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효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팔효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팔효사

1.6Km    15249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효자로 109-2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김제시가지 남부에 위치한 팔효사는 나주나씨 가문의 사당이자 서원이다. 이곳은 1629년(인조 7)에 건립되어 나주나씨 가문 출신의 8명의 효자를 기념하고 가르침을 주기 위해 세웠으나,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철거되었다. 그 후 1965년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이루어진 맞배지붕 형태의 사당과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 형태의 강당이 있다. 경내에는 수령 500여 년의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나주나씨 문중에서는 경사가 있을 때면 이 은행나무에 큰북을 달아서 두드림으로서 그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희한한 것이 이 은행나무는 8 효자가 태어날 때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은 효자 1명이 더 추가되어 9명의 효자를 모시고 있다. 주변에는 김제향교, 구산공원, 지평선생태수목공원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또한 호남선 철도 김제역과 김제종합버스터미널이 멀지 않아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맷돌순두부

2.0Km    4414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복죽로 585
063-546-4604

버섯순두부찌개는 옛날 방식으로 직접 맷돌에 콩을 갈아 만든 순두부에 여러 가지 버섯을 넣고 다른 순두부찌개와는 다르게 부추와 들깨를 갈아 뿌려져 나온다. 식사 시간이면 자리가 없어 기다릴 정도로 붐비는 곳이다. 남쪽 지방의 젓갈로 막 담근 겉절이와 간장으로 간을 한 채소 겉절이를 함께 먹는다.

대제복구비

대제복구비

2.2Km    15165     2024-09-12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후신길 4-27

김제시 연정동에 위치한 대제복구비는 1848년(헌종 14) 7월에 세운 것으로 김제군 내에서 가장 컸다는 대제저수지를 복구한 사람들에 대한 공적비이다. 비의 앞면에는 대제를 복구할 당시의 총위사, 전라도관찰사, 어사 그리고 김제군수 등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를 건립했다는 연유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에는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있다. ‘피 흘리는 비’는 대제복구비가 피를 흘린다는 비석전설이다. 1848년(헌종 14) 7월 대제를 복구하는 일이 있었을 때 대제복구비가 서 있던 뒤쪽에는 허름한 초가 한 채가 있었는데, 어느 해 이 초가집의 주인이 집을 고치게 되었다. 그때 자기 땅에 서 있던 대제복구비를 울안에 넣고 담을 둘러쳤다. 그런데 담을 치며 마지막 벽돌을 올려놓는 순간에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더니 대제복구비에서 피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집 안에 있는 우물에서도 핏빛과 같은 녹물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로 퍼졌으며, 사람들은 대제복구비 근처에 가기를 꺼려하게 되었다. 그 후로도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는데, 대제복구비가 서 있는 앞 도로에서 원인 모를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집주인은 대제복구비가 저주를 내린 것이라 생각하고 도로 담을 헐었다. 그 후로는 비에서 흐르던 피도 멎게 되었고, 우물에서 나오던 녹물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도 가끔 피를 흘릴 때가 있는데, 비에서 피가 흐르면 으레 비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난다고 한다. 왜 이 비석이 피를 흘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사연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백석서원

백석서원

2.3Km    15450     2024-09-13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범득골길 187-22 (갈공동)

백석서원은 조선 효종 3년(1652년) 승반산에 세워졌던 하나의 사당이다. 유집(柳楫)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고종 5년(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고, 1902년 지금의 자리에 앞면 3칸, 옆면 2칸 맞배지붕으로 된 한식 목조기와집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현서원

2.5Km    1513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산면 하흥로 243-16
063-540-3172

매월당 김시습의 위패를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전북 김제시 하정리 백산중학교 앞에 자리하고 있다. 이 서원에는 김시습 외에 강승, 남효온의 위패를 배향하고 있다. 세 명의 어질과 현명한 선비를 모시고 있다고 해서 삼현서원이다. 김시습은 단종이 폐위되자 전국을 유랑하며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집인 '금오신화'를 짓기도 했다. 김시습과 함께 모신 강승은 김제군수를 역임했고, 남효온은 추강집을 남기고 육신전을 기록한 인물이다. 삼현서원은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생건마을에 1784년(정조8) 창건되었으나, 1869년(고종6) 서원철폐령에 의해 다른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훼철당하였고, 1924년에 지금의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백산중학교 입구에 재건되었다. 매년 2월 중정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백산서원(김제)

