 앞에 자리한 심곡사칠층석탑은 2001년 9월 21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심곡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하며, 조성 시기는 고려 말 조선 초로 보고 있다. * 심곡사칠층석탑 * 재질은 화강암이며 전체 높이는 366㎝, 기단 높이는 116㎝, 탑신 높이는 250㎝, 1층 탑신 폭은 92㎝ 정도이다. 기단(基壇)과 탑신(塔身), 상륜부(上輪部)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 기단은 사각형의 기단석에 정교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여 그 솜씨가 뛰어나다. 또 탑신은 비교적 낮아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으며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도 표현하지 않았다. 1층의 받침돌 위에 7층의 옥개석(屋蓋石)을 올리고 맨 위에는 작은 연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었다. 옥신(屋身)과 옥개석이 1장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옥개석 받침은 3개로 표현되어 있고 경사가 완만한 옥개석의 처마끝은 모서리가 살짝 들어 올려져 있다. 바닥돌 위에 있는 받침돌에는 엎어 놓은 모습의 연꽃무늬와 위를 향한 모습의 연꽃무늬가 아래위로 각각 새겨져 있다.전체적으로 볼 때 기단부의 앙련, 복련 등은 고려시대 후기 탑의 양식이 남아있으며 옥개 받침의 약화 등 조선시대 탑의 특징이 보여지고 있어 과도기적인 석탑 양식의 변화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3.6Km 2024-05-21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53-5
시마타니금고는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의 대표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가 1920년대에 지은 금고용 건물이다. 시마타니는 우리 민족의 문화재 수집에 관심을 가지고 발산리 석등과 오층석탑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품을 불법 수집하였던 인물이다. 이 건물은 시마티니가 수집한 골동품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건물은 3층의 콘크리트 건물로 입구에는 철제 금고문이 달려 있고, 창문은 쇠창살과 철판으로 이중 장금 장치가 되어 있다. 현재 발산초교 자리에 농장을 만들었던 시마타니 야소야는 일본의 야마구찌현 구카군 출신으로 일본에서 주조업으로 재산을 모은 후 일본 청주의 원료인 값싼 쌀을 찾아 군산에 온 자인데 그는 1903년 12월 당시 돈 7만원으로 발산리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농장을 만들기 시작하여 1909년이 되자 임피 외에도 2개 면에 486정보의 농지를 소유한 농장주가 된다. 땅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던 시마타니 독은 해방 후 자신의 농장을 지키기 위해서 미군정청에 한국인으로 귀화를 신청했고 다른 일본인이 떠난 후에도 끝까지 귀국을 거부했고 그 덕분에 그는 군산의 마지막 일본인 농장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결국 그도 미군정청의 강제적 권유로 손가방 2개만을 지닌 채 부산항에서 마지박 귀국선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 건물은 반지하인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어진 3층까지 하나의 구조물인 일체형으로 만들고 내부의 각층은 나무마루로 구분된 건물이다. 외부로 통하는 창문에는 쇠창살을 치고 그 바깥쪽으로 철문을 달아놓아 2중의 방범장치가 되어 있다. 출입문은 USA마크가 선명한 문을 달아 놓았는데 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에서 수입한 수입품임을 알 수 있다. 금고의 반지하에는 옷감과 음식류가 있었으며, 2층에는 농장의 중요서류와 현금이 있었고, 3층에는 한국의 고 미술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13.7Km 2024-05-30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리 석등은 고려초기 작품이며 높이는 2.5m 로 기둥돌의 용무늬 조각이 특징이다.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지에서 일제강점기 때 시마타니가 반출하였다. 현재 위치는 발산초등학교 건물 뒤편의 정원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발산초등학교가 있는 곳은 1900년대 일본인 농장주 시미타니의 집과 농장이 있던 곳으로 그 당시 일본인 농장주가 수집했던 문화유적이 다량 보존되어 있었다. 하대석에는 8장의 연화복련(연꽃잎 2장이 겹쳐진 모습)이 새겨져 있고, 간주석에는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용의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처럼 기둥돌에 용이 새겨진 석등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작품이다. 또한 지대석은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3.7Km 2024-05-2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화포리 1192-1
새만금 광역탐방로는 새만금 배후 도시 개발 지역 주변에 조성되었다. 이곳은 자연경관이 우수한 만경강 제방길을 따라 탐방로 및 쉼터를 조성하며 탐방객들이 자연환경을 보고, 즐기고, 느낄 수 있도록 하며 새만금 바람길과 심포항을 찾는 관광객들의 이용이 용이하도록 탐방로를 조성하였고 새만금 생태환경을 체험할 수 있으며 가족형 관광객에게 좋은 인프라를 갖춘 관광지이다. 간척지와 들판, 바람, 갈대가 있는 자연적인 생태환경을 체험할 수 있으며, 만경 8경 중 1경인 만경낙조가 유명하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낙조 전망대, 포토존, 만경강 시비 등을 체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