백산서원(김제)

2.7Km    2060     2024-09-03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산면 하서3길 84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백산서원은 1928년 일제강점기에 창건된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청곡 윤찬을 비롯하여 구봉 윤여임, 죽계 백선남, 죽음 윤자선, 담재 윤자민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백산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무인 및 무관들이 모여서 강의를 하던 강당은 정면 5칸이다. 내삼문과 외삼문은 모두 3칸이다. 사당의 기둥은 백두산에서 베어 낸 나무를 바다를 통하여 옮겨 왔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색이 바랬으나, 상당히 큰 규모의 사원이다. 파평 윤씨 백산사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학당서원

학당서원

2.8Km    15209     2024-09-13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산면 생건길 42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생건마을에 위치한 학당서원은 조선 효종5년(1654)에 창건하고, 고종 6년(1869)에 철폐되었던 것을 1971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학당서원은 앞면 3칸, 옆면 2칸, 맞배지붕의 사당과 강당이 있다. 사당에는 청은 안처를 중심으로 장절공 정 감, 송암 안경지, 반매당 안 징, 병사공 안위, 죽헌 안 철, 우후공 월명 나신도, 월암 나팔기, 승지 안대규 등이 모셔져 있다.

흥복사(김제)

2.9Km    19315     2024-09-13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승반길 103

흥복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650년(의자왕 10) 고구려에서 온 보덕이 창건하여 승가사라 하였다.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였으나 현재로서는 알 수 없고,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절은 완전히 불타버려 절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 1625년(인조 3) 김제에 살던 흥복 처사가 부처님의 감응을 받아 이 절을 기원도량으로 삼아 극락전을 중건하면서 절의 이름을 흥복사라 불렀다. 그 뒤 절은 다시 퇴락하였는데 근대에 들어와서는 1943년 법운 스님이 극락전과 관음전 등을 중수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954년 불교정화운동 때는 교단의 행정본부가 되었으며, 1961년에는 월주 스님이 금산사와 흥복사의 주지를 겸임하면서 전라북도 지역 불교정화운동의 핵심역할을 했다. 1976-1979년에 걸쳐서 대대적 중창 불사가 거행되어 절의 면모가 일신되었다. 절에는 대웅전을 비롯해서 미타전, 미륵전, 삼성각, 사천왕전, 정혜원(요사), 요사 및 수각인 불유각 등 여러 채의 건물이 널찍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찰 경내에는 수령 600년 가량의 신단수와 설천이라는 우물이 있다.

모덕사(벽제서원)

모덕사(벽제서원)

3.0Km    15503     2024-09-13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입석동

모덕사는 벽제서원이라고도 하며, 토헌 박초(1367~1454)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67년에 세워졌다. 이곳은 조선초기에 이름을 떨쳤던 선비 박초의 학식을 본받고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박초는 어려서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15살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고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선 개국 직후에는 전라도 수군도절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 무엇보다 벽골제를 중수하여 고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421년(세종 3)에는 전라도 관찰사 장윤화가 벽골제를 없애고 그것을 토지로 돌려 농사를 지으면 어떻겠냐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박초에 의해 무산되었다. 벽골제 사적비문 역시 박초가 지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강당이 있다.

휘게팜

휘게팜

3.0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학동

휘게팜은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융복합사업 인증 사업자로 혼자 또는 가족, 친구와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편안하고 기분 좋게 소박한 행복을 즐길 수 있는 힐링농장이다. 휘게는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하는 덴마크어이다. 농촌의 활력을 느끼며 도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예쁜 꽃과 식물들을 실컷 구경하고 맛있는 음료도 마실 수 있는 문화치유 체험농장이기도 하다. 혼자서, 가족과 함께 소박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며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식물들이 반겨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아열대 식물과 과일들을 만나볼 수 있어 김제의 제주도라 불린다. 휘게팜에서는 벼, 유황쌀, 귀리, 블랙보리 등 다양한 농산물도 판매하고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농산물과 여러 프로그램들도 확인할 수 있다